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찾고 부수입 잡고, 임도 보고 뽕도 따는 일석삼조 여가활동이지요.”최종수 A상사 과장(38)은 요즘 매주 토요일 새벽이면 경기ㆍ강원도 일대 산으로 심마니 여정을 떠난다. 원래 산을 좋아했던 그는 지난 7월부터 산삼 캐기 삼매경에 빠져 있다. 대학 산악회 동기들과 강원도 홍천의 한 산에 올랐다가 20년생으로 추정되는 산삼 2뿌리를 캔 후부터다. 이후로는 한번도 산삼을 보지 못했지만 “산에 가는 즐거움이 두세 배로 늘었다”며 즐거워하고 있다. 산삼과 약초, 버섯을 찾아 산을 누비면서 무미건조했던 산행이 재미있어졌다는 것이다.경북 의성군 B의원에 근무하고 있는 박상국씨는 지난해 여름 경북 문경에서 등산을 하다 산삼 6뿌리를 캔 뒤 아마추어 심마니가 됐다. 박씨는 “봄에는 두릅, 여름에는 산삼, 가을에는 송이버섯, 겨울에는 상황이나 영지버섯을 주로 찾는다”며 “주5일 근무제가 확대되면서 함께 다니고 싶다며 연락해 오는 직장인들이 많이 늘었다”고 밝혔다.평생 산삼을 본 적 없는 평범한 직장인들이 심마니를 자처하며 산으로 향하고 있다. 일반인이 산에서 횡재를 하는 사례가 자주 알려지고 주5일 근무제에 웰빙 바람, 부자 신드롬까지 겹치면서 여가활용과 건강, 부수입을 한꺼번에 잡으려는 수요가 산으로 몰리고 있는 것이다. 개중에는 본업을 그만 두고 아예 전문 심마니로 나서려는 이도 있다. 산악회 모임이 산삼 채취 모임으로 바뀐 경우도 적잖은 것으로 알려졌다.아마추어 심마니 지망자들이 처음 집결하는 곳은 인터넷 동호회. 산삼에 대한 정보를 먼저 습득한 후 실전에 나서야 하기 때문이다. 산에 함께 갈 동행인을 구하거나 동호회가 주관하는 오프라인 모임에 참가, 여럿이 함께 산삼 캐기에 나서는 것도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현재 다음 등 인터넷 포털사이트에는 산삼, 약초 관련 동호회가 100여개 개설돼 있다. 개별 홈페이지까지 합하면 400~500개에 달한다. 지난해부터 개설되기 시작해 올해 대거 늘어난 게 특징이다. 지난해 만들어진 ‘한국심마니동호회’의 경우 전국 11개 시도에 지부를 두고 회원수가 4만여명에 이른다. 회원 대부분은 직장인이나 자영업자. ‘산삼과 심메마니’ ‘산삼과 산야초 동우회’ 등은 회원수가 2,000~5,000명에 달하는 대형 모임으로 꼽힌다.이들 동호회의 목적은 대동소이하다. 산삼, 약초, 버섯 등에 관한 정보를 주고받고 실제 산행에 나선다는 것. 한 인터넷 동호회 운영자는 “산삼 등 약초를 캐기 위해 산을 오르는 이가 전체 등산인구의 4~5% 정도 될 것”이라며 “부업 등 경제적 관점에서 입문하려는 이가 많은 만큼 당분간 산삼 열풍이 계속될 것 같다”고 내다봤다.전문 심마니가 아닌 일반인들이 산삼 캐기에 나서기 시작한 것은 지난 98년 외환위기로 실직자가 크게 늘어난 때부터인 것으로 추정된다. 맨땅에서 노다지를 캐 생계에 보태려는 이가 늘어나고 이들이 실제로 짭짤한 재미를 보자 소문이 퍼지기 시작한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이후 건강을 위해 산행을 하던 사람들도 산삼에 관심을 두면서 자연스레 동참 인구가 늘었다. 여기에 웰빙 트렌드와 부자 신드롬이 뚜렷해지면서 건강과 부수입을 함께 잡기 위한 방편으로 산삼 캐기 산행이 더욱 각광받는 것이다. 게다가 ‘로또보다 낫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만큼 ‘심 보는’ 빈도가 높다는 것도 직장인 심마니를 양산하는 요인으로 꼽힌다.