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다퉈 외형 키우기 공세, 서비스 질 경쟁도 치열

영국의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최신호에서 “아시아에서 100만달러 이상의 금융자산을 보유한 개인은 모두 190만명이고, 이들의 금융자산 총액은 전년보다 22% 증가한 6조2,000억달러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또 최근 한미은행을 인수한 씨티그룹은 “액수보다는 자산이 늘어나는 속도에 주목해야 한다”며 “일본은 제외한 아시아 PB시장은 향후 5년간 해마다 20~30%씩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그렇다면 국내 상황은 어떨까. 앞서 언급한 전망이 사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대세다. 금융기관의 PB(Private Bankingㆍ거액자산가 금융종합서비스) 관계자들은 이구동성으로 “국내 PB시장 역시 확장 국면에 들어간 것이 확실하다”며 “향후 어디가 부자고객을 많이 잡느냐에 따라 회사의 운명이 갈릴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특히 강남권 부자들을 잡기 위한 격전이 뜨겁다. 최상위층 부자의 절반 가까이가 몰려 있는 것으로 알려진 강남에서 뿌리를 내리면 절반의 성공을 거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하나은행이 전체 PB지점의 90%를 강남에 집중배치하고 저인망식 세몰이에 나선 것도 따지고 보면 강남만은 확실하게 잡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특히 국내 은행 가운데 PB 전용 센터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하나은행은 강남 중심의 영업을 계속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강북이나 지방에도 전용점포를 늘려나간다는 방침이다. 올해 안에 10여개 점포의 신설을 계획하고 있다.다른 은행들 역시 속속 강남 등 부촌에 PB센터를 입성시키고 있어 한바탕 대회전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특히 인력 확충에도 소매를 걷어붙이고 부지런히 뛰고 있다. 외국계 은행 가운데는 씨티은행이 PB시장 장악력을 높이기 위해 한미은행을 전격 인수했으며, HSBC는 5월 강남구 역삼동에 PB 전용 지점을 개설했다. 특히 씨티은행은 이미 3개 점포를 열었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늘려나간다는 구상이다.국내 은행들의 경쟁은 더욱 치열하다. ‘이제부터 밀리면 끝장’이라는 인식 아래 외형을 키우는 데 주력하고 있다. 국민은행은 최근 내부 직원들을 대상으로 PB센터장 공모를 실시했다. 아울러 11개인 PB센터를 30개 정도로 늘린다는 방침 아래 개설준비에 들어갔다. 부족한 인력은 외부에서 스카우트해 활용한다는 방침이다.신한은행은 서울 강남과 강북에 두고 있는 기존의 PB센터와 별도로 금융자산 5억원 이상의 고객들을 유치하기 위해 ‘V라운지’를 새로 만들 예정이다. 고준석 팀장은 “강남을 중심으로 전국적으로 10여개를 우선 만든다는 계획”이라고 말했다.조흥은행은 5월 서울 무교동 파이낸스빌딩에 PB 2호 센터를 개설했다. 또 외환은행은 현재 3개인 PB센터를 연말까지 10여개로 늘릴 방침이다. 또 여기에다 내년까지 5개를 더 추가해 15개 규모로 운영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우리은행도 적극 뛰고 있다. 황영기 행장이 직접 “연말까지 PB 전문가수를 500명으로 늘리겠다”고 공언할 정도다. 이미 PB 서비스 기준을 기존 5,000만원에서 3,000만원으로 낮춰 대상을 확대했고 PB영업점인 투체어스를 연말까지 43개에서 70개로 늘릴 예정이다.그동안 PB센터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농협 역시 전용센터 준비에 한창이다. 5월 PB사업팀을 신설한 데 이어 내년 초 PB센터를 구축해 본격적인 영업에 나선다는 복안이다. 또 기존 지점의 PB상담센터를 연내에 50개까지 늘리고 장기적으로는 150개 규모로 확충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물론 외형만 키우는 것은 아니다. 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데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은행들은 기본적으로 “서비스가 가능한 영역에 대해서는 고객이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해결해 줄 수 있다”는 입장이다.가장 대표적인 것은 맞춤서비스다. 고객의 자산상황과 투자내역을 매달 뽑아 일대일 컨설팅 방식으로 서비스해 준다. 필요하면 전문가가 직접 나서서 세무나 법률서비스도 제공해 준다. 이 과정에서 고객이 원하면 가정방문 상담을 해주고 자산관리의 애로사항도 청취해 해결해준다. 국민은행은 VIP 고객의 요청이 있을 경우 리무진을 보내 은행까지 안내해주는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기본적인 서비스 외에 이색서비스도 다양하게 제공해 준다. 최근 하나은행은 VIP 고객의 미혼 자녀를 위한 맞선 행사를 열었다. 200여명이 참석한 이 행사에서 김승유 행장은 모임을 통해 커플이 맺어지면 직접 주례를 서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은행의 한 관계자는 “올해로 6번째를 맞고 있는데 고객들의 반응이 의외로 좋다”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개최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씨티은행은 미국에서 열리는 전세계 부자고객 자녀모임에 한국의 VIP 자녀들을 참가시키고 있다. 또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은 ‘서비스앰배서더’라는 직책을 만들어 고객이 들어설 때부터 나갈 때까지 안내해준다. 기본적인 서비스뿐만 아니라 금융상담, 실내조명, 음악 선정 등이 모두 포함돼 있다.우리은행 등 시중은행들의 ‘웰빙서비스’도 눈길을 끈다. 고객들을 대상으로 생활에 필요한 각종 강연회를 열어 다양한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게 배려한다. 건강, 취미와 관련된 것 외에 골프클리닉이나 와인시음회 등도 연다. 또 모발이나 피부관리 강좌 등도 열고, 심지어 미술품 감상이나 다이아몬드 고르기 등의 특별한 행사를 기획하기도 한다. 이밖에 유언장 보관, 해외 유명 병원 건강진단 투어 등을 서비스하는 은행들도 있다.하지만 이런 공식적인 것 외에 프라이빗 뱅커(Private Banker)들의 개인적인 서비스 경쟁도 치열하다. 비공식적인 것이라 내용에서는 차이를 보이지만 고객을 왕으로 모시겠다는 자세가 물씬 묻어난다. 금융권 프라이빗 뱅커들을 현대판 ‘파이낸스 집사’라고 부르는 것도 이와 관련이 깊다.가장 흔한 것은 고객동반 출장이다. 고객과 함께 부동산시장 등을 둘러보기 위해 지방에 내려갔다 오는 일이 적지 않다. 고객 입장에서는 재테크 분야 전문가가 곁에 있어 준다는 것 자체가 마음이 놓이기 때문에 함께 가주기를 원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하나은행의 한 프라이빗 뱅커는 “출장은 보통 주말을 이용하기 때문에 힘들 때도 있지만 서비스 차원에서 응해준다”고 말했다.요즘 PB센터에 근무하는 은행원의 역할은 단순히 금융상품을 골라주고 재산을 관리해 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어찌 보면 고객에게 토털서비스를 제공해 준다고 보면 틀림없다. 심지어 특정상품에 대한 추천을 부탁해 오는 경우도 있다. 가령 골프용품이나 자동차 등을 사야 하는데 좀 알아봐 달라는 식이다.은행권에서는 앞으로 2~3년간 부자고객을 확보하기 위한 경쟁이 매우 치열하게 전개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특히 강남권 고객을 누가 끌어들이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릴 것으로 보고 이 지역 공략에 심혈을 기울일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