우선 <한경비즈니스> 창간 9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저는 이제부터 교세라 및 KDDI의 경영을 통해 기업경영에 중요한 것들을 설명하려 합니다. 그럼 기업경영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저는 그것을 ‘차원 높은, 숭고한 기업목적을 찾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아가 그 목적은 공명정대하고 대의명분이 있으며, 누구라도 마음으로부터 동조할 수 있는 올바른 것이 돼야 합니다. 이것을 깨달았던 것은 교세라를 창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입니다. 창업 전 저는 교토의 절연체(碍子)제조회사에서 파인세라믹(공업용 도자기) 연구개발에 관련된 한 명의 엔지니어였을 뿐입니다. 대학졸업하던 1955년에는 극심한 취업난도 계속됐습니다. 은사 소개로 들어간 회사는 매우 불안했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파인세라믹 연구를 맡았고 혼신의 힘을 다해 세라믹스 재료 합성이라는 큰 성과를 일궈냈습니다.당시 일본에서는 각 가정에 폭발적인 기세로 TV 보급이 이뤄졌습니다. 제가 개발한 파인세라믹 재료를 제품화한 고주파절연부품은 TV 브라운관에 사용되는 중요부품이었습니다. 적자회사에 수익을 가져다 준 유일한 제품으로 저는 기술자로서의 기쁨을 이때 처음 느꼈습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전환기가 찾아왔습니다. 입사 3년 때의 어느 날, 연구방법을 둘러싸고 직속상사와 충돌해 퇴직을 결심했습니다. 부하직원과 동료도 그만두고 함께 따라 나서겠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저의 세리믹스 기술을 바탕으로 새 회사를 만들자고 말해줬습니다. 이렇게 교세라는 1959년 4월1일 탄생했습니다. 자본금 300만엔에 공장건물은 세를 주고 빌린 창고였습니다. 종업원 28명의 영세기업으로서의 출발이었습니다.기업윤리 붕괴가 최근 위기의 본질당시 27살의 풋내기인 저를 믿어주신 분들의 은혜를 갚기 위해서라도, 또 ‘고락을 함께하자’며 따라와 준 동료들을 위해서라도 필사적으로 일해 회사를 훌륭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을 느낄 때마다 저는 불안에 쫓겨 안절부절못할 정도였습니다. 다행히 교세라는 창업 1개월째부터 흑자를 올렸습니다. 그러나 저는 경영자로서 상당히 불안했었습니다. ‘단일상품인 고주파절연부품의 주문이 끊기면 교세라는 즉시 문을 닫고 사원들은 거리에서 헤매게 될 것’이라는 걱정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새 거래처 개척을 위해 필사적으로 뛰었습니다. 하지만 실적도 지명도도 없는 교세라가 따낸 주문은 선발업체조차 포기한 어려운 제품뿐이었습니다. 그래도 회사가 살기 위해서는 ‘누구도 할 수 없는’ 제품개발에 과감하게 도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결과 창업 1년 후 결산에서는 매출 2,600여만엔, 경상이익 430만엔이라는 아주 좋은 성적을 거뒀습니다.교세라의 기업목적은 당초 ‘이나모리 카즈오의 기술을 세상에 알린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전에 일한 회사에서 제 기술을 인정해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퇴사했기 때문입니다. 동료들도 이 목적에 동의해 줬습니다. 그런데 교세라 창업 3년째 되던 해였습니다. 신입사원 11명이 갑자기 단체교섭을 신청해 왔습니다. 이름과 혈서를 연명한 요구서를 들이대며 ‘내년 승급과 보너스를 보장해 주지 않으면 전원 퇴사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요구를 거절했습니다. 창업 이래 흑자경영을 해 왔으나 아직 암중모색의 상태인데 장래를 보장하라니 도저히 불가능했습니다. 