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구 길음동에 살다가 올해 초 강남구 대치동 S아파트 31평형으로 이사간 직장인 정모씨(46). 고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니는 두 자녀를 둔 정씨는 교육 때문에 거주지를 옮긴 대표적 케이스다. 다행히 부모님한테 물려받은 재산이 있어 월급쟁이치곤 좀 넉넉하게 살았지만 집을 옮기면서 오히려 5,000만원의 빚까지 졌다.하지만 정씨는 요즘 들어 이사를 잘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후회가 많이 든다. 자녀들이 적응에 애를 먹는데다 결정적으로 아파트 값이 적잖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아파트를 처분할 것은 아니지만 연초에 비해 1억원 가까이 떨어진 6억원 정도에 거래되는 것을 보면 마음이 편치 않다. 정씨는 “가만히 앉아서 6개월 만에 1억원을 손해본 셈”이라고 말했다.경기도 부천시에 상가를 보유하고 있는 유모씨(51)도 고민이 이만저만 아니다. 지난해 7억원을 주고 샀는데 지금은 매달 은행이자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수입이 좋지 않다. 경기불황으로 가게들이 속속 문을 닫으면서 월세가 제대로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물론 투자 당시에는 월세가 한달에 700만원 가량 들어오는 등 괜찮았다. 굳이 무리를 하면서까지 상가를 매입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올해 들어 분위기가 급변했다. 7개의 점포 가운데 절반 가까운 3곳이 장사를 포기하고 물러났다. 월세 수입 역시 30% 이상 줄었다.최근 부동산가격이 하락세를 보이면서 여기저기서 자산가치 하락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아파트만 해도 1억원 이상 하락한 단지들이 속속 등장할 정도다. 특히 강남을 중심으로 낙폭이 커지면서 어디까지 떨어질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얼마나 떨어졌나서울의 아파트 월간 매매변동률이 지난 6월 -0.05% 하락세로 돌아섰다. 이어 7월에는 -0.42%로 하락폭이 확대됐다. 전세 변동폭 역시 6월의 -0.45%에서 7월에는 -0.64%로 커졌다. 강남권 일부 아파트의 낙폭이 가장 크다. 대치동을 중심으로 1~2개월 전에 비해 최고 1억원까지 매매가가 떨어진 곳도 있다. 쌍용아파트 31평형의 경우 6억원대에 급매물이 나와 최고 1억원 가량 하락한 것으로 분석된다. 은마아파트도 정상적인 거래가는 별다른 변화가 없지만 거래가 이뤄지지 않자 5,000만원 이상 싸게 내놓는 사람들이 나오고 있다. 인근 개포동과 일원동 일대 아파트들도 30평형대의 경우 최근 들어 5,000만원 가량 낮춰 내놓지 않으면 제대로 팔리지 않을 정도로 시장이 싸늘하게 식은 상태다.재건축 아파트도 예외는 아니다. 송파구 잠실주공 1단지 13평형은 7월 들어 2,500만원 하락했고, 강동구 고덕주공 6단지 24평형은 1,750만원 떨어졌다. 부동산 정보업체 닥터아파트에 따르면 서울의 경우 7월16일 기준으로 2주 전과 비교해 무려 0.97%나 추락했다. 구별로는 재건축 대상 단지가 많은 강동구가 2.26% 하락한 것을 비롯해 마포구(-1.85%), 송파구(-1.16%), 강남구(-0.68%)의 하락폭이 컸다.리모델링 아파트도 마찬가지다. 건설교통부가 리모델링 규제책의 시행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가격하락 조짐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구체적으로 광진구 워커힐아파트 67평형의 시세는 호가 기준으로 최근 2억원 가량 하락했다. 16억원에 거래되던 것이 14억원까지 추락한 것이다. 여의도 삼부아파트 27평짜리 역시 5억원대에서 4억7,000만원선까지 밀린 상태다.서울의 하락세는 인근 수도권까지 영향을 미치는 모습이다. 특히 경기도 용인지역은 최근 죽전지구 등의 입주가 시작되면서 공급과잉까지 겹쳐 하락세가 두드러지고 있다. 분양권에 붙었던 프리미엄이 대부분 빠졌고, 일부에서는 주인이 금융비용 등을 감안해 볼 때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급히 처분하는 상황까지 연출되고 있다.구갈, 남양주 등의 수도권 택지지구도 1~2개월 전보다 5,000만원 안팎 떨어졌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견조한 상승세를 기록하다가 최근 들어 급매물이 나오면서 가격하락이 뚜렷해지고 있다.