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이익 5년 만에 50배 성장… 제조·금융 제친 유통시대 개척

“이마트가 무서워!”이마트 사전에 ‘스톱’(Stop)이란 없다. 거침없는 파죽지세에 출점지역마다 ‘No.1’ 자리를 움켜쥔다. 예외는 물론 없다. 수많은 경쟁사가 도전장을 던졌지만 결국 2등에 만족해야 했다. 어떤 도전자도 이마트의 아성을 흔들지는 못했다. 쟁쟁한 다국적 할인점조차 1등 공략을 미제로 남겨뒀을 판이다.이마트는 국내 할인점시장의 확고부동한 맹주다. 거의 모든 경영지표가 독보적인 1위다. 매년 20% 이상 고성장하는 까닭에 2위 그룹과의 격차는 나날이 벌어진다. 경쟁업체가 전의를 상실할 만한 성장세다. 학계가 이마트의 마케팅 전략을 성공적인 모범사례로 연구ㆍ분석하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전리품도 수두룩하다. 대표적인 게 주가상승이다. 이마트ㆍ백화점으로 양분된 신세계 주가는 10년 가까이 누적된 상승곡선을 그렸다. 한때(97년 12월1일) 8,753원에 머물던 게 현재(11월11일) 28만4,000원까지 뛰어올랐다. 지난 9월17일에는 32만7,500원으로 사상 최고치를 찍기도 했다. ‘마(魔)의 가격대’로 일컬어지는 10만원 돌파도 비교적 손쉽게 달성했다. 박종렬 교보증권 애널리스트는 “2001년 11월26일 10만원을 돌파했는데, 이례적으로 가격조정이 짧았다”며 “동종업계뿐만 아니라 증시 전체로도 이런 케이스는 별로 없다”고 말한다. 10만원 돌파는 동종업종 최초다.덩달아 외국인 지분율도 2000년 7월 20% 수준에서 현재 54%까지 급등했다. 좋은 종목만 골라 사는 외국인 취향에 부합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신세계 주가는 철저히 이마트 실적에 동행해 올랐다는 게 증권가의 지배적인 시각이다. 그도 그럴게 신세계 매출의 3/4분의 3이 이마트 부문이 맡고 있다. 박진 LG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순이익이 98년 60억에서 지난해 3,000억원으로 약 50배가 올랐다”며 “백화점만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수치”라고 평가한다. 이마트 합류로 회사 체질 자체가 바뀌었다는 얘기다. 최근 내수부진, 카드분쟁, 수급물량 등 몇몇 악재로 투자의견이 조정되긴 했지만, 장기관점에서의 주가전망은 여전히 ‘우상향’(↗)이다.우량ㆍ선호주라는 판단배경에는 그에 필적하는 성적표가 있게 마련이다. 이마트 경영지표는 화려하기 그지없다. 과거 5년치만 놓고 보면 거의 수직상승이다. 99년 1조7,000억원이던 매출이 올해 7조1,000억원까지 뛸 전망이다. 영업이익도 803억원에서 올 상반기 벌써 2,246억원을 기록했다. 참고로 이마트의 고속성장은 세계시장에서도 유례가 없다. 경기침체에도 불구, 지난해의 영업이익 3,778억원을 넘어서는 신기록 달성도 무난할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할인점이 백화점 매출을 최초로 넘어섰는데, 이 역시 일등공신은 이마트다. 시장점유율도 매년 꾸준히 늘고 있다.이마트의 무한질주는 사실 예고된 결과다. 성공한 기업ㆍ경영인에게서 발견되는 공통인자를 골고루 보유했기 때문이다. 김대식 홍보팀 과장은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매장에 가보면 타사와는 분명히 구별되는 뭔가가 있다”며 “이게 시너지를 내 오늘의 이마트를 만들었다”고 전한다.구체적으로는 선점효과가 돋보인다. 이마트는 현재 44.8%의 시장점유율(상위 5개사를 100%로 봤을 때)로 2위(홈플러스ㆍ22.5%)와의 격차를 22%포인트까지 벌려놓았다. 가히 독주란 표현이 어색하지 않다. 시장선점의 계기는 97년 IMF 위기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이마트는 ‘공격경영’의 역발상적 출사표를 던졌다. 외환위기에 순응해 경쟁사가 감축경영에 열 올릴 때, 이마트는 되레 확장정책을 추구했다. 