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학교에서 시험을 본다고 칩시다. 성적을 낼 때 70%만 아이들이 직접 치른 시험성적으로 넣는다고 하면 어떻겠습니까. 나머지 30%는 그 부모가 갖고 있는 점수로 채워 최종 결과를 도출한다고 하면 어떤 아이가 공부를 열심히 하겠습니까.”박문수 동원엔터프라이즈 상무는 지주회사 도입 배경을 묻는 질문에 다짜고짜 비유부터 들었다. 우리나라 기업 현실이 지금껏 이 같은 비유로 설명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기업의 문어발식 확장을 막기 위한 출자총액제한제도도 있지만 이는 사실상 일괄적인 적용이 어려운 제도로서 많은 논란이 있어 왔다. 그나마 30대 기업으로 적용 대상을 한정하고 있어 많은 기업들이 타 법인에 100% 투자하는 경우까지 있다. 따라서 특정기업의 이익이 높게 나타나면 이는 자사의 영업력 때문일 수도 있지만 이 회사가 투자한 다른 기업의 성과 덕분일 수도 있다. 둘 사이에서 혼란을 빚는 일이 다반사다.동원그룹 역시 지주회사 도입 이전까지 이 경우에 속했다는 게 박상무의 말이다. 동원그룹의 전신인 모기업 동원산업은 82년에 동원증권을 인수했다. 이후 86년 거래소에 상장된 동원증권의 주가가 달라질 때마다 동원산업의 당기순이익도 덩달아 출렁거렸다. 그렇다고 해서 동원산업 대표가 동원증권 경영진에게 주가하락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도 없는 형편이었던 것.현재 동원그룹 내에는 2개의 지주회사가 있다. 생활산업그룹 내 9개의 계열사를 묶은 동원엔터프라이즈와 금융사업군을 엮은 동원금융지주회사가 이들 2개의 지주회사다. 2001년 4월 생활산업그룹이 먼저 지주회사로 전환했다. 이어 지난해 5월 금융산업그룹이 지주회사로 전환했다.동원엔터프라이즈의 자회사로는 △동원참치, 양반김 등을 만드는 동원F&B △어업과 양식업을 하는 동원산업 △포장재 제조ㆍ판매업체 동원EnC △단체급식사업을 하는 동원홈푸드 △냉동창고업 동영콜드프라자 △유기농 식품을 취급하는 이팜 △사료제조업인 선진사료 △물류전문업체 레스코 △통신기기제조업 이스텔시스템즈가 있다.회사 관계자는 이스텔시스템즈를 제외한 모든 자회사가 연관성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만성적자 F&B, 효자회사로 ‘변신’지주회사제도를 도입하자 동원F&B 실적 에서부터 그 효과가 즉각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게 회사 관계자의 말이다. 동원산업의 한 부서로 존재했던 F&B부는 줄곧 연간 100억~200억원의 적자를 내던 부서였다. 이랬던 것이 지주회사 도입으로 독립법인이 되면서 출범 첫해부터 이익을 내기 시작했다는 것. 주가를 비교해 봐도 2001년 4월 당시 7,000원대였던 주가가 지난 6월24일 종가 3만7,150원으로 5배 가까이 높아졌다.또 각 자회사에 문제가 생기면 임원진이 앞장서 잘못을 인정하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따라서 적자를 내는 자회사의 경우 임직원이 월급을 반납하고 업무에 몰두하는 ‘문화’가 자연스레 만들어지기까지 한다. 한 회사가 지주회사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기업의 문화가 달라져야 한다는 게 동원그룹 사례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인 셈이다.자회사 임원진의 책임경영이 강화된다거나 그룹 오너에 대한 막연한 반발감이 해소되는 점 등도 지주회사가 갖는 장점이다. 특히 동원엔터프라이즈는 경영지원센터를 둬 모든 자회사의 인사와 총무, 교육을 지주회사에서 총괄한다는 점이 다른 지주회사와 차별화되는 특징이다. 시스템통합(SI)사업부도 지주회사 내에 둬 일원화했다. 