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해소·조직통합이 관건…구조조정도 미결과제

국민은행은 누가 뭐래도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리딩뱅크(선도은행)다. 지난 11월11일 한국은행이 콜금리를 전격적으로 인하했을 때 은행들이 언제 여수신 금리를 내릴 것이냐에 관심이 쏠렸다. 그러나 대부분 은행들의 답변은 거의 비슷했다. “국민이 금리를 어떻게 하는지 보고 결정하겠다”는 것.합병 초기에 비해서는 국민의 위상이 많이 약해진 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이 은행들에 미치는 영향은 여전히 이처럼 막강하다. 원인은 다름아닌 시장지배력 덕분. 지난 9월 말 현재 국민의 총자산은 207조원. ‘세계 100대 은행’답다. 점포수 1,135개에 2만7,000여명(비정규직 포함)의 직원을 거느리고 있다. 국내 수준에 비춰볼 때 가히 ‘공룡은행’이라고 할 수 있다.그렇지만 지난해부터 국민은행의 막강한 위상에 서서히 금이 가고 있다. 카드부실로 크게 휘청거리더니 회계부정사건까지 터져 은행 꼴이 말이 아니게 됐다. 더욱이 신임은행장 선임 과정에서 ‘한 지붕 세 가족’인 합병은행의 단점을 그대로 드러내며 조직간의 갈등도 더욱 커졌다. 우리, 신한, 하나 등은 이 틈을 노려 반공개적으로 ‘리딩뱅크’를 뺏기 위한 도전장을 던졌다.이에 대응하는 국민의 전략은 한 마디로 ‘편하고 튼튼하며 지혜로운 은행을 만드는 것’(강정원 행장)이다. 자산을 급격히 늘리기보다 있는 것을 지키며 더 다지고 탄탄하게 만든다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 자산건전성을 회복하고 우위인 소매금융업무를 더욱 강화하며 상대적 열세인 기업금융업무를 보강하겠다는 계획을 국민은행은 세우고 있다.옛 국민은행과 주택은행의 합병으로 탄생한 국민은행. 두 은행 모두 서민을 대상으로 한 은행이기 때문에 그만큼 고객 저변이 넓고 뿌리도 깊다.지난 9월 말 현재 거래고객은 2,495만명. 우리나라 인구 2명 중 1명은 국민과 거래하고 있는 셈이다. 총수신은 138조5,787억원, 총여신은 140조281억원에 달한다. 총자산은 207조원. 신한과 조흥을 합친 총자산(165조원)과 우리금융(134조원)보다 훨씬 많다. 이러다 보니 마음만 먹으면 이익을 내는 건 식은 죽 먹기다. 극단적인 예로 대출금리를 1%포인트만 올리면 1년에 1조4,000억원의 이익이 새로 생긴다. 수수료도 마찬가지다. 다른 은행과 똑같은 수준으로 대출금리와 수수료를 올린다고 가정해도 손에 쥐는 이익은 하늘과 땅 차이다. ‘빈대가 한번 모래밭에 굴러서 붙는 모래알과 황소가 모래밭에 굴러 들러붙는 모래알의 차이’라고나 할까.이런 규모 덕분에 국민의 이익규모는 엄청나다. 지난 2001년 1조4,300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낸 데 이어 지난 2002년에도 1조3,100억원의 이익을 올렸다. 지난해 카드사 합병으로 대규모 상각을 실시하면서 7,533억원의 적자로 돌아섰지만, 올 들어 지난 9월 말까지 6,825억원의 흑자로 돌아서는 데 성공했다.충당금을 적립하기 전 영업이익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비록 7,533억원의 적자를 냈지만 충당금적립 전 영업이익은 4조5,297억원에 달한다. 자산건전성만 확보되면 순이익도 덩달아 불어나는 엄청난 잠재력을 갖고 있다는 얘기다.누가 뭐래도 국민의 최대 강점은 소매금융이다. 충성도 높은 2,500만여명에 이르는 고객이 국민의 소중한 자산이다. 합병 후 김정태 전 국민은행장은 “소매금융의 세계 최고은행”을 선언, 그렇지 않아도 강한 소매금융업무는 한층 더 강화됐다.비단 예금대출만이 아니다. 투신사 펀드와 방카슈랑스(은행창구에서 판매하는 보험상품) 판매실적도 압도적 1위다. 전체 대출금의 67%가 가계에 나가 있을 정도로 소매금융에 관한 한 독보적이다.