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ㆍ중수교 이후 한국과 중국의 교류는 분야를 초월해 매우 활발하게 진행됐다. 막혔던 50년의 한을 풀기라도 하듯 다방면에서 서로의 필요성을 인식하며 손을 맞잡았다. 최근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문제가 불거져 양국 사이에 냉기가 감돌지만 경제 등의 분야에서는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 역시 상대방을 최고의 파트너 가운데 하나로 인정하고 있다. 지리적으로 가까운데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한ㆍ중수교 이후 경제분야를 중심으로 양국의 손익계산서를 살펴본다.대중국 의존도 커지는 한국먼저 한국은 수교 이후 어마어마한 시장을 얻었다.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중국을 바로 옆에 두고 소비재에서 첨단제품에 이르기까지 수출량을 해마다 크게 늘려가고 있다. 수교관계를 맺은 지 불과 12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중국은 이제 한국기업들에 없어서는 안될 가장 중요한 시장으로 떠올랐다.실제로 전체 수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이후 세계 최고다. 우리나라의 최대 수출국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수치상으로 보면 99년 9.5%에서 2000년 10.7%로 상승했고, 올해(1~5월)는 더 높아져 19%에 이를 정도다. 중국을 빼고 수출을 얘기하기가 어려울 만큼 비중이 커진 셈이다. 상대적으로 미국은 지난해 이후 2위로 내려앉았다.수출이 크게 늘면서 한국제품의 중국 수입시장 점유율도 크게 높아지는 추세다. 우리나라의 최대 수출상품인 반도체의 경우 지난 99년 7.4%에서 지난해에는 10.0%로 4년 만에 2배 이상 높아졌다. 자동차 역시 3.1%에서 4.1%로 상승하는 등 수출을 주도하고 있고, 컴퓨터도 비슷한 추세를 보이고 있다.한국경제의 버팀목은 누가 뭐래도 수출이다. 만약 수출이 무너지면 경제기반 자체가 흔들릴 정도다. 내수침체가 최고조에 달한 상황에서도 경제가 4% 안팎의 성장세를 유지할 수 있는 원동력 역시 전적으로 수출 몫이다. 중국시장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셈이다.전문가들 사이에 중국이 한국경제를 살린다는 말이 나오고 있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강승호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은 “한국의 수출증가를 주도한 것이 대중국 수출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중국시장은 한국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효자시장임에 틀림없다”고 말했다.향후 전망도 긍정적이다. 대중 수출 증가율이 50%에 육박한 올 상반기 같은 호황을 누릴지는 미지수지만 한ㆍ중간의 국제분업 관계는 계속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산업구조와 수출구조를 발빠르게 고도화시킬 경우 중국시장에서 계속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중국은 단지 덩치 큰 수출대상국만은 아니다. 글로벌 기업들의 수출품 생산기지로도 크게 각광받고 있다. 국내기업 입장에서 볼 때 바로 옆에 글로벌 전략을 추진하는 데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우군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중국에 대한 외국인 직접투자는 아시아에서 금융위기가 발발한 97년 이후 한동안 주춤했으나 2001년 이후 다시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98년 2,238건에 39억달러(실행액 기준)를 투자했으나 지난해에는 4,060건에 42억달러로 크게 늘렸다. 일본 역시 같은 기간 1,198건, 34억달러에서 3,254건, 51억달러를 기록했다.한국은 더 적극적이다. 증가율에서 미국이나 일본을 압도한다. 특히 투자건수를 보면 98년 1,309건에서 지난해에는 4,920건을 기록해 무려 4배 가까이 증가했다. 미국이나 일본을 추월했음은 물론이다. 액수 역시 18억달러에서 45억달러로 크게 늘어났다.중국은 값싼 노동력을 갖고 있다.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중국 현지 노동자를 고용할 경우 국내 인건비의 약 10~15%밖에 들지 않는다. 세계적으로 가격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국내기업들에 중국의 저임금 노동력은 매우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가격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하지만 이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이 앞을 다투어 중국에 현지공장을 세우는 등 중국진출에 박차를 가하는 이유는 또 있다. 