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양천갑에 출사표를 던진 박상오 자민련 후보(66)는 무역회사를 25년째 이끌어 온 기업인이다. 지난 1980년 오다물산상사를 설립해 경영해 왔다. 오다물산은 철강 관련 부품과 기계를 외국과 교역하는 업체다.그는 지난 1937년 충남 예산에서 출생한 후 동아대학교 경제과를 2년 동안 다니다 중퇴했다. 서울 영등포구청 사회과에 근무하다 우연한 기회에 일본에 건너갔고, 거기서 달러상 일을 하며 교역에 눈을 떴다. 이렇듯 일찌감치 교역 비즈니스에 발을 들여놓고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무역을 해왔다.오다물산 창립 전에는 지인과 함께 무역회사인 KP전자를 공동창업하기도 했다. 무역맨답게 그가 지금까지 항공기에 탑승한 횟수만 해도 600여차례에 이른다.“‘3년만 지나면 돌다리에도 이끼가 낀다’는 일본 속담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25년을 기업인으로 살아와도 집 하나 장만하기 힘들었습니다. 노량진에 있는 한옥을 개조도 못하고 여태 살고 있습니다. 최선을 다해 사업을 하는데 왜 돈이 안 벌리나 회의가 들기 시작했어요.”그는 그 원인을 국내 분단체제에서 찾았다. 국내의 경제는 ‘전시체제’의 경제이므로 발전은 한계에 이를 수밖에 없다는 것. 그는 통일이 안 되면 2만달러 국민소득 시대가 올 수 없다고 본다.“전시체제의 경제에서는 사기를 치거나 권력이나 돈을 갖거나 혹은 투기를 해야 돈을 벌 수 있더군요.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돈을 만지기 어렵다고 생각해요. 통일이 되지 않으면 우리나라에서는 살 수 없겠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죠. 당초 인생 계획을 60세까지는 사회생활을 하고, 65세까지는 조상의 선산을 관리하고, 65세 넘었을 때 통일이 안돼 있으면 외국에 나가 살아야겠다고 잡았어요.”그러나 그의 이런 인생 설계도는 지난 97년 수정됐다. DJP가 연대하면 통일부터 할 줄 알았다는 그의 꿈은 산산조각이 났다. “손발이 썩는 병은 라벤더 향수로 고칠 수 없습니다. 당장 향내는 좋아지겠지만 병을 고칠 수는 없어 미봉책에 끝나죠. 현 경제상태는 이와 같습니다. 통일만이 경제발전 한계라는 병을 근본적으로 고칠 수 있어요. 정치를 잘하는 사람과 함께 이 나라를 통일시켜 이 땅에서 살기로 했습니다.”그는 국회의원은 ‘국가경제 발전에 저해 요인을 걷어주는 한직’이라고 여긴다. 현재의 국회는 결국 분단체제 과도정부의 국회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답답한 현실을 고쳐 나가기 위해 총선에 나섰습니다. 국민에게 새로운 기회와 가능성을 주기 위해서는 통일이 돼야 합니다. 한국전쟁 50주년인 내년까지 통일이 돼야 합니다. 통일만이 실업문제와 저소득층 빈곤문제, 노인복지 등 포괄적 해결을 위한 경제발전의 최선책입니다.”약력: 1937년 충남 예산 출생, 동아대 경제과 2년 중퇴, 영등포구청 사회과 근무, KP전자(주) 감사, 합작회사 욱양과학 전무, 오다물산상사 대표이사(현), 자민련 정책위원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 부위원장,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 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