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교보·동원계열 금융사 ‘각개약진’…외국계 생보사도 활기 넘쳐

비은행권 금융기관도 ‘금융재편 회오리’의 예외지역일 수 없다. 금융산업 재편의 바람이 증권과 보험산업에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다.비은행권 산업자본의 대표주자 삼성은 ‘은행에 질 수 없다’는 입장이다. 증권업과 생보업계, 손보업계에서 각각 시장점유율 1위인 삼성증권과 삼성생명, 삼성화재를 앞세워 입지를 더욱 강화한다는 전략이다. 삼성투신운용과 삼성선물, 삼성벤처투자 등 덩치 작은 금융계열사도 거느리고 있다.하지만 산업자본과 금융자본 분리가 법으로 규정돼 있는 한 삼성은 태생적으로 금융업에 드라이브를 거는 데 한계가 있다. 은행 중심으로 금융산업이 재편되는 상황에서, 은행 없이 금융시장의 최후승자가 되는 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삼성은 삼성카드로 금융업에 한번 덴 경험까지 있다.교보 역시 막강한 그룹계열 금융사를 보유하고 있다. 교보증권과 교보생명, 교보자동차보험 등 1등은 아니지만 각 업계의 상위권을 지키는 계열사로 무장하고 있다. 이들 관계사끼리의 시너지 효과도 톡톡히 거둘 수 있다는 장점도 돋보인다. 교보투신운용의 경우 1대주주가 교보증권(64%)이며 2대주주는 교보생명이(15%)다.동원은 유일무이하게 증권사 중심의 금융지주회사를 갖고 있다. 올 상반기만 해도 동원 외에도 증권사 기반의 지주회사가 1개 더 있었다. 바로 세종금융지주다. 세종금융지주는 2000년 6월 지주회사로 신고했으며 같은해 11월 금융지주회사법 시행으로 금융지주회사 인가를 받은 것으로 간주됐다.하지만 금감위는 이 회사 회장의 벌금형 선고를 들어 지난 2002년 2월 세종금융지주의 지주회사 인가취소와 함께 자회사 주식처분을 내린 바 있다. 계열사 2개를 거느리던 세종금융지주는 결국 지난 8월 금감위의 금융지주회사 인가취소에 따른 지주회사 지위를 상실했다. 일반법인으로 전환하게 된 세종금융지주는 세종캐피탈로 사명을 바꾼 후 일반법인으로 탈바꿈 중이다. 현재 금융지주회사법상 금융지주회사는 총자산의 50% 이상을 자회사 주식으로 가진 최대주주여야 한다. 금감위의 금융지주회사 인가취소 후 세종캐피탈은 보유하던 세종증권 주식 47.50% 중 일부를 처분해 최대주주 자리에서 물러나거나 전체 자산을 늘려 지주회사 요건에서 벗어나게 됐다.2003년 5월 설립된 동원금융지주의 총자산은 지난 3월 기준으로 1조220억원, 총자산은 1조1,217억원이다. 동원금융지주는 동원증권과 동원창업투자, 동원상호저축은행 등을 자회사로 거느리며 손자회사로는 동원투신운용, 동원증권 뉴욕ㆍ런던 현지법인, 동원캐피탈 등이 있다.동원금융지주의 경우 한투증권 인수 후에 인기 급상승을 체험했다. 지난 10월 공적자금관리위원회가 동원금융지주의 한투증권 매각계획을 승인한 뒤 동원금융지주는 금융업종의 ‘미인주’로 거듭났다. 지난 11월15일에는 주가와 외국인지분율이 나란히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주가는 연중 저점인 지난 2월의 5,100원에 비해 9개월 만에 84% 올랐다. 동원증권의 경우 업계 5~6위권이지만 한투와 합치면 약정부문과 위탁수수료부문에서 선두권으로 거듭날 것으로 보인다.증권업계 구조조정 가시화그렇다면 이들 그룹계열 금융사는 ‘은행권 거대 금융사’ 등장이라는 시대 조류 앞에서 그룹의 뜻대로 위상을 유지할 수 있을까. 금융업 중 덩치가 큰 증권의 예로 살펴본다면 결론은 ‘쉽지 않다’는 것이다.조용화 대신경제연구소 애널리스트는 “은행계 거대 증권사의 탄생으로 삼성증권, 교보증권 등 그룹계열 증권사의 위상은 상대적으로 위축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단적인 예가 시장점유율 순위변동이다.