중국으로 세계적 기업들이 몰려들면서 생산집적화가 이뤄지고, 이를 바탕으로 기술과 경영노하우의 기업간 이전이 촉진되고 있기 때문이다.중국이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한다는 데 이견을 다는 사람은 없다. 글로벌 기업 가운데 중국에 기지를 갖고 있지 않은 곳이 거의 없을 정도이다. 일본기업 등이 중국을 떠나는 사례도 있지만 여전히 중국의 파워는 강해 보인다. 정상은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세계화의 시각에서 보면 중국은 기업들이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다양한 요소를 갖추고 있다”면서 “중국은 단순한 하나의 시장이 아니라 세계로 나가는 디딤돌 역할을 하는 나라로 보면 틀림없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중국에 공장 등을 세워 생산의 일부를 이전할 경우 국내와의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는 데도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우리나라 입장에서 중국의 존재는 국가의 경제영역을 넓히는 데도 제격이다. 어차피 세계는 글로벌화돼 가고 있다. 다른 분야에서는 국경이 존재할지 몰라도 경제만은 예외다. 특히 시대적 흐름상 국산과 외국산이 따로 존재하지 않을 정도로 전세계가 하나의 권역을 형성하고 있다.그런 면에서 중국 역시 넓게 보면 우리나라의 경제권 안에 들어와 있다. 과거 홍콩은 중국의 선전과 광저우를 같은 경제권으로 묶으면서 경제를 급속도로 발전시켰다. 선전 등을 뒷마당 삼아 생산과 수요의 전진기지로 폭넓게 활용했다.물론 우리라고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톈진이나 칭다오에는 이미 국내기업들이 대거 진출해 있다. 이들 지역을 잘만 활용하면 우리나라가 홍콩처럼 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정상은 수석연구원은 “톈진이나 칭다오는 우리나라와 별개 지역이 아니라 같은 경제권역 안에 들어와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며 “이들 지역을 기반으로 중국시장을 본격 공략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중국과의 수교를 통해 우리나라는 거대시장 등 많은 것을 얻었고, 앞으로도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중국시장이 바로 옆에 붙어 있다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는 큰 메리트다. 심지어 일부 전문가들은 지난 12년 동안 얻은 것만 있지 잃은 것은 거의 없다고 봐도 괜찮다고 주장한다. 김석진 LG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우리 입장에서 중국과의 수교 이후 손해본 것은 없는 것으로 분석된다”며 “중국 특수를 잘만 이용하면 한국경제 발전에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다만 중국의 저가공세에 국내기업이나 농업, 수산업 분야가 적잖은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또 대중국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중국이 기침을 하면 바로 감기에 걸릴 정도로 큰 영향을 받는 점도 경제의 체질강화라는 측면에서는 부정적이다. 한 중소기업체 사장은 “국산의 5분의 1 내지 10분의 1밖에 안되는 중국산이 국내시장을 큰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며 “특히 마케팅 능력이 떨어지는 중소기업들은 중국변수 때문에 기업을 유지하기가 힘들 정도로 어려운 상황”이라고 강조했다.실제로 국내 제조업체들이 중국으로 대거 진출하면서 이에 따른 부작용으로 국내에 남아 있는 기업들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조사도 있다. 한국무역협회 산하 무역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제조업 해외진출에 따른 가장 큰 애로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43.3%(복수응답)가 해외에 진출한 경쟁업체가 생산한 저렴한 제품이 한국으로 역수입되는 것을 꼽았다.일각에서는 최근의 내수부진 역시 중국변수가 큰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한다. 