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익성 위주 경영으로 재무구조 탄탄, 한발 앞선 제품개발로 입맛 사로잡아

만년 2등이 ‘영원한 1등’을 따돌리고 업계 정상에 서는 것은 좀처럼 쉽지 않다. 어쩌면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간혹 재계를 발칵 뒤집어놓으며 업계 정상에 우뚝 선 기업을 일컬어 ‘대이변의 주인공’쯤으로 묘사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대역전의 드라마 가운데서도 1990년대 중반 하이트맥주(대표 윤종웅)의 정상 등극은 유독 많은 화제를 뿌렸다. ‘지하 200m 천연암반수’라는 컨셉으로 단번에 업계 1위에 등극한데다 한때 70%대 30%까지 벌어졌던 시장점유율을 불과 2년 사이에 기적적으로 역전시킨 까닭이다.하지만 이제 하이트맥주에서 화제의 주인공 같은 느낌을 찾기는 어렵다. 확고부동한 업계 1위이자 재계를 통틀어 한국의 대표적인 우량기업으로 우뚝 서 있기 때문이다. 특히 불황의 골이 깊은 최근 몇 년 사이에도 외부의 변수에 아랑곳하지 않고 성장을 계속해 경쟁기업을 더욱 멀리 따돌리는 저력을 발휘하고 있다.우선 시장점유율이 계속해서 오름세를 이어가고 있다. 경쟁기업의 맨투맨식 견제에도 불구하고 지난 9월 말 기준으로 58.2%를 기록, 부동의 정상임을 입증했다. 특히 올해 들어서만 지난해 말보다 1.7%포인트가 증가해 2위와의 격차를 더욱 벌렸다. 회사측은 이런 추세대로 나갈 경우 연말까지는 60%대 돌파도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93년의 30%, 96년의 43%, 2000년의 53%와 비교해도 하이트맥주의 견조한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시장점유율 못지않게 실적 또한 탄탄하다. 많은 기업들이 불황의 여파에 허덕이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경영실적만 보면 호황 때를 연상시킨다. 서울 청담동 하이트맥주 본사에는 불황의 그림자가 얼씬거리지 못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매출의 경우 2000년 1조5,796억원이었던 것이 지난해는 1조8,400억원으로 늘었고 올해는 2조원을 눈앞에 둘 만큼 탄탄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불황이 깊어진 2002년 이후에도 해마다 5% 안팎의 성장을 이루고 있다. 상당수 다른 기업들이 두 자릿수의 매출액 감소를 기록하는 것과 비교되는 대목이다.순이익은 더욱 알차다. 2000년 701억원에 달했던 것이 2002년 1,049억원으로 사상 처음으로 순이익 1,000억원 시대를 열었고, 지난해는 좀더 늘어난 1,141억원을 기록했다. 올해 역시 최악의 불황을 겪고 있지만 1,000억원대 돌파는 무난한 것으로 전망된다.우량한 기업의 또 다른 조건인 부채율 역시 점점 내려가는 추세다. 과도한 경쟁과 시설투자로 1999년 200%를 넘었던 것이 지난해는 120%까지 낮아졌다. 회사측은 조만간 100% 이하로 떨어질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그렇다면 국내 최고의 맥주기업이자 불황에 유독 강한 기업으로 부상한 하이트맥주의 성공비결은 무엇일까. 많은 장점을 갖고 있는 기업인 만큼 여러가지를 꼽을 수 있으나 일단 수익성 위주의 내실경영을 꼽는 사람들이 많다.따지고 보면 하이트맥주는 아주 ‘짠’ 기업이다. 어디서도 빈 구멍을 찾아볼 수가 없다. 단적으로 지난 8월 창립 70주년 및 하이트 탄생 10주년 행사도 아주 간소하게 치렀다. 거창한 행사를 기대했던 주변 사람들을 실망(?)시킬 정도로 약소하게 끝냈다.당시 회사측은 “경기가 침체된 상황에서 경영자의 확고한 내실경영 의지를 반영해 필요 없는 지출을 줄이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신 하이트맥주는 직원들의 극기훈련, 농어촌 지원사업 등을 통해 일체감을 형성했다. 물론 평소에도 하이트맥주의 내실경영은 재계에서 유명하다. 연구개발이나 마케팅 등에는 투자를 아까지 않으면서 형식적인 행사 등에는 거의 무관심하다. 또 하나 소비자의 기호를 읽는 눈이 빠르고 정확하다는 것도 하이트맥주의 장점이다. 