프라이스클럽 매각을 통한 1억달러의 외자유치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마트는 이 돈으로 전국 주요상권의 할인점 부지를 대거 확보했다. 다소 무모했지만, 이 전략은 결국 성공신화의 밑거름이 됐다. 지금도 이마트는 A급 입지를 대규모 보유하고 있다. 경쟁ㆍ후발업체가 뒤늦게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진입장벽이 너무 높은 상황이다. ‘위기에 강한 기업’이라는 별명은 이때 얻었다.이마트는 토종업체의 자존심도 지켜냈다. 세계 유통시장의 절대강자 ‘월마트’조차 이마트 앞에서는 무릎을 꿇었다. 10개국, 4,500점포의 ‘막강파워’ 월마트가 시장공략에 실패한 거의 유일한 나라가 한국이다. 이마트는 월마트가 들어오기 이전에 이미 전국적인 다점포망을 구축했다. 막대한 자금력을 지닌 월마트의 무차별적 공세도 이겨냈다. 98년 월마트가 일주일 내내 ‘가격할인’ 전략을 구사했지만, 밤새 모든 품목의 가격동향을 체크해 역으로 가격우위를 내세워 승리한 건 유명한 일화다. 지난해에는 만성적자로 허덕이던 까르푸 부산 사상점을 인수해 몇 달 만에 흑자점포로 탈바꿈시키는 경쟁우위를 자랑했다.요즘 월마트는 발걸음이 무겁다. 세계 평정에 빛나는 명성과 자존심이 이마트와의 대결에서 완전히 무너졌기 때문이다. 기세등등하던 글로벌 파워는 어디에도 없다. 매출액만 봐도 이마트의 15%(2003년 기준)에 불과하다. 시장점유율은 업계 5위까지 추락했다. 패인은 역설적이게도 ‘한국화’에 미숙했다는 점이다. 바꿔 말하면 토종기업 이마트의 입지가 그만큼 셌다는 얘기다. 가령 국내소비자는 창고형(월마트) 진열보다 백화점(이마트)식 쇼핑공간을 선택했다. 서구식 매장분위기는 한국정서에 역효과를 냈다. 스스로를 할인점 킬러라는 한 고객은 “할인점이 처음 생길 때부터 여러 곳을 다녀봤는데 이마트만큼 쇼핑환경이 좋은 곳은 없었다”며 “고객을 편안하게 하는 분위기가 가장 만족스럽다”고 평가한다. ‘할인점=이마트’의 등식답게 경쟁사의 벤치마킹도 한창이다.이마트 파워는 제조업체보다 세졌다. 사실 제품판매에 있어 가격결정권은 대단히 중요한 파워다. 가격결정권 자체가 무소불위의 경쟁력을 의미해서다. 이런 점에서 과거 가격결정은 전적으로 제조업체의 고유권한이었다. 이른바 ‘권장소비자가격’에 따라 유통업체는 판매만 대신하는 데 만족해야 했다. 즉 유통업체의 마진 자체가 제조업체에 의해 결정되는 구조였다. 그러던 게 90년대 말 이마트가 ‘오픈프라이스’(Open Price) 제로를 도입함으로써 판도변화를 완전히 역전시켰다. 이때부터 가격결정권을 유통업체가 쥐었고, 제조업체는 최종판매가에 간섭할 수 없게 됐다. 뒤이어 정부도 무자료거래 등 유통구조의 왜곡을 막겠다는 취지로 권장소비자가격을 폐지했다. 이 결과 소비자는 한층 정확한 가격정보를 바탕으로 저렴한 가격에 상품을 구입할 수 있게 됐다.이마트의 위상은 금융업체와 맞설 정도로 커졌다. 최근 이슈로 부각된 할인점과 카드사의 ‘수수료분쟁’이 대표적이다. 지난 9월1일 카드사의 수수료인상 통보로 촉발된 이번 분쟁의 시사점은 생각보다 크다. 양대 진영의 대표선수 격으로 맞붙은 이마트와 BC카드의 힘겨루기도 그만큼 치열하다. 논리의 정당성 여부를 떠나 예전이었다면 금융업체에 대한 유통업체의 대항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유통과 금융 사이에 존재하는 힘의 우위가 명확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마트의 부상은 이 관행을 여지없이 깨버렸다. 즉 이마트의 파워가 세졌음을 단적으로 반영한다. 분쟁과정에서 이마트가 전면에 나섬으로써 업계 리더로서의 입지도 한층 강화됐다.이마트는 어제보다 내일이 더 밝다. 1위 타이틀에서 비롯되는 성장기회가 무궁무진해서다. 최근에는 여세를 몰아 중국시장에까지 출사표를 던졌다. 성과도 괄목할 만하다. 이는 토종기업에 만족하지 않겠다는 미래전략의 실천이다. 이제 이마트의 무대는 세계다. 토종의 매운맛을 글로벌 무대에서 펼칠 날도 머지않았다. 이마트의 포효에 세계가 긴장하는 건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