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12일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 가결 이후 국민들의 시선이 이헌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에게 쏠리고 있다. 경제부처를 총괄하는 수장인데다 탄핵 가결 이후 경제에 대한 국민들의 우려가 높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이부총리의 행보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것. 특히 이부총리의 움직임을 통해 대통령 탄핵과 같은 국정 혼란기에 경제분야의 위기관리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여부를 체크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이부총리 역시 이런 주변의 기대를 의식한 듯 행보에 가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 12일 기자간담회에서는 “누가 중심에 서 있는지를 시장에 명확히 알려줄 필요가 있다. 내가 그 역할을 맡는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사실상 경제대통령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실제로 이부총리의 행보는 기민하고 적절했다는 평이다. 먼저 탄핵안 가결 직후인 12일 오전 11시55분 지체 없이 재경부 간부회의를 소집, 분야별로 상황을 철저하게 점검하라고 지시했다. 이어 곧바로 중앙청사로 달려가 고건 총리를 만나 향후 대처방안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 오후에는 2시30분에 과천 정부청사에서 경제부총리 성명을 발표하고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위기상황이지만 경제안정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요지였다. 3시30분에는 세종로 정부종합청사로 달려와 임시국무회의에 참석했다.회의참석과는 별도로 권태신 재경부 국제업무정책관(대외차관보)을 통해 국가신용등급을 챙기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권차관보는 무디스 등 세계 3대 신용평가회사를 집중적으로 접촉했고, 이들 회사로부터 오후 5시쯤 “신용등급에 변화가 없다”는 확답을 들었다. 이어 잠시 시간을 내 해외투자가 등 1,000여명에게 e메일을 보내 국내 정치상황을 설명하고 협조를 요청했다.이부총리는 저녁에도 정신없이 뛰어다녔다. 오후 6시 은행연합회관에서 금융협회장 및 금융기관장 간담회를 가졌고, 30분 후에는 경제 5단체장 간담회를 잇달아 주재했다. 탄핵 가결 이튿날인 13일 첫 일정은 오전 8시 재경부에서 경제장관회의를 주재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경제부처 주요 정책을 일일이 점검했다.이어 오전 9시50분에는 은행회관에서 이남순 한국노총 위원장을 만났고, 노동계도 정국 안정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대답을 이끌어 냈다. 이어 오후에는 고건 총리 주재의 경제ㆍ외교ㆍ안보장관회의에 참석했다. 또 저녁에는 중구 황학동 중앙시장에 들러 시장상인과 서민들의 의견을 들었다.일요일인 14일에는 골프 선약을 취소하고 정상적으로 출근해 재경부 간부들과 탄핵안 가결 이후의 상황을 집중적으로 점검했다. 이어 기자간담회를 통해 현안과 향후 경제정책 방향에 대해 비교적 상세하게 설명했다. 또 15일에는 여당인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과 만나 서민과 기업 지원을 위한 대책을 내놓았다. 16일에는 고건 총리 주재 국무회의에 참석했고, 곧바로 소비자 정책심의위원회 회의를 주재했다. 또 17일에는 최병렬 한나라당 총재, 조순형 민주당 총재,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 등 3당 대표를 만나 정치권의 협조를 당부했다.탄핵안 가결 이후 이부총리의 일주일간의 행보를 보면 경제분야 위기관리 시스템의 전모를 엿볼 수 있다. 재경부 간부회의를 시작으로 경제부총리 성명, 해외투자가에게 공문발송, 금융기관장 간담회, 경제 5단체장 간담회 등을 통해 위기정국 돌파의 경제해법을 제시했다. 이어 한국노총 등 노동계 대표와의 만남을 통해 각별히 신경을 써 달라고 주문했고, 마지막으로 각 당의 대표를 만나 정치권의 적극적인 협조를 요청했다.이부총리는 대외적으로 활발히 움직이는 한편 민생챙기기에도 적극 나섰다. 총선을 앞두고 선심성 정책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지만, 이에 개의치 않고 꼭 필요한 것들은 직접 처리하겠다는 입장이다. 특히 신용불량자와 고용, 소비 등 현안으로 남아 있는 민생문제는 시기에 관계없이 정치권의 눈치를 보지 않고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아울러 재정집행을 통해서도 경기가 살아나지 않는다면 추경편성 등을 고려하겠다는 점도 강조하고 있다.이부총리의 행보가 탄력을 받으면서 정책조정의 중심축까지 재경부로 넘어오는 분위기다. 정책조정의 경우 예전에는 청와대가 주도했으나 요즘은 분위기가 크게 바뀌어 재경부의 역할이 커졌다. 이부총리도 탄핵안 가결 이전에는 경제정책 결정에 주력했으나 최근에는 조정 등 전체를 아우르는 역할을 자임하는 모습이다.이부총리는 탄핵안 가결 이후 경제장관회의를 주재하면서 이례적으로 완전히 공개했다. 보통은 비공개로 열렸으나 민감한 정국 상황을 감안해 취재진 등에게 전 과정을 보여줬다. 재경부의 한 관계자는 “이부총리가 한국경제에 문제가 없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자 했던 것 같다”며 “공개회의를 보면서 부총리의 자신감을 읽을 수 있어 좋았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대통령 권한대행인 고건 총리 역시 이부총리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 지난 12일 고총리는 “이부총리를 중심으로 경제팀이 힘을 모아 위기를 극복하는 데 앞장서 달라”고 주문하기도 했다.탄핵안 가결 이후 이부총리는 누가 봐도 안정된 위기관리 능력을 보여줬다. 24시간 이내에 경제분야와 관련된 국내외 인사들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협조를 구했으며 이후 노동계와 정치권의 도움도 요청했다. 아울러 시장불안 해소에도 힘을 쏟아 경제가 안정을 찾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다만 앞으로 총선을 앞두고 있어 정치권과의 충돌 없이 신용불량 문제나 소비, 실업문제를 효율적으로 풀어 나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