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어라~ 복고바람!’ 예사롭지 않다. 교육시장이 ‘복고’로 들썩인다. 주산의 부활은 격정적이다. 순식간에 온 나라를 덮쳤다. 금싸라기 땅인 도심에 주산학원이 들어선다. 모 업체는 1년 만에 2,500개의 가맹점을 개설했다. 되살아난 바둑의 인기도 눈이 둥그레질 정도다. 바둑계도 미처 예상 못했다. 바둑 붐은 ‘교실에서의 탈출’이 한몫 했다. ‘방문교육’이라는 교육시스템과 결합, 메가톤급 폭발력이 생겨난 것. 한자열풍은 ‘복수’를 연상케 한다. 한때 퇴출의 아픔을 겪었으나 지금은 ‘영어열풍’을 무색케 한다. 학습지 한자시장이 3,000억원. 이 정도면 ‘화려한 부활’이 아닐까.주산 ‘살아 돌아오다’서울시 강남구 압구정동의 ‘열린학원’. 오후 2시가 가까워지자 ‘까르르’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초등학생들이 하나둘 강의실에 들어선다. 수업이 시작되자 가방에서 무지개색 주판을 꺼낸다. 10여명의 학생들이 한꺼번에 주판알을 튕기는 소리가 경쾌하다. 이 학원은 지난해 6월에 문을 열었다. 벌써 수강생이 200여명이다.학원장인 김철씨(40)는 감개무량하다. 이번이 두 번째 주산학원이다. 97년 주산학원 간판을 직접 떼어내는 고통을 맛봤다. 그로서는 지금의 주산열기가 그저 감격스러울 뿐이다. 김씨는 “홍보를 안 해도 학부모들이 소문을 듣고 찾아온다”며 “수학공부에 도움이 된다는 인식이 학부모들 사이에 확산되고 있어 수강생들이 더 늘어날 것”이라며 자랑을 늘어놓았다.1970년대 말부터 80년대까지 전성기를 구가하다가 어느새 기억 속으로 사라졌던 주산학원. 주산은 10여년 전까지 초등학교 6학년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일상생활의 필수도구였다. 거의 모든 초등학생들이 학원에 다닐 정도로 사교육시장의 중심을 지켰다. 그러나 컴퓨터와 계산기의 위력을 당해낼 수가 없었다. 순식간에 떠밀려 쇠락의 길을 걸었다. 90년대 중반에는 학원가에서 주산학원이라는 간판을 찾아볼 수 없게 될 정도로 자취를 감췄다. 이때만 해도 ‘부활’을 이야기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저 역사 속의 한 장면으로 남는 듯했다. 그러나 사정이 달라졌다. 마치 무덤에서 살아오듯, 부활의 기지개를 켜고 있는 것이다.최근 초등학생 사이에서 연산교육용으로 ‘붐’을 이루며 전국에 주산 열풍이 불고 있다. 초등학교 학부모들 사이에서 셈의 원리를 깨치고 암산능력을 키울 수 있는 방법으로 ‘주산 이상이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주산학원이 대도시 한복판에 속속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게다가 주산은 작은 주판알을 손가락으로 빠르고 섬세하게 다뤄야 하기 때문에 지능계발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 주산 예찬론자들의 주장이다.주산이 화려하게 부활하자 최근 서울 덕수상고에서 10년 만에 ‘전국주산대회’가 열렸다. 한국암산수학학회가 주최한 암산올림피아에는 1,400명이 참석하는 성황을 이뤘다. 지금은 없어진 급수시험도 전국주산연합회를 중심으로 다시 추진되고 있다.주산의 부활은 프랜차이즈사업을 하는 예스셈의 ‘플러스α’ 전략이 성공적으로 먹혀들면서 가속도가 붙었다. ‘플러스α’란 주산에 인터넷과 수학교육을 결합한 것을 뜻한다. 지난해 3월 첫 학원을 낸 이 회사는 1년 남짓 만에 전국에 2,500개의 체인학원을 낼 정도로 ‘주산 열풍’을 이끌었다. 서울 압구정동과 신사동 등 일부 지역은 포화상태가 되면서 더 이상 가맹점을 내줄 수 없을 정도가 된 지 오래다.동네마다 공부방도 생겨나고 있다. 유치원생이나 초등학교 저학년생을 둔 30대 초반 학부모들은 주산을 배운 마지막 세대.이들은 주산교육에 적극적일 뿐만 아니라 직접 공부방 창업에 나서기도 한다. 예스셈의 주산셈 학습지도자 과정을 거친 사람만 3,000여명.예스셈뿐만 아니라 일반 교육기관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 여성부 여성인력개발센터와 호남대학교 평생교육원에 주산셈 학습지도자 과정이 개설됐다. 올 9월에는 동국대 교육대학원에 주산 지도자 양성과정도 생긴다.주판 제조업체도 기사회생했다. 고려주판은 지난해 4월부터 매달 1만여개를 생산해 예스셈과 문구도매상 등에 납품하고 있다.바둑 ‘인기몰이에 나서다’경기도 분당 일매촌의 한 아파트. 초등학교 2학년인 유동연군(9세)이 바둑교사에게 9줄 바둑판을 놓고 바둑수업에 열중이다.