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홀가분합니다.’서오석 한국 여자양궁팀 감독의 올림픽 우승소감 첫마디다. 올림픽 6연패, 20년 권좌를 지켜야 한다는 부담이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결국 그는 약속을 지켰다. 한국 여자양궁의 확고부동한 저력을 다시 한 번 발휘했다. “맘고생이 심했지만, 결과가 대답해줘 다행”이라는 서감독은 선수단 귀국 때도 저만치 비켜서있었다. 열심히 따라준 선수들에게 공을 돌리기 위한 배려였다. 그럼에도 불구, 서감독의 입지는 흔들리지 않는다. 소외종목의 한계를 딛고 값진 성과를 일궈낸 데는 그의 노력이 절대적인 까닭에서다.서감독은 한국양궁의 금메달 제조기다. 그에게 발탁되면 금메달은 틀림없다. 실제로 서감독의 지도력은 완벽히 공인받았다. 그가 조련한 스타도 수두룩하다. 지도자로서 첫 테이프를 끊은 여주여종고에서는 96년 올림픽 2관왕인 김경욱을 키워냈다. 98년 세계선수권 2관왕인 이은경도 이때 공들여 다듬었다. 시드니올림픽 때는 협회 요청에 따라 남자팀을 맡더니 12년 만에 단체전 우승을 엮어냈다. 우승 주역인 오교문ㆍ장용호ㆍ김청태 선수는 모두 서감독의 멤버였다. 이번에는 박성현ㆍ이성진을 내세웠다. 특히 무명이었던 박성현은 서감독의 울타리 안에서 일취월장했다. 2000년 전국체전 동메달이 최고성적이던 그녀를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로 조련시켰다. 아테네올림픽의 숨은 공신, 서감독을 인터뷰했다.힘든 여정이었을 텐데, 지금 심정이 어떠십니까.지금은 편안합니다. 긴장이 한순간에 풀린 때문인지 제 몸이 아니네요. 지난해 국제대회만 4번 뛰고 바로 올림픽이라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몸보다는 마음고생이 더 심했죠. 국가대표 평가전 때 불필요한 오해(이성진 선수 발탁건)가 있어 심적으로 부담이 컸습니다. 실력으로 뽑혔는데, 이를 두고 온갖 불평불만이 많았거든요. 이번 시합에서 이성진 선수의 실력이 입증돼 맘이 편합니다.6연패 위업의 성공요인은 무엇입니까.무엇보다 정몽구 명예회장의 지속적이고 광범위한 지원이 큰 성과를 거뒀다고 봅니다. 굉장히 잘해주었죠. 이중우 현 회장의 두뇌플레이도 놀라울 따름입니다. 과학적인 경기력 향상을 위해 시뮬레이션을 해보라고 처음 권했거든요. 프로그램만 두 달을 연구해 이것을 선수들에게 적용ㆍ주입시켰죠. 실제 경기장과 똑같은 상황을 설정해 반복훈련한 결과 당황하지 않고 경기에 임할 수 있었습니다.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입니까.역시 평가전이 제일 힘들죠. 평가전에서 뽑히면 메달은 떼어 놓은 당상이란 얘기까지 있잖습니까. 실제로 평가전 1~30위는 실력이 비슷합니다. 운도 따라야 하고 당일 컨디션도 최상이어야 태극마크를 달 수 있습니다. 여기서 뽑히기 위해 참 노력 많이 했습니다.선수들을 지도할 때 강조하는 포인트는요.저는 평소 훈련 때도 선수들이 긴장할 것을 요구합니다. 저 또한 경기를 앞두고 일절 언론 인터뷰를 거절하죠. 중간에 저의 말 한마디가 선수들에게 부담이 될 수 있거든요. 