현재 증권업계에는 시시때때로 언급만 되던 구조조정이 실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먼저 우리금융지주가 LG투자증권을 인수하기로 했고, 신한금융지주는 굿모닝신한증권을 완전자회사로 편입시키기 위해 주식교환, 이전 결의를 했다. 아울러 하나은행은 대한투신증권을 인수하기 위해 작업 중이다. LG투자증권을 제외하곤 이 모든 인수ㆍ합병(M&A)이 이미 예정돼 있었다. 인수자 선정과정에서 지속적으로 매각이 연기됐을 뿐이었다.일단 LG투자증권이 우리증권과 합병될 경우 시장점유율이 9%대로 올라선다. 8%의 삼성증권을 제치고 명실상부한 업계 1위로 입지를 굳히게 되는 것. 게다가 은행계 증권사는 은행의 거대한 인적ㆍ물적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소매영업, 금융상품 판매, IB(투자은행)영업부문에서 점진적 시너지 효과를 나타내며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유리하다.조애널리스트는 “하지만 시장점유율 변화에도 그룹계열 증권사의 구조조정은 이뤄질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예측했다. 그룹계열 증권사는 그룹 입장의 증권사에서 그 필요성이 절실해서다. 그룹 관련 업무수행을 위해 필요하고, 증권사도 계열사로부터 얻는 영업상의 이득이 있기 때문에 은행계열도 아닌 그룹사계열도 아닌 이른바 ‘비은행, 비그룹 증권사’에 비해서는 상대적 우위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반면 비은행, 비그룹이면서도 규모가 크지 않은 중소형증권사는 그야말로 태풍전야에 놓여 있다. 중소형증권사는 인수합병보다 청산을 통한 구조조정 가능성이 더 높다. 시장점유율이 1~1.5%에 못미치는 증권사는 인수합병 대상으로서의 매력 자체가 크지 않아서다.한정태 미래에셋증권 애널리스트는 “증권업의 구조조정은 업계재편은 물론 수줄이기 게임으로 연결돼야 증권업 전망이 밝아질 것”이라며 “하지만 아직은 구조조정으로 확대되며 증권사의 펀더멘털 변화를 가져올지에 대해서는 좀더 시간을 두고 확인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방카슈랑스 후 외국계 생보사 ‘승승장구’보험산업에서 보이는 큰 변화는 외국자본의 ‘실력발휘’다.생명보험업계의 경우 99년 4.6%이던 외국자본 점유율이 올 215.5%로 3배 이상 늘었다. 손해보험업계는 생보산업에 비해 속도는 더딜 뿐 외국자본은 꾸준히 침투 중이다. 98년 생보시장에서 0.4%를 차지하던 외국자본은 올 2분기 1%로 올라섰다.방카슈랑스 시행 이후 푸르덴셜생명과 ING생명, 메트라이프생명 등 외국계 생보사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시장점유율을 끌어올렸다. 방카슈랑스 시행 전인 10개월 동안 외국계 생보사의 시장점유율을 7.3%였다.반면 방카슈랑스가 시행된 지난해 9월 이후 10개월 동안 외국계 생보사는 15.7%까지 점유율을 높였다. 국내 대형사보다 판매망이 부족했던 외국계 생보사로서는 방카슈랑스가 판매망 보강 역할을 해준 셈이다.지난 11월16일 생명보험업계가 발표한 2004 회계연도 상반기(4~9월) 결과를 살펴보면 외국계 생보사의 국내 생보시장 잠식이 더더욱 실감난다. 올 상반기(회게연도 기준)에 30%의 고성장을 기록한 외국계 생보사들은 시장점유율 또한 3.3%포인트 상승하며 16.5%를 보였다.반면 국내 생보사들은 83.5%의 시장을 점유하는 데 만족하며 4.3%의 낮은 성장률을 보였다. 올 상반기 23개 생보사가 거둬들인 수입보험료는 총 24조7,882억원. 이중 12개 국내 생보사는 20조6,926억원을 거둬들여 4.3%의 저조한 성장을 보인 데 반해 11개 외국계 생보사들은 35.3% 증가한 4조957억원의 수입보험료를 보였다.외국계 생보사의 시장점유율은 2001년에는 8%대에서 2002년에 10%로 증가했다. 이후 2003년 상반기 13.2%, 올 상반기 16.5%로 불황에도 고성장의 기록을 세우는 중이다. 