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씰온라인’은 게이머들 사이에서 ‘개그 게임’으로 불린다. 대부분 온라인게임들이 잔혹하거나 선정적 요소가 강한 반면, 이 게임은 웃음을 불러일으킨다. 이 게임에 등장하는 몬스터들의 최후는 장렬하지도 비장하지도 않다. 오히려 ‘귀엽고 앙증맞게’ 죽는다. “왜 때리느냐”며 울거나 땅바닥을 대굴대굴 구르며 서서히 사라진다. 공격이 시원치 않으면 이불을 깔고 잠을 자기도 한다.“많은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받으며 게임을 하더라고요. 게임은 놀이인데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게임, 편안하고 살벌하지 않은 게임을 만들어야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지요.”이 게임을 기획하고 개발을 주도한 김병철 팀장은 씰온라인의 기획 의도를 간단하게 말했지만 ‘누구나 좋아하고 편안한 게임’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김팀장은 독특한 그래픽 기법에서 방법을 찾았다. 아동용 만화 주인공을 연상시키는 캐릭터를 전면에 배치한 ‘카툰랜더링’ 기법을 도입해 게임이 아니라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한 느낌을 들게 했다. 웃음의 요소도 집어넣고 다양한 인터페이스를 적용해 누구라도 편리하게 게임을 할 수 있게 했다.“<개그콘서트>를 보면서 ‘웃으면서 할 수 있는 게임’을 만들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코미디가 인기 있는 시대인 만큼 웃기는 게임도 통하겠다고 판단했지요.”김팀장의 예상은 적중했다. 지난해 7월 오픈베타서비스를 실시한 후 동시접속자수가 6만여 명을 헤아리고 회원수는 150만명을 돌파했다. 지난 1월 유료화를 단행한 지 보름 만에 유료회원 3만7,000명을 확보, 10억원의 매출을 올려 상용화의 성공 가능성에 물음표를 던진 주위의 우려를 단번에 불식시켰다. 해외시장에서의 선전도 돋보인다. 일본에는 국내 온라인게임업계 최고치인 42%의 러닝개런티를, 대만에는 300만달러의 최소 보장 로열티를 받고 수출했다.“일본의 한 업계 관계자는 씰온라인의 캐릭터야말로 일본인이 가장 선호하는 디자인이라고 하면서 이런 게임이 한국에서 먼저 나올 줄 몰랐다고 놀라더군요. 또 의상 아이템 가운데 한복이 있는데 한류열풍 때문인지 대만이나 일본 유저들이 한복 아이템에 열광한다고 했습니다. 사실 일본이나 대만시장을 염두에 두고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만든 건 아니어서 겸연쩍었어요.”김팀장이 게임업계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대학 1학년 때였다. 전공인 화학공학과 ‘별로 관계없는’ 컴퓨터에 막연히 끌려 시작했다는 것. 이듬해에는 처음으로 게임을 만들어 PC통신에 올려 ‘나름대로 폭발적인 반응’을 얻기도 했다. 본격적인 게임개발은 군제대 후인 1997년부터였다. 주특기는 당시의 인기 장르인 패키지게임이었다. 씰온라인은 그가 개발한 최초의 온라인게임이다. 첫 시도이다 보니 시행착오도 많았다. 개발을 맡고 1개월은 뭘 해야 할지 몰라 하늘만 바라봤다.“패키지게임과 온라인게임은 많이 달라요. 패키지게임은 개발자의 의도가 많이 개입되지만 온라인게임은 유저와 함께 만드는 측면이 강해 유저들의 요구에 신속하게 대응해야 합니다. 시장의 흐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기획자의 역할이 패키지게임에 비해 더 중요하지요.”김팀장은 아직도 온라인게임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이제 온라인게임 유저들의 특성을 많이 받아들이게 됐지만 처음에는 ‘너무 이상하다’는 느낌이 강했다. 게임 성적에 따라 무기든 옷이든 무언가를 즉각적으로 줘야 한다는 고민은 패키지게임에서는 없었다. 채팅 등 부가서비스가 게임 자체보다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도 생소했다.