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회장, “최근 문화접대 신조어 유행”… 금 감독, “예술단체들도 경영마인드 가져야”

“기업마저 지원 소홀하면 문화발전 기대 못해”박회장: 문화 지원에 대한 기업들의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솔직히 저희 세대 경영자들만 해도 문화 지원은 ‘돈이 남아야 할 수 있는 활동’ 정도로만 인식하는 수준이었는데, 지금은 보다 분명한 목표와 전략을 가지고 문화 지원에 나서는 기업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최고경영진이 점차 창업세대에서 2세대로 넘어가면서 문화에 대한 시각도 매우 관대해지는 것 같습니다.금감독: 문화계 일선에서 활동하는 저도 그런 점을 느낍니다. 경제수준이 달라지면 문화에 대한 기업들의 시각도 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오케스트라는 최근 모 기업과 장기 후원계약을 갱신했는데, 공연계에서는 이례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 계약체결은 각각의 공연에 대한 개별적인 후원의 차원이 아니라 연간 단위로 공연계획을 세우고 그 공연에 대한 후원을 받는 것입니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일절 지원을 받지 않고 있는 저희로서는 이러한 후원이 매우 절실합니다. 후원하는 기업도 저희가 그 기업의 이름으로 여러 곳에서 공연을 함으로써 이미지 제고 차원에서 막대한 효과를 얻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실제로 효과가 있었기에 계약을 갱신했다고 생각합니다.박회장: 기업의 문화 지원 활동은 가시적이고 직접적인 수익성보다 이미지 제고 차원에서 금전적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엄청난 효과를 가져 온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메세나 활동은 순수한 의미에서 문화예술 지원활동을 통해 지역사회에 공헌한다는 차원에서 추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금감독: 그런 관점에서 볼 때 클래식 지원활동이 박회장님의 개인적인 관심에서 출발한 것이지만, 그 활동이 지속되면서 ‘금호는 예술가를 지원하는 기업’이라는 인식을 소비자에게 심어주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이 같은 문화적 후광 효과는 아무리 많은 돈을 들여 광고를 해도 단기간에 얻을 수 없는 소득이라고 생각합니다.박회장: 그렇게 봐주신다니 감사합니다.금감독: 문화지원 활동은 직원들에게는 문화를 통한 사회공헌을 하는 소속 기업에 대한 자긍심 고취와 회사 내 문화공간과 문화향유의 기회로 인해 직장을 즐거운 일터로 인식할 수 있게끔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오케스트라는 후원하는 기업의 직원과 고객을 위한 연주회를 자주 여는데, 이에 대한 반응이 좋아 직원들이 오히려 연주회를 늘려 달라는 요청을 회사측에 하고 있습니다.박회장: 문화 지원에 기업이 좀더 활발히 나섰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물론 능력 한도 내에서 지원을 해야겠죠. 문화계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한계가 있습니다. 게다가 우리나라처럼 개인 기부문화가 보편화되지 못한 상황에서 기업마저 지원을 소홀히 한다면 문화발전은 기대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최근 경기가 계속 좋지 않아 문화에 대한 기업들의 지원이 줄어들지나 않았는지 우려됩니다.금감독: 문화에 대한 인식에 근본적인 변화가 더 필요하다고 봅니다. 프로 스포츠단을 운영하기 위해 수십억원, 많게는 수백억원까지 지출하는 대기업은 흔한 반면, 그보다 훨씬 못미치는 비용으로도 운영이 가능한 문화예술조직을 갖춘 기업은 흔치 않습니다. 홍보효과나 이미지 제고 차원에서 문화가 스포츠에 절대 뒤지지 않습니다. 재미있는 사례가 있는데, 모 기업이 중국에 진출하면서 소속 프로축구팀과 현지 프로축구팀과의 친선경기를 개최했습니다. 그런데 한국 프로축구팀이 현지 축구팀을 큰 점수 차이로 이기면서 분위기는 오히려 험악해졌습니다. 