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가는 국내 재벌 중 가계도가 가장 복잡하다. 구씨, 허씨로 엮어진데다 대대로 다손(多孫) 집안이기 때문이다.종가인 구인회 창업회장만 하더라도 6남4녀로 무려 10남매를 뒀다. 구회장의 장남인 구자경 명예회장도 4남2녀의 자녀가 있다. 구명예회장의 동생들도 5명으로 이들의 자녀들인 ‘자’ 돌림은 대다수가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허씨가도 구창업회장의 동업자인 허만정 회장이 8명의 아들을 낳았고, 이들 또한 LG에 뿌리를 내렸다. 이러다 보니 A4용지 한 장이 부족할 정도로 방대한 가계도가 그려진다.가계도는 복잡해도 형제간 분쟁은 일어나지 않았다. 적어도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날 없다’는 말이 LG가에는 통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는 워낙 유교적 가풍을 갖고 있는 집안인데다 위계질서가 확고하기 때문이다. 장자 우선의 원칙은 늘 지켜졌고 동생들은 순응했다. 딸들은 경영에서 철저하게 배제됐다.구씨, 허씨와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구씨네가 주(主)를, 허씨네가 보(補)를 맡는 불문율은 엄격했다. 50년간 대를 이어 지켜졌다.다만 그룹의 최고의사결정을 할 때는 양가 인사들이 동수로 참여했다. 두 집안 원로들은 매년 주주총회를 열기 전에 모여 가족 중 20세가 된 성인에게 새로 주식을 배분하고, 상호간의 주식보유비율을 만장일치로 결정했다고 전해진다.그러나 세월은 흘려가는 법이고, 모든 관계는 부식되기 마련이다. 앞으로 자손들은 더 늘어날 것이다. 오늘의 우애가 100년 뒤에도 이어진다는 보장도 없다. 그래서일까. 양가 원로들은 방대한 양가 인맥을 이리저리 쪼개 딴살림을 내줬다. 그 마지막이 허씨가와의 이별이었다.분할과정에서 자손들 대부분은 조상의 은덕을 입었다. 약간의 섭섭함을 토로하는 이들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대놓고 불만을 표출하는 경우는 드러나지 않았다.창업 3대인 구씨가의 ‘자’자 돌림 인사들은 최소한 1개 회사 이상 회사의 대주주로 올라섰다. ‘본’자 돌림도 그 많은 계열사들의 경영전면에 나섰다. 허씨가도 일단은 그룹형태로 움직이고 있지만 형제들간의 역할분담이 서서히, 좀 더 명확하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구씨가는 어떻게구씨가의 재산분할은 후계구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구자경 명예회장은 우선 자신의 후계구도를 확실히 하는 것으로 재산분할의 첫걸음을 뗐다. 바로 지난 95년 둘째 아들인 구본능 현 희성그룹 회장(55)을 분가시킨 것이다.희성그룹은 희성전자, 희성정밀, 희성금속, 한국잉겔아드, 희성화학, 삼보지질 등 6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희성전자는 LCD용 액정표시장치를, 희성정밀은 에어컨벨트ㆍVTR헤드드럼ㆍ세탁기 클러치 등을, 희성금속은 건축 및 포장자재를 제조하는 업체다.구본능 회장은 실질적 지배회사인 희성전자의 지분을 38.1% 갖고 있는 최대주주다. 구명예회장의 넷째아들인 본식씨가 25.4%의 지분을 보유, 2대주주로 등재돼 있다. 지난해 그룹 매출액은 1조3,000억원이다. 주력사인 희성전자는 지난해 4,588억원의 매출을 올려 324억원의 순이익을 냈다. 이중 90%인 4,108억원을 LG필립스LCD를 통해 올렸다.희성정밀은 지난해 910억원의 매출에 137억원의 순이익을 남기는 등 계열사들의 경영실적이 좋다.구회장은 경남고와 고려대 경영학과를 나와 럭키금성상사에서 잔뼈가 굵었다. 88년 희성금속에 몸을 담아 92년 대표이사 사장에 올랐다.구명예회장의 동생들도 차례로 분가했다. 2000년 3월 넷째동생인 자두씨(72)가 회장으로 있는 LG벤처투자가 계열 분리됐다. 현재 그의 자녀들인 본천씨(보유지분 39.54%), 본완씨(19.17%), 혜란씨(8.42%), 혜선씨(6.44%) 등이 대주주로 있다. 