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영어 배우러 남아공에 간다.’아프리카 대륙의 끝자락에 위치한 나라 남아프리카공화국. 홍콩이나 싱가포르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고도 15시간을 날아가야 하는 머나먼 그곳에 한국인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관심 연령층도 광범위하다. 조기유학을 계획하는 초중생과 학부모, 어학연수를 원하는 대학생과 직장인들, 새로운 후반생을 준비하는 중장년층에 이르기까지 전 연령층에 걸쳐 남아공이 어필하는 모습이다. ‘뉴 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지난해 12월 케이프타운대학에서 MBA과정을 마치고 돌아온 김범수씨는 “현지 동포들이 6~7년 전 호주, 뉴질랜드에서 일어났던 한국인 유학 붐을 보는 듯하다고 자주 말한다”고 전했다.실제로 남아공으로 어학연수나 조기유학을 떠나고자 하는 수요는 최근 뚜렷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주한남아공대사관의 집계에 따르면 학업비자 신청 건수는 지난 3년간 3배의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여행 목적으로 남아공을 방문, 현지에서 비자를 신청하는 이도 상당수인 것으로 알려졌다.남아공 전문 유학알선업계에서는 남아공에 어학연수나 유학 등 교육 목적으로 머무르는 한국인 규모를 700~800명선으로 추산하고 있다. 불과 1년 전에 비해 200명 가량 늘어난 숫자다. 지난 2000년부터 1년 6개월간 남아공에서 어학연수를 하고 돌아와 유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장동훈 필아프리카 사장은 “다녀온 사람들의 호평, 다른 선진국에 뒤지지 않는 교육시스템, 저렴한 비용, 세계 최고라 할 만한 자연경관 등이 어우러져 남아공행을 계획하는 수요가 크게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요즘 한 달에 50~80건의 상담을 받고 있어, 사업을 시작한 2년 전에 비해 두 배 이상 높은 실적을 올리고 있다.유학비용 미국의 ‘절반’ 수준남아공이 유학지로 주목받는 이유는 크게 다섯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다른 선진국에 비해 비용이 적게 든다는 점이다. 한국보다 물가가 다소 저렴한데다 유학비용도 다른 인기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다. 수업료와 생활비, 용돈을 모두 감안한 비용이 캐나다나 호주에서는 한 달 120만~170만원선이지만 남아공에서는 90만~120만원선.또 MBA과정의 경우 미국 대학들의 1년 학비가 3만달러선에 2년 과정인 데 비해 남아공은 1만8,000달러선에 1년 과정이다. 대신 방학 없이 꽉 짜여진 일정이어서 유학생 입장에서는 시간과 비용을 동시에 절약할 수 있다. 또 집값 등 물가가 낮은 편이어서 저렴한 비용으로 윤택한 주거생활과 골프 등 레저ㆍ취미활동이 가능하다.둘째, 수준 높은 유럽식 교육시스템의 혜택을 기대할 수 있다. 네덜란드와 영국의 식민지배를 받았던 남아공은 대도시 거리가 유럽과 유사하다. ‘아프리카’에 대한 선입관이 남아공에서는 통하지 않는다는 게 다녀온 이들의 공통된 의견. 때문에 교육체제가 영국식과 유사하고 흔히 ‘품위 있는 영어’로 평가받는 영국식 영어를 습득할 수 있다. 동양인에게는 영국식 영어가 적응하기 쉽다는 점도 매력이다. 또 지난 94년 아파르트헤이트 붕괴 이후 교육시스템이 변화 발전하는 중이어서 독일 등 유럽에서의 유학 수요도 점차 증가하는 추세다.셋째, 한국인의 진출이 적은 나라라는 점. 근래 어학연수로 각광받는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이 한국인 유학생들로 북새통을 이루는 반면, 남아공은 한국인은 물론 동양인 유학생이 드물 정도로 ‘미지의 땅’이다. 따라서 단기간 현지 영어를 습득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 있고 ‘공부’를 원하는 수요자에게는 가장 매력적인 요소라는 것이다.넷째,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할 만큼 탁월한 자연환경이다. 특히 케이프타운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휴양지로 지중해성 기후와 천혜의 자연을 자랑한다. ‘세계를 담은 나라(A World in One Country)’라 불릴 만큼 다종다양한 문화를 체험할 수 있고 골프, 승마 등 고급 스포츠를 비용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마지막으로 현지인의 정서가 한국인에게 우호적이라는 점이다. 98년부터 남아공 전문 유학원을 운영해 온 라우월드의 전윤복 팀장은 “세계적인 관광지 국민답게 항상 친절하고 세련된 매너를 가진 이들이 많아 적응기간을 단축시킬 수 있다”고 밝혔다.이 같은 조건들이 한국인 유학생들을 손짓, 남아공을 새로운 ‘교육 파라다이스’로 견인하고 있다.그러나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 94년 흑백갈등 종식 이후 정치가 안정됐다고는 하지만 범죄 발생률이 세계 수위권에 오를 만큼 크고 작은 사고가 많은 것. 