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기업들의 중국사랑이 식을 줄 모른다. 여전히 중국진출이 유행처럼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투자건수가 해마다 늘어나고 있는데다 남아 있는 기업들도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다.우리나라의 중국 직접투자건수(한국수출입은행 자료)는 2001년 1,000건을 넘어선 이후 2002년 1,340건, 2003년 1,633건으로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이런 추세는 향후에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말 상공회의소가 수도권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해 보니 이미 진출한 기업이 47.5%에 달했으며 25.5%가 ‘1~2년 내’, 16%가 ‘여건 되면’ 진출할 것이라고 답했다. 계획이 없는 곳은 11%에 불과했다. 그러나 중국은 ‘꿈의 땅’이 아니었다.KOTRA에 따르면 국내기업들의 중국진출 성공률은 30%에 지나지 않았다. 나머지 60%는 현상 유지에 급급하거나 철수를 준비 중이다. 또 지난 7월 초 랴오닝ㆍ지린ㆍ헤이룽장 등 동북3성을 돌아보기 위해 파견된 한국경제사절단이 베이징에 진출한 기업들을 조사한 결과 ‘10곳 중 1곳도 제대로 살아남지 못하고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공개됐다.이런 추세는 우리나라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다.세계적 기업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중국에 앞다퉈 진출했던 가전기업들이 보따리를 싸거나 투자규모를 줄이고 있는 실정이다.미 3대 가전업체인 메이텍이 1년 전 중국 투자기업을 청산한 데 이어 제너럴일렉트릭(GE)은 가전 부문의 중국시장 진출을 포기했다. 월풀은 중국시장에서 크게 고전하자 최근 인도시장에 더 큰 비중을 두는 것으로 알려졌다.특히 한때 중국진출 붐을 이뤘던 일본기업의 철수 분위기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난해부터 일본 정부가 ‘메이드 인 재팬’(Made in Japan) 전략을 통해 일본 내에 제조업을 다시 유치해 경제부흥을 이루겠다는 정책을 발표한 이후 중국 쪽 제조라인이 본국으로의 컴백을 본격화하고 있다는 소식이다.그렇다고 중국진출을 무조건 포기하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환상은 버려야 한다는 얘기다.진출이 능사 아니야국내보다 낮은 인건비만 믿고 무작정 중국행 비행기에 오른다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여러 경영환경에서 인건비만 떼어놓고 이야기를 하더라도 ‘중국 인건비’에 대한 환상을 거둬들여야 한다. 중국의 임금수준이 빠르게 상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 비해 절대적으로 싼 것은 사실이지만 2002년 기준으로 중국의 임금상승률은 15%였다. 수치상으로는 한국(12%), 미국(3.2%), 일본(-1.14%) 등을 크게 웃돌고 있다는 얘기다.기술수준만 해도 그렇다. 중국의 기술수준을 얕봐서는 곤란하다. 주요 산업에서 한국과 중국의 기술격차는 조선부문의 7년을 제외하곤 모두 2~3년, 철강부문은 1년 정도에 불과할 정도로 좁혀져 있다.따라서 기술과 원가경쟁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기업의 중국진출은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에는 중국 정부가 경기 과열로 강력한 긴축정책을 펴면서 중국진출 국내기업들이 위축되고 있는 점도 눈여겨봐야 한다. 투자유치를 위해 모든 것을 다 퍼줄 듯하지만, 사정에 따라 언제든지 입장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무엇보다 사전 준비 없이 진출하는 것은 피해야 할 것이다. 김주영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부부장은 “(중국진출 기업들이 실패하는 이유는) 왜 중국으로 가야 하는지 치밀하게 고민하지 않는 게 문제”라며 “충분한 시장조사를 통해 진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근 시장조사단을 이끌고 중국을 다녀온 박용성 대한상의 회장도 “낮은 인건비만 노리고 준비 없이 들어갔다간 실패할 게 뻔하다”며 한국기업들의 무분별한 중국진출을 경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해외진출이 중국에 편중된 점도 문제이다. 삼성경제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해외진출 업체 5,548곳 중 44%는 중국에 있으며 투자건수로도 전체 48%를 차지해 미국의 대중국 투자비중 2.1%, 일본 8.7% 등에 비해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삼성경제연구소는 “단순한 비용절감이나 규제회피를 위한 투자는 임금이 오르거나 규제가 생기면 다시 제3국으로 갈 수밖에 없다”며 “해외연구개발이나 브랜드 가치 제고를 위한 장기투자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한편 국내에서 살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한국과 중국에서 활발하게 기업 컨설팅을 하고 있는 백대균 월드인더스트리컨설팅 사장은 “중소기업이 처한 환경에서 생존의 열쇠는 전사적 혁신활동밖에 없다”며 중국이전을 고민하는 중소기업의 분투를 촉구했다.무역분쟁 급증첨단업종까지 반덤핑규제 확대우리나라의 대중국 투자가 늘어나면서 무역분쟁에 연루될 여지도 그만큼 많아졌다. 올 7월 현재 한국산 제품에 대한 중국의 반덤핑 규제는 총 19건으로 현재 중국이 진행 중인 총 27건의 반덤핑 조치 중 70%를 차지한다. 품목별로는 철강 2건, 석유화학 12건, 전기전자 1건 등이다.올 상반기에도 골판지, 비스페놀A 등 2건이 신규 제소됐다. 주목할 점은 이 2건이 올 상반기 중 중국 전체 신규 수입규제 조사건수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이는 계속 늘어나고 있는 우리나라의 대중국 무역수지 흑자에 대해 제동을 거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또 반덤핑 규제 분야가 첨단업종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는 점도 우려를 낳고 있다. 일례로 지난해 제소돼 올 6월 예비판정이 난 광섬유의 경우 이제까지 화공 등 재래상품에 대한 반덤핑 규제가 주종을 이뤘던 것과는 달리 첨단품목에 대해서도 규제가 촉발됐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즉 중국 정부의 적극적 첨단산업 제품 육성 의지와 최근 우리나라 첨단제품의 대중국 수출이 가속화되자 이를 견제하기 위한 것이라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