국내 최초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닐 정도로 한발 앞서 소비자의 입맛을 읽고 이를 실천에 옮긴다. 눈높이 마케팅에 탁월한 셈이다. ‘비열처리 및 천연암반수 맥주, 100% 보리맥주, 온도계마크’ 등이 모두 하이트맥주의 손에서 나온 작품들이다.구체적으로 비열처리 및 천연암반수 컨셉은 하이트맥주의 오늘을 만든 주역으로 꼽힌다. 경쟁기업에 한참 뒤처져 있던 94년 소비자들의 기호가 깨끗한 물을 원하고 있다는 것에 착안해 준비에 들어갔고, 결국 지하에서 퍼올린 천염암반수로 맥주를 만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마시는 것에 불안감을 느끼던 소비자들은 새로운 맥주의 등장에 흥분했고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다.끊임없이 신제품 내놔2002년 3월 소비자들에게 첫선을 보인 100% 보리맥주도 마찬가지다. 이 맥주는 100% 순수보리를 주원료로만 사용, 기존 맥주와 차별화된 맛과 향을 만들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순수보리맥주는 맥주의 본고장인 독일 등 유럽에서는 맥주의 한축을 형성하고 있지만 국내 소비자들에게는 생소한 것으로 성공여부가 대단히 불투명했다. 특히 진한 보리맛이 주는 느낌이 통할지가 최대 관심사였다.이런 상황에서 하이트맥주는 기존 맥주를 만들 때 들어가는 옥수수가루를 과감하게 빼버렸다. 대신 맛을 살리기 위해 고급효모를 전격 사용했다. 한국인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미세하고 풍부한 거품을 만들기 위한 시도였다.끊임없이 신제품을 내놓은 것도 하이트맥주가 불황에 잘 견디는 기업으로 평가받는 요인이다. 신제품을 보면 지난 97년 젊은층을 겨냥해 국내 최초로 마개를 돌려 따는 맥주 ‘엑스필’을 내놓았고, 250ml의 소형캔을 선보이기도 했다. 또한 2000년 12월에는 단종시켰던 흑맥주 스타우트를 다시 시장에 내놓았다.하이트맥주는 변화를 추구하는 데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고희(70살)를 넘긴 회사지만 제품 하나하나에도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혁신을 꾀한다. 2002년 초 프라임을 내놓은 데 이어 2003년 말 하이트피쳐, 2004년 2월 프라임피쳐를 잇달아 출시했다. 특히 하이트피쳐와 프라임피쳐는 페트병에 담아 판매, 눈길을 끌기도 했다.특히 페트병 맥주는 이미 전체 맥주 판매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에 근접하는 등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하이트의 페트병 맥주는 일반 페트병에 비해 산소와 탄산가스의 차단성을 더욱 높이고 산소를 흡수하는 스캐빈저 캡이 추가로 산소를 차단해 맥주 본연의 풍부하고 상쾌한 맛을 즐기는 데 제격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하이트맥주의 앞날은 매우 탄탄해 보인다. 이미 국내시장에서 확고한 시장점유율을 구축하고 있는데다 시장대응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더욱이 창립 70주년을 기점으로 종합주류회사를 선언, 국내시장에서의 파워를 더욱 키워나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회사측은 “맥주뿐만 아니라 소주, 양주에서 먹는샘물에 이르기까지 물과 마시는 것과 관련된 모든 것을 만드는 회사로 거듭나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했다.이의 일환으로 이미 소주메이커를 인수해 운영하고 있고, 먹는샘물 브랜드 퓨리스도 시판하고 있다. 또 독자적인 양주브랜드 랜슬럿을 내놓아 좋은 반응을 얻기도 했다. 본격적인 시너지 효과가 나고 있지는 않지만 점점 파워를 키워가고 있다는 것이 회사측의 판단이다.사람 나이로 치면 하이트맥주는 이미 칠순을 넘겼다. 만만치 않은 고령인 셈이다. 그러나 이 회사에서 늙었다는 느낌은 전혀 나지 않는다. 오히려 20대의 활기참이 느껴질 뿐이다. 최악의 불황을 여유 있게 이겨내고 최고의 종합주류기업으로 도약하고 있는 모습 역시 어느 기업이나 소화할 수 있는 것은 분명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