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가 원자재난 탓 개발열기 ‘후끈’… 아직은 걸음마 수준

해외자원 개발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자원이 워낙 없는 나라니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최근의 관심은 종전과는 다른 모습이다. 다급한 필요에 의한 관심이다. 이유는 자명하다. 갈수록 자원을 구하기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먼저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석유의 경우 지난해 배럴당 20~30달러 하던 것이 올해는 30달러 후반대에서 내려올 줄 모른다. 한때 50달러를 돌파하기도 해 ‘이러다가는 60달러 시대가 오는 거 아니냐’는 우려마저 있다. 비싼 가격이라도 구할 수만 있으면 좋겠는데 돈이 있어도 살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이른바 원자재 파동이다.전문가들은 석유, 가스, 철광석 등 에너지원과 원자재의 고공행진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내다본다. 따라서 거의 모든 자원을 해외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의 경우 고통에서 한동안 벗어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뭔가 돌파구가 필요하다. 안정적인 가격에 원활하게 자원을 공급받을 수 있는 방법이 절실하다. 현실적으로 유일한 해결책은 해외자원 개발뿐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해외자원에 대한 지분을 획득하면 안정적으로 자원을 수급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 자원을 고가에 수출할 수 있어 고부가가치가 기대되기 때문이다. 최근 해외자원 개발에 뛰어드는 기업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SK는 국내 기업 가운데 해외유전 개발에 가장 열정적이다. ‘무자원 산유국의 꿈을 실현하겠다’는 고 최종현 회장의 의지에 따라 80년대 초반부터 줄기차게 매달려왔다. 굵직굵직한 석유개발 프로젝트에는 여지없이 SK가 참여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상사들 석유개발 팔 걷어붙여최초의 성공사례는 예멘 중부의 마리브 유전이었다. 가채매장량이 10억배럴에 육박할 정도로 대규모 유전이었다. SK, 석유공사 등 한국측 컨소시엄이 보유한 이 유전의 지분율은 24.5%. 지금까지 7억6,000만달러를 투자해 16억8,890만달러의 수입을 거둬들였다. 투자회수율은 무려 222%. 해외유전 개발의 단맛을 실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SK는 그후에도 흔히 ‘흑사자 유전’이라 불리는 베트남 15-1광구, 리비아의 엘리펀트 유전 등 잇달아 석유개발에 성공했다. 지난 9월에는 브라질 캄포스 해상광구에서 원유를 발견했다. 미국의 데본사와 공동으로 탐사해 온 BM-C-8광구의 2개 탐사정에서 47m와 61m의 원유 함유층을 발견하고 내년 초부터 매장량 확인 작업을 거쳐 생산에 들어가겠다는 내용이었다.이 회사측은 “2007년에는 하루 원유 생산량이 현재의 2배 수준인 5만배럴에 달하고 2010년에는 10만배럴을 생산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는 미국의 석유개발전문회사 순위 20위권에 해당하는 수치”라고 밝혔다. 올 상반기 SK는 석유개발사업을 통해 매출액 1,005억원, 영업이익 806억원을 기록했다.79년 설립돼 국내 기업의 해외석유개발을 주도해 온 석유공사의 발걸움도 분주하다. 그동안 석유공사는 SK와 함께 예멘 마리브 유전, 베트남 흑사자 유전, 리비아 엘리펀트 유전 등 대규모 유전개발에 참여해 왔다. 특히 지난해 상업생산을 시작한 흑사자 유전과 지난 5월 상업생산을 개시한 엘리펀트 유전으로 크게 고무돼 있다.베트남의 흑사자 유전 개발성공은 98년 석유개발 계약 체결 후 5년 만의 결실이다. 이 유전의 가채매장량은 약 6억1,000만배럴로 우리나라가 286일간 사용할 수 있는 양이다. 규모도 규모지만 더욱 값진 것은 원유 탐사에서 시추까지 국내의 기술과 자본으로 개발에 성공했다는 점이다. 이 유전의 하루 생산량은 9월 현재 8만8,000배럴로 국내 하루 평균 석유 소비량(213만 배럴)의 3.8% 수준이다.