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둘째아들 돌을 치른 하영수씨(38ㆍS증권 차장)는 요즘 매주 토요일이면 집을 나서 서울 곳곳의 중개업소를 돌아다닌다. 하씨의 관심사는 단독주택. 3년 전 서울 상계동의 25평 아파트를 매입, 내집마련의 시름을 덜었지만 요즘 부쩍 두 아들을 키우기에는 집이 좁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작은 마당이라도 있으면 아이들이 뛰어놀기 좋고, 부모는 마음의 여유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지난 주말 오랜만에 인왕산에 올랐던 오현희씨(35ㆍ주부)도 하씨와 비슷한 이유로 단독주택을 알아보고 있다. 오씨는 “서울성곽 옆으로 하산하면서 바라본 부암동, 평창동의 단독주택이 너무 좋아보였다”며 “아파트와 단독주택의 비교우위를 따지기가 애매하지만, 삶의 질을 생각하면 단독주택이 낫지 않냐”고 되물었다.생활 전반에서 건강을 추구하는 웰빙 열풍에 힘입은 까닭일까, 단독주택에 관심을 두는 이가 많아졌다. 아파트 대신 단독주택으로 내집마련 꿈을 이루려는 사람, 아파트에 살다 주거환경을 바꿔보려는 사람, 노후를 자연 속에서 보내려는 사람 등 이유는 제각각이다. 어릴 적 살던 단독주택에 대한 향수 때문에 막연하게나마 단독주택 장만을 꿈꾸는 잠재수요도 적잖다. 여기에 내재가치에 비해 저평가돼 있다는 이유를 들어 틈새 투자용으로 접근하는 투자자까지 합세, 이래저래 단독주택이 전에 없이 주목받고 있다.단독주택의 최대 장점은 아파트에 비해 월등한 쾌적성과 독립성. 올 들어 새집증후군 등으로 아파트가 도마에 오른 이후에는 건강을 위한 주거공간으로 더욱 주목받고 있다. 반면 아파트에 비해 관리에 손이 많이 가고 설비, 구조, 방범 등 생활편의성이 뒤떨어지는 것은 단점으로 꼽힌다. 하지만 단독주택 예찬자들은 이 점 또한 ‘단독주택에 사는 맛’이라고 입을 모은다.문제는 서울지역에서 조건 맞는 단독주택을 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 특히 손바닥만하나마 화단 가꾸고 흙냄새 맡으며 살 수 있는 중산층 서민용 단독주택은 더욱 그렇다. 단독주택이 밀집한 노후주택가는 여지없이 주거환경개선지구나 재개발지구로 지정돼 현대식 공동주택으로 새 단장되기 일쑤다. 오랫동안 단독주택을 지켜 온 집주인들도 다세대 다가구나 상가로 개발해 수익형 부동산으로 만드는 데 관심을 두는 경우가 더 많은 게 현실이다. 주말마다 발품을 팔며 단독주택을 알아보다 포기하는 경우가 적잖은 것은 그만큼 서울에서 중산층이 접근할 수 있는 단독주택 수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서울지역에서 단독주택 밀집지로 꼽히는 곳은 마포구 서교동ㆍ동교동, 종로구 평창동ㆍ부암동, 성북구 성북동, 서초구 방배동ㆍ서초동ㆍ우면동, 서대문구 연희동, 용산구 한남동, 강남구 역삼동ㆍ세곡동ㆍ자곡동 등. 일산 정발산역 주변 등 신도시 단독택지도 잘 알려진 단독주택 밀집지로 꼽힌다.서울지역 단독 밀집지 가운데는 그린벨트이거나 최근 그린벨트가 해제된 곳이 많다. 때문에 자연환경이 잘 보존돼 있어 쾌적성이 높고 주택 규모도 큰 곳이 대부분이다. 강남, 강북 중심과 가깝고 전통적으로 ‘부자동네’인 곳도 많다. 이런 곳일수록 땅값이 워낙 높아 웬만한 강남 중대형 아파트 값 뺨친다는 것도 특징이다. 기업인 등 상류층 인사가 많이 살기로 유명한 성북구 성북동의 경우 땅값이 3~4년 사이 두배 정도 올라 평당 1,000만~1,500만원선에 이른다.