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거짓말은 무엇인가. 사랑의 환상을 지속하기 위한 약인가. 사랑의 진실을 좀먹는 독인가. 일부일처제의 사회에서 은밀한 외도는 거짓말로만 지탱될 수 있으며 그것은 다시 발설자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오게 마련이다.영국 극작가 레이 쿠니의 연극 <런 포 유어 와이프>를 원작으로 삼은 김경형 감독의 코미디영화 <라이어>는 두 집 살림을 비밀리에 꾸려온 한 남자의 이야기를 풍자적으로 담아낸 코미디다. 로맨틱코미디 <그녀를 믿지 마세요>의 김하늘과 함께 이 영화의 주인공 주진모는 한국영화에 등장한 대표적인 ‘사랑의 사기꾼’이다.택시기사 정만철(주진모 분)은 우연히 탈옥수를 검거해 시민영웅이 되지만 기자와 경찰을 피해 쫓기는 신세가 된다. 정체가 탄로나는 순간 두 아내와의 은밀한 행복이 결딴나기 때문이다. 신분노출을 막기 위해 정만철이 꾸미는 ‘거짓의 실타래’는 자꾸 엉켜 간다.이 영화에는 거짓에 관한 깊은 통찰이 엿보인다. 우리 사회 영웅들의 실체도 정만철과 다르지 않다. 영웅들도 속내를 들춰보면 위선으로 가득하다는 점을 시사한다.위선과 거짓은 진실보다 치밀하고 정교하며 매력적이다. 정만철은 두 아내와 살기 위해 하루를 절반으로 쪼개고 시계바늘처럼 정확한 생활을 한다. 진실의 상징인 본처(서영희 분)는 수수한 외모에 누추한 집에서 살지만 거짓을 대변하는 두 번째 부인(송선미 분)은 빼어난 미모에다 부유하다.주인공의 거짓말은 사랑의 환상을 지속시키기 위한 도구이다. 환언하면 그는 거짓을 감추기 위해 더욱 자상한 남편이 됐고 이로써 아내들을 감쪽같이 속였다. 진실이 공개되는 순간 정만철은 두 여인으로부터 버림받는다.그러나 진실이란 식별하기 어려운 것이다. 정만철의 주변인물들은 저마다 조각난 사실들을 알고 있지만 그것들을 꿰맞춰 완성된 진실을 만들지 못했다. 저마다 자신의 입장에서 사물을 보기 때문이다. 사랑에 마취된 두 여인은 남편을 객관적으로 평가하지 못했다. 기자(임현식 분)는 특종에 골몰한 나머지 거짓말을 그대로 믿었다. 형사(손현주 분)는 과도한 의심으로 억측을 펼쳐 놓았다. 정만철의 친구 노상구(공형진 분)도 탐욕으로 인해 거짓에 편승했다. 모두가 거짓의 공범인 셈이다. 우리들은 이중 누구와 가장 닮았을까.위기일발의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주인공의 거짓말과 행동에 관객들은 박장대소한다. 주진모는 코믹한 인물을 소화해 경직된 이미지를 벗었다. 후반부의 집에서 펼쳐지는 연극적인 상황은 다소 지루하지만 참을 수 없을 정도는 아니다.4월23일 개봉, 18세 이상.개봉영화 가이드▶고하토일본의 거장 감독 오시마 나기사의 사무라이영화. 그동안 다뤄지지 않았던 사무라이 세계의 동성애 문제를 짚어냈다. 검술에 치중하기보다 금기의 동성애가 사무라이 세계를 움직이는 작동원리 중의 하나임을 보여준다. 주연 기타노 다케시, 마쓰다 류헤이.▶투스카니의 태양삶의 의욕을 상실한 이혼녀가 이탈리아 여행길에서 근사한 미소의 남성을 만나 벌어지는 애정소동을 담은 로맨틱코미디. 이탈리아의 풍광이 로맨스와 어우러진다. 1980년대를 풍미한 스타 다이안 레인과 라울 보바가 주연했다. 감독은 오드리 웰스.▶블라인드 호라이즌한 남자의 기억찾기와 국가적 위기탈출을 교차시킨 액션스릴러. 총상을 입고 기억을 상실한 남자에게 낯선 사람들이 찾아온다. 그런데 그의 머릿속에는 미국대통령에 대한 암살 계획이 진행되고 있다고 거듭 암시되는데. 감독 마이클 하우스만, 주연 발 킬머, 니브 캠벨.▶밝은 미래잠을 즐기는 24살의 청년이 세상으로 나와 절망감을 맛본다. 청년들의 무기력증과 세대간의 갈등을 밀도 있게 그렸다. 국제영화제에 가장 많이 초청받는 일본 감독 중의 한 명인 구로사와 기요시가 연출했다. 주연 오다기리 조, 아사노 다다노부, 후지 다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