중국산 저가공세로 중소기업들이 한국을 떠나면서 일자리가 크게 줄어들어 실업률이 높아졌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일본이 90년대 이후 장기불황을 겪은 것도 따지고 보면 기업들이 하나둘 중국으로 옮아가 산업공동화가 빚어졌고, 이것이 내수부진으로 이어졌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반면교사 대상 얻은 중국중국은 워낙 거대한 시장을 갖고 있어 세계경제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산업화의 역사가 짧다 보니 문제점 또한 많이 갖고 있다. 특히 경험부족은 중국경제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단점으로 꼽힌다.수교 이후 중국이 한국 배우기에 적극적으로 나섰던 것도 따지고 보면 이런 점이 많이 작용한 결과다. 특히 지리적으로 가깝다는 이점을 활용해 한국의 산업화 과정을 타산지석으로 삼는 데 적극적이다.요즘 들어서는 중국기업들이 한국기업에 군침을 흘리는 사례가 많다. 이미 하이닉스의 일부를 인수했고, 쌍용자동차의 주인이 될 가능성도 높아 보인다. 한국기업들이 새 주인을 찾을 때마다 단골로 등장하기도 한다. 이처럼 한국기업 인수에 적극적인 이유는 간단하다. 하이닉스나 쌍용자동차 모두 세계적 회사이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뒤떨어져 있는 기술력을 확보할 수 있는데다 해당 기업들이 갖고 있는 많은 노하우를 얻을 수 있다는 점에 큰 매력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수교 이후 중국은 한국시장 공략에도 적극적이다. 한국은 수출시장으로서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성과도 상당하다. 지난해 한국에 수출한 액수는 219억달러. 2002년의 174억달러보다 무려 25.9%나 증가한 수치다. 올해 들어서도 이 같은 추세는 이어져 4월까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9.8% 늘어난 87억달러를 기록했다. 한국뿐만이 아니라 중국 입장에서도 큰 시장을 얻은 셈이다.중국의 수출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 역시 무시하기 어렵다. 지난해 중국은 총 4,385억달러어치를 수출했다. 미국이 925억달러로 가장 많고, 한국은 홍콩(763억달러), EU(721억달러), 일본(595억달러) 등에 이어 5위를 기록했다. 특히 수출비중 면에서 4.6%나 돼 중국 입장에서도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나라다.중국은 한국으로부터 많은 투자도 받고 있다. 중국의 대외 개방정책의 일등공신이 바로 한국인 셈이다. 특히 한국은 98년 이전까지만 해도 대중국 투자규모가 실행액 기준으로 5위권 밖에 머물렀으나 지난해에는 45억달러로 홍콩(181억달러)과 버진아일랜드(58억달러), 일본(51억달러)에 이어 미국(42억달러)을 제치고 4위에 올랐다.그렇다면 중국이 한ㆍ중수교를 통해 잃은 것은 없을까. 외견상으로는 무역적자 규모가 크다는 점이 눈에 띈다. 지난해만 해도 무려 132억달러에 이른다. 만만치 않은 규모다. 그러나 다른 각도에서 보면 이는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는 것이 일반적 견해다. 더욱이 지금의 중국은 산업의 볼륨을 키우는 단계에 있다. 아울러 한국에서 사가는 제품 가운데 산업용 전자제품의 비중이 가장 높을 정도로 산업의 경쟁력 강화에도 한몫 하고 있다. 김석진 LG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중국이 한국과의 수교 이후 잃은 것은 거의 없어 보인다”며 “2011년쯤에는 대한국 무역수지도 적자에서 흑자로 돌아설 것으로 예상된다”고 강조했다.한국 vs 중국 기술격차한국이 2~7년 앞서… 중국 추격 거세한국과 중국의 기술 격차는 어느 정도일까. 업종마다 다르지만 아직은 한국이 중국에 비해 2~7년 정도 우위에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지난해 초 분석한 자료를 보면 조선은 7.67년, 자동차(부품 포함)는 3.17년, 전자는 3.06년 정도 앞서가는 것으로 평가됐다. 또 기계(2.78년), 석유화학(2.15년), 정보통신(2.05년), 철강(1.8년) 등도 아직은 한국이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하지만 중국의 추격속도가 빨라 일부 업종에서는 머지않아 역전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한국이 세계적 경쟁력을 자랑하는 조선, 반도체, 전자, 자동차 등은 상당기간 앞서나갈 것으로 보이지만 나머지 분야에서는 예측을 불허하기 때문이다.이에 따른 파장도 벌써부터 나타나고 있다. 통신기기, 반도체 등 기술 격차가 큰 제품은 한국이 산업별 경쟁관계에서 우위를 나타내고 있으나 철강 등은 양국이 경합을 벌이고 있다. 특히 석유제품, 철강판 등 기술 격차가 작은 분야에서는 최근 3~4년 사이 한국산의 중국시장 점유율이 하락하고 있다. 또 기술력보다 노동력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신발, 완구 등은 이미 중국 우위로 돌아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