반면 같은 시기 저희 오케스트라는 현지 연주가들과 함께 베토벤 교향곡을 협연해 호응을 받고 우호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문화의 힘입니다.박회장: 기업이 시혜적인 차원에서 문화 지원을 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은 문화계를 후원하고 문화계는 기업에 창조적인 영감을 주고 이미지를 쇄신시켜 주는 역할을 하는 윈윈(win-win) 관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단기적인 성과를 조건으로 예술단체를 지원하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금감독: 그렇습니다. 기업과 문화예술단체가 ‘갑’과 ‘을’의 관계가 아니라 동등한 입장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문화예술단체는 기업이 돈만 내면 뭐든 열심히 하겠다는 식으로 기업에 지원을 요청하기보다 문화예술 활동이 기업에 이익이 된다는 점을 보여줌으로써 기업들이 스스로 찾아오게끔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문화향유 어릴 적부터 체질화돼야”박회장: 성인들도 중요하지만 메세나운동은 특히 자라나는 아이들이 고급문화를 폭넓게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전개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은 곧 우리나라의 미래인데, 우리의 아이들이 외래 저급 문화에만 빠져 있는 상황이 안타깝습니다. 순수예술에 대한 지원과 문화교육이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밝게 만들 수 있습니다.금감독: 이전에 공연차 지방에 갔었는데, 그 공연을 기획했다는 한 청년이 저에게 꾸벅 인사하며 하는 말이 ‘10여년 전 선생님이 모 방송에서 진행한 클래식 소개 프로그램을 보고 공연기획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 하더군요. 지금도 청중, 특히 어린 청중에게는 클래식의 이해를 돕기 위해 연주 중간 중간에 설명을 많이 곁들이는 편입니다. 문화의 향유는 어렸을 적부터 체화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박회장: 사실 우리나라는 문화를 제대로 향유할 수 있는 문화가 아직 정착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직장인들은 일과 후 음주문화를 즐기느라 정신이 없고, 아이들은 공부에 치이거나 컴퓨터게임에 빠져 있기 일쑤입니다. 어쩌다 가족들이 모두 모이는 휴일에도 함께 문화생활을 즐기는 일은 드뭅니다. 일과 후 자연스럽게 주위 화랑이나 공연장에 들러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그런 여유가 아쉽습니다.금감독: 그렇습니다. 최근 지방자치단체나 기업체 등에서 공연시설을 많이 건립하고 있는데, 문제는 시설물의 혜택을 제대로 누릴 수 있는 저변이 넓지 않다는 거죠. 좋은 공연물을 기획해 무대에 올려도 관객이 찾아주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시설도 소용이 없습니다.박회장: 우리 회사에도 공연장과 화랑 등 문화시설을 갖춰 놓고 있는데, 직원들이 생각보다 시설을 활발하게 이용하지 않아 안타깝습니다. 아직 생활 속에서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여유가 없는 듯합니다. 특히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거쳐온 중장년층 이상 세대에게는 그럴 만한 여유가 더 없어 보입니다.금감독: 시간과 훈련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최근에는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예술의전당에서 자체 기획공연을 하는데 한 기업체에서 단체입장권을 구입해 많은 직원들이 부부동반으로 왔습니다. 그런데 준비한 레퍼토리가 그분들에게는 다소 어려운 곡이라는 생각이 들어 연주에 앞서 예정에 없던 곡에 대한 설명의 시간을 가졌더니 호응도가 확 달라졌습니다. 공연이 끝난 후 어떤 분은 ‘설명이 없었으면 몹시 지겨운 시간이 될 뻔했는데 설명을 듣고 연주회를 들으니 곡의 이해에 많은 도움이 됐다’고 하더군요. 