결론이 나지 않자 저는 사흘 밤낮에 걸쳐 설득했습니다. ‘요구 이상의 것이 가능하도록 나의 목숨을 걸고 일하겠다. 그것만은 약속한다. 나를 믿고 따라와 줄 용기가 없는가’라고 물었습니다. 또 ‘내가 배신한다면 그때는 나를 찔러 죽여도 괜찮다’고까지 말하자 그들도 요구를 철회하고 전원 회사에 남기로 했습니다.이 과정에 저는 ‘회사의 목적이란 무엇인가’를 곰곰이 생각하게 됐습니다. 기업경영의 참된 목적은 기술자의 꿈을 실현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경영자나 그 일족이 풍요로워지는 것도 아닙니다. 종업원과 그 가족의 현재와 미래를 지켜주는 것이야말로 바로 기업경영의 핵심임을 깨달았습니다. 이때부터 저는 교세라의 경영목적을 새롭게 재정비했습니다. 바로 ‘종업원의 행복을 위해 물심양면 지원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단 이는 교세라만의 행복추구로 오해받을 소지가 있었습니다. 그러면 공기(公器)로서의 기업책임도 다할 수 없으며, 또 인생을 의미 있게 살고 싶다는 저의 생각과도 달라 추후에 ‘인류사회의 진보발전에 공헌한다’는 문장을 더했습니다. ‘종업원의 행복을 위해 물심양면 지원함과 동시에 인류사회의 진보발전에 공헌한다’는 경영이념은 현재까지 변함이 없습니다. 경영자의 꿈, 욕망보다 종업원의 이익ㆍ행복과 사회공헌은 ‘이기’(利己)에서 ‘이타’(利他)로의 경영전환이었습니다.인간은 뭔가에 혼신의 힘을 다하려면 ‘대의’를 필요로 합니다. 대의라는 건 ‘공익’, 결국 개인의 이익이 아닌 ‘세상을 위해, 사람을 위해’라는 공익입니다. 이런 고매한 이유와 목적이 존재함으로써 비로소 진심으로 열심히 일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고액의 보수 등 물리적 인센티브도 이길 수 있는 최고의 동기부여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상의 경험을 통해 저는 기업에는 고매한 목적ㆍ의의(意義), 결국 대의명분이 필요하고 이것이 경영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 생각을 더 견고히 한 것은 그로부터 20년 남짓 경과한 DDI 창업 때였습니다.1984년 일본은 전기통신사업의 자유화를 맞이했습니다. 전전공사(電電公社)가 민영화돼 NTT로 바뀜과 동시에 통신업계에 신규진입이 가능해졌습니다. 저는 통신요금 수준이 세계적으로 비싸 국민들에게 큰 부담을 주고 있으며 일본의 건전한 경제발전을 해치고 있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때문에 이 기회에 어떤 대기업이라도 경쟁참가를 표명해 통신요금이 내리기를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리스크가 너무 큰 탓인지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고, 결국 제가 손을 들었습니다. 당시 4조엔 매출의 NTT에 도전하기에 교세라는 너무나 취약했습니다. 창 하나로 거대한 풍차에 맞서는 돈키호테와 같았습니다.진입을 결심한 후 매일 밤 저는 고민했습니다. 저의 동기가 순수한지 자문자답했습니다. 반년 가까이 지나고 드디어 ‘동기가 선한 것이고 일절 사심은 없다’는 것을 확인하자 드디어 용기와 열의가 생겨 DDI 창업에 나섰습니다. 교세라가 손을 든 후 2개사가 경쟁참가를 표명했고, 결국 신전전(新電電)은 3사 경합으로 출발했습니다. DDI는 다른 2개사와 비교해 압도적으로 불리하다는 평판이 많았습니다. 경영자에게 통신사업 경험이 없고 통신인프라나 기술축적이 없다는 것 등이 주된 이유였습니다. 그러나 실제 창업 직후 DDI는 신전전 3사 중 가장 우수한 실적을 올리고 있습니다. 대의명분을 갖고 열심히 노력했기 때문입니다.2000년 10월 저는 DDI를 KDD, IDO와 합병시켜 KDDI라는 새 회사를 만들었습니다. 라이벌이었지만 저는 ‘이기심을 버리고 대의를 위해 뜻을 합치자’는 말로 ‘대의’(大義)에 근거해 대동단결을 호소했습니다. 