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주식투자 자금유치 노력 절실, 투자교육 활성화도 시급

IMF 금융위기 이후 우리 주식시장이 외국인 주도하의 급등락 장세가 거듭되면서 국내 기관투자가가 제 역할을 못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상장회사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비율(시가총액 기준)을 보면 IMF 금융위기 직전에 13% 정도였던 외국인투자가의 비중이 최근에는 40%를 넘어선 반면, 국내 기관투자가의 비중은 같은 기간에 30%에서 16% 정도로, 주식수 기준으로는 12.5%로 줄었으니 그런 우려가 나올 만도 하다.그렇다면 국내 기관투자가의 비중은 왜 이렇게 줄기만 하는 것인가? 어떤 환경이 조성돼야 그 비중이 늘어날 수 있을 것인가? 그 답을 얻기 위해 기관투자가의 성격에 대해 분석을 해볼 필요가 있다.◇기관투자가에 대한 오해먼저 기관투자가의 역할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평가를 받고 있는 미국의 경우를 살펴보면 주식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 자체가 50% 정도로 우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 또한 기관투자가의 구성을 보면 투자신탁과 연기금이 각각 20% 정도, 그리고 보험 7%, 기타 3% 등으로 돼 있다. 미국의 은행들은 원칙적으로 주식을 보유할 수 없기 때문에 그 비중은 제로에 가깝다. 다시 말하면 미국의 기관투자가는 거의 대부분이 개인의 장기안정적 자금이 뒷받침되고 있는 연기금, 투자신탁, 보험 등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반면에 우리나라의 기관투자가는 어떤가. 최근 몇년 사이 주식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 자체가 크게 줄었다. 더 큰 문제는 기관투자가의 구성이다. 미국시장에서와 같은 장기안정적 기관투자가는 투자신탁 2.7%, 보험 1.0%, 연기금 1.5%로 그 비중이 8.3%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고객으로부터 확정금리 예금을 받아 자금을 운용해야 하는 금융기관의 주식보유가 줄어드는 것은 리스크 관리상 오히려 바람직한 현상이라고도 할 수 있다. 미국의 은행이 원칙적으로 주식보유를 하지 못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문제는 장기투자가의 역할을 해야 할 연기금과 투자신탁의 비중까지도 크게 줄어든데다 앞으로도 늘어날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는 것이다.◇주역은 연기금과 투자신탁따라서 논의의 초점은 연기금과 투자신탁의 주식보유가 왜 늘지 않는 것인가, 또 이들 기관의 주식보유가 늘어나려면 어떤 대책이 필요한가에 둬야 한다. 그렇다면 미국의 연기금과 투자신탁은 어떤 배경에 의해서 주식투자를 늘려 온 것일까.미국의 연기금은 80년대 중반 이후 주식보유를 크게 늘려 왔다. 주식투자를 늘린 가장 큰 이유는 미국금리가 하락을 했기 때문이다. 80년대 초만 해도 10년 만기 국채금리가 10%를 넘었기 때문에 연기금은 고정금리 금융상품에 주로 운용을 해도 큰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80년대 중반 이후 3~4%대의 저금리 시대로 진입하면서 국내 주식(또는 주식형펀드)투자와 국제분산투자로 운용난을 극복해 왔다. 연기금은 운용기간 20~30년의 장기자금이기 때문에 주식에 장기ㆍ분산투자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미국의 투자신탁 또한 80년대 중반 이후 꾸준히 주식투자를 늘려왔다.가장 큰 이유는 미국의 개인투자자들이 주식형펀드 투자를 늘렸기 때문이다. 각 가정에서는 저금리에 대응해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고수익을 얻을 수 있는 주식이나 주식형펀드로 자금을 옮긴 것이다. 현재 전체 미국 가정의 52%는 주식형펀드 투자로 노후 대비 자산 형성을 하고 있다. 그 영향으로 미국 투신시장의 70%는 개인이 차지하고 있으며 운용자산의 과반수가 운용기간 10년 이상의 주식형펀드에 들어가 있다.두 번째 이유는 급속하게 늘어난 확정갹출형 연금의 자금이 투신시장에 유입됐다는 점이다. 80년대만 해도 미국의 연금은 퇴직 후 받는 금액이 확정돼 있는 확정급부형 연금이 주류였다. 그러던 것이 90년대 이후 불입액만 확정돼 있고 퇴직 후에 받는 연금은 운용결과에 따라 받게 되는 확정갹출형 연금의 비중이 크게 늘었다. 2002년 말 현재 이 연금의 잔고는 2조1,000억달러로 기업 연금 총잔고의 57%를 차지하고 있다. 이 자금의 절반 가량이 투신시장, 특히 주식형 투신시장에 유입된 것이다.미국 각 대학의 기금 또한 장기투자가로서 적극적으로 주식시장에 참여했다. 미국 대학의 기금은 세계적으로 가장 세련되고 적극적인 운용성향을 지닌 기관투자가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60년대만 해도 운용의 중심은 은행예금과 채권이었다. 이것이 70~80년대를 거치면서 전문적인 운용기관으로 변모해 온 것이다. 현재 주요 대학 기금이 운용자산을 배분하고 있는 내역을 보면 단기운용은 1~2%에 지나지 않는 반면, 장기운용 그중에서도 주식 관련 상품의 비중이 70~80%를 차지할 정도이다. 대학자금의 특징, 장기운용의 이점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개인금융자산의 투자상품으로의 이전이 관건결국 미국의 사례에서 알 수 있는 것은, 기관투자가의 중심은 연기금과 투신이고, 여기에 개인금융자산이 유입되지 않으면 기관투자가의 역할 제고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표에서 보는 것처럼 미국의 가계금융자산의 70~80%는 위험이 동반하는 투자상품이 차지하고 있는데 비해 우리나라 가계금융자산의 투자상품 비중은 20%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해주고 있다.따라서 가장 시급한 것은 투신시장의 기능강화와 확정갹출형 기업연금의 도입이다. 개인의 금융자산을 유치해야 할 뿐만 아니라 연금자산 운용시장으로서의 기능강화를 위해서도 투신시장이 제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다. 투신운용사와 판매회사(은행, 증권)는 현재 70%를 차지하고 있는 법인중심 영업에서 개인중심, 그것도 장기주식투자 자금을 유치하는 방향으로 전환을 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또한 개인에게 장기ㆍ분산투자의 메리트를 인식시키는 투자교육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연기금의 장기투자를 유도하는 환경조성2001년 초 필자는 공공기관 기금의 운용자문위원을 맡은 일이 있었다. 약 4,000억원 규모의 이 기금은 은행 정기예금 금리가 9% 이상만 되면 그 이자 수입으로 사업을 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정기예금 금리가 연 3~4%대로 내려가면서 수익률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찾지 않으면 안됐다.당시에 필자를 비롯한 자문위원들은 선진국의 기금들이 하는 것처럼 배당수익률이 10% 이상이면서 망할 염려가 거의 없는 회사의 주식 10종목을 골라 펀드를 만들어서 투자하라고 제안을 했다. 그렇게 하면 연 10% 이상의 배당수입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이 제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주가가 하락하면 가을 국정감사에서 담당자가 징계를 받을지 모른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런 사정은 우리나라 각종 연기금이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문제다. 따라서 규정 개정을 포함해 이들 연기금이 장기주식투자를 할 수 있는 환경조성을 해주는 것이 시급하다. 이런 조치 없이 연기금에 기관투자가의 역할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