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뽑는다는 것. 어느 조직에서나 가장 중요하지만 또 그만큼 어려운 일도 없다. 어떤 방식의 잣대를 들이대느냐에 따라 한사람의 능력에 대한 평가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기업 CEO에게 이런 평가방식의 교본이 될 만한 스포츠 종목이 있다. 바로 올림픽 6연패라는 대업을 이룬 한국양궁이다. 여자양궁의 경우 국내 80위 정도의 실력이면 세계 5위권에는 언제든지 들 수 있다고 장담할 만큼 실력이 뛰어난 인재들이 풍부하다. 양궁 등록선수가 1,500여명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좋은 재목이 넘쳐난다는 것 자체가 인재를 뽑는 기업의 입장에서는 부러울 수밖에 없겠다. 하지만 소수임에도 이런 고급인력이 많은 데는 뭔가 특별한 이유가 있기 나름이다.물론 한 가지 요인으로 이를 설명할 수는 없겠지만 한국양궁이 20년간 세계정상을 지켜올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급변하는 환경변화에 적응하고 경쟁에서 버틸 수 있는 선수를 골라내는 양궁만의 독특한 선수 선발방식이 있다는 점이다. 세계대회보다도 어렵다는 국가대표선발전이 그것이다. 양궁인들은 지난 20년간 개선ㆍ발전시켜 온 올림픽 대표선발 방식을 가리켜 ‘세계 최고의, 모든 통계와 가능성을 다 점검하는, 현존하는 가장 완벽한 선발방식’이라고 한다.양궁대표 선발방식의 특징은 크게 세 가지다. 스타건 무명이건 간에 똑같은 조건에서 경쟁하는 공정한 게임이라는 것, 오랜 기간을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기량을 검증하는 다면평가라는 점, 마지막으로 거르고 걸러진 우수 핵심인재들 안에서도 다시 한 번 경쟁을 유도한다는 것 등이다. 이를 살펴보려면 양궁 대표선발전 방식을 하나씩 따라가 보면 된다. 가장 가까운 아테네올림픽 선발전을 예로 들어보자.1차 선발전은 등록선수라면 누구나 참가할 수 있는 종합선수권대회. 여기서 32강에 들면 첫 관문을 통과한다. 2차 선발전부터는 기존 대표팀 8명과 각종 대회 입상자들 기록 상위선수 등 총 64명이 참가한다. 기존 대표나 기타 대회 입상자들의 특권은 2차 대회 자동출전권이 전부다. 여기서부터는 대표이건 비대표이건 스타건 무명이건 간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 똑같은 출발선상에서 똑같이 경쟁해야 한다. 여기서 첫번째 특징인 ‘공정한 게임’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누가 개입할 수도 간섭할 수도 없는 완전 능력위주의 경쟁인 셈이다.2차부터 4차에 이르는 대표선발전은 32ㆍ16ㆍ8명까지 절반씩 탈락시키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선수들로서는 긴장의 연속이다. 2차와 3차 선발전 방식은 똑같다. 단판 승부가 아닌 3판2승제다. 우연이나 재수로 승리하는 경우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다.16강에서 다시 8명을 탈락시키는 4차 평가전은 예선기록 라운드가 생략된다. 이미 순위가 가려져 있기 때문에 18발과 12발짜리 3전2승제 토너먼트 경기를 4차례 반복해서 치른다. 여기서 선발된 8명에게는 비로소 ‘대표선수’라는 칭호와 함께 태릉선수촌에 입촌해 대표팀 코칭스태프의 지도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생긴다. 이 단계까지만 해도 굉장히 다양하고 복잡한 방식이다. 시간도 4개월이나 걸린다. 장소도 원주양궁장과 광주서향순양궁장 등 이동해 가면서 실시했다.이 같은 선발방식의 특성은 우선 예선라운드를 통해 기본 활쏘기 실력을 점검할 수 있고, 토너먼트 방식을 통해 담력과 집중력 등 경쟁력을 살펴볼 수 있다. 3전2승제나 18ㆍ12발로 화살수를 바꾸는 것, 또 4차례나 토너먼트를 반복하는 것 등은 우연으로 이기는 경우를 배제해 진짜 실력자를 골라낼 수 있게 한다.황도하 대한양궁협회 사무국장은 “실력이 좋은 선수일지라도 국제대회, 특히 올림픽이 되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단지 실력뿐만 아니라 정신력, 체력, 담력, 승부근성 등이 모두 검증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즉 예선라운드만 잘해서도 안되고 토너먼트에만 강해서도 안되며 18발이나 12발이나 화살수에 관계없이 두각을 나타내는가를 철저히 다면적으로 평가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대표선발의 두 번째 특징을 찾을 수 있다.국가대표라는 레테르를, 단 8명 안에 들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그 실력은 입증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지만, 이들에게는 자체 평가전이라는 두 달에 걸친 3차례 관문이 더 남아있다. 올림픽 출전 엔트리는 단 3명. 나머지 5명은 다시 짐을 싸서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이제부터는 진짜 피 말리는 싸움이다. 한발 한발에 표정이 바뀌는 접전의 연속이다. 최고의 실력자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벌어지는 경쟁인 만큼 불꽃이 튀긴다. 평가전 현장에서는 누구하나 말을 걸 수 없을 만큼 긴장감이 팽팽하다. 이런 과정은 핵심인재들 가운데서도 더 우수한 인재를 고르는 양궁선발전의 마지막 특징을 보여준다.양궁의 대표선발 과정은 기업이 급변하는 경제환경 속에서 어떻게 하면 도태되지 않는 적응력을 지닌 인재를 양성할 수 있는가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세계 최고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고 그런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인재를 뽑는다는 것이 얼마나 많은 공을 들여야 하는 것인지 곰곰이 따져보게 한다.돋보기 새로운 경기방식 대처법우연성 줄이는 선발방법 도입한국이 올림픽 양궁무대를 독식하다시피 하자 국제양궁협회(FITA)는 새로운 경기방식을 도입하며 한국 괴롭히기에 나섰다. 물론 한국이 불리할 게 하나도 없었다. 한국의 독주를 막고자 FITA는 올림픽라운드라는 경기방식을 채택했다. 예선라운드를 거쳐 1대1 토너먼트대결로 우승자를 가리는 방식이다. 두둑한 배짱과 상대성에 따라 승부가 결정나는 올림픽라운드 규정에도 불구하고 한국양궁은 굳건히 제자리를 지켰다. 물론 그 배경에는 우연성을 줄여 철저히 실력 있는 사람을 뽑는 대표선발 방식을 만들어가는 발빠른 대응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하지만 FITA가 제시한 우연성의 증대가 효과를 본 적도 있다.지난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여자 개인전에서 윤미진이 대만의 위안슈치에게 예상치 못한 패배를 당하며 은메달에 그친 경우다. 항상 이런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우연과 돌발변수가 출몰하는 시장상황을 견뎌내는 방법은 어쩌면 철저히 우연을 배제하는 원칙 속에서 선발된 인재들의 몫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