최근 산삼이 자주 발견되는 이유는 서너 가지로 거론되고 있다. 풍기, 금산, 김포 등 전통적인 인삼 재배지 인근 산으로 인삼 씨앗이 날아들어 여러 대에 걸쳐 야생삼으로 자란 것이 최근 몇 년 사이 많이 발견된다는 것. 꾸준한 조림사업이 효과를 거두면서 산삼이 자라기 좋은 울창한 숲이 조성돼 어느 때보다 산삼농사가 잘되고 있다는 것도 한 이유다. 일부에서는 2~3년 전부터 산삼이 싹을 틔우기 알맞은 기온과 습도, 주기가 맞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더불어 산삼을 캐는 사람들이 크게 늘면서 이에 비례해 전보다 훨씬 많이, 자주 발견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이유다.하지만 산삼 채취량이 이전에 비해 얼마나 늘어났는지는 집계되지 않고 있다. 아마추어 심마니가 캐는 산삼은 대부분 가족이나 동호회원을 통하거나 인터넷 직거래로 유통되기 때문이다. 간혹 100년 안팎의 천종산삼을 캤다 하더라도 아마추어 심마니가 제값을 받는 경우는 드물다. 채취량은 늘어났지만 쓸 만한 ‘물건’이 드물다는 것도 간과할 수 없다. 산삼 수요층이 그리 두텁지 못해 가정집 냉장고에서 묵고 있는 산삼 또한 적잖다.한국산삼협회에 따르면 지난 7월부터 감정과 판매를 위해 접수된 산삼 물량은 1,500여뿌리. 이 가운데 55~65%가 부적합 판정을 받고 반환됐다. 10년근 이하의 어린 산삼이거나 병든 산삼은 100% 반환되고, 수입산삼을 국산으로 둔갑시키거나 인위적으로 키운 장뇌삼도 여지가 없다. 이인식 이사는 “산삼이면 전부 돈이 되는 줄 알지만,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천종산삼은 전문 심마니도 평생에 한두 번 볼까 말까 하다”고 밝혔다.이 이사는 또 “난립한 사설 감정업체나 판매업체가 산삼의 가치를 왜곡시키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하고 “초심자가 캔 산삼을 중간상이 헐값에 매입해 비싼 값에 유통시키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주의를 촉구했다. 공인 감정기관이나 공시 가격이 없어 ‘제값’을 매기기가 어렵다는 특징을 악용하는 사례인 셈이다.실제로 산삼 캐기 열풍이 무르익으면서 아마추어 심마니를 상대로 사기를 일삼는 등 부작용도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일부 산삼 캐기 프로그램은 초심자를 모아 참가비를 받고 산삼을 캐게 한 후, 회원들이 캐 온 산삼을 헐값에 매수해 시장에 유통시키는가 하면 전문 심마니의 텃밭까지 훼손해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수십년 산삼을 캐 온 심마니들로서는 산을 휘젓고 다니는 직장인 심마니가 달가울 리 없다. 최근 산림청에서도 산삼 캐기 과열로 희귀 약용식물 자원의 채굴 등 불법 산림 훼손이 우려된다며 협조를 요구하는 공문을 유관기관에 배포할 만큼 신경이 곤두서 있다.경북 의성지역에서 약초를 캐 온 오상홍씨는 “산에 다니는 사람은 욕심이 없어야 한다”며 “누구나 캘 수 있지만 누구나 보진 못하는 게 산삼”이라고 말했다. 산삼만을 목적으로 한 산행에서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두긴 어렵다는 게 경험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돋보기 / 산에서 나는 영약 가격야생 상황버섯, 산삼 뺨치는 가치산삼은 품종, 연도, 중량, 모양 등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최고로 꼽히는 ‘천종’의 경우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게 대부분. 