저의 제안은 파트너에게 받아들여졌고, 그 결과 ‘평성(平成) 대합병’이라 불린 합병은 대성공으로 마무리됐습니다. 대의명분이란 ‘허울만 좋고 경영에 도움이 안된다’고 의심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겉치레’야말로 모든 것을 성공으로 이끄는 원동력이 된다는 것을 저는 교세라나 DDI 경영을 통해 확신했습니다. 대의명분의 공유는 기업에 에너지를 부여하고, 기업윤리의 붕괴를 막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CEO보다 종업원 우선, 이기에서 이타로최근 세계적 기업의 여러 부정사건은 자본주의 경제에 잠재하던 새 문제를 드러냈습니다. 엔론, 월드컴 사건이 보도됐을 무렵 일본에서는 유제품제조사인 유키지루시그룹에 의한 불량식품 은폐사건, 또 최대 전력회사인 도쿄전력의 원자력발전소 트러블 은폐사건이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유키지루시는 해체됐고, 도쿄전력은 원자로 운전이 일시 정지돼 거액의 손실을 봤습니다. 얼마 전에는 일본 3위 자동차메이커인 미쓰비시자동차의 30년에 걸친 리콜은닉, 불법개조가 발각돼 신뢰를 잃고 경영위기에 빠졌습니다. 이밖에 명문섬유회사의 분식결산, 도시은행(都市銀行)의 재무성 검사기피, 철도회사의 재무제표상 허위기재 등도 발각됐습니다. 한국에서도 대기업뿐만 아니라 신흥벤처에서 유사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기업 불상사가 일어나는 것일까요.원인 중 하나로 현재의 경영시스템 문제를 지적할 수 있습니다. 가령 최근 미국에서는 경영자에게 거액의 보수나 막대한 스톡옵션을 주는 게 상식처럼 돼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경영자의 동기부여가 되는 반면, 종업원과의 급여 격차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이는 당연히 문제가 됩니다. 이뿐만 아닙니다. 거액의 스톡옵션은 경영자 자신을 타락시킵니다. 거액 보수나 스톡옵션은 아무리 훌륭한 인격자라 해도 경영자를 마약처럼 갉아먹고 자기 이익을 최대화하는 방향으로 유도시킵니다. 저는 기업을 건전하게 성장,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경영자의 윤리관 저하를 초래하는 보수시스템을 고쳐야 한다고 봅니다.현재 직면한 기업통치의 위기를 미연에 막으려면 근본적인 리더의 자질을 고민해야 합니다. 현재 리더 선임에 있어 ‘덕’(德), 즉 인격은 그다지 재고되지 않고 능력과 실적만 중시됩니다. 나아가 거액 보수도 인센티브로 제공합니다. 결국 ‘인격자’보다 실적에 직결되는 ‘재주’를 가진 이가 리더에 더 어울리는 셈입니다. 하지만 사람을 통솔하는 리더는 보수가 아닌 사명감을 갖고 자기희생을 기꺼이 감내하는 고결한 ‘인격’을 가져야 합니다. 욕망을 억제하는 강한 극기심과 그 성과를 사회에 환원하는 것을 기쁘게 여기는 ‘이타심’(利他心)을 갖춘 훌륭한 ‘인격자’가 아니면 안됩니다. 자본주의의 여명기가 딱 그랬습니다. 자본주의는 기독교 사회, 그 안에서도 특히 윤리적인 사고에 엄격한 프로테스탄트 사회로부터 태어났습니다. ‘세상을 위해 사람을 위해’라는 게 이들 프로테스탄트의 윤리규범이었습니다. 또 그 높은 윤리관 때문에 자본주의 경제가 급속히 발전했습니다.그런데 자본주의 발전의 원동력이었던 윤리관은 아이러니하게도 경제발전과 함께 희박해지고 어느새 ‘자신만 좋으면 된다’는 이기적인 방향으로 전락했습니다. 중국의 저명한 사상가인 여신오(呂新吾)는 리더의 자질에 대해 저서 <신음어(呻吟語)>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리더의 제일 중요한 자질(제1의 자질)은 깊이 사물을 생각하고 중후한 성격을 가진 인격자여야 한다는 점입니다. 반면 머리가 좋고 재능이 있으며 언변이 뛰어난 리더는 우선순위가 낮은 자질(제3의 자질)이라고 말합니다. 현재 기업의 리더는 제3의 자질을 가진 사람이 주로 선택됩니다. 온통 재주가 넘치는 사람들뿐입니다. 