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원 호가 권리금 ‘옛말’…‘돈 없어 전업 못한다’ 울상

‘한터여성종사연맹은 묵언의 시위를 할 뿐, 영업을 하지 않습니다.’집창촌 업주들이 영업 재개를 선언한 지 이틀째 되는 날인 지난 10월26일 오후 8시 청량리 588. 연이어 늘어서 있는 업소들의 불이 환하게 들어와 있었다. 하지만 여성 종사자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지나가는 사람도 없었다. 간혹 단속 중인 경찰이 보일 뿐이었다. 문은 다시 열었지만 들어오는 손님은 전무했다.“시위 차원에서 문은 열었지만 누가 오겠습니까. 경찰이 밤새 순찰을 도는데요. 한 달째 수입은 없이 가게 운영비만 고스란히 나가고 있습니다. 버티지 못하고 폐업한 업소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습니다.”청량리 집창촌의 업주모임인 자율정화위원회의 박승철 위원장은 업소들이 이미 한계상황에 들어섰다고 말했다. 이대로 한 달만 더 가면 폐업을 하는 업소가 속출할 것이란 말이다.“군데군데 불이 꺼진 업소가 있잖습니까. 왜 그런지 아세요? 전기세를 내지 못해 끊어진 겁니다. 사람들은 집창촌 업주들이 알부자라고 하지만 사실과 다릅니다. 오히려 빚을 잔뜩 지고 있는 업주가 수두룩합니다. 오죽하면 일하는 아가씨가 업주에게 돈 5만원을 용돈으로 주는 일까지 생기겠습니까.”용산역 집창촌의 한 업주도 비슷한 푸념을 했다. 한 달 정도 매출이 없는 것은 그렇다 쳐도 그 다음이 문제라는 것이다. 우선 단속이 이어져 상권이 붕괴되면 업소를 임대받기 위해 치른 1억~1억2,000만원의 권리금을 고스란히 날릴 처지라는 것이다. 그나마 영업을 오래한 업주들은 모아둔 돈이 있는 편이지만 장사를 시작한 지 얼마 안되는 업주들은 길거리에 나앉을 신세라는 것이다. 특히 이리저리 돈을 융통해 어렵사리 가게를 마련한 업주들은 당장 생계가 막막하다는 설명이다.“우리도 국민이고 세금도 내고 있는데 어째서 생계수단을 송두리째 뺏으면서 대책을 세워주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영등포역 집창촌에서 잡일을 도와주는 김모씨도 같은 이야기를 했다. “이곳 업주들 외부에서 보는 것처럼 잘 살지 않아요. 며칠 장사를 못하면 호주머니에 돈이 말라 쩔쩔매는 축이 꽤 있어요.”전업을 생각하는 게 어떠냐는 질문에 업주들은 코웃음을 쳤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어디 가서 무슨 일을 하라는 거냐는 반응이었다. 사실 전업을 고민하는 업주도 없지 않지만 당장 수중에 돈이 없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는 것.“전업을 하려 해도 돈이 없어요. 가게가 빠져야 권리금과 보증금을 받을 수 있는데 이 상황에서 누가 이곳에 들어오겠습니까.”여윳돈이 있는 업주들 가운데는 이미 집창촌을 뜬 축도 없지 않다고 업주들은 말한다. 하지만 정부가 요구하듯이 ‘건전한’ 업종을 택한 경우는 거의 없다. 인근 오피스텔을 얻어 음성적인 성매매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여윳돈 1억원만 있으면 오피스텔이나 아파트를 얻어 장사를 합니다. 단속에 걸릴 가능성도 적고 정부의 간섭도 받지 않는데다 돈은 돈대로 벌 수 있으니 일석삼조지요.”여성종사원들도 생계유지에 부심하고 있다. 아는 단골을 집으로 불러 성매매를 하거나 인터넷 채팅을 통해 ‘영업’을 하고 있다는 것. 또 여러 명이 돈을 모아 오피스텔을 얻은 후 ‘독립’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영등포역 집창촌의 한 여성 종사원은 말한다. 업주들도 음성적인 영업을 막지 않고 있다. “먹고 살겠다는 걸 막을 수는 없지 않으냐”는 것이다. 이어 한 여성 종사원이 말을 거들었다. “인근 PC방에 가면 낮에도 우리 애들이 10여명씩 앉아 있어요. 인터넷으로 손님을 찾는 거지요. 아는 손님을 전화로 불러내는 사람도 많아요. 아는 동생 하나는 외국으로 나갔어요. 요즘에는 해외진출을 돕는 전문 브로커들이 사람들을 모아 외국으로 나가는 사례가 많아졌습니다. 어쨌든 돈은 벌어야 하니까 물불 가릴 틈이 없어요.”성매매 외의 일을 찾는 이는 드문 실정이다. 집창촌 여성 종사원들의 한 달 평균수입이 300만~500만원 수준인데 어디 가서 그만한 돈을 벌 수 있냐는 것이다. 