한국산삼협회에 보관 중인 강원도 인제에서 나온 83년생 천종산삼(사진)의 경우 가격이 1억2,700만원으로 매겨졌다. 하지만 이보다 훨씬 더 오래 된 천종산삼인 106년생은 8,000만원선이다. 산삼의 씨를 산에 뿌려 자라게 한 장뇌산삼의 경우에는 훨씬 낮은 가격에 거래되는 게 일반적. 하지만 산짐승이나 새가 씨를 옮겨 산에서 자라난 장뇌산삼은 천종, 지종에 버금가는 가치를 지니기도 한다.산에서 나는 상황, 영지버섯도 산삼 뺨치는 가격을 자랑한다. 자연산을 보기 힘들다는 상황버섯의 경우 100g당 가격이 70만~100만원에 달한다. 영지버섯도 1kg당 5만원 이상. 9월 한달이 제철인 송이버섯의 경우도 귀하긴 마찬가지다. 올해 봉화지역에서 송이버섯은 1kg당 16만원 안팎에 공판가격이 매겨졌다.INTERVIEW / 심마니 동호인 김상덕ㆍ구회선씨“건강 위한 산행, 산삼보다 나은 보약”“산삼 캐서 돈이나 벌겠다며 산행에 나서 성공한 사람 못 봤습니다.”포털사이트 다음에서 ‘서울산삼동호회’를 운영하고 있는 직장인 심마니 김상덕 회장(42ㆍ송암약품 과장ㆍ사진 오른쪽)과 구회선 부회장(50ㆍ동우사 대리)은 “일확천금의 꿈은 버리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집에서 보관하던 산삼 몇 뿌리를 스티로폼 박스에 담아 온 이들은 “산을 사랑하니 건강이 따라오고 덤으로 산삼까지 캐게 됐다”며 “산행을 통해 여가를 즐기는 순수한 마음이 아마추어 심마니의 전제조건”이라고 강조했다.두 사람이 산삼과 인연을 맺은 것은 4~5년 전부터다. 김상덕 회장의 경우 지난 99년 충남 당진 고향마을 뒷산에서 성묘를 하다 산삼을 캔 후로 산행과 산삼 캐기를 병행하게 됐다. 구회선 부회장도 지난 2000년 일상적인 산행에서 산삼 13뿌리를 캐면서 본격 입문했다. 두 사람 모두 건강을 위해 산행을 즐기던 차, 우연한 기회에 산삼과 마주하면서 아마추어 심마니가 된 것이다.“주5일 근무제가 시행되면서 산행하기가 더 좋아졌어요. 매주 주말이면 어디로든 떠납니다. 산에서 약초를 찾는 것은 무미건조한 산행에 활력소가 되기 때문입니다. 운이 좋아 영약을 캔 날에는 주변에 인심을 쓸 수 있어 더 좋죠.”“그동안 부수입을 얼마나 올렸나”는 질문에 이들은 “돈을 벌기 위해 약초를 찾는 것이 아니다”며 잘라 말하고 “대부분 영약을 필요로 하는 주변 사람에게 나눠주고, 굳이 팔라고 하는 이에게는 교통비 정도만 받는다”고 귀띔했다. 그저 산이 주는 좋은 선물을 줍는 것이지, ‘부수입’이 목적이 아니라는 것. 최근에는 회원들이 캔 산삼을 형편이 어려운 암환자에게 기증하는 행사를 열기도 했다.인터넷을 통해 정보와 친목을 나누던 두 사람은 지난 7월부터 인터넷 동호회를 만들어 운영 중이다. 3개월 만에 회원수가 450명에 달할 정도로 인기가 대단하다. 한달에 한번은 동호인들과 함께 산행을 하는 ‘번개’모임도 갖는다. 산을 오르기 전에는 간단하게나마 산신제를 올리는 것도 빼놓지 않고 있다.“산을 오르는 그 상쾌한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죠. 산삼을 캐지 못하더라도 천종 한 뿌리를 먹은 것과 같습니다. 마음이 통하는 좋은 사람들과의 산행, 그 자체가 보약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