리비아의 엘리펀트 유전은 좀더 크다. 가채매장량이 9억6,000만배럴에 이른다. 지분율은 33.3%로 23.25%인 흑사자 유전보다 높다. 현재 하루 3만배럴을 생산하고 있다.사실 SK와 석유공사를 제외하면 석유개발에 열정을 보이는 기업은 많지 않다. 석유개발이라는 게 워낙 실패 확률이 높은데다 실패했을 때 투자액이 고스란히 손실로 이어지기 때문에 선뜻 나서는 기업이 많지 않다. 하지만 최근에는 LG칼텍스정유, 삼성물산, 대우인터내셔날, 현대상사, LG상사 등의 기업이 석유와 가스개발에 뛰어들고 있어 주목된다.먼저 발을 내민 기업들은 상사들이다. 세계 곳곳에 퍼져 있는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고급정보를 빠르게 수집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 일반 기업에 비해 자원개발에 유리하기 때문이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전한다.대우인터내셔날은 올해 초 미얀마 광구에서 대형 가스전을 발견했다. 본격적인 생산에 들어가는 2009년부터 20여년간 연간 1,000억원 이상의 순이익을 올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현대종합상사도 중동지역 오만의 액화천연가스(LNG)와 예멘의 마리브 유전사업에서 올해 320억원의 배당수익을 올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LG상사는 카타르 LNG사업과 오만 부카유전을, 삼성물산은 알제리, 중국, 오만, 카타르의 원유와 가스사업에 투자를 하고 있다.우리나라의 해외석유 개발의 역사가 25년에 이르고 최근 들어 여러 기업들이 개발을 시작했거나 검토하고 있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석유의 자주개발률은 3.1%에 그쳐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반면 일본의 자주개발률은 10.3%에 달해 비교가 된다.하지만 10년 전인 94년과 비교하면 괄목할 만한 성과가 있었다고 산업자원부 관계자는 밝혔다. 자주개발률은 1.3%에서 3.1%로 2.4배 증가했고 확보된 원유매장량은 6.3배, 연간 생산량은 3.1배 늘었다는 설명이다. 특히 지난 5월 석유공사와 SK 등 한국측 컨소시엄이 개발에 참여한 리비아의 엘리펀트 유전이 상업생산을 개시함에 따라 2010년까지 자주개발률을 10%대로 무난히 끌어올릴 수 있다고 이 관계자는 밝혔다.광물자원 투자열기 ‘솔솔’철광석, 아연, 동, 유연탄, 희토류 등 해외광물자원에 대한 개발 열기도 달아오르고 있다. 대한광업진흥공사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공사와 기업들은 해외광물자원에 대해 18억600만달러를 투자했다. 이 가운데 지난 한 해 투자된 금액은 8,900만달러로 전년에 비해 37% 증가했다.광업공사의 강천구 홍보실장은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뚝 떨어진 국내기업의 투자 열기가 다시 살아나고 있다”며 “투자액은 갈수록 더욱 커질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올해 초 원자재 파동을 겪으면서 원자재의 안정적 수급을 위해서는 자원의 선점이 절실하다는 인식이 크게 확대됨에 따라 각 기업들이 해외자원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내년 유연탄과 철광석 등 원자재 가격이 큰 폭으로 상승할 것으로 예상돼 해외자원 개발이 가열될 것이라는 설명이다.삼탄의 인도네시아 파시르 유연탄광 개발은 가장 대표적인 광물자원 개발 사례로 꼽힌다. 이 회사는 82년 인도네시아 현지에 KIDECO라는 법인을 설립한 후 유연탄광 개발에 나서 11년간의 탐사 및 개발기간을 거쳐 93년 상업생산을 개시했다. 이는 국내기업 최초의 인도네시아 유연탄 개발이었다.이 광산은 매장량이 11억3,100만t에 이르는 초대형 탄광으로 2002년 생산 기준으로 보면 세계 8위의 유연탄 광산이다. 연간 생산되는 유연탄은 지난해 기준으로 1,500만t으로 국내 유연탄 수입량의 23%에 해당한다.삼탄은 지난 8월 지분 41%를 인도네시아의 INDIKA사에 매각해 현재 지분은 49%로 내려앉은 상태다. 매각대금은 1억4,500만달러로 현재까지 삼탄의 자본 회수율은 210%에 이른다.