더욱이 여성종사원들의 상당수가 부모와 가족을 봉양하거나 치료비를 대는 등 큰돈이 필요해 다른 일을 할 형편이 안된다는 설명이다.“물론 사치하는 애들도 있지만 드물어요. 사람들은 우리가 쉽게 큰돈을 벌려고 이 일을 한다고 욕하지만 어떻게 이 일이 쉽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어요. 온갖 인권유린을 당한다면서 쉽게 돈을 번다고 말하는 건 앞뒤가 안 맞잖아요. 우리가 원하는 건 하나예요. 이 일을 계속할 수 있게 해달라는 거죠.”집창촌 주변상인들 역시 된서리를 맞았다. 어쩌면 가장 큰 피해를 본 경우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특히 집창촌 안의 미용실, 옷가게, 화장품점은 폐업상태다. 특별법 시행 후 아예 문을 걸어 잠갔다는 것. 간이음식점이나 술집 가운데는 영업을 계속하는 경우도 있지만 매상은 없다시피 하다. 청량리 집창촌 안에서 네일아트가게를 운영하는 한 업주의 말을 들어봤다.“아가씨들도 없고 지나다니는 사람도 없는데 문은 열어 뭐하겠어요. 괜히 전기세만 나가지. 그래도 월세는 꼬박꼬박 나가니 애가 끓지요. 제 경우는 좀 나은 편이에요. 이곳 아가씨들말고도 단골이 꽤 있거든요. 하지만 수입은 형편없어요. 월세 내기도 빠듯합니다.”주변상인들도 울상이다. 집창촌을 찾는 손님들을 상대로 장사를 했는데 특별법이 시행되면서 이들이 발걸음을 끊었기 때문이다. 술집, 슈퍼마켓, 약국, 식당 등 업종을 가리지 않고 매출이 큰 폭으로 떨어졌다. 특히 숙박업의 상황이 어려웠다. 한 달 동안 받은 손님이 다섯손가락에 꼽힌다는 것이다.“10월 초에 열린 침묵시위 때 상인들이 많이 도와줬어요. 집창촌과 운명을 함께하니까 그 사람들도 절박한 심정이죠. 직접 현장에 온 상인들도 적잖았습니다.”집창촌 업주들과 여성 종사원들은 조만간 강도 높은 ‘투쟁’을 벌일 계획이다. 우선 업주들은 본격적인 영업에 들어갈 생각이다. 구속도 불사하겠다는 각오다. 여성 종사원들도 이에 합세할 움직임이다. 여성 종사원들의 전국모임인 한터여성종사연맹은 경기도 평택에서 모임을 갖고 집단행동을 결의할 예정이다.“지금까지는 시위 차원에서 영업을 재개했지만 앞으로는 생계를 위한 영업 재개에 들어갈 방침입니다. 이래 망하나 저래 망하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까짓것, 감옥 가는 게 대수인가요. 굶어죽게 생겼는데.”INTERVIEW 강현준 한터전국연합 사무국장“시위 강제동원 주장은 근거없는 말”“아가씨들을 감금하고 착취한다는데 그게 말이 됩니까.” 집창촌 업주들의 모임인 한터전국연합의 강현준 사무국장(52)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집창촌은 완전히 개방된 곳 아닙니까. 한번 들어가 보세요. 그 좁고 낮은 집 어디에 사람을 가둘 수 있는지. 착취요? 요즘 아가씨들에게 그게 통합니까. 휴대전화로 신고전화 한 통이면 경찰이 달려와 업주를 잡아가는 마당에.”강국장은 업주들이 여성 종사원들을 강제 동원해 시위를 벌이고 있다는 여성계의 주장에 대해서도 할말이 많았다. 업주들도 시위를 계획하는지 모르다 시위 직전에야 알았다는 것이다.“시위현장에 업주들이 간 건 맞아요. 하지만 강제 동원한 것은 절대 아닙니다. 오히려 경찰에서 협조를 구했습니다. 아가씨들이 무슨 행동을 할지 모르니 통제를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요즘 분위기는 사실 애들이 주도하고 업주는 따라가는 상황입니다. 오히려 업주들이 너무 심하게 하지 말라고 말리는 경우도 있습니다.”(이 부분에 대해 청량리경찰서 정보과의 한 경찰은 “집창촌 시위뿐만 아니라 어떤 시위라도 내부통제를 요청하는 게 관례”라며 “여성 종사자들이 강제로 동원됐다는 인상은 받지 못했다”고 확인했다.)관습헌법에 의거, 성매매특별법에 대해 위헌소송을 벌이겠다는 방침은 포기했다고 강국장은 말했다. 국가적인 이슈를 이용하다 오히려 이미지가 나빠지는 등 역효과가 우려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싸움을 멈출 계획은 전혀 없다고 강국장은 강조했다. 이 대목에서 그는 목소리를 높였다.“우리도 생활인입니다. 집에 가면 가장이고 가족을 먹여 살려야 됩니다. 당장 생계를 위협받는 데 가만히 있을 수 없습니다. 벌써 5명이나 자살을 기도했고 사망자도 있습니다. 끝가지 싸울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