지난 96년 설립된 LG벤처투자는 벤처업계의 불황으로 2002년과 2003년 각각 90억원과 325억원의 적자를 기록하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구자두회장은 경기고와 연세대 상과를 나와 미국 워시번대와 뉴욕주립대에서 유학했다. 59년 럭키화학 관리과장으로 입사해, 금성전자, 금성반도체 사장 등을 역임하며 핵심경영인으로 활동해왔다.그해 9월 셋째동생인 자학씨(74)도 아워홈과 함께 형의 우산에서 벗어났다. 아워홈은 전문식당, 식재영업, 단체급식, 패스트푸드 제조업 등을 영위하는 업체로 지난해 매출액이 4,400억원에 이르는 중견기업이다. 175억원의 순이익을 낼 정도로 수익성도 좋다.그는 이병철 삼성 선대회장의 3녀이자 이건희 회장의 누나인 이숙희씨와 결혼, 화제를 뿌렸다. 해군사관학교 출신으로 제일제당, 호텔신라 사장을 역임하는 등 삼성가에서도 활동했다. LG에서는 LG반도체와 LG건설회장 등을 거쳐 분가했다.직계가족 분가와 함께 구명예회장의 삼촌들도 분가작업에 들어갔다. 구인회 창업회장이 그룹을 일구는 과정에서 끌어들인 5명의 동생들도 하나둘 독립해 나갔다.99년 11월 창업회장의 손아래 동생이자 구명예회장의 큰삼촌인 구철회씨(75년 작고) 몫으로 LG화재해상보험이 독립했다. 현재 고 구철회씨의 장남인 자원씨(69ㆍ보유지분 6.92%)가 명예회장으로, 셋째인 자훈씨(57ㆍ2.49%)가 회장으로, 4남인 자준씨(54ㆍ2.73%)가 사장으로 경영을 맡고 있다.마지막으로 지난해 LG전선그룹이 분가하면서 구씨 일가의 계열분리가 마무리됐다.LG전선그룹은 창업고문인 구태회 LG전선 명예회장(81), 구평회 E1(구 LG칼텍스가스) 명예회장(78), 구두회 극동도시가스 명예회장(76)의 몫으로 분리된 그룹.맏이인 구태회 명예회장의 장남인 구자홍 전 LG전자 사장(58)이 그룹회장을 맡았으나 장악력은 약하다. 애초에 계열사별로 지분을 철저하게 나눠 가졌기 때문이다.일례로 LG산전은 구자홍 회장이 대주주로, LG전선은 구평회 명예회장의 장남인 구자열 회장(51)이, 극동도시가스는 구두회 명예회장의 장남인 구자은씨가 최대주주다.LG전선그룹은 LG전선, LG니꼬동제련, E1(구 LG칼텍스가스), 극동도시가스 등 기존 8개사에 최근 LG산전, 희성전선, 파운텍 등 인수한 5개사까지 총 13개 기업(해외법인 등 제외)으로 구성됐다. 총자산은 5조593억원으로 재계 22위(공기업 포함)에 해당하는 규모다.LG전선그룹은 삼성전자나 LG전자 같은 초우량 회사도 없지만 대다수 기업이 지속적으로 순이익을 내는 우량 회사들이다.주력사인 LG전선은 2002년 매출액 1조8,232억원, 순이익 730억원을 올린 데 이어 지난해에도 매출액 1조9,396억원, 순이익 583억원을 기록했다. 올 1분기에 매출액 5,557억원에 순이익 421억원을 올리는 등 꾸준한 성장세를 지속하고 있다.다만 전선, 산전, 도시가스 등 대부분의 업종이 장치산업의 일종이어서 미래성장성이 약하는 지적이 있긴 하다. 그러나 막강한 현금동원력을 바탕으로 신사업 진출에 나설 것으로 재계는 전망한다.LG전선그룹은 구자홍회장·구자열LG전선부회장 ‘투톱’ 체제로 움직이고 있다. 구자홍회장은 LG전자 회장을 거치며 ‘디지털 전도사’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국제적으로 알려진 CEO다. 구자열 부회장은 서울고와 고려대 경영학과를 나와 78년 럭키금성상사에 입사했다. 이후 상사와 LG투자증권에서 근무했으며 지난 2001년 LG전선 재무담당 부사장으로 옮겼다. 2003년 대표이사 사장에 올랐다.구명예회장의 손아래 동생이자 작고한 자승씨의 장남인 본걸(47)씨가 부사장으로 있는 LG상사도 실질적으로 분가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7.52%의 지분을 갖고 있는 구부사장이 대주주다. LG그룹 계열사로 편재돼 있지만 지주회사에는 편입되지 않았다.그는 연세대 경영학과와 미국 와튼스쿨에서 MBA(경영학석사)를 취득했다. 지난 90년 LG그룹 회장실로 입사하여 LG증권 이사와 LG산전 부사장을 거쳐, 지난 1월 LG상사 부사장이 됐다.허씨가 움직임허씨가도 구씨가 못지않은 방대한 경영인맥을 자랑한다. 구인회 창업회장과 동업관계였던 고 허만정씨는 슬하에 8형제를 뒀다. 