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흐름에 따라 ‘뜨는 보험상품’은 분명 존재한다.80년대에는 교육보험과 단기 저축성 보험의 전성기였다. 각각 자녀에 대한 높은 교육열과 정부의 저축 정책이 뒷받침됐다. 이 시기에도 보장성 상품이 있었지만 중도에 저축 급부가 없는 금융상품은 인기 없던 시기였다.90년대는 보험상품에 큰 변화가 일어난 시기다. 먼저 보험 본연의 기능에 충실한 보장성 보험과 연금보험이 주력상품으로 거듭났다. 90년대 초 수입보험료 중 보장성 보험의 비율이 5%를 넘지 않았지만 이후 증가세를 꾸준히 보여 현재 50%를 넘어섰다. 특히 재해보장상품이 활성화됐다.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 진입을 앞둔 당시 자가용이 늘고 휴일 레포츠 활동이 증가하면서 재해사고를 고액으로 보장하는 상품이 집중 판매됐다.재해보장상품 부각 뒤에는 백화점 붕괴와 가스폭발사고, 교량붕괴, 철도ㆍ항공ㆍ선박사고 등 빈번한 대형사고라는 시대적 배경이 놓여 있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의학이 발달하는 동시에 건강에 대한 관심이 대폭 증가하면서 암보험 등 건강보험의 판매가 두드러졌다.90년대 중반부터는 세제 혜택을 지원하는 연금보험이 성장세를 보였다. 국민연금을 보완하며 개인의 풍요로운 노후생활을 보장한다는 취지의 개인연금은 장기상품의 획을 긋는 계기가 됐다.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생명보험 해약률이 급증, 생보사들은 위기를 맞았다. 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보험업계는 회사채 수익률과 국고채 수익률에 연동되는 시장금리 연동형 상품을 개발, 해약환급금을 유치하고 신계약을 체결했다. IMF 환란을 경험한 뒤 종신보험이 뜨기 시작했다. 90년대 후반 외국계 보험사 위주로 종신보험이 판매되기 시작한 후 국내 대형보험사가 시장에 진입하며 주력상품으로 자리매김했다. 생명보험협회에 따르면 2001년에 종신보험 보유계약수와 점유율은 353만건과 7.5%, 2002년에는 566만건과 11.3%로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 지난해의 경우 4~11월에 판매된 종신보험만 163만건에 달한다. 국내 20개 생보사의 종신보험 판매건수는 이미 665만건을 넘어섰다. 최근 보험설계사들 사이에서는 ‘종신보험에 가입할 30대 이상 가장은 더 이상 없다’는 불평까지 나올 정도다.실적배당형 변액보험도 활성화2000년 이후에는 CI(Critical Illness)보험이 활개를 치고 있다. ‘포스트 종신보험’으로 불리는 이 보험은 삼성생명이 2002년 처음 도입, 보급에 나섰다. 다른 상품보다 보험료가 상대적으로 비싼 반면, 보험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치명적 질병에 걸리거나 수술을 받게 될 경우 고액의 보험금을 선지급받을 수 있다는 특징을 지닌다.CI보험이 10여년 전부터 판매되기 시작한 영국의 경우 2000년에는 전체 신계약의 30%를 CI보험이 차지했다. 삼성생명은 CI보험을 도입한 후 지난 1월 말까지 46만4,000건의 판매실적을 올렸다.삼성생명이 CI보험으로 급풍을 일으키자 지난해 중순부터 다른 생보사들도 이 보험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다. 지난 1월 말까지 삼성생명을 포함한 9개 생보사가 판매한 CI보험은 약 71만5,000건이며 여기서 거둔 초회 보험료는 952억원에 이른다. 1월 말까지 대한생명은 약 15만5,000건, 교보생명은 약 4만건의 CI보험을 판매한 것으로 집계됐다.CI보험의 후속주자로는 유니버설보험(Universal Life)이 떠올랐다. 유니버설보험은 마치 은행의 보통예금을 이용하듯 입출금이 자유로운 상품을 뜻한다. 가입 후 일정기간이 지나면 해약환급금이 제로(0)가 되지 않는 범위에서 보험료를 자유롭게 납입, 적립금을 인출할 수 있다. 지난해 7월 메트라이프생명보험이 입출금이 가능한 변액유니버설보험을 출시한 이후 올 2월 교보생명이 유니버설종신보험을 내놓았다. 메트라이프생명의 ‘무배당 My Fund 변액유니버셜보험’은 4월까지 총 750억원의 수입보험료를 올렸으며, 교보생명의 ‘교보 다사랑 유니버셜 종신보험’의 경우 5월까지 190억원의 실적을 기록했다. 