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특산물 택배사업 ‘쾌청’… 찾아가는 마케팅 본보기

지난 2월28일 가평읍내 거리는 한산했다. 지나는 사람도 차도 많지 않았다. 읍의 가장 번화한 지역인 군청 앞 역시 마찬가지였다. 군청 부근에 위치한 가평우체국 앞에는 점심시간을 갓 지난 시간대여서인지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만이 눈에 띌 뿐이었다. 하지만 우체국 안은 사정이 완전히 달랐다. 그야말로 북새통이었다.“원래 이 시간대에는 대체로 한가한 편인데 징검다리 휴일 중간에 끼인 날이어서 분주하네요.”일요일과 삼일절이 앞뒤에 있어 우체국금융을 이용하는 고객들이 평소에 비해 많다고 한 우체국 직원은 말했다. 10석 남짓한 대기석은 이미 만원이었고 대기표를 받아들고 선 채로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은 그 이상이었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에서 젊은 여성, 군인 등 연령층과 직업도 제각각이었다.우체국 안과 입구에는 각각 2대의 현금자동인출기(ATM)가 설치돼 있었지만 사용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실내에 설치된 2대는 아예 가동이 되지 않는 상태였다. 현금이 바닥났다는 것이다. 서울 강남우체국에 미리 현금을 주문했지만 주말이 끼어 있어서 도착이 지연됐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기자가 도착하고 30분 후 현금이 도착했고 ATM은 정상을 되찾았다.장후석 가평우체국장은 “ATM을 설치한 게 지난해 가을인데 주민들 대부분이 나이가 많아 ATM 이용에 거부감을 보였지만 직원들이 일일이 시범을 보이고 대신 입출금을 해보인 결과 조금씩 이용률이 높아지고 있다”며 “현금이 바닥나 서비스가 중단된 것은 중대한 실수지만 그만큼 이용객이 늘었다는 것으로 풀이할 수도 있지 않으냐”며 양해를 구했다.가평우체국의 금융서비스는 복잡하지 않다. 정기적금이나 자유저축 등 단순한 입출금이 대부분이었다. 입금을 하기 위해 우체국을 찾았다는 황영구씨(63)는 “예전에는 우편물을 발송할 때나 우체국을 찾았지만 최근에는 예금 때문에 오는 일이 많다”며 “직원들이 갈수록 친절해지는 것 같다”며 만족해했다.하지만 가평읍의 금융고객들은 주로 농협을 찾고 있다. 대부분 농업에 종사하기 때문에 농협을 주거래은행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보험은 달랐다. 저렴하지만 가격 대비 보장성이 크다는 장점을 활용해 고객유치를 활발하게 벌이고 있었다. 지난해 이 우체국은 전국 우체국 가운데 13위의 보험고객 유치율을 보였다. 흥미로운 사실은 매년 순위가 10단계 이상 뛰어오르고 있다는 점이다.보험영업을 담당하고 있는 홍원근 영업과장은 “보험영업 교육을 강도 높게 실시한 후 실적이 매년 크게 늘고 있다”며 “다양한 상담기법과 서비스를 개발해 영업에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홍과장이 예를 든 서비스는 기발했다. 우선 선물 공세. 우체국을 찾는 고객들에게 작지만 인상적인 선물을 준다. 가령 살짝 사진을 찍어 코팅을 해서 건넨다든가 빨대로 여치집을 만들어주는 식이다. 실제로 우체국 창구에는 여러 장의 코팅된 사진과 여치집이 걸려 있었다. 이외에도 인사 한마디 더하기 운동과 e메일 및 문자전송, 퇴근길에 만나는 주민에게 인사하기 등 제한된 여건에서 할 수 있는 방법들을 모아 고객을 유치하고 있다고 홍과장은 전했다.전방위적 ‘찾아가는 마케팅’ 전개가평우체국은 전국 우체국을 대상으로 한 종합평가에서 3년 연속 1등급 판정을 받은 우수 우체국이다. 무엇보다 인터넷쇼핑몰을 통한 지역특산물, 특히 ‘잣’의 판매실적이 크게 늘어났다는 점이 우수한 평가를 받은 견인차가 됐다. 주문받은 잣을 배달하는 ‘택배’ 사업이 호응을 얻고 있는 것이다. 접수 건수가 매년 70~80% 정도 증가해 최근에는 택배용 차량을 도입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지난 설 연휴기간에는 평상시의 15배에 달하는 주문이 밀려들어 전 집배원이 늦은 밤까지 특별근무를 해야 했다.