이제 배운 지 두 달째라는 유군의 표정이 자못 진지하다. 유군은 “즐겨 타는 스케이트보다 더 재미있다”며 “일주일에 한 번씩 방문하는 선생님이 너무 보고 싶다”고. 유군의 어머니 이금화씨(38)는 “아이가 무척 흥미로워할 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생각하는 습관을 들이는 데 도움이 된다”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바둑이 거리로 뛰쳐나와 인기몰이에 나섰다. 두뇌활동이 활발한 시기인 아이들의 두뇌계발에 도움이 된다는 인식이 학부모들 사이에서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류 프로기사 한해원 2단은 “바둑은 두뇌활성화를 통해 학습능력을 발달시켜 줄 뿐만 아니라 수리계산력, 집중력, 침착성을 향상하는 데 훌륭한 도구”라고 말했다. 더군다나 우리나라 바둑이 세계 최강으로 군림하면서 바둑에 대한 동경이 많아진 것도 어린이들에게 바둑을 가르치려는 학부모들이 늘어난 이유다.그러나 체계적인 교재와 학습프로그램을 갖춘 곳이 드물었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큰 변화가 없다는 지적이다. 이러다 보니 동네 기원이나 바둑학원들의 경제사정이 넉넉지가 못했다. 전국바둑교실협회에 따르면 1,000여개에 달하던 회원사가 지난해 말 750개로 줄어들었다.하지만 최근 이런 분위기가 점점 반전되고 있다. 지난해부터 전국체전에도 출전한다. 일본에서 바둑 붐을 일으켰던 ‘고스트 바둑왕’의 TV 방영도 고무적이다. 전국 백화점 문화센터와 500여개의 학교에서 바둑강좌가 생겨났다. 강준열 전국바둑교실협회장은 “오랜 불경기로 회원사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최근 들어 서서히 바둑 붐이 조성되고 있다”고 말했다.여기에다 방문학습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시장이 들썩이고 있다. 최근 어린이교육 전문업체인 에듀마이스터가 바둑에 창의력 교육개념을 접목한 ‘브레인 업 바둑’을 개발, 방문학습지 시장에 뛰어들면서 학부모들의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올 3월 본격적으로 사업에 나선 이 회사는 이미 분당지역을 중심으로 1,000여명의 회원을 확보했다. 에듀마이스터의 선전은 예견된 일이었다. 기존 바둑교재의 단조롭고 진부한 내용의 단점을 보완했기 때문이다.산만하고 집중력이 부족한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바둑에 흥미를 갖도록 교육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자칫 딱딱하고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 바둑의 원리를 아이들의 발달단계에 맞춘 다양한 교육을 통해 어렵지 않게 터득할 수 있게 한 것.일례로 학습의 재미를 더해주는 선 긋기, 스티커 붙이기, 길 찾기 놀이를 하면서 학습이 아닌 놀이로서 바둑을 받아들이도록 했다. 또 아이들에게 친숙한 동화, 옛날이야기 등을 통해 교재 곳곳에 바둑의 기초개념을 접목시킨 것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최흥산 에듀마이스터 사장은 “바둑을 단지 기능적인 면에서 벗어나 학습도구로 본 것이 시장의 호평을 얻은 것 같다”며 “앞으로 시장은 더욱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한자학습 ‘복수혈전을 벌이다’교육전문 출판사인 아울북 직원들은 요즘 정신이 없을 정도로 바쁘다. 지난해 11월 첫 출간한 ‘마법천자문’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 중이기 때문이다. 5권이 나온 6월 말까지 무려 80만권이 팔렸으니 최근 나온 만화 단행본 가운데 최고의 히트상품으로 꼽힐 만하다. ‘마법천자문’은 중국 고전 <서유기>를 변형한 이야기를 통해 아이들에게 한자를 가르쳐주는 구조다.줄거리는 주인공인 손오공이 한자마법의 대가 보리도사의 제자가 돼 한자마법을 배워 모험에 나서는 이야기. ‘마법천자문’의 성공은 최근 불고 있는 한자 열풍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처럼 출판업계에 수십종의 한자교재가 쏟아져 나와 대형서점마다 전용 코너가 따로 생길 정도이다.한자학습지업체도 호황이다. 대교와 구몬, 장원 등 20여개 한자학습지의 회원수만 130만명으로 추정된다. 