“좋은 기획자는 콘텐츠와 시장의 특성을 정확하게 이해해야 합니다. 콘텐츠의 어떤 요소가 아무리 대단해도 유저들의 요구와 맞아떨어지는 기획과 결합하지 않고는 파괴력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그런 기획을 하기 위해서는 실전 경험 외에 다른 길이 없어요. 저도 아직 배우는 입장이고요.”김팀장은 아직 온라인게임 기획의 ‘첫 경험’을 끝내지 못했다고 말한다. 기획을 시작해서 게임의 밑그림을 그리고 실제로 제작해 출시를 한 후에도 기획자의 몫이 여전히 남는다. 끊임없이 변화를 줘야 하는 온라인게임의 특성상 서비스가 안정화 단계에 이르러서야 한 번의 경험이 끝난다는 것. 씰온라인은 상반기에 두 번째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대규모 업데이트를 할 예정이다. 현실과 가까운 스토리와 다양한 인과관계로 구성해 게임성을 배가하고 강한 커뮤니티 기능을 지원해 온라인게임의 진수를 선보일 작정이다.“사실 온라인게임은 획기적인 기획을 하기에 장애가 많아요. 유저들의 구미에 따라 게임의 큰 틀이 바뀌니까요. 반면 패키지게임은 기획자와 개발자의 의도대로 진행돼 개발의 묘미가 더욱 강렬합니다. 기회가 닿으면 패키지게임 개발도 계속하고 싶어요.”최종일 아이코닉스엔터테인먼트 사장‘뽀로로’ 대박신화 주역하늘을 날고 싶은 펭귄이 있다. 이름은 ‘뽀로로’다. 처음부터 날고 싶었던 건 아니다. 여우, 곰, 비버, 공룡 같은 날지 못하는 친구들과 어울리다 보니 자신이 새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책을 보고 자신이 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런데 왜 날지 못할까’라는 의문과 고민이 이어지자 친구들은 “넌 날지는 못해도 수영을 잘하잖아” 하고 펭귄의 장점을 일러준다. 그제야 뽀로로의 표정이 환해진다. 현실적인 정체성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부터 EBS에서 방영되고 있는 3D 애니메이션 ‘뽀롱뽀롱뽀로로’(이하 뽀로로)의 한 토막이다.‘뽀로로’는 미취학 아동을 위한 교육용 애니메이션이지만 어른이 보기에도 재미있다. 잘 짜여진 시나리오와 귀여운 캐릭터, 교육적 효과가 적절히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평을 받는다. 5분짜리 짧은 이야기지만 시청률이 EBS의 평균 시청률보다 3배 정도 높은 3%에 이른다.이 애니메이션을 기획한 최종일 아이코닉스엔터테인먼트 사장은 “유아용 콘텐츠라고 교육성에만 치중하면 실패하기 마련”이라며 “재미 속에 교육적 내용을 녹이는 기획의도가 성공 포인트”라고 말한다.최사장이 ‘뽀로로’를 기획한 것은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차기작을 고민하며 해외 전시회를 돌아보다 의외로 유아용 시장이 비어 있음을 알게 된 것. 일본 애니메이션에 밀려 초등학생용 시장에서 고전하던 최사장은 “유아용 애니메이션으로 승부하자”는 결심을 한다. 이때부터 2년 6개월간의 악전고투 끝에 ‘뽀로로’가 태어났다.그동안 국내 애니메이션은 대부분 감독 위주로 제작돼 왔다. 하지만 최사장은 ‘감독시스템’ 대신 ‘PD시스템’을 도입했다. 감독시스템은 완성도를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시장성에서 열세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 반면 치밀한 시장조사에 바탕한 ‘PD시스템’은 흥행 가능성이 높다고 최사장은 말한다.최사장은 소비자들의 성향 분석에서 기획의 첫 단추를 꿰었다. 관련 서적을 뒤지는 것은 물론 유치원에 가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오랫동안 지켜보았다. 공주를 꿈꾸는 아이, 시기심이 많은 아이, 지적 호기심이 높은 아이, 자랑하기 좋아하는 아이 등 아이들의 보편적 특징이 도출됐고, 그에 맞는 동물을 찾았다. 펭귄 ‘뽀로로’, 백곰 ‘포비’, 여우 ‘에디’, 비버 ‘루피’, 아기공룡 ‘크롱’은 그렇게 태어났다.“아이들은 자신과 동일시할 수 있는 캐릭터가 하나쯤은 있어야 몰두합니다. 