일종의 징크스인데요. 미리 목표를 확정짓듯 얘기하니 실제로도 잘 안되더군요. 일종의 자기 믿음인데, 앞으로도 마찬가집니다. 같은 맥락입니다만, 저는 선수들의 단점은 입에 담지 않습니다. 장점만 얘기해 북돋아주는 편입니다. 필요하다면 주의사항 정도만 일러줄 뿐이죠.훈련스타일은 어떠세요.글쎄요. 선수들이나 언론 평가가 스파르타라고들 합니다만, 전 스파르타는 아니라고 봅니다. 규정에 따라 운동량, 시간 등을 강조할 뿐이죠. 조일 때는 죄고 풀 때는 확실히 풀어줍니다. 소속팀이나 대표팀 다 마찬가지에요. 너무 풀어주면 안됩니다. 늘 긴장시키고 실수하면 많이 혼내는 편이라 스파르타라고 생각들 하는 모양이에요. 아테네올림픽 결승 때도 마지막 한발이 1,000만원이라고 강조했죠. 그만큼 신중하게 생각하라고 주문했습니다.유망선수를 발굴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가졌다고들 합니다. 어떤 기준으로 발탁하십니까.가장 먼저 체격을 봅니다. 체격조건이 좋아야 유리해서죠. 덩치가 작거나 하면 불리합니다. 힘이 관건인데, 바람에라도 휘둘리면 어쩝니까. 박성현 선수처럼 파워나 에너지가 넘치지 않으면 원하는 데 못갑니다. 또 일단 뽑히면 파워 프로그램을 철저히 시킵니다. 일종의 체력훈련이죠. 일례로 대표팀은 월ㆍ수ㆍ금요일에는 필요한 웨이트트레이닝을 반드시 받았죠. 이뿐만 아닙니다. 제 나름대로 하루에 팔굽혀펴기만 200회를 시키죠.여자단체전 우승을 두고 전략의 승리라는 평가가 많습니다. 어떤 전략인지 소개해 준다면….활을 쏘는 순서인 라인업에 신경을 썼죠. 3명이 각각 3발씩 쏘기 때문에 순서를 잘 짜는 게 관건이었습니다. 윤미진ㆍ이성진ㆍ박성현 선수 순서로 배치하는 게 최상의 라인업이라고 봤습니다. 고민도 참 많았죠. 윤미진 선수는 국제경험이 많아 긴장감 없이 쏠 수 있다는 점에서 첫 주자로 선발했죠. 나이가 제일 어린 이성진 선수를 가운데 배치한 것도 마찬가집니다. 든든히 뒤를 받쳐줄 수 있는 박성현 선수가 있기에 부담 없이 쏘라는 배려였죠.스포츠에도 과학이 접목되고 있습니다만, 그렇다고 정신력을 무시할 수도 없는데요.아무리 장비가 뒷받침돼도 선수 개인의 정신력이 떨어지면 좋은 성과를 낼 수는 없죠. 저도 정신력을 많이 강조합니다. 군기 센 군부대 입소훈련에 소음이 심한 야구장ㆍ경륜장에서 훈련한 것도 정신력을 높이기 위해서였죠. 준비도 철저히 했습니다.한국양궁을 전망하신다면 어떻습니까.여자의 경우 2008년까지는 유리할 겁니다. 바람 같은 돌발변수가 있지만, 대비책만 철저하면 얼마든 승산이 있죠. 그런데 남자는 솔직하게 말해 50대50의 확률입니다. 힘 좋은 유럽선수들이 기술력까지 보강해 쫓아오고 있어요. 한국선수단에 대한 견제도 심하고요. 이런 식으로 가면 남자팀의 세계대회 우승은 날이 갈수록 힘들 겁니다.향후 계획은 어떻습니까.최근 잇단 국제대회 참가로 입상에 대한 스트레스가 심했습니다. 개인적으로 당뇨가 있어 많이 힘들거든요. 올림픽 당시에도 건강문제 때문에 고생했습니다. 몸무게가 97kg에서 77kg으로 20kg나 줄었어요. 건강이 최고 아닙니까. 이번 올림픽이 마지막일 겁니다. 물러날 시점이라는 생각을 굳혔어요. 그래도 마지막 결과가 좋아 다행입니다. 이제는 쉬고 싶습니다. 소속팀에 남아 후진양성에 매달릴 겁니다. 