포스코는 유연탄과 철광석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현재 캐나다 그린힐스와 호주의 마운트소리 탄광사업에 각각 20%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또 최근에는 중국 헤이룽장성 허강에 가채량 1억3,000만t 규모의 유연탄 개발 프로젝트의 참여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철광석의 경우 호주 포스맥과 필바라지역 C지구에 투자를 하고 있다. 포스코의 연간 철광석 수입량은 약 4,200만t에 달하는데 해외자원 개발을 통해 원자재 구입비의 10% 가량을 절감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동제련전문기업인 LG니꼬는 최근 광업진흥공사와 컨소시엄을 맺어 캐나다의 차리오트(Chariot)사와 함께 페루의 마르코나 동광의 광업권 100%를 확보했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남미지역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했을 뿐만 아니라 해외 의존도가 높은 동의 안정적 공급선을 확보하게 됐다. 이 광산의 매장량은 약 2억1,800만t으로 한국측 투자액은 4,400만달러 수준일 것으로 추정된다.광업진흥공사의 관계자는 “이 사업의 경우 상업생산에 필요한 광량을 이미 확보했으며 초기 개발비용이 저렴할 뿐만 아니라 도로, 항만, 용수 및 동력시설 등 개발여건이 좋아 경제성이 높다”고 말했다.해외광물자원 개발 분야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기업은 광업공사다. 페루의 구리 개발사업권, 인도네시아 석탄광 등 최근 한달여 동안 4건의 프로젝트를 성사시켰기 때문이다.지속적인 자원외교를 통해 개발에 성공한 사례로는 광업진흥공사의 중국 서안맥슨 희토류 개발을 들 수 있다. 공사는 지난해 10월 서안서준신재료유한공사와 계약을 체결하고 올해부터 연간 490t의 희토류를 개발, 수입할 예정이다. 이는 정부가 2010년까지 정해 놓은 희토류 자주생산량인 350t을 훌쩍 뛰어넘는 양이다.희토류는 디스플레이 등의 첨단전자제품의 소재원료로 전세계 매장량의 90%가 중국에 몰려 있다. 하지만 중국은 희토류의 개발권을 외국기업에 개방하지 않아 광업진흥공사의 이번 개발은 의외의 성과로 평가된다. 공사측은 “80년대 이후 중국 해당기관과 지속적으로 자원외교를 맺어온 결과”라고 말했다.정부지원과 기업참여 맞물려야전문가들은 국내기업과 정부가 비로소 해외자원 개발의 중요성과 필요성에 눈을 떴다고 진단한다. 선진국에 비해 시작이 늦은 만큼 더욱 적극적으로 자원개발에 나서야 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넘어야 할 산이 적잖은 것도 사실이다.우선 기업들은 정부의 지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지난 40여년간 204억달러를 지원한 데 비해 우리 정부의 지원액은 지난 20년간 10억달러에 불과해 20분의 1 수준에 그쳤다. 기간이 2배 정도 차이가 난다는 것을 감안한다 해도 크게 떨어지는 수치다. 지난해 정부의 지원자금은 2,632억원이었는데 이는 전체 에너지 특별예산인 2조5,514억원의 10% 수준에 그친다.자원개발에 대한 기업들의 소극적인 자세도 변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우리 기업들은 단기적인 이익만 좇는 버릇이 있는데 이런 태도로는 자원개발을 할 수 없다”며 “장기적인 전략 아래 최소 5년은 투자하겠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실패의 가능성에 지레 겁을 먹고 시도조차 않는 기업이 대다수라는 것이다.해외자원 개발은 외교와 떨어질 수 없는 일이므로 정부의 자원외교 노력도 강화해야 한다. 최근 노무현 대통령이 러시아와 인도네시아 등을 순방하며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지만 이전에는 자원외교가 전무했다는 것이다.산자부 관계자는 “현재 대통령이 주재하는 ‘국가에너지위원회’를 구성해 해외자원 확보를 위한 국가적 총력체제를 추진하고 있다”며 “민간기업의 해외자원개발사업 참여를 유도하고 전문 공기업의 자생력과 자원보유국과 정부간 협력 기반을 강화할 방침”이라고 밝혔다.INTERVIEW 박양수 대한광업진흥공사 사장취임 한달 만에 해외개발 4건 성사대한광업진흥공사의 박양수 사장(66)은 취임한 지 이제 한달이 조금 지났을 뿐이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에 이뤄낸 성과가 만만치 않다. 