아파트뿐만이 아니다. 오피스텔 역시 하락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서울지역을 보면 중소형 오피스텔 공실률이 지난 2분기에 8.5%까지 치솟으며 임대료 수입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고, 일부에서는 깎아주는 일까지 생기고 있다. 거래가격 역시 급매물을 중심으로 2~3% 싸게 나오는 것이 증가하는 추세다.건설사 부도는 부동산시장의 또 다른 복병이다. 주택, 건설경기가 급격히 위축되면서 부도 건설회사의 증가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은행 조사에 따르면 지난 2분기 중 부도난 건설업체수는 192개로 1분기 167개에 비해 15% 늘었다. 특히 부도 건설사수는 4월 54개에서 5월 68개, 6월 70개사로 3개월 연속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왜 떨어지나최근 아파트를 중심으로 한 부동산가격 하락은 매우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한 결과로 풀이된다. 일단 가장 큰 요인으로는 경기침체가 거론된다. 소비가 얼어붙는 등 극심한 불황이 계속되면서 부동산시장까지 영향이 미치는 형국이다.부동산 가격도 결국은 수요와 공급의 논리에 따라 결정된다. 수요가 늘면 가격은 오르고 반대로 수요가 줄고 공읍이 늘면 가격은 떨어진다. 그런데 최근 우리나라의 상황을 보면 수요보다는 공급이 더 많은 상황이다. 미분양이 속출할 정도로 공급은 여유가 있지만 경기침체로 수요는 얼어붙었기 때문이다.여기에다 주택거래신고제 도입은 하락세를 더욱 확산시키는 분위기다. 신고제가 실시된 지 넉 달째를 맞으면서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까지 상황을 지켜보는 등 매수에 나서지 않고 있는 것이다. 대치동 현대공인 관계자는 “주택거래신고제는 수요를 크게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돈 있는 사람들마저 잔뜩 자세를 낮추고 추이를 지켜보고 있는 상황”이라고 최근의 분위기를 전했다.여기에다 입법예고된 개발이익환수제는 재건축 아파트 단지에 직격탄을 날리고 있다. 재건축 아파트가 몰려 있는 강남권 하락폭이 큰 것도 이 때문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재건축에 들어가 봤자 이익이 환수되는 만큼 메리트가 크게 줄어든 탓이다. 일부 재건축 추진 단지의 경우 추가비용 등을 감안하면 오히려 주변 아파트 단지보다 가격이 높아 향후 더 떨어질 것이라는 예상마저 나오고 있다. 개포동에서 부동산중개업소를 운영하는 김진철 공인중개사(45)는 “사려는 사람은 없고 지금이라도 빠지려는 주민들이 많다 보니 가격이 하락할 수밖에 없다”며 “더욱이 내년에는 종합부동산세, 실거래가 신고의무화 조치까지 예고돼 당분간 썰렁한 분위기가 이어질 것이다”고 설명했다.향후 전망은문제는 부동산 가격의 추가 하락 여부다. 상황이 워낙 좋지 않다 보니 부정적인 견해들이 잇달아 나오고 있는 점도 시장으로서는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더욱이 경기침체가 당장 풀릴 기미도 없어 내년까지 지금과 같은 상황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의견이 주류를 이룬다.아파트 가격 하락을 주도하는 급매물은 주로 다주택 소유자나 투자목적으로 은행돈을 빌려 구입했던 사람들이 내놓는 것이 대부분이다. 세금부담이 커지는 등 보유에 따른 비용이 크게 증가하고 있는데다 은행대출에 대한 부담감이 커지면서 급하게 처분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난 결과다.하지만 급매물을 소화할 만한 매수주체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실수요자들마저 가격이 더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가 나오면서 추이를 지켜보는 모습이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오는 11월쯤 다시 한 번 가격이 크게 떨어지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고 주장한다. 더욱이 2005년 아파트 입주물량이 50여만가구에 이를 것으로 예상돼 침체를 가속화시킬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부동산 침체가 2~3년간 계속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주변사정이 여의치 않은데다 악재가 겹쳐 있기 때문이다. 