입장권을 구입했던 기업체 담당자도 ‘공연의 내용을 잘 모르고 입장권을 구입했는데, 설명이 없었으면 공연이 어려웠다는 항의를 많이 받았을 것’이라며 저에게 오히려 고맙다는 말을 했습니다.박회장: 최근 ‘문화접대’라는 신조어가 유행하고 있습니다. 기업들의 접대비 한도가 줄면서 술이나 골프 대신 문화상품권으로 접대를 하는 방식은 기업과 문화계 모두에 매우 긍정적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금감독: 그렇습니다. ‘문화접대’는 비용이 적게 들 뿐만 아니라 효과도 매우 크다고 생각합니다. 저녁 술자리의 절반도 안되는 비용으로 가족이 함께 멋진 공연을 보고 맛있는 저녁을 먹을 수 있도록 한다면 접대받는 분은 가장으로서 체면이 서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접대의 효과도 당연히 좋을 것이고요.“지난해부터 1사1문화 운동 활발”박회장: 메세나협의회가 올해 창설 10주년을 맞았습니다. 지난 94년 200여개로 시작한 회원사가 IMF 때 갑자기 120여개로 급감했습니다. 경기침체로 문화 지원이 거의 끊긴 셈이었죠. 하지만 이제 조금씩 기업의 문화 지원이 회복되고 있습니다. 저희 협의회 회원사도 170여개로 다시 늘어났습니다. 최근에는 벤처기업, 중소기업들의 가입도 활발해 이제 메세나는 돈 많은 일부 대기업들만 하는 활동이 아니고 모든 기업이 동참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습니다.10주년을 맞아 다양한 메세나 캠페인을 전개 중입니다. 이달의 메세나 우수기업 선정, 찾아가는 메세나, 온라인 도네이션 등. 이런 활동의 성과로 인해 더 많은 기업들의 동참이 기대됩니다.금감독: 문화계에서 메세나협의회에 거는 기대가 큽니다. 메세나협의회가 가장 시급하게 해줬으면 하는 일은 기업들의 문화 지원 정보를 체계화하는 것입니다. 사실 문화예술단체들이 기업에 지원을 요청하고 싶어도 어느 기업이 문화예술 지원에 관심이 있고, 또 누구를 만나 어떤 절차를 통해 지원을 요청해야 되는지에 대해 전혀 몰라 막막해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박회장: 실제로 문화계로부터 엄청난 양의 지원요청서가 쏟아져 들어오고 있습니다. 기업들의 문화 지원에 목말랐던 문화예술계가 이곳을 통로로 지원을 받고 싶어 합니다. 기업들의 참여를 위해 2주마다 지원요청서를 모아 메일링 서비스 중입니다. 앞으로 이 분야를 더욱 강화해 나갈 계획입니다.금감독: 문화예술단체 지원활동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전반적인 문화 수준을 향상시키는 일도 협의회가 앞장섰으면 하는 바람입니다.박회장: 지난해부터 ‘1사 1문화운동’을 활발히 진행 중입니다. 1회사가 1문화를 지원하여 편중된 문화계 지원에 다양성을 확보하고, 더 나아가 아주 작은 분야에서부터 메세나 활동을 해 나가자는 취지입니다.쉬운 얘기로 각급 초등학교 출신 중에 문화예술 쪽으로 본받을 만한 졸업생들의 동상을 세워준다든지, 거리문화를 깨끗하게 하든지, 직원들을 위해 공연티켓을 선물하는 등의 다양한 활동들이 활발하게 이루어졌으면 합니다.금감독: 문화 지원에 있어 기업뿐만 아니라 정부도 역할을 제대로 해야 합니다. 문화계에서는 우리나라의 문화 정책에 대해 흔히 ‘예산만 있고, 정책은 없다’고 얘기합니다. 즉 정부는 몇몇 문화예술단체에 지원금을 무 썰 듯 나눠주기는 하지만 그 예산이 어떻게 쓰이는지, 더 효과적으로 쓰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하는 고민도 없이 너무 쉽게 예산이 분배된다는 얘기입니다.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는 문화예술단체들도 경영마인드로 무장돼 있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쓰러진다는 분위기가 팽배할 때 문화예술에 대한 예산이 좀더 효율적으로 쓰여질 것입니다.박회장: 대통령같이 영향력 있는 인사들이 문화예술 활동을 즐기는 모습을 좀더 많이 보여줬으면 합니다. 또 정부는 최근 들어 메세나시스템을 실질적으로 구축하고 세제, 금융지원 등 정책 지원 방안을 범정부적 차원에서 마련할 계획이지만 아직 미흡하다고 생각합니다.언제, 어디서든 누구나 원하는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사회가 될 수 있도록 문화계와 기업, 그리고 정부 3자간의 유기적인 협조관계가 필요한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