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체국 2/3 없앤 후 서비스는 오히려 업그레이드 … 신규사업도 활발

‘이사하고 주소지 이전 신고를 해야 한다.’ ‘자동차 등록을 해야 한다.’ ‘럭비리그 결승전 입장권을 사야겠다.’ ‘투표자 등록을 해야겠다.’이 경우 어디로 가야 할까? 한국 같으면 그 답이 ‘여기저기’쯤 될 테지만, 뉴질랜드에서는 답이 하나다. 우체국에 가면 된다.뉴질랜드 우체국은 우편물을 취급하는 곳일 뿐만 아니라 은행업무와 각종 행정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일종의 종합민원 대행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 우체국에 가면 우편 관련 상품 외에 각종 문구와 잡지 등이 빼곡히 들어차 있어 마치 문구점에 온 느낌을 준다. 우체국 간판 자체도 포스트숍(PostShop)으로 내걸려 있다. 우체국 인테리어도 시중은행과 큰 차이가 없다. 손님이 좀더 붐비는 것만 빼곤….한눈에 봐도 비즈니스 마인드가 물씬 풍기는 뉴질랜드 우체국의 특징은 기업 형태의 운영에서 비롯된다. 뉴질랜드의 우정사업은 공공서비스부문 구조조정 및 개혁의 모범사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의 우정사업 개혁도 뉴질랜드 사례를 벤치마킹하고 있다.뉴질랜드 우체국 개혁은 1987년 공공부문 개혁의 일환으로 추진됐다. 그해 4월 뉴질랜드 포스트 오피스가 셋으로 나뉘어 우편업무는 뉴질랜드 포스트, 전신업무는 텔레콤 뉴질랜드, 금융업무는 포스트 오피스 뱅크가 각각 맡게 됐다. 포스트 오피스 뱅크와 텔레콤 뉴질랜드는 각각 89년과 90년에 민영화됐고 뉴질랜드 포스트는 정부 소유의 공사 형태로 남아 있다. 분할 전 뉴질랜드 우체국은 86~87년도에 3,800만달러(이하 뉴질랜드 달러), 87~88년 5000만달러의 손실을 기록하는 등 적자가 계속 누적되고 있는 상황이었다.뉴질랜드 포스트의 당면과제는 구조조정이었다. 공사 출범 6개월 만인 그해 10월15일 오후 늦게 각지의 우체국에 본부직원들이 예고도 없이 나타났다. 이들은 ‘오늘 30분 동안 문을 닫습니다.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는 팻말을 밖에 내걸고는 우체국 문을 닫은 뒤 직원들에게 우체국 폐쇄결정을 통보했다. 이날 이런 식으로 폐쇄 통보를 받은 곳은 전국 1,200개의 우체국 가운데 정규우체국 227개와 간이우체국 205개를 합쳐 모두 432개에 달했다. 이후 거듭된 다운사이징을 통해 정규우체국 숫자는 87년 894개에서 91년 288개로, 간이 우체국은 340개에서 88개로 줄어들었다. 정규직원 숫자도 1만2,000여명에서 95년 6,800명 수준으로 줄었다.반면 서비스 수준은 오히려 개선돼 우편물 배달비율이 보통우편은 84%에서 99%로, 빠른우편은 81%에서 97%, 속달소포는 74%에서 96%로 높아졌다. 뉴질랜드 포스트는 공사 전환 1년 만에 7,200만달러의 세후이익을 기록한 뒤 흑자행진을 이어오고 있다.뉴질랜드 우정사업 개혁 사례를 책으로 출간한 비비엔느 스미스는 경영성과를 이렇게 요약했다. “10년 동안 생산량은 64% 증가했지만, 순원가는 34% 감소했고, 총운영비 중 인건비 비중은 73%에서 51%로 낮아졌다. 생산성은 121% 증가했고, 세금과 배당금으로 5억6,100만달러를 지불했고, 고객이 부담해야 하는 금액은 2년간 3분의 1로 줄었다.”뉴질랜드 우정개혁의 성과는 강제적인 우체국 폐쇄와 감원을 통해 달성된 것은 아니었다. 우선 구조조정을 하는 과정에서 직원들에 대한 인간적인 배려가 있었다. 퇴직 사실은 최대한 일찍 개인에게 통보했고, 이들에게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주기 위해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일자리를 찾지 못한 경우에는 2만달러 규모의 퇴직보너스를 주고, 퇴직자를 위해 성대한 파티를 열어주는 등 인간미를 잃지 않았다.기존 직원에 대한 교육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당장 큰 문제는 기업식 회계기준에 따른 회계장부를 갖추는 것이었다. 대차대조표를 읽을 줄 아는 직원조차 없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관리자 대상의 재무교육을 실시했다. 또 직원들을 변화에 동참시키기 위해 토론 기회를 수없이 마련했으며, 산업심리학자를 고용해 의식변화를 이끌어내는 노력을 기울였다.뉴질랜드 포스트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90년대 중반부터는 수익원을 다각화하기 위해 다양한 미래 핵심사업을 육성하고 있다. 우편 편의점, 각종 행정서비스 대행, 택배사업 등이 추진되고 있다. 96년에는 뉴질랜드 포스트 국제사업주식회사를 설립해 자신들의 개혁 사례를 바탕으로 해외에 경영컨설팅까지 나서고 있다. 지금도 뉴질랜드 우체국은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