이에 대해 박문수 상무는 “회사는 각각 독립회사지만 이들 사이에는 동원산업을 통해 입사한 가족이라는 공통분모가 있다”며 “처음에는 노사협상 창구를 찾기 어렵다는 이유를 들어 경영지원센터를 반대했던 직원들도 한 회사라는 생각을 가지라는 말에 공감하고 있다”고 말했다.물론 지주회사를 운영하는 데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아직 국내에 지주회사의 모범사례로 꼽을 만한 케이스가 없어 참고할 자료가 부족하다. 특히 출자관계에 제약이 많다 보니 경영상에서 ‘빡빡함’을 느끼기도 한다. 오히려 동원엔터프라이즈 쪽에 지주회사 관련 조언을 요청해 오는 기업 관계자들이 있을 정도다.참고사례로서 문의가 쇄도하기는 동원그룹의 또 다른 지주회사인 ‘동원금융지주회사’도 마찬가지다. 동원금융지주회사는 자회사로 동원증권과 동원창투, 동원상호저축은행, 동원투신과 동원캐피탈, 그리고 동원증권의 런던법인, 뉴욕법인을 두고 있다.금융지주회사의 설립배경은 동원엔터프라이즈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금융산업그룹의 문제점을 발견해서라기보다는 향후 금융사업에 대한 비전을 세우기 위한 것이었다. 그동안 동원그룹 내 금융업종은 동원증권 중심으로 움직여 왔다. 하지만 이제 동원금융지주회사라는 모회사가 생기면서 이를 모체로 금융업을 발전시켜 나갈 준비태세를 갖춘 것이다.동원금융지주회사는 지난해 5월 인가를 받았다. 따라서 지금까지 나타난 효과보다 앞으로 기대하는 효과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금융사업의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됐기 때문이다. 각 자회사의 고객정보 등 다양한 정보를 공유함으로써 영업에 도움이 된다는 얘기다.외부적으로는 당장 큰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게 금융지주회사 관계자의 말이다. 이미 대외적인 신뢰도가 높아졌다는 것. 금융지주회사의 인가조건이 까다롭기 때문에 이를 거쳤다는 사실 자체가 신뢰도를 높이는 효과가 있다는 것.하지만 인가절차가 까다로운 것만큼 운영상에서 부딪히는 제약도 많다. 따라서 금융지주회사로서 향후 진로는 현실적인 제약을 어떻게 극복해 가느냐에 달려 있다. 금융지주회사 관련 법률은 금융지주회사법, 공정거래법, 세법 등에서 각각 다루고 있어 서로 충돌하거나 상호보완해야 할 부분이 있다. 이것이 이 회사를 비롯한 우리나라 지주회사의 공통된 고민이다. 이는 지주회사가 재계의 보편적인 지배구조 형태로 자리를 잡을 때 해결될 문제라는 게 역시 이들의 공통된 의견이다.동원그룹 관계자들은 “그룹 규모에 비해 의외로 지주회사를 2개나 갖고 있어 다른 기업에서 관심을 갖는 것 같다”며 “지주회사를 세우는 데 드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점도 주목받는 이유”라고 입을 모았다.따라서 동원그룹의 관계자들은 지주회사제도가 주는 교훈 역시 비용과 관련된 내용으로 정리했다.박문수 상무는 “막대한 비용을 들인 만큼 비용 대비 효과를 거둘 수 있는지 잘 판단해서 지주회사를 도입해야 한다”며 “도입하기로 결정했다면 그 권한과 역할에 대해 분명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 그룹은 ‘참치’로 대표되는 동원산업 문화가 기저에 깔려 있어 자연스레 지주회사로 넘어올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또 함기수 동원금융지주회사 상무는 “많은 기업들이 지주회사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 “모든 기업이 지배구조에 있어 획일화된 기준을 적용할 수 없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함상무 역시 “따라서 지주회사 설립에 들어가는 비용이 자회사의 책임경영이나 투명성을 높이는 데 합당한 수준이라고 판단한다면 시도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