여기에 현실적인 이야기가 결합하면 효과가 높지요. ‘뽀로로’는 4명의 시나리오작가와 5명의 스토리보드 작가가 힘을 모아 이야기를 꾸몄습니다.”‘뽀로로’가 주목받는 이유는 단지 TV시청률이 높다는 데 있지 않다. 출판, 교육용 콘텐츠, 완구, 비디오 등 다양한 파생상품의 가능성에 높은 점수를 받고 있는 것. 지난 1월 출시된 동화책 <하늘을 날고 싶어요>는 교보문고 유아용 도서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고, 4월에 비디오가, 7월에는 유아용 영어회화 교재가 출시될 예정이다. 장난감 개발도 완료됐다. 디지털콘텐츠산업 최대 화두인 ‘원소스 멀티유스’의 가능성이 실현되고 있는 것.“‘뽀로로’는 처음부터 캐릭터산업을 염두에 두고 기획됐습니다. 굳이 비중을 따지자면 애니메이션이 반, 캐릭터가 반이었지요. 캐릭터를 빼놓고 애니메이션 시장을 얘기하는 것은 이제 난센스입니다.”최사장은 캐릭터 디자인에만 6개월을 투자했다. 동물이 가진 속성 중 부정적 면은 없애고 긍정적 면을 부각시켰다. 또 디지털 애니메이션이 주는 차가운 느낌을 완화시켜 전세계 아이들 누구라도 호감을 가질 ‘인상 좋은’ 캐릭터가 개발됐다. 그래서일까, 방영된 지 한 달이 안돼 세계 곳곳에서 러브콜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프랑스의 지상파 TV가 ‘뽀로로’의 방영을 확정했고, 미국의 유명 애니메이션 전문지인 <애니메이션 매거진>은 ‘세계 어린이들을 사로잡을 귀여운 작품’으로 ‘뽀로로’를 호평했다. 지금까지 수출액이 50만달러에 이른다.“반년 이상을 5개 캐릭터 개발에 몰두하다 보니 개발자와 캐릭터가 마치 부모와 자식처럼 닮아가더군요. 캐릭터 이름으로 개발자 별칭을 지어줄 정도였지요. 지금도 ‘뽀로로’를 보면 당시 개발자 얼굴들이 선명하게 떠오릅니다.”최사장이 애니메이션과 인연을 맺은 것은 광고대행사 금강기획의 광고본부에서 일하다 애니메이션팀에 합류한 1995년의 일이었다. 시장의 흐름을 중시하는 최사장의 기획력은 광고맨이라는 그의 전력에서 비롯된 면이 많다.“언젠가는 극장용 애니메이션에 도전할 생각입니다. 아직은 경험이나 자본력이 부족해 구상만 하고 있지만 꾸준히 전문인력을 발견하고 작품을 만들다 보면 기회가 오겠지요. 최근 국산 블록버스터 애니메이션들이 흥행에 참패했지만 조만간 ‘대박’ 작품이 나올 것 같습니다. 그러면 투자유치도 좀 수월해지겠지요.”이건범 아리수미디어 대표“폭넓은 독서가 좋은 기획 밑거름”“재미있고 유익한 콘텐츠를 개발하는 데 힘을 쏟고 있습니다.”이건범 아리수미디어 대표(39)는 유아용 한글교육 콘텐츠인 아리수한글(www.arisu.co.kr)로 유명한 에듀엔터테인먼트 분야 기획전문가다. 최근 ‘한글탐정’으로 이름을 바꾼 아리수한글은 지난 2002년 서비스 개시 이후 회원수가 1만2,000여명에 이르는 등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대표는 이 같은 성공의 여세를 몰아 3월10일 수학탐정을 새로 오픈하는 등 새로운 콘텐츠 서비스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서울대 사회학과 83학번의 운동권 출신인 이대표가 콘텐츠 개발에 뛰어든 것은 지난 94년이다. ‘멀티미디어 교육분야의 디즈니’를 목표로 어린이 놀이학습용 CD롬 타이틀 제작과 배급에 뛰어들었다. 이어 2000년 들어 초고속인터넷 가입자의 폭발적인 증가를 목격하면서 인터넷을 활용한 아동산업 전반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해 규모를 키웠다.한글교육콘텐츠 개발에 적극 뛰어든 것도 이 무렵이다. 평소 ‘한글은 매우 과학적인 원리를 따르고 있어 컴퓨터를 이용해서 배우기에 적합하다’는 소신을 갖고 있던 이대표는 기존의 ‘통문자’를 외우는 방식 대신 레고식 한글교육(글자를 자유자재로 조립하면서 배우는 것)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마침 서울대 심리학과 지각실험실과 연결돼 계약을 맺고 개발에 본격 착수했다.“서울대 연구원 가운데 우리와 같은 생각을 가진 분이 있었어요. 그래서 계약을 맺고 집중 개발에 들어가 약 2년여 만에 레고식 한글교육을 제대로 구현한 아리수한글을 내놓았죠.”이대표는 평소 공사석을 막론하고 에듀엔터테인먼트를 강조한다. 