삼성생명도 지난 6월 ‘삼성 유니버설종신보험’을 출시하며 시장에 뛰어든 데 이어 대한생명과 흥국생명, 신한생명, SK생명 등도 판매를 실시할 계획이다.아울러 지난해 9~10월에는 ‘장기간병보험’이 등장, 인기를 끌고 있다. 삼성생명, 교보생명, 대한생명 등 빅3 생보사에서 판매하고 있는 장기간병보험은 올 1월 말까지 1만7,225건이 팔렸다. 팔린 상품의 초회보험료만 해도 92억원에 이른다. 한국사회는 이미 지난 2000년에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 인구가 7%를 넘어서면서 ‘고령화 사회’로 진입했으며 2010년에는 그 비중이 10%를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고령화 사회로의 급진전과는 달리 노인 간병에 대한 뚜렷한 대책이 없는 현시점에서 이 상품은 각광받을 수밖에 없다.이 같은 상품들에 ‘변액’(Variable Life)이라는 이름을 붙인 상품도 증가하는 추세다. ‘변액종신보험’ ‘변액유니버설보험’ 등 ‘변액’이라는 용어가 붙은 보험은 실적배당형 상품이다. 가입자들이 낸 보험료로 펀드를 구성, 운용실적에 따라 보험금의 지급액이 달라진다. 기존 ‘정액’ 상품이 아닌 이들 변액보험상품은 ‘고위험, 고수익’(High Risk, High Return) 성격을 지닌다.정액보험은 보험사고의 발생으로 지급되는 보험금의 액수가 보험계약 때 확정돼 있는 반면, 변액보험은 지급받을 수 있는 보험금액이 변동된다. 보험계약자가 낸 보험료 중 저축보험료를 따로 분리, 별도의 분리계정을 통해 주식이나 국채, 공채, 사채 등에 투자하는 원리를 지니기 때문이다. 투자수익의 성과가 보험계약자가 향후 받을 환급금에 반영되는 원리다.어린이·효도보험도 인기보장받을 수 있는 연령을 세분화한 연령 타깃 보험도 눈길을 끌고 있다. 어린이보험과 효도보험이 대표적이다. 보험료가 월 3만원에서 5만원 정도인 어린이보험은 거의 모든 손해보험사에서 판매하고 있다. 어린이가 놀다가 다치거나 교통사고로 입은 골절 같은 상해사고는 기본으로 보장해주며 학교생활을 하다가 걸릴 수 있는 식중독이나 전염성이 강한 콜레라, 장티푸스도 보장 대상이다.보험사에 따라 백혈병이나 암 같은 질병도 보장 대상에 들어 있기도 하다. ‘왕따’, ‘집단 따돌림’으로 인한 정신적 피해까지 보상해 주는 경우도 늘고 있으며, 유괴, 납치에 대한 위로금도 보장내용에 포함돼 있기도 하다. 부모가 사망하거나 장해를 입을 경우에 자녀가 자립할 수 있도록 돈을 지원해 주는 상품도 있는데 5년 동안 매월 50만원을 지급하거나 해마다 학자금으로 100만원에서 500만원을 지급한다. 이 같은 어린이보험은 거의 모든 생보사와 손보사에서 팔고 있다.효도보험이라는 이름을 걸고 나온 상품들은 노인의 건강이나 재해사고를 보장해 주는 것을 골격으로 삼고 있다. 65세에서 70세 노인도 가입할 수 있는 효도보험은 건강보험이나 상해보험의 성격을 지닌 건강종합선물세트와 같은 상품인 셈이다. 이 보험은 노인성 질환에 대해 진단비와 수술비, 입원비 등 치료에 필요한 비용을 지급한다. 중풍이나 당뇨병, 관절염이나 노년층에 생기기 쉬운 골절 등도 보장해 준다. 치매에 걸렸을 때도 간병비를 지원해 주는 효도보험상품도 있다. 효도보험은 손보사와 함께 생보사에서도 판매하고 있다. 손보사 상품으로는 제일화재의 ‘만수무강 효도보험’과 AIG손해보험의 ‘무사통과 실버보험’, 동양화재 ‘효지킴이보험’, 신동아화재 ‘평생안심 간병보험’, 대한화재 ‘보살피미 간병보험’ 등이 있다. LG화재에서 파는 ‘기쁨 가득 간병보험’, 동부화재가 내놓은 ‘건강의료보험’도 효도보험상품이다. 생보사 상품으로는 삼성생명의 ‘실버케어보험’과 교보생명의 ‘참사랑 효보험’, 동양생명의 ‘수호천사 실버라이프 종신보험’, 흥국생명 ‘무배당 실버간병보험’, 신한생명의 ‘골드안심보험’ 등이 있다.여름휴가철을 앞두고 ‘레저보험’ 또한 눈길을 끌고 있다. 레저활동으로 다치거나 사망했을 때 보장해 주는 걸 뼈대로 삼고 있다. 보험료 몇 천원이면 휴가기간 며칠만 보장해 주는 보험도 등장했다. 삼성생명의 ‘e라이프 레저형 상해보험’, 교보생명 다이렉트라이프의 ‘다이렉트 교보 레저보험’, LG화재의 ‘자유시대 레저형 상해보험’, 대한화재의 ‘장기상해 뉴태평천하보험Ⅱ’, 흥국생명의 ‘훼미리투어레저보험’ 등이 있다.해마다 선정되는 ‘올해의 보험 히트 상품’을 통해 당대의 트렌드를 확인하게 된다. 보험상품은 시대의 변천사를 녹여 내며 진화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