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 등서 경쟁브랜드와 신경전 치열 … 자부심으로 똘똘뭉쳐

일본 도쿄 아오야마 거리를 대표하는 명물을 하나만 꼽으라면 단연 프라다의 ‘에피센터’(Epicenterㆍ진원지라는 뜻)를 들 수 있다. 지난해 6월에 오픈한 이 건물은 이끼가 가득 낀 벽에 둘러싸여 있고 수백개의 다이아몬드 모양의 유리로 전면이 장식돼 있는 등 들어가는 입구부터 매장 내부까지 특별하지 않은 게 없을 정도다.그런데 조금만 살펴보면 에피센터의 목적이 판매에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쇼핑공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휑한데다 판매사원의 적극적인 권유도 없다. 이곳에 디스플레이된 제품 역시 새롭게 출시된 신상품만은 아니다. 지금까지 발표해 온 컬렉션을 주제에 따라 모아놓아 브랜드의 역사를 한눈에 알 수 있게 꾸며놓았다. 프라다는 에피센터를 뉴욕에도 지어놓았다.이쯤 되면 궁금해진다. 도대체 이윤을 추구하는 패션기업이 땅값 비싸다는 도쿄와 뉴욕의 중심지에 수백억원의 돈을 들여 이런 ‘예술작품’을 세운 이유가 뭘까.“브랜드의 자존심이지요.”이 회사의 지오바니 디살보 사장(아시아 담당)은 얼마 전 내한해 가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프라다는 당장 손에 쥐여지는 돈보다는 브랜드 이미지와 그것을 지켜 나가는 자존심이 훨씬 중요하다는 말이다.비단 프라다뿐만이 아니다. 명품업체들에는 자존심과 긍지가 목숨보다 중요하다. 이 같은 높은 자존심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것 중 하나가 백화점 내에서 ‘경쟁 브랜드와의 자리싸움’이다.올 가을 새롭게 개장하는 갤러리아백화점 압구정점 패션관 1층에는 바로 옆 명품관에서 자리를 옮긴 루이비통과 구찌, 셀린느 등의 매장이 들어선다. 그중 루이비통은 종전의 두 배 가까운 크기인 85평 대형매장을 선보일 계획.루이비통의 이번 이사는 새로운 매장 인테리어를 선보이려는 브랜드측과 고급화를 추구하는 백화점의 전략이 맞아떨어진 이유도 있지만 그 내면에 또 다른 ‘사정’이 숨어 있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전한다. 명품관에서 이웃해 있던 샤넬 부틱의 크기가 자사 매장보다 크다는 사실에 불만을 갖고 있던 루이비통은 백화점측에 숍 크기를 늘려줄 것을 끊임없이 요구해 왔고 한정된 공간에 고심하던 갤러리아가 패션관의 명품관화라는 카드를 내놓았다는 것이다.반면 프라다는 올 봄 현대백화점 본점과 입점기간 만료에 따른 매장 재배치 문제를 논의하면서 백화점측이 잡화와 의류 매장의 분산 입점안을 제시하자 이를 거부하고 매장을 철수해버렸다. 현대백화점 매장이 국내 매출의 10%를 차지하는 메인숍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이다. 프라다코리아 관계자는 “장기적 관점에서 이미지 관리를 중시하는 프라다의 브랜드 철학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이었다”고 입장을 밝혔다.명품브랜드의 홍보와 마케팅 활동에서도 이들의 긍지가 얼마나 높은지 쉽게 알 수 있다.초호화 보석과 시계로 유명한 까르띠에는 자사 제품 앞에 다른 브랜드의 제품의 비주얼이 노출되는 것을 거부한다. 광고 지면을 보석브랜드 중 맨 앞면 잡는 것은 기본. 잡지사와 시계 및 보석에 관한 화보를 진행할 때도 가장 먼저가 아니면 촬영을 기피한다.까르띠에 외에도 최우선 지면 확보를 광고홍보의 원칙으로 고수하는 브랜드가 다수 있다. 샤넬은 패션, 보석, 화장품 등 모든 제품이 해당 분야에서 ‘제일 먼저’를 고집한다. 화장품업계에서는 랑콤, 에스티로더, 크리스찬 디올 등 3개 경쟁사가 그렇다.명품업체의 자존심 세우기는 때로 도가 지나치다고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러나 그들의 높은 콧대 아래에는 ‘자사 제품의 품질과 디자인이 세계 최고’라는 자부심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