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담사거리 '명품거리'가 중심 … 짧은 유행 주기로 경영은 쉽지 않아

얼마 전 종영된 미국 드라마 ‘섹스앤드더시티’(Sex and the City)는 지나친 PPL(간접광고)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각종 패션브랜드가 실명 그대로 등장했다. 특히 주인공 캐리는 고가의 구두를 사 모으는 것이 취미인 칼럼니스트로, 그녀의 마놀로블라닉ㆍ지미추 구두에 대한 동경을 일부 에피소드의 주된 내용으로 삼기도 했다.바로 그 지미추라는 브랜드가 지난 8월 말 한국에 상륙했다. 영국의 피혁잡화 브랜드인 지미추는 구두 한 켤레 가격이 70만~80만원대에서 최고가 제품으로는 240만원대까지 있는 명품브랜드다.FnC코오롱에서 수입ㆍ판매하는 이 제품은 청담동 단독매장 오픈과 갤러리아백화점 명품관 입점을 시작으로 영업에 들어갔다. 청담점은 단독매장으로서는 아시아 1호점이다.한국은 다양한 업종에서 세계의 테스트마켓으로 평가받고 있다. IT분야가 그렇고 화장품도 마찬가지다. 청담동은 이 같은 한국시장, 특히 서울 내에서 또 다른 테스트마켓과 같은 역할을 한다. 모든 최신 유행경향은 청담동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울의 트렌드 메카가 바로 청담동이기 때문이다.기존 명품브랜드들이 아시아지역에 첫 매장을 열 때 대개 일본을 선택한다. 이와 달리 이 브랜드의 아시아 첫 번째 매장이 서울, 특히 청담동에 위치하게 된 것은 패션업계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에 대해 조신혜 FnC코오롱 과장은 “한국이 명품시장에서 확고한 입지를 다지고 있다는 의미”라면서 “청담동은 지미추의 브랜드 이미지를 한국 소비자들에게 각인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해석했다. 이 브랜드뿐만이 아니라 ‘고급’을 지향하는 화장품업체가 국내에 첫 진출하는 기점 역시 청담동이다. 지난 여름 국내에 처음 선보인 캐나다 화장품브랜드 후르츠&패션은 향수는 프랑스에서, 과일 추출물은 독일에서, 재활용 유리병은 스페인과 이탈리아에서 공급받는다는 고급브랜드다. 이 브랜드 역시 지난 7월에 청담점을 연 것을 시작으로 한국소비자 공략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엄밀히 행정구역상으로 신사동에 위치해 있지만 이 매장의 이름은 ‘청담본점’이다.지난 2002년 국내에 처음 선보인 프레시(Fresh)도 마찬가지. 이 화장품브랜드는 뉴욕 등 미국 대도시에서 인기를 끈 제품으로 러시아 이민자 부부가 만든 ‘아메리칸드림’의 산물로 유명하다. 설탕과 쌀겨, 콩 등 천연재료로 만든 게 인기의 배경이다. 지난 91년 미국 보스턴에서 사업을 시작한 뒤 뉴욕과 시카고 등 미국 대도시와 영국, 프랑스 등지에서도 인기를 얻고 있다. 역시 아시아에서는 서울에 처음 매장을 열었다. 이들은 인터뷰를 통해 “서울은 오랜 전통과 모던함이 공존하는 곳으로 프레시의 컨셉과 잘 맞는다”고 밝힌 적이 있다.요즘 국내 패션업계를 주름잡고 있는 해외브랜드의 인기는 청담동에서는 이미 오랜 전의 얘기다. 유통업계, 특히 백화점을 중심으로 최근 매장개편의 화두는 단연 수입브랜드다. 패션업체들 스스로도 자체 브랜드를 개발하기보다는 수입브랜드를 경쟁적으로 들여오는 쪽에 승부수를 띄우는 분위기다. 이런 경향은 청담동에서는 이미 90년대부터 예견됐다. 대기업으로서는 처음으로 국내에 멀티숍을 선보인 신세계인터내셔날의 분더샵은 99년부터 청담동에 일찌감치 자리를 잡았다. 최근 분더샵은 매장을 확대한 뉴분더샵을 오픈했다. 결국 청담동은 패션ㆍ뷰티업종에 있어 테스트마켓 역할을 해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청담동이 트렌드 메카로서 의미를 갖는 것은 외식업에서도 마찬가지다. 최근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지난 2분기 도시근로자 가구의 외식비 지출은 전체 식료품비의 51%를 넘는다. 그만큼 국내 외식업종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외식업체의 종류가 다양해지고 양적인 증가도 있었다. 청담동은 그 중에서도 이국적인 레스토랑이나 테마가 있는 레스토랑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곳이다.흔히 행정구역상이 아닌 트렌드 중심지로서 이야기할 때 청담동은 갤러리아백화점 압구정점을 기준으로 청담사거리 방향으로 가는 명품거리 양쪽의 상가지구다. 이곳에는 특히 해외 명품매장과 국내 유명 디자이너들의 단독매장, 고급레스토랑이 밀집돼 있다.