이들 지역에서는 중산층 서민용 단독주택을 고르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종로구 부암동의 덕성공인 관계자는 “매물로 나와 있는 집들은 대부분 대지가 100평 안팎이라 5억원 이하로는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부암동의 경우 그린벨트 등의 영향 때문에 땅값이 평당 500만~600만원선으로 다른 지역에 비해 낮은 편이지만 주택 규모가 커 대형 물건이 많다는 것이다. 인근 평창동도 10억~20억원대 매물이 대종을 이룬다. 특히 강남권으로 넘어가면 가격 단위가 더 높아져 20억~30억원 매물이 ‘평균’으로 통한다.상황이 이렇다 보니 20~30평형대 아파트를 팔아 2억~5억원으로 단독주택을 마련하고자 하는 실수요는 단독주택 중에서도 ‘틈새’를 찾아야 할 형편이다. 성북구 종암동 일대의 노후 한옥이나 종로구 효자동ㆍ계동, 은평구 구파발동 등의 단독주택이 그 대안.이들 주택가는 빠른 속도로 개발되고 있지만 다른 지역에 비해서는 단독주택이 많이 남아있는 지역으로 꼽힌다. 특히 대지가 50~70평 정도, 건평이 20~40평형이어서 아파트에 생활하던 핵가족이 옮기기에 적당하다. 종로구 효자동 경복공인 관계자는 “헌 집 한두 채를 헐고 다가구 다세대로 지어 분양이나 임대하는 사례가 크게 늘어났지만 단독주택도 여전히 남아있다”고 전하고 “지은 지 20년 정도 된 집의 경우 평당 800만~1,000만원선”이라고 밝혔다. 단 매입 후 리모델링을 통해 손을 봐야 할 집이 많다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한편 거래시장은 한산한 편이다. 아파트에 비해 매물이 많지 않고 찾는 이도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 2년 전 서울 혜화동의 한옥을 현대식으로 개조해 살고 있는 김영민씨(41ㆍ자영업)는 “살고 싶은 지역을 먼저 선택한 후 수시로 현지 중개업소에 들러 매물을 확인하고 조건에 맞는 물건이 나오면 연락을 받을 수 있도록 조치해 놓는 게 좋은 집을 고르는 비법 아닌 비법”이라고 말했다.INTERVIEW / 서명림 여주대 겸임교수“단독주택에서 건강ㆍ웃음 되찾았어요”“이제는 아파트에서 못살아요. 경제적인 가치만을 따진다면 망설여지겠지만, 가족의 건강과 삶의 질을 우선시한다면 흙 밟으며 사는 단독주택이 최선의 선택이죠.”서명림 여주대 인테리어디자인과 겸임교수(40)는 지난 96년 서울의 아파트 생활을 접고 경기도 이천시의 단독주택으로 거처를 옮겼다. 오래된 한옥을 고쳐 부모님이 살게 하고, 서교수 가족은 한옥 옆에 목조주택을 지어 입주했다. 이사를 한 후 서교수 가족 3대는 하나같이 ‘오감’이 편해졌다고.“결혼하자마자 청약통장을 만들어 아파트 장만에 매달렸어요. 3년 만에 재개발 아파트에 당첨되는 행운을 안았습니다. 하지만 큰아이는 아토피 증상에 감기, 설사가 계속됐고 둘째아이를 임신한 후에는 심각한 임신중독증에 시달렸어요. 새 아파트가 가족에게 큰 상처를 준 거죠.”하지만 이천의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한 후에는 거짓말처럼 지독했던 증상이 모두 없어졌다. 또 도시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 것도 소중한 결실로 생각하고 있다.현재 친환경적인 삶을 실천하며 환경디자인 컨설턴트로도 활동 중인 서교수는 “경제적 능력에 맞고 사랑하는 가족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고 이웃과 후손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집이 ‘가장 좋은 집’ 아니냐”며 나직이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