공부를 하되 재미있게 해야 한다는 소신이다. 아리수한글 역시 이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 어린이들이 게임을 하고 캐릭터들을 키우며 놀이하듯이 한글을 배우도록 유도한다.이대표는 “한글의 경우 소리나 애니메이션 등 멀티미디어를 활용할 때 최대의 교육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유아들의 경우 소리를 들으면서 글을 배우면 효과는 배가된다”고 설명했다.이대표는 콘텐츠 기획과 관련해 하나의 소신을 갖고 있다. 작은 부분(디테일)은 나중에 얼마든지 수정할 수 있지만 기본 얼개는 절대 고칠 수 없다는 논리다. 처음에 접근을 잘못하면 좋은 기획물이 절대 나올 수 없고 나중에 아무리 노력해도 소용이 없다는 얘기다. 기획자는 모름지기 다양한 인문학적 소양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그래서일까. 이대표는 평소 독서를 즐긴다. 고전소설이나 철학사상, 사회학, 심리학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섭렵한다. 그는 “경험상 다양한 독서는 독창성 있는 콘텐츠를 만드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토론 역시 이대표가 중시하는 것 가운데 하나다. 아리수미디어의 사내에는 무려 8개의 크고 작은 회의실이 있다. 전체 공간의 30% 가까이나 된다. 토론을 많이 하다 보면 거칠었던 기획이 정교하게 다듬어지고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모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는 것이 이대표의 생각이다.지금은 업계를 대표하는 ‘지존’이 됐지만 이대표도 그동안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다. 한글개발에만 30여억원을 지출하는 등 적잖이 고생했고, 한때 직원을 너무 많이 뽑아 이를 정리하느라 애를 먹기도 했다. 한글개발 후에는 실제 종이와 연필을 만지고 싶어 하는 학부모들의 요구가 잇따르자 오프라인용 교재와 교구를 만들기도 했다.하지만 그는 이 과정에서 서두르지 않았다. 디지털콘텐츠사업을 하면서 조급하면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다. 이대표는 “콘텐츠사업은 특성상 조바심을 느끼기 시작하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며 “인간이기에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조바심을 느끼겠지만 결국 이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관건인 것 같다”고 조언했다.아울러 이대표는 처음 콘텐츠사업에 뛰어드는 사람들에게 “기술 쪽에 너무 많은 비중을 두지 말아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기술에 치우치다 보면 좋은 콘텐츠가 나오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 그는 “기술적인 부분은 나중에 얼마든지 해결할 방법이 생긴다는 점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대신 인력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것이 이대표의 생각이다. 특히 IT분야의 경우 워낙 빠르게 돌아가는 만큼 이를 감안해 직원들을 단계적으로 교육을 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아리수미디어 역시 이를 반영하듯 전체 직원 65명 가운데 연구인력만 25명에 이르는 등 인적자원에 대한 투자를 아까지 않고 있다.아리수미디어의 올해 매출목표는 130억원이다. 지난해보다 30% 가량 늘어난 수치로 기존의 한글 외에 새로 오픈한 수학탐정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김상헌 기자 ksh1231@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