하지만 범죄는 주로 흑인 거주지에서 발생하고 있어 한국인이 주로 거주하는 백인 거주지에서는 크게 위험하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 장동훈 사장은 “사고를 당한다 하더라도 소매치기 정도여서 한국에서와 같이 주의를 기울이면 별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글로벌 스탠더드 교육제도 ‘강점’남아공의 교육제도는 크게 GET, FET, HE 등 세 가지 레벨로 구분돼 있다. 각각 초중등, 고등, 대학 교육과정으로 나눠진다. 라라 스와르트 주한남아공대사관 일등서기관은 “일찍부터 국제인증제도를 도입해 높은 교육수준을 자랑하고 특히 생명공학과 우주항공, 의학 분야는 세계적 수준”이라고 소개했다. 글로벌 스탠더드로 인정받은 것은 물론 남아공 현지에서 취득한 학위는 세계적으로도 인정받는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남아공은 케이프타운대학을 비롯해 세계 대학 순위 50위 안팎의 대학을 3개나 보유하고 있다. 서울대가 100위 밖 평가를 받았던 점을 감안하면 시사하는 바가 크다.남아공 유학의 장점 가운데 유럽 유학으로 연결이 쉽다는 점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미국, 영국의 명문대학과 익스체인지 프로그램이 잘 갖춰져 있어 일정기간 수학을 하면 원하는 나라 대학에서 나머지 과정을 이수할 수 있다. 미국, 영국으로 곧장 유학을 떠나지 못할 경우 ‘경유지’로 활용할 만하다.어학연수 분야도 인프라가 잘 갖춰진 편이다. 이미 독일, 이탈리아 등 유럽 등지에서 오래전부터 영어 연수지로 각광받아 왔다. 2002년 남아공에 등록된 어학연수생 수는 8만5,000명에 달해 세계 8위를 차지할 정도다. 이들을 흡수하는 교육기관은 약 40개의 등록 어학원과 대학 부설 어학원. 여타 어학연수 인기 국가에 비해 학비는 30~50%가 저렴하다. 부부가 6개월 동안 어학연수를 다녀온다고 가정하면, 1,000만~1,400만원선이면 충분하다.유럽에서 볼 수 있는 사립학교는 조기유학 대상지로 고려할 만하다. 김범수씨는 “6~7개 정도의 고급 사립학교들은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하며 학업 외에 골프, 조정, 승마 등을 함께 배울 수 있어 매력적”이라고 전했다. 이들 학교의 학비는 1년에 1,500만원 정도.온라인 강좌로 남아공 대학 학위를 취득하는 방법도 있다. 방송통신대학의 일종인 ‘UNISA(University of SA)’가 그것. 온라인상에서 입학시험을 치를 수 있고 전세계 어디서나 강좌와 시험을 치러 4년이 지나면 학사학위를 받을 수 있다. UNISA에서 커뮤니케이션 사이언스를 전공하고 있는 한국인 김소희씨는 “외국인 학생 규모가 상당하며, 교육이 온라인으로 진행돼 편리성이 높다”고 전했다. 2002년 UNISA의 학생수는 전세계 15만명에 달한다.특히 남아공의 교육 분야 지원이 최근 10년 사이 가속도를 붙이고 있어 더욱 고무적이다. 라라 스와르트 일등서기관은 “흑백갈등이 해소된 지난 10년 동안 교육분야의 개혁이 이뤄졌다”고 밝히고 “학생 대 교원의 비율이 96년 43대1에서 2000년 35대1로 줄었고 학생 1인당 교육비 지출은 94년 2,222랜드에서 2000년에는 3,523랜드로 증가했다”고 말했다.INTERVIEW | 김범수 남아공유학원 대표동양인 최초 남아공 MBA 출신“처음에는 저도 미국 명문대 비즈니스 스쿨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하지만 우연찮게 남아공을 방문한 후 생각이 확 바뀌었어요. 남들이 가지 않는, 하지만 교육 인프라나 환경 등이 선진국 못지않은 남아공에 미래를 걸어 볼 만하다고 판단했습니다.”지난해 12월 케이프타운대학(UCT) 비즈니스스쿨 MBA과정을 졸업한 김범수씨(35)에게는 ‘한국인 1호’ ‘동양인 1호’라는 타이틀이 붙어 다닌다. 유학생 비율이 35%에 이르는 UCT 비즈니스스쿨이건만, 그동안 한국인은 물론 동양인 학생이 단 1명도 없었기 때문. 2002년 11월 입학한 후 김씨는 학교와 남아공 동포사회에서 ‘화제의 인물’이 됐다.연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국내 유수 기업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김씨는 지난 2002년 미국 유학을 위해 회사를 그만둔 뒤 남아공에서 선교사로 활동하는 지인 방문차 케이프타운을 찾았다. 그곳에서 신선한 문화 충격을 받은 그는 고심 끝에 행선지를 미국 명문대에서 케이프타운대학으로 바꿨다. 더불어 유학을 마친 후 자신의 몸값을 높여 재취업하려던 계획을 ‘남아공 전문가’로 바꿔 잡았다. 전공도 파이낸스에서 마케팅으로 전환, 확실한 사업가의 길로 들어서기로 했다.“케이프타운대학은 세계적으로도 명망 있는 명문대입니다. 물론 한국인에게는 미국의 명문대가 익숙하지만, 이왕 남아공 관련 사업을 하기로 마음을 바꾼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지요. 1년여 동안 오전 8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수업을 받고 주말에는 골프를 쳤습니다. 골프, 승마 등이 대중화돼 있어 전혀 부담스럽지 않거든요. 공부와 레저를 동시에 만끽할 수 있어 여러모로 유익했어요.”김씨는 귀국과 동시에 ‘남아공유학원’을 설립하고 본격적인 비즈니스 세계에 뛰어들었다. 상반기 중으로 저렴한 가격 수준의 남아공 여행 상품을 내놓을 계획도 세우고 있는 그는 “남아공 붐의 주역이 되겠다”며 눈을 반짝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