이중 장남인 고 허정구 삼양통상 명예회장과 허신구 창업고문(75), 허완구 승산 회장(68), 허승효 알토 사장(61), 허승표 미디아트 사장(58) 등은 일찌감치 ‘마이웨이’를 선언했다.허정구 전 삼양통상 명예회장은 삼성그룹의 창립멤버 중 한 사람으로 신발제조업체인 삼양통상을 설립, 일찌감치 자기 길을 걸은 경우다. 그는 애초에 이병철 삼성 선대회장과 고 조홍제 효성그룹 창업주와 의기투합해 제일제당과 제일모직을 창업했으며 삼성물산 전무를 지내기도 했다. 59년 삼양통상을 설립해 독립한 뒤 그의 장남인 남각씨(회장ㆍ66)에게 회사를 물려줬다.4남인 허신구 창업고문(75)의 장남 경수씨(46)는 87년 PVC, 가스배관 등을 생산하는 코스모산업을 창업한 뒤 코스모양행, 코스모소재, 코스모레저 등의 계열사를 잇달아 설립하며 사업을 확장했다. 허신구 고문은 부산대 상학과 출신으로 금성사 사장, 그룹 부회장 등을 지내며 LG그룹 성장에 일조했다. 구자경 회장이 명예회장으로 물러난 95년에 럭키석유화학회장을 끝으로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5남인 허완구씨(68)도 한때 LG에 근무했으나 이내 뛰쳐나와 69년 승산을 설립하며 화물운송업에 뛰어들었다. 승산(주), SLS, 승산통운, 여수화물 등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현재 아들인 용수씨(36)가 사장으로 경영을 맡고 있다. 승산은 최근 센트럴모터스를 설립해 6월부터 도요타 렉서스 분당지역 딜러로 영업을 시작한다.6남인 허승효 사장이 81년에 설립한 알토는 조명기구 디자인, 생산, 수입, 시공 등을 일괄수행하는 전문업체다. 7남인 허승표 회장의 미디아트는 지상파 및 케이블TV 프로그램 제작, 국내외 비디오 유통 등을 한다. 허회장은 축구선수로 활약하다가 90년 삼영프로덕션을 인수, 회사이름을 미디아트로 바꿨다.그러나 허정구 삼양통상 명예회장의 차남인 허동수 LG칼텍스정유 회장(61)과 허씨가의 좌장이었던 허준구 명예회장(2003년 작고)의 다섯아들은 모두 LG그룹에 남아 절반의 권한을 행사했다. 이들은 그룹에서 핵심 역할을 수행하며 구씨가 경영자들과 대등한 관계를 유지하다가 이번에 GS그룹으로 분가했다.GS그룹은 LG칼텍스정유, LG건설, LG유통, LG홈쇼핑 등이 주력이다. 자산규모가 14조3,000억원으로 재계 10위권에 해당한다. 그룹회장은 허창수 LG건설 회장(56)이 맡을 예정이다. 허회장의 선친인 허준구 전 LG건설 명예회장(2003년 작고)은 허만정씨의 셋째아들로 구창업회장을 도와 LG를 일으킨 창업공신. LG화학, LG상사, LG전자 등 주력 계열사 CEO를 역임했다.허준구 회장은 구자경 명예회장과 수평관계로 알려져 있으며 이런 관계는 구본무 회장과 허창수 회장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허창수 회장은 고려대 경영학과와 미국 세인트루이스대 석사 출신으로 77년 그룹 기조실 과장으로 그룹에 첫발을 내디뎠다.LG상사 홍콩, 도쿄지사 등 해외지사에서 근무한 덕택에 국제경제 흐름에 정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언론 등 바깥으로 드러나는 것을 싫어해 홍보팀 직원들도 얼굴을 본 적이 없을 정도라고 한다.허동수 LG칼텍스정유 회장은 허창수 명예회장과 더불어 허씨가를 대표하는 경영인으로 30년간 LG칼텍스정유에 몸담고 있는 국내 정유업계의 대표주자다. 연세대 화학공학과를 나와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화학공학 석ㆍ박사 학위를 받고 73년 당시 호남정유에 입사했다.미국 석유회사 셰브론 산하 연구소 연구원으로 일한 적이 있어 이론적 배경과 현장경험을 겸비한 경영인으로 평가받는다. GS그룹이 출범하면 허창수 회장과 더불어 ‘투톱’으로 그룹을 책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의 막내삼촌으로 LG유통 사장을 맡고 있는 허승조씨(54)는 서울고 한양대 출신으로 LG패션시절 경영자로서 두각을 인정받았다. 2002년 LG유통으로 옮겼으며 앞으로도 그룹 내에서 일정 역할을 맡을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