인도식 카레 레스토랑은 요즘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음식점이다. 낯선 음식으로 여겨졌던 인도음식의 대중화를 가져온 레스토랑 강가는 이미 오래 전부터 청담동의 명소로 자리를 잡았다. 98년 오픈한 중식레스토랑 빠진은 퓨전음식점 인기몰이의 주역 중 하나다.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유명인사들이 추천하는 레스토랑으로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최근 청담동에서 젊은층을 중심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외식아이템은 초밥이다. 기요스시, 미요젠 등 스시와 롤을 판매하는 대형음식점이 이 지역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떠오르고 있다. 또 요즘 청담동에서 살아남으려면 테마가 있는 외식업으로 승부해야 한다. 아름다운 공간 소호는 일명 갤러리레스토랑이다. 청담동 이끼이끼는 매장 내에서 고객을 위한 퍼포먼스가 진행된다. 타니는 ‘노마딕 레스토랑’이 컨셉이다. 따라서 바위, 나무, 갈대, 대나무 등 자연소재로 꾸며 편안한 기분이 들게 한다는 게 업체측의 설명이다.이처럼 청담동이 트렌드 메카로서 확고한 입지를 다지면서 특히 VIP대상 마케팅을 필요로 하는 업체들도 이곳에 모여들고 있다. 그만큼 이 지역의 변화를 체감하면서 VIP소비자들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켜 줘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청담동에 사무실을 열고 고급 라이프스타일 사업을 시작한 홍종희 웰빙소사이어티 대표는 “삶의 질을 중시하는 라이프스타일 지향의 소비자들이 청담동에 모여 있다”면서 “압구정동이나 홍대입구도 고려해 봤지만 자기 기준이 확실해 자신만의 스타일을 갖춘 소비자들이 많은 지역이라 상품을 테스트해 보기에도 좋다”고 청담동의 장점을 설명했다.하지만 트렌드 변화의 주기가 짧은 청담동에서 살아남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단순히 외적인 화려함에 이끌려 사업을 시작하기보다 냉철한 판단하에 사업을 시작해야 한다는 게 경험자들의 충고다.청담동의 한 레스토랑 경영자는 “주변에서 이곳에서 사업을 시작했다가 금세 실패한 사람을 많이 봤다”면서 “청담동이 트렌드 메카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것은 깐깐한 잣대로 소비하는 트렌드 리더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청담동은 일반적인 한국시장을 바라보는 기준으로 평가해서는 안되는 독특한 지역”이라는 말도 덧붙였다.돋보기 매장 개편한 갤러리아백화점국내 최고 명품전문점 노려“갤러리아백화점 명품관 아세요? 그럼 거기서 청담사거리 방향으로 100m쯤 가다 보면….”서울 청담동에 있는 사무실을 찾아가기 위해 위치를 물어볼 때면 이런 말로 대화를 풀어가는 경우가 많다.청담동을 설명할 때 가장 자주 언급되는 랜드마크 중 하나가 갤러리아백화점 압구정점이다. 갤러리아백화점은 비단 좌표를 일러주기 위한 기점이 되는 것뿐만이 아니라 청담동의 트렌드 변화가 가장 극적으로 표현되는 곳이기도 하다. 청담동에 본매장을 갖고 있는 브랜드 중 상당수는 갤러리아백화점에도 입점해 있는 경우가 많다. 오히려 본격적으로 한국에 진출하기 위해 갤러리아백화점에서 시장의 성숙 여부를 진단해 보는 케이스도 있다.지난 9월1일 새 단장을 한 갤러리아백화점의 변신은 그런 면에서 청담동의 뉴 트렌드를 잘 반영하고 있는 셈이다.패션관과 명품관으로 나뉘어 있던 갤러리아백화점 압구정점은 매장개편과 함께 단독 명품관으로 거듭났다. 패션관, 명품관이라는 이름 대신 명품관 WEST, 명품관 EAST로 명패를 달리하고 수입브랜드 중심으로 매장을 개편한 것. 특히 새로 꾸민 명품관 WEST는‘시어리’(Theory) ‘이사벨마랑’ 등 국내에는 처음 소개되는 수입패션 브랜드들이 대거 입점했다.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 홍콩지역 브랜드까지 입점한 것도 특징이다.이 백화점 관계자에 따르면 “압구정동, 청담동 고객들은 해외체류 경험이 많은 소비자가 많다”며 “외국에서 접했던 브랜드들을 쉽게 만나니 무척 반갑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소비자 의견을 들려줬다. 그는 또 “브랜드를 강화한 1층 화장품 매장을 비롯해 트렌드를 제시하는 매장으로서 변신을 꾀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