장후석 가평우체국장은 “국제우편, 예금 등 여러 사업을 모색했지만 지역적인 한계가 뚜렷해 특산물 택배사업을 전략적으로 육성했다”며 “잣 외에 호박, 한과 등 품목을 넓혀나가고 있다”고 말했다.택배사업이 이처럼 성장하는 데는 민간기업 못지않은 적극적인 마케팅의 공이 컸다. 양질의 잣을 생산하는 농가를 수소문해 물량을 제공받고 직접 찾아가 물건을 받아오기도 한다. 한번 거래를 한 고객의 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해 e메일을 발송하는 등 고객유치를 위한 홍보 마케팅도 실시하고 있다. 장후석 가평우체국장은 “가만히 앉아 손님을 기다리는 시대는 지났다”며 “과거에 비해 권위적 문화는 사라지고 자율성이 강화됐지만 ‘이거 아니면 못 먹고 산다’는 절박함은 더하다”고 달라진 우체국의 분위기를 전했다.가평우체국의 특산품 판매 및 배달사업은 지역 농가의 수익에도 보탬이 되고 있다. 전국적인 판매망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물량을 소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는 것. 특히 한과를 생산하는 한 업체는 우체국과 제휴, 판매를 시작한 후 매출이 2배 이상 늘어 공장을 증설하기도 했다고 김용호 우편물류국장은 전했다.가평우체국의 ‘찾아가는 마케팅’은 비단 택배사업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국제우편, 우표판매 등 실적을 올릴 수 있는 거의 모든 부문에 대해 ‘찾아가는 마케팅’을 시도하고 있다. 국제업무를 하는 업체나 기관을 찾아 국제우편 홍보를 하고 절이나 교회를 찾아 ‘나만의 우표’를 알리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인근 남이섬을 찾은 해외관광객을 상대로 마케팅을 펼치기도 해 화제가 됐다.우편물 배달시스템도 개선되고 있다. 배달과정을 전산화한 것이 대표적이다. 배달과정을 추적해 자신이 보낸 우편물이 어디까지 가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배달업무의 효율성이 크게 향상됐다. 김용호 우편물류과장은 “전산화 이전에는 우편물을 조회하면 빨라야 5~6시간 후에나 결과가 나왔지만 이제는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시설도 쾌적해졌다. 5년 전 기존의 낡은 건물 대신 현재의 3층 건물을 새로 지어 실내공간이 넓고 밝아졌다. 은행이나 농협 등 기존 금융기관과 경쟁하기 위해선 쾌적한 실내는 기본이라는 설명이다. 최근에는 우체국 한쪽에 휴게실을 마련했다. 3대의 컴퓨터를 설치해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고 4인용 테이블과 도서를 비치해 기다리는 지루함을 피할 수 있게 하는 것은 물론 작은 문화공간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예산문제로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여성용 화장실에는 비데도 설치할 계획이다.가평우체국 관계자들은 “무엇보다 크게 변한 것은 직원들의 마음가짐”이라며 “공무원에서 민간기업 직원의 비즈니스 마인드로 바뀌는 분위기”라고 입을 모은다. 이에 따라 수익사업에 대한 참여율도 과거에 비해 크게 높아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고민이 없지 않다. 공공성과 기업성의 중간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일이 적잖다는 지적이다.우편배달사업이 가장 대표적인 예다. 가평군은 산간지역이어서 배달거리가 다른 지역에 비해 길다. 따라서 같은 수의 우편을 배달하기 위한 비용이 높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수입보다 비용이 많다고 민간기업처럼 배달을 거부할 수도 없다. 반대로 매년 경영평가를 시행해 인사에 적용하니 비용을 줄이지 않을 수도 없다. 공무원과 비즈니스맨의 격차를 얼마나, 어떻게 줄이느냐가 우체국 변화의 남은 과제라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