국민은 이런 장점을 충분히 살려 한단계 높은 수준의 서비스를 가미한다는 전략을 세워놓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다수의 고객들에게 프라이빗뱅킹(PB)에 가까운 맞춤형 복합금융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국민은행은 현재 ‘Gold & Wise’라는 별도 브랜드로 PB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 15개인 PB센터를 늘려가는 것과 함께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 고객도 세분화해 차원 높은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특히 국민의 장점인 많은 점포를 충분히 활용, 고객이 원하는 복합금융서비스를 제공할 경우 한국씨티와의 PB경쟁은 물론 다른 은행들과 소매금융업무에서도 당분간 월등한 우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소매금융업무에 비해 기업금융업무는 상대적으로 위축돼 있다. ‘기업금융시장에서 국민은 왕따’라는 소리가 나돌 정도로 신뢰도도 추락해 있다.지난 11월1일 취임한 강정원 행장은 상대적 열세인 기업금융업무를 보강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구체적으로는 IB(투자은행업무)와 자산운용업무 등을 세계적인 은행과 대등한 수준으로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서민은행이라는 틀을 깨고 리딩뱅크에 걸맞은 역할을 다하겠다는 구상인 셈이다.국민이 지난해 적자로 돌아선 가장 큰 이유는 엄청난 부실 때문이다. 합병한 국민카드의 부실도 컸지만 소호(자영업자)대출 등 은행 자체의 부실도 엄청났다. 이러다 보니 막대한 영업이익을 내고도 엄청난 적자를 내고 말았다.이 같은 상황은 올 들어 개선되고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아직은 경쟁은행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지난 9월 말 현재 고정이하여신비율은 3.54%, 연체율은 3.26%에 달한다. 1%대에 불과한 하나, 신한에 비해 엄청나게 높은 수준이다. 더욱이 경쟁은행들은 경험손실률에 의해 대손충당금을 100% 적립한 상태다. 그러나 국민은 74%밖에 쌓지 못했다. 이런 부실을 해결하지 않는 한 아무리 많은 영업이익을 내더라도 ‘밑 빠진 독에 물붓기식’이 될 수밖에 없다.국민은 이에 따라 자산건전성 회복을 서두르고 있다. 당장 4분기에 대규모 대손상각을 실시, 부실을 상당부분 털어낸다는 구상이다. 아울러 대손충당금을 100% 수준으로 쌓을 예정이다.합병 국민은행이 출범한 지 11월1일로 꼭 3년주년이 됐다. 그러나 직원들까지 통합된 것은 결코 아니다. 김정태 전 행장의 후임자를 선임하는 과정에서 갈등은 극대화됐다. 옛 국민 노조와 옛 주택 노조가 다른 소리를 내면서 ‘과연 같은 은행원 맞아’라는 의구심을 자아냈다. 여기에 지난해 통합된 옛 국민카드 노조마저 따로 존재하면서 ‘한 지붕 세 가족’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들간의 갈등은 상상을 초월한다.다행히 국민에 존재하는 3개 노조는 통합결의를 하고 통합절차에 들어갔다. 그러나 행원들간에 깊이 파인 갈등의 골이 노조통합으로 메워질지는 의문이다. 강행장도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취임사에서 화두로 ‘조직문화로 통합’을 역설할 정도로 나름대로 심혈을 기울이고 있기도 하다. 강행장이 구상하는 대로 조직통합이 이뤄지지 않는 한 리딩뱅크로서의 국민의 위상은 지속적으로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 대체적인 전망이다.조직통합 못지않게 시급한 것은 구조조정이다. 서울지하철 5호선 여의도역을 중심으로 반경 100m 안에는 3개의 국민 지점이 있다. 서울 명동거리에도 국민 지점이 2개 있다. 어디나 사정은 비슷하다. 합병 이후 점포도 직원도 줄이지 않고 그대로 유지했기 때문이다. 30% 가량의 직원과 점포를 구조조정했던 다른 은행과는 다른 점이다.강제적이고 일방적인 구조조정은 아니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손을 대야 한다는 게 대체적인 지적이다. 강행장도 “1인당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혀 비대화된 조직의 효율성을 꾀할 것임을 암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