소속팀(전북도청)이 신경을 많이 써줘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네요.약력: 1957년 경기 포천 출생. 76년 선인고 졸업. 76년 국민대 중퇴. 76년 삼익악기 선수. 81년 수원시청 선수. 86년 여주여종고 감독. 90년 대구서구청 감독. 93년 동서증권 감독. 90년 국가대표 코치ㆍ감독(현). 99년 전북도청 감독(현). △수상: 90년 장관 표창(후보지도). 2000년 체육훈장 청룡장(세계선수권)INTERVIEW 84년 첫 금 낚은 정갑표 초대 양궁감독그때는 유니폼도 없었는데… 지원 뒷받침돼야 영광 지속아테네올림픽 성과를 평가한다면….훌륭하죠. 대단한 성과입니다. 원래 목표는 전 종목 석권(금메달 4개)이었지만, 괜찮습니다. 나만 먹을 수 있나요. 남도 줘야죠. 다만 남자 개인 금메달은 충분히 딸 수 있었던 거라 아쉽긴 합니다.20년 패권을 쥘 수 있었던 한국양궁의 핵심 파워는 무엇입니까.내재적인 테크닉이죠. 이는 겉으로 모방한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한국선수의 정신집중은 감히 흉내낼 수 없어요. 이번 대회에서 박성현 선수가 단체전 마지막에 10점을 쏠 수 있었던 건 정신력이 탄탄했기 때문이에요. 정신력이 기술로 승화된 셈이죠. 다른 나라가 따라오기 힘든 부분입니다.지난 84년의 눈부신 성과를 기억합니다. 당시 성공요인은 무엇이었습니까.어떻게 하면 활을 잘 쏠까에 대한 기술개발이 다른 나라보다 앞섰습니다. 다른 나라가 남이 잘하는 것을 모방했다면 한국의 경우 독자적인 연구개발에 공을 들였죠. 이른바 한국적인 활쏘기 방법을 나름대로 개발한 게 주효했습니다.당시 주변여건이나 훈련모습은 어땠습니까.말도 마세요. 엄청 열악했습니다. 당시 김진호 선수가 세계선수권대회에서 5관왕을 했는데요. 거의 기적에 가까웠을 정도로 제반여건이 부실했습니다. 일례로 세계대회에 나가는 국가대표가 유니폼을 못 구했을 정도였죠. 얼마나 어려웠으면 유니폼 하나 없이 출전했겠습니까.감회가 새로울 것 같습니다. 지난 20년간 한국양궁은 양적ㆍ질적 발전을 거듭했는데요.개인적으로 어떤 평가를 하십니까.한마디로 비약적인 발전을 반복했습니다. 활과 화살 등 장비만 봐도 훨씬 과학화됐죠. 그 결과 선수들의 기록은 한층 평준화된 느낌이에요. 따라서 치열한 기록경쟁에서의 성공포인트는 노력밖에 없습니다. 노력하는 선수만이 기록을 향상시킬 겁니다.향후 가장 역점을 둬야 할 한국양궁의 발전 포인트는 무엇입니까.이제 양궁은 으레 대회에 나가면 1위를 할 거라고 생각들 해요. 팀도 없고 기반도 약한데 말입니다. 일본스포츠가 도약을 한 건 지속적인 투자 때문입니다. 한국도 재정이 튼튼한 기업이 지원을 해서 팀을 만들고 선수를 양성해야 합니다.한국양궁의 미래를 전망한다면….좀 어두워요. 더 발전하려면 국가적 차원의 투자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지금 수준으로는 어렵습니다. 정몽구 명예회장이 많이 도와줬지만, 실제 일선에서 팀을 만들고 선수를 육성하는 것까진 무리에요. 대기업이 나서서 양궁을 키워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