김성식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몇 년간 수요에 비해 과다하게 공급된 물량이 부동산시장의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고, 정부의 각종 규제정책 역시 시장을 억누르는 상황”이라며 “요즘 같은 침체는 앞으로 2~3년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심지어 김연구위원은 강남불패도 깨질 것이라고 단언한다. 교육 프리미엄이 한계에 다다른데다 장기적으로 볼 때 수익률 측면에서 국채 등 다른 투자대상을 앞서지 못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또 일본 도쿄지역 아파트 값과 비슷할 정도로 버블이 심하다는 점도 강남 집값 전망을 어둡게 한다고 말했다.물론 일각에서는 이런 주장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인다. 당분간 부동산시장이 침체를 보일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동의를 하지만 강남불패 신화는 다시 이어질 것이라는 얘기다. 임달호 현도컨설팅 대표는 평소 “강남에 대한 수요는 쉽게 식지 않을 것”이라며 “사실상 재건축이 어려워진 만큼 공급이 이루어지기 힘들어 강남 메리트는 계속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오히려 그는 “강남의 경우 수급불균형이 더욱 심화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한다.부동산시장은 하나의 흐름이 생기면 오래간다는 특성이 있다. 예컨대 하락세에 접어들면 당장 상승세로 바뀌는 데 시간이 적잖이 걸린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지금의 흐름이 몇 달 안에 급속도로 소멸되기는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분석이다. 최공필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부동산은 일단 가격 하락기에 접어들면 오래가는 특성이 있다”며 “자산디플레이션에 대한 고민은 지금보다는 앞으로 전개될 상황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INTERVIEW / 김성식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부동산시장 침체 적어도 3년 간다”“아파트시장의 침체는 앞으로 3년 정도는 계속될 겁니다.”김성식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의 입장은 단호하다. 특히 그는 지금의 침체는 일시적인 것이 결코 아니라고 강조한다. 강남불패 신화 역시 이미 깨지기 시작했고, 예전의 명성을 되찾기는 힘들 것이라고 주장한다.아파트시장 침체가 계속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무엇인가요.이미 공급과잉시대에 접어들었습니다. 또 정부의 부동산 정책 역시 아주 강력합니다. 당분간 이런 기조를 바꿀 가능성도 없습니다. 여기에다 세계적인 고금리 추세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우리나라에도 상륙할 것으로 봅니다. 수급문제, 정부정책, 금리 등을 종합해 볼 때 부동산시장의 침체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됩니다.강남권 역시 거품이 꺼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는데요.강남은 그동안 따로 움직이는 모습을 보였지만 앞으로는 다를 겁니다. 더 이상 강남신화는 없다고 봐도 될 것입니다. 교육 등 강남만의 메리트가 사라졌기 때문이죠. 특히 지난 몇 년 사이 너무 많이 올라 사이클 상 이제는 가라앉을 시기가 됐다고 생각합니다.최근 정부가 잇달아 강력한 부동산 대책을 발표하고 있습니다.개인적으로는 적절한 대책을 내놓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대책이 없었다면 지금 부동산시장은 겉잡을 수 없이 많은 문제를 내포한 채 투기장으로 변했을 겁니다. 일각에서 대책에 불만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정부로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