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를 일본에서는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부른다. 일본 경제가 10년간의 장기불황으로 침체상태를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본은 90년의 버블경제 붕괴 이후 10여년에 걸친 경기침체의 영향으로 경제성장률은 거의 정체됐고 실업의 증가, 기업과 금융기관들의 연속적인 도산으로 인해 경제적으로 상당히 위축된 시기가 지속됐다. 특히 금융권의 불량채권으로 인한 금융기관의 전반적 위기는 금융시스템의 불안을 가중시키면서 심각한 신용경색 현상을 초래했다.90년대에 일본은 경기진작을 위해 제로(0)금리라는 사상 초유의 저금리 정책을 취했다. 그러나 이러한 저금리 상태에도 불구하고 경기는 나아지지 않았다. 경기진작을 위해 정부의 대규모 재정지출이 몇 차례에 걸쳐 단행됐으나 재정적자만을 가중시켰을 뿐 경기활성화라는 소기의 목적은 달성하지 못했다.이렇게까지 일본 경제가 침체의 늪에서 좀처럼 헤어나지 못한 데는 버블경제의 붕괴 이후 나타난 불량채권의 증가와 이에 따른 금융위기가 주된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90년대의 일본 금융위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80년대 버블경제와의 연관성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80년대 후반부터 일본 열도를 들끓게 한 버블경제의 생성과 소멸이 일본 경제의 ‘잃어버린 10년’을 이해하는 데 필수사항인 것이다. 당시의 일본 버블경제는 자산가격의 급격한 상승, 경제활동의 과열, 통화공급과 신용의 팽창이라는 3가지 현상에 의해 특징지어진다.지난 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일본의 엔화는 급속도로 상승했다. 플라자 합의가 발표된 다음날 1달러에 240엔이었던 환율이 한 번에 225엔대로 급등했고, 엔화는 상승세를 이어갔다. 특히 85년 말에는 1달러에 200엔대로 상승했다.이듬해인 86년에는 연초부터 180엔까지 엔화의 고공행진이 펼쳐졌다. 이러한 급속한 엔고(高)의 진행에 일본 정부는 경제에 미칠 파장에 대해 우려하기 시작한다. 이른바 엔고불황에 대한 우려였다.이에 일본은 금융완화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한다. 일본은행의 경우 86년 1월부터 87년 2월에 걸쳐 공정할인율을 5차례에 걸쳐 인하했다. 이로 인해 4.5%였던 금리가 2.5%로 낮아졌다. 당시로는 사상 최저 수준의 저금리였다. 87년 5월에는 제2차 나카소네 내각이 들어서면서 6조엔 규모의 긴급 경제대책을 내놓게 되는데 당시로서는 엄청난 규모였다.6조엔이란 규모의 재정지출에다 금리는 ‘초저’ 상태였다. 이는 막대한 통화량 증가로 이어졌으며 그후 일본에 일어날 자산가격 폭등의 신호였다. 금융완화 정책의 지속적 추진 결과, 저금리 상태가 지속되고 이와 함께 기업의 자금조달이 촉진됐다. 따라서 통화량은 꾸준히 늘어나게 됐다.이러한 유동성을 배경으로 부동산, 주식으로 자금이 몰렸다. 기업은 저리로 자금을 조달했고 조달한 자금으로 부동산에 투자했다. 당시 기업들의 투자 열기로 부동산가격은 폭등했고 이러한 가격상승은 기업의 평가익을 증가시켰다. 이는 다시 기업의 자금조달 능력의 증대로 이어졌고, 기업은 더 많은 자금을 끌어들여 부동산에 쏟아부었다. 부동산가격의 폭등과 함께 주가도 크게 상승했는데 닛케이 평균주가는 85년 12월에 1만1,000엔이었던 것이 89년 12월에는 3만8,900엔까지 폭등했다. 4배 가까운 상승이었다.그러나 일본의 긴축정책 등의 영향으로 90년대에 들어서면서 자산가격은 폭락하기 시작했다. 그후 일본의 버블경제 붕괴 후유증은 10여년에 걸쳐 지속적으로 이어지는데 그 과정에서 일본 경제는 심각한 위기를 맞는다. 특히 금융기관의 부실채권 양산은 경제 전반의 심각한 신용경색을 가져왔고, 많은 기업의 도산으로 이어졌다. 이는 다시 경기침체를 가속화시키면서 각종 경제지표를 악화시켰다.특히 부동산가격의 하락은 그칠 줄을 모르고 지속적으로 진행됐다. 최대 40% 수준까지 하락한 곳도 많았다. 주가 역시 최고가였던 4만엔에서 1만엔대로 떨어졌다. 자산가치의 급락으로 인한 금융권의 담보가치 하락과 여기서 누적된 불량채권은 금융기관의 경영악화를 심각한 수준으로까지 몰고 갔고 잇단 금융기관의 도산으로 이어졌다. 또한 90년대의 장기불황은 기업의 매출감소로 이어졌고, 많은 기업들이 무너졌다. 그리고 이러한 기업들의 도산이 다시 불량채권의 증가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실제로 일본 금융기관의 불량채권 대부분은 90년대 중반 이후 신규로 발생된 것들이다. 결국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이란 불량채권으로 인한 금융위기와 그로 인한 경기침체의 기간이었다고 할 수 있다.2000년대 들어 일본 정부의 금융개혁은 불량채권의 신속한 정리와 금융시스템의 안정화에 초점이 맞춰졌다. 기업재건의 원활화, 채권의 유동화, 채권포기의 원활화 등을 골자로 한 불량채권 처리가 진행됐고, 은행의 합병과 부실은행의 해외매각이 이뤄졌다. 2002년 후반부터 불량채권 처리의 성과가 가시화됐으며 적어도 어느 한 은행의 문제가 금융시스템 전체로 파급되는 리스크는 상당히 줄어들었다. 2005년 3월까지 보유 부실채권을 절반 이하로 줄이려는 목표를 벌써 달성한 은행들도 상당수 나타나기 시작했다. 일본의 금융전문가들도 불량채권 문제는 앞으로 3년 정도면 완전히 해결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이러한 부실채권 처리와 함께 일본 정부는 금융개혁의 일환으로 은행의 증권중개업무 허용을 중심으로 하는 증권거래법 개정을 결정하는 등 금융기관의 업무영역 조정을 추진하고 있다. 이렇게 일본이 추진하고 있는 금융개혁의 핵심은 경쟁촉진에 있다. 경쟁원리를 철저하게 도입해 금융기관 스스로가 혁신하게 하는 것이다.과거 일본의 금융은 수많은 정부 규제, 금융기관의 불투명한 재무제표와 안일한 경영 등 많은 문제점을 갖고 있었다. 그러한 문제점들의 부작용이 90년대의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이에 일본은 금융에 대한 근본적 개혁에 착수했으며 지금도 그 개혁은 지속되고 있는 중이다. 향후 일본의 금융은 과거보다 더욱 경쟁력 있는 산업으로 탈바꿈할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