업계는 한자 사교육시장 규모를 3,0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추정한다. ‘눈높이’ 브랜드로 잘 알려진 대교의 경우 ‘눈높이 한자’ 회원수가 41만명. 올 상반기에도 전년 동기 대비 10% 이상 회원수가 늘었다.한자는 한때 퇴출위기에 직면했다. 94년 대학수학능력시험제도가 도입되며 ‘한문’ 과목이 대학입시에서 제외된 것이다. 이때부터 쇠락의 길을 걸었다. 대학진학에 필요 없는 과목을 가르칠 생각도, 배울 생각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더군다나 한글전용론을 외치는 목소리가 높아지며 한자는 시대흐름에 역행하는 것으로 간주될 만큼 푸대접을 받았다.그러나 어느 순간 부활의 기회를 잡았다. 중국의 급부상이 계기를 마련했다. 중국이 세계경제의 핵으로 등장하며 한자 열풍의 진원지가 된 것이다. 2000년 교육인적자원부가 한자능력검정시험을 국가공인자격으로 인정하자 한자 열풍은 세력을 얻어갔다. 여기다가 올 초 경제5단체가 신입사원 채용에 한자시험 시행을 발표한 것은 날개를 달아준 격이었다. 아울러 우리가 쓰는 말의 70% 가량이 한자라는 점도 한자학습의 필요성을 부채질했다.대교에서 한자학습지 마케팅을 맡고 있는 조은숙 대리는 “자격증이 생기고 대기업 입사시험에 반영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열풍이 본격화됐다”고 말했다.INTERVIEW 열풍의 주역“최신 트렌드 접목하니 성공이 보이더군요”사교육시장에 복고 열풍이 부는 것은 과거의 교육방식을 오늘에 맞게 패러다임을 바꾼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주산 프랜차이즈업체인 예스셈교육 이한천 본부장과 바둑 방문학습업체인 에듀마이스터 이기우 실장. 이들은 주산, 바둑이 지닌 기존의 학습적 효과는 강화하면서 신세대 아이들의 특성에 맞는 프로그램과 시스템을 개발, 성공을 일궈냈다.주산 11단인 이한천 본부장(49). 이전에 주산학원을 운영하다가 문을 닫은 아픈 경험을 갖고 있다. 물론 지금은 약이 됐다. 주산의 ‘실종’을 아쉬워하던 그는 오랜 기간 부활을 꿈꿨다. 답이 나왔다. 더 이상 계산 기능만으로는 승산이 없다는 것. ‘플러스α’가 필요했다. 그 ‘플러스α’를 수학학습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잡았다. 이본부장은 “아이들은 흔히 아라비아 숫자에 치여 수학공부에 흥미를 잃는다”며 “주판알을 통해 몸으로 숫자 개념을 배우면 아이들이 재미있게 수학을 이해할 수 있고 집중력을 키울 수 있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18단계짜리 교재를 직접 만들었다. 주판도 색깔을 입히는 등 최근 아이들의 트렌드를 철저하게 반영했다.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하자 학부모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주부들이 공부방 형태로 가정에서 창업한 가맹점이 절반을 차지하고 있긴 하나 1년 만에 2,500개를 훌쩍 넘어선 것이다.바둑TV 출신인 이기우 에듀마이스터 실장(30)은 함께 근무하던 최흥산 사장(35)과 함께 의기투합, 바둑 학습지시장에 뛰어들었다. 이실장은 “3년 전 일본에서 ‘고스트 바둑왕’이 1,000만부가 팔릴 정도로 히트를 치며 어린이 바둑인구가 크게 늘어난 상황이 우리나라에서도 펼쳐질 것으로 예상했다”고 한다.그러나 고전적 바둑교실로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다. 아이들이 지속적으로 흥미를 가질 수 없는 구조로 봤기 때문이다.이에 이미 검증된 학습지 시스템을 실험적으로 도입했다. 프로기사인 한혜원 2단을 이사로, 양재호 9단을 자문역으로 초빙, 학습지교재를 직접 개발했다. 교사들은 명지대 바둑학과 졸업생 및 아마 유단자들로 구성했다. 올 2월 경기도 분당을 중심으로 회원모집에 나서 6월 말 현재 1,000명의 회원을 확보하는 성과를 거뒀다.두 사람은 “이제 시작”이라고 말한다. 수요가 무궁무진한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본부장은 “이제 겨우 1년이 지났을 뿐”이라며 “주산의 장점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으로 지금보다 몇 배 이상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이실장은 “오락성이 뛰어나 확산속도가 빠르다”며 “올 9월 프랜차이즈사업을 본격 전개하면 50만명의 회원을 확보할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