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기업들의 관심사는 오로지 부자다. 부자 가운데서도 최상위층이다. 상위 5% 또는 1%가 그들이다. VIP(Very Important Person)를 강조해 VVIP(Very Very Important Person)라는 말도 공공연히 쓴다.이유는 간단하다. 돈이 되기 때문이다. 은행의 한 관계자는 “부자고객 1명이 다른 일반고객 100명 몫을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말한다. 돈 많은 고객이 그렇지 않은 고객의 일당백을 한다는 얘기다.실제로 은행의 VIP클럽인 프라이빗 뱅킹(PBㆍPrivate Banking)센터에 가보면 수십억원씩 돈을 맡기는 고객들이 적지 않다. 은행 입장에서는 수입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큰손’임에 틀림없다. 반면 통장 하나 만들어놓고 매달 수십만원씩 입출금하는 고객들도 부지기수다. 수적으로는 월등히 많지만 은행으로서는 별로 도움이 안된다. 워낙 소액을 거래하는데다 통장에 돈이 들어오기가 무섭게 빼가는 경우가 많은 까닭이다. 백화점도 마찬가지다. 많은 소비자들이 찾아오지만 실제로 도움을 주는 고객은 많지 않다. 최근 조사결과를 보면 상위 5%가 50% 이상의 매출을 올린다는 통계도 나와 있다. 백화점들이 앞다퉈 우량고객에게 주차서비스를 하거나 각종 행사 때 우선권을 주고 명품잡지를 가정으로 우송해주는 것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는 셈이다.은행이나 백화점 외에도 부자마케팅은 이제 기업들에 선택이 아닌 필수다. 가전이나 자동차 등 제조업체들도 이제는 최상위층에 포커스를 맞출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경기가 바닥을 벗어나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나빠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가 최고급 승용차인 에쿠스를 구매하는 고객들을 대상으로 주치의 제도를 도입해 별도로 관리하는 것도 부자마케팅의 일환이다.건설회사나 홈쇼핑업체들도 예외가 아니다. 건설사의 경우 고급주택팀을 만들어 부자들을 대상으로 신규사업에 나서는 사례가 크게 늘고 있고, 홈쇼핑 쪽에서는 고가의 보석 등을 주로 취급하는 웨딩사업팀 활성화가 최고의 화두다. 한 건설업체 관계자는 “아파트와 주상복합의 인기가 시들해지면서 새로운 수익모델을 찾아야 하는 것이 업계의 고민”이라며 “앞으로 타운하우스 같은 호화 주택단지가 각광받을 것으로 예상돼 고급주택팀을 만드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고 소개했다.부자마케팅이 전체 산업분야로 퍼지며 크게 각광을 받는 것은 불황과 관련이 깊다. 실업률이 늘고, 내수가 추락을 거듭하면서 소비의 양극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서민들 사이에서는 ‘돈이 없어 병원에도 가지 못한다’는 볼멘소리가 터져나오는 반면, 부자들은 외부변수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 만큼 소비력이 여전하다.강남지역(서울 강남ㆍ서초ㆍ송파구)을 중심으로 부자마케팅이 더욱 활기를 띠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강남은 누가 뭐래도 우리나라 최고의 부자동네다. 제품에 따라 다르지만 일부 고가품의 경우 전국 소비의 50% 가량이 강남지역에서 발생한다. 수입자동차만 봐도 절반 가까이가 강남 일대에서 팔려나간다.이제 부자마케팅이 시대의 대세이고 기업들에 필수적이라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앞으로 더욱 많은 업체들이 이를 도입하고 활성화할 것도 확실해 보인다. 미국 등 선진국들도 비슷한 과정을 밟아가고 있기 때문이다.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부자마케팅이라고 해서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아무리 부자들을 상대로 한 사업이 잘된다고 해도 언제든 실패할 가능성은 도사리고 있다. 특히 국내에서 부자마케팅의 역사는 매우 일천하다. 2000년 이후에 들어서야 본격 도입됐다고 봐야 한다. 자연 콘텐츠가 부실하고 성공사례도 많지 않다.기업들의 체계적인 준비가 필요한 대목이다. 자칫 잘못 뛰어들었다가는 큰 화만 자초할 뿐이다. 실제로 일부 대기업들의 경우 별다른 노력 없이 무턱대고 부자공략에 나섰다가 물만 먹고 뒤로 물러선 사례도 있다.또 너무 조급해서도 안된다. 성과를 바로 내겠다고 욕심을 부려서는 무리가 따를 수 있다. 전문가들은 보통 10년을 내다보고 투자를 해야 실질적인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조언한다. 한동철 서울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부자마케팅은 대상이 최상위층인 만큼 의외로 까다로운 점이 많아 철저한 사전준비가 필요하다”며 “회사의 강력한 지원과 기다릴 줄 아는 인내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