반면 삼성과 대한, 교보생명 등 국내 빅3는 올 상반기 2.5%의 낮은 성장률을 보였다. 빅3의 시장점유율 역시 끝내 70%대 밑으로 추락했다. 전년 동기에 72.9%를 차지했던 빅3는 올 상반기에 69%를 점유하는 데 그쳤다.외국계 생보사들의 순위 자체도 상승했다. 지난해 12위였던 AIG생명은 7위로 뛰어올랐고, 13위였던 메트라이프생명은 11위로 올라섰다. 6위인 동양생명을 제외하면 ‘국내 빅3’ 뒤를 ‘외국계 빅3’가 바짝 붙어 뒤를 잇는 모습이다.한국금융연구원이 최근 개최한 제14회 금융동향 세미나 ‘금융산업 분석’에서는 “2005년 이후 생명보험업계의 외국사 시장점유율 증가”가 예측됐다. 토종 중소형 생보사의 수익성은 악화된다고 전망한 것과는 차이를 보였다.박진수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지난 7월 말에 발간한 ‘외환위기 이후 금융산업 재편에 따른 경쟁구조의 변화’라는 리포트를 통해 “외국계 금융기관의 영향력 강화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연구원은 “외국계 금융기관들은 앞선 신용평가능력을 주무기로 국내 소매금융시장에서 탄탄한 입지를 확보할 전망”이라며 “과거 보험업의 성공요인은 보험설계사였으나 새로운 경쟁구도하에서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고 했다.그는 이어 “전방위적 경쟁상황에서 특히 보험상품 등의 판매를 위해 고객 베이스가 풍부한 판매채널을 확보하는 게 급선무”라며 “판매채널의 다양화를 통한 차별화 전략을 세우는 것도 경쟁력의 필수요소”라고 덧붙였다.돋보기 HSBC의 행보“제일은행 인수하면 씨티와 경쟁구도”외국계 금융기관 중에서도 최근 눈길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곳은 바로 영국계 HSBC(홍콩상하이은행)다. HSBC가 제일은행 인수에 나섰다는 얘기가 들리면서 HSBC의 행보 하나하나가 무성한 소문을 낳는다.제일은행이 지난 11월16일 “대주주 뉴브릿지 홀딩스가 현재까지 당행 지분 매각에 관한 결정이나 계약은 없다고 회신해왔다”고 밝혔지만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사실 HSBC는 제일은행 인수를 추진한 전력이 있다. 한국 금융시장에서의 점유율 확대를 위해 98년 제일은행과 접촉했다. 당시 로버트 코헨 행장 등 제일은행의 임원들은 HSBC의 본점이 위치한 홍콩으로 건너가, 은행전략을 설명하기까지 했다. 98년 당시 HSBC 관계자들도 한국 내 은행을 인수할 것이라고 여러 차례 밝혔다. 하지만 인수 가격에서 의견 차이가 발생해 지난해 12월 협상 결렬을 선언했다. 한편 HSBC는 올해 SK생명 인수를 위한 실사에 참여한 적도 있다. SK생명 인수를 추진하다 결국 메트라이프생명에 주도권을 뺏겼다. 은행과 보험 등 여러 금융산업에서 왕성한 식욕을 보이는 HSBC. 국내에서 앞으로 어떤 활동을 선보일지 작은 움직임에도 업계는 촉각을 곤두세우는 상황이다.1865년 HSBC는 1865년 전세계 76개국에 1만여개의 지점을 둔 초대형 은행이다. 지난 82년 부산에 1호 지점을 내며 한국에 진입했다. 국내에서는 현재 전국 8개 지점망으로 소매대출 위주의 영업을 펼치고 있다.HSBC가 제일은행을 인수하게 되면 9조2,000억원 정도였던 HSBC의 한국 내 자산은 56조원으로 대폭 증가한다. 또 전국 400여개에 달하는 제일은행의 지점으로 HSBC는 영업망을 고스란히 이어 받게 된다. 씨티은행의 한미은행과의 합병과 비교한다면, 씨티은행의 경우 한국 내 자산이 14조원에서 66조원으로 늘었고, 지점수는 223개로 증가했다. HSBC의 제일은행 인수가 성사되면 한국씨티은행보다는 자산이 10억원 정도 적은 수준이지만, 지점수는 180여개 정도 많아진다. 한국 땅 안에서의 외국은행 전쟁도 예고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