무려 4건의 해외자원 개발 프로젝트를 성사시킨 것이다. 이를 위해 박사장은 국내보다 해외에, 땅 위보다 비행기를 타고 다니는 시간이 더 많았다. 취임 당시부터 해외자원 개발을 제일의 과제로 강조하고 공사를 자원외교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시키겠다고 공언해 온 터였다.“올해 초부터 국제원자재 가격이 급등하고 있습니다. 내년에도 오름세는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이에 따라 전세계가 자원확보에 혈안이 돼 있습니다. 광업진흥공사가 자원선점의 첨병이 될 것입니다. 특히 철, 구리, 우라늄, 희토석, 유연탄, 아연 등 6대 전략광물에 대한 개발에 전력을 기울일 작정입니다.”최초의 성과는 9월20일에 있었다. 중앙아시아 최대의 자원부국인 카자흐스탄과 우라늄 합작개발을 체결한 것. 이 프로젝트의 매장량은 약 2만5,000t에 이르고 연간 1,000t의 우라늄을 생산하게 된다. 이에 따라 전량 수입에 의존하던 우라늄의 자주개발을 10%로 끌어올리게 됐다.사흘 후 박사장은 동시베리아의 사하공화국으로 날아가 유연탄, 금, 주석의 개발에 대한 양해각서를 맺었다. 다시 일주일 후에는 태평양을 건너 남미의 페루로 들어가 구리 개발사업권을 획득했다. 그리고 다시 일주일 후, 인도네시아로 건너가 유연탄 공동개발에 대한 양해각서를 체결하는 데 성공했다.박사장이 단기간에 해외자원 개발 프로젝트를 연이어 성공시킨 데는 빠른 판단력과 강력한 추진력이 밑바탕이 됐다고 공사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리스크가 있더라도 가치가 있다면 과감하게 밀어붙여 결실을 맺는다는 것. 지난 사하공화국 프로젝트 때는 함께 간 대통령 일행을 먼저 보내고 혼자 남아 정부당국자를 설득하는 끈질김을 보이기도 했다.“저는 광업 전문가가 아닙니다. 평생을 정치인으로 살아왔습니다. 광업에 대한 공부를 하고 있기는 하지만 전문가에는 턱없이 모자랍니다. 하지만 리더의 역할은 전문적 식견을 내놓는 것이라기보다 빠르게 판단하고 힘차게 추진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현실에 안주하거나 고정관념에 젖어 있는 것은 제 스타일이 아닙니다.”박사장 말마따나 그는 광업분야 전문가도 아니고 경험도 없다. CEO 노릇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런데도 사장 추천위원회가 그를 공사 최초의 공채 CEO로 선택한 이유는 특유의 조직장악 능력 때문이었다. 그는 여권에서도 유명한 조직 전문가였다. 새천년민주당 시절에도 줄곧 조직위원장을 지냈고 열린우리당으로 당적을 옮긴 후에도 조직운영장을 맡았을 정도다. 실제로 박사장 취임 당시의 어수선함은 불과 며칠 사이에 잠잠해졌고 조직에 자율적인 문화가 빠르게 자리잡아가고 있다고 공사측 관계자는 전했다. 직원들의 의견을 대폭 수용하는 것도 자율 분위기 형성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 이 관계자의 말이다.광업 전문가가 아니라고 하지만 말 중간중간에서 광업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이 묻어났다. 그는 광업을 3D업종이나 사양산업으로 치부하는 것은 옳지 않으며 오히려 정보기술(IT)이나 생명공학(BT)보다 더 미래산업일 수 있다고 여러 번 강조했다.“광업은 최첨단 소재 제품의 원료뿐만 아니라 비행기, 선박, 자동차 등 대부분의 산업원료에 이용되고 있습니다. 광업이 없다면 IT도 BT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광업진흥공사는 광물자원을 통해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기술개발에도 전력을 기울일 것입니다.”해외자원 개발에 관한 한 공사의 역할이 갈수록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고 박사장은 강조한다. 해외자원 개발은 특성상 외교의 역할이 크기 때문이다.“지금까지 공사는 자원탐사, 조사, 자금지원 등 기업들의 해외진출을 도와주는 역할에 머물러 왔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좀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봅니다. 필요하다면 공사 단독으로 해외자원 개발에 나설 수도 있습니다. 기업의 뒤를 쫓아가기보다 기업을 선도하는 공사로 거듭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