애널리스트, 벤처캐피털리스트들도 이런 기지 넘치는 경영자에게 높은 점수를 줍니다.일본에는 ‘재사(才士)는 재(才)에 빠진다’는 격언이 있습니다. 기지를 타고난 사람은 그 평범하지 않은 재능으로 큰 성공을 이뤄내지만 그 기지를 과신하거나 오용해 결국 파탄한다는 교훈입니다. 기지를 지닌 사람일수록 그 힘을 컨트롤해야 합니다. 저는 그것이 ‘인격’이며, 그 ‘인격’을 높이기 위해서는 철학과 종교 등을 통해 ‘인간으로서 바르게 살아가는 법’을 반복적으로 학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인격’이란 무엇일까요. 저는 인격이란 인간의 선천적인 성격이 인생여정에서 후천적으로 닦여지는 것이라고 봅니다. 인격에 문제가 있으면 사리사욕을 위해 부정을 저지르게 됩니다. 선천적인 성격이 미미해도 인간으로서 바르게 사는 방법을 배워간다면 후천적으로 훌륭한 ‘인격자’가 될 수 있습니다.CEO 인격이 높아야 기업도 장수리더에게 있어 필요한 건 ‘인간으로서 바르게 살아가는 법’을 반복학습하고, 그것을 항상 이성으로 제지하려는 노력입니다. 자신의 행동을 매일 돌아보고 반성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 과정을 통해 성격의 비뚤어짐이나 결점을 수정한다면 새로운 인격, 즉 ‘제2의 인격’을 틀림없이 만들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으로서 바르게 살아가는 법’이란 무엇일까요. 사실 이것은 고매한 철학이나 종교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우리들은 어린 시절 부모님이나 선생님으로부터 ‘욕심내지 마라’, ‘속이지 마라’, ‘거짓말하지 마라’, ‘정직해라’ 같은 기본규범에 대해 가르침을 받습니다. 그 안에 ‘인간으로서 바르게 사는 법’은 이미 있지 않을까요. 이 가르침의 의미를 새롭게 생각하고, 그것을 철저하게 지키는 것이 결국 제일 중요해집니다.대표적인 리더에게 이것을 물으면 ‘일류대학ㆍ비즈니스스쿨을 우수하게 졸업한 후 톱에 오른 자신에게는 실례’라고 일축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런 리더가 그 간단한 가르침을 지키지 않아 기업 불상사가 계속 발생하는 것 아닐까요. 기업 불상사로 파탄한 기업은 정직함을 버리고 부정한 수단으로 이익을 얻고, 또 남을 속이고 사실을 은폐했습니다. 실적을 위한 욕심으로 거짓결산도 불사했습니다. 현재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도의 관리시스템 구축과 엄격한 관리가 급선무라고 합니다. 그러나 저는 앞서 언급한 단순한 원초적 가르침을 기업리더인 경영자가 먼저 지키는 게 더 낫다고 봅니다. 기업윤리 확립에는 지름길이 없습니다. 저는 리더가 고결한 인격유지를 위해 노력하는 것만이 경영위기를 막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믿습니다. 기지만을 갖춘 리더가 큰 권력을 휘두르면 어떤 기업시스템도 유명무실해질 게 확실합니다.거듭 반복합니다. 경영의 요체라는 건 기업 내에 그 기업이 의존하는 보편적인 목적과 의의(意義), 말하자면 ‘대의명분’을 확립하고 동시에 경영자 자신이 바르고 고매한 철학을 몸에 익히도록 항상 마음을 닦는 것입니다. 경영의 성패는 오로지 경영자의 살아가는 방법을 실현하느냐 여부에 달렸습니다. 경영자가 선두에 서 ‘인간으로서, 기업으로서 어떻게 살아갈 건가’에 대해 사원들과 공유해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기업 내에 확고한 윤리관을 구축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또 이런 경영의 왕도를 잊지 말고 노력하는 기업만이 성장. 발전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여기에 모이신 한국경제를 대표하는 여러분의 건승과 한국경제가 더욱 발전하기를 염원하며 이만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