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후반 외국계 생보사들은 종신보험 돌풍을 몰고 왔다. 종신보험 판매급증 뒤에는 생보업계로 대거 이직한 대졸 남성 보험설계사 조직이 놓여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험판매=아줌마부대’라는 기존의 공식을 깨고 새로운 판매채널이 형성되기 시작한 시점이다.지난해 9월 출발한 방카슈랑스 역시 보험판매 다채널 시대로의 진입을 적극적으로 알리는 신호탄이 됐다. 3월1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방카슈랑스 채널을 통한 보험료 수입은 방카슈랑스가 시작된 이후 전체 보험료 수입(19조7,025억원)의 9.6%를 차지했다.방카슈랑스 시대가 열린 후 약 한 달이 지나 홈슈랑스는 그 모습을 화려하게 드러냈다. 지난해 10월9일 현대홈쇼핑이 영국계 PCA생명과 손잡고 암보험을 내놓은 것이다.PCA생명의 ‘무배당 PCA생명 암보험’은 방송 첫날부터 홈쇼핑업계의 피크타임인 오후 10시30분부터 11시10분 사이에 편성됐다. 홈쇼핑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오후 10시~11시30분은 30~40대 고객이 안방에서 상품을 가족과 상의하며 구입하는 시간이라고 한다.이로 인해 오후 11시 전후는 콜센터에 전화가 폭주하는 대표적인 시간대로 자리잡았다. 현대홈쇼핑과 PCA생명의 암보험 상품이 이들의 야심작이었다는 사실을 첫날 방송의 편성시간이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암보험에 이어 어린이보험까지 판매이들이 준비한 홈슈랑스 프로젝트는 40분 동안의 첫날 방송부터 대박을 터뜨렸다. 성별과 연령에 따라 월 1만~4만원대인 이 암보험 상품에 방송시간을 통해 3,426명이 신청했다. 동일한 시간에 일반 상품을 판매할 경우 주문 건수가 약 600건 정도임을 감안할 때 평소보다 5배 이상의 주문이 몰린 결과다.그당시 현대홈쇼핑 관계자는 “보험상품을 신청한 고객 가운데 PCA생명사의 최소 예상비율인 40%(1370명)만 실제 계약을 한다고 해도 보험모집인 자격증을 지닌 전문상담원 685명이 하루 동안 보험을 체결한 것과 동일한 수치”라며 “일반 보험설계사 342명이 한 달간 올린 실적과도 맞먹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그후 현대홈쇼핑은 PCA생명의 암보험 상품에 이어 어린이보험도 판매했다. 40회 이상 보험상품 방송을 하는 동안 신청전화는 3,000건에서 7,200건까지 왔다. 평균 계약 성사율은 35~40%. 방송 없이 고객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해 전화로만 판매하는 텔레마케팅(TM) 채널을 통한 보험상품의 계약 성사율이 2~3%라는 점과 비교하면 TV홈쇼핑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다.현대홈쇼핑과 PCA생명의 보험상품이 히트를 친 후 다른 TV홈쇼핑과 보험사도 홈슈랑스 시장에 뛰어들기 시작했다.LG홈쇼핑은 라이나생명보험과 제휴해 지난해 12월16일부터 ‘무배당 어린이 건강보험 메디칼 플랜2’를 판매하며 보험판매 전선에 진입했다.지난 1월27일부터는 생보사 빅3 중 하나인 교보생명과 제휴해 ‘다이렉트 정기보험’을 판매하고 있다. 기존 홈쇼핑에서 판매한 보험상품이 월 1만~4만원대의 저가 상품이었던 반면, 교보생명의 상품은 월 8만원대. 홈슈랑스 상품의 다양화를 예고한 셈이다.LG홈쇼핑 역시 보험상품의 방송이 나가는 동안 5,000~8,000건의 주문전화가 들어오며 20~30%의 계약 성사율을 보이였다. LG홈쇼핑은 방송과는 별개로 텔레마케팅 조직을 활용, 흥국생명과 럭키생명의 보험상품을 팔고 있다.LG홈쇼핑 관계자는 “수십만원만 주면 100만명의 데이터베이스를 확보할 수 있는 상황에서 TV홈쇼핑의 고객 데이터베이스는 양질이라는 강점을 지닌다”며 “보험사들이 TV홈쇼핑을 매력적인 판매채널로 삼게 된 이유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기존 홈쇼핑의 타깃 고객인 20대 후반에서 30대 초중반의 연령층과 보험상품의 타깃층이 일치한다”며 “TV홈쇼핑의 텔레마케터들은 100여개 이상의 상품을 설명해 온 고도화된 인력이며 고객의 강도 높은 클레임에 대응하는 기술도 발달해 있어 보험상품 판매에도 적합하다”고 덧붙였다.CJ홈쇼핑 역시 지난해 12월3일과 10일 두 차례에 걸쳐 에이스화재해상보험의 ‘여성 플러스 의료 보장보험’을 판매했다.농수산홈쇼핑 또한 동부생명과 제휴했다. 지난해 10월부터 농수산홈쇼핑 고객들을 상대로 텔레마케팅(TM) 영업을 해 왔다. 동부생명의 기존 TM영업의 계약 성사율은 3% 미만인 데 비해 농수산홈쇼핑의 고객군은 5%이상의 성사율을 보였다.우리홈쇼핑은 보험판매를 위한 정관개정을 앞두고 있다. 기존 통신판매업종에 보험업을 추가해야 보험상품을 판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3월 주총에서 정관개정을 이행한 후 4월부터 홈슈랑스를 개시할 계획이다. 흥국생명 등 3개 보험사와 손잡은 상태다.홈쇼핑 직원 30% 보험모집인 자격증 보유TV홈쇼핑에서 보험상품을 팔면서 홈쇼핑업계의 새로운 풍속도가 나타났다. TV홈쇼핑 임직원 중 3분의 1 이상이 보험모집인 자격증을 보유하게 된 것이다. 보험을 판매하기 위해서는 법인의 임직원 3분의 1 이상이 보험모집인 자격증을, 4명 이상이 보험대리점 자격증을 취득해야 한다는 법제 조건 때문이다.지난해 12월 10분의 1로 조건이 완화됐지만 그전부터 홈슈랑스를 준비해 오던 TV홈쇼핑들은 대부분 임직원 중 3분의 1 이상이라는 요건을 맞추기 위해 보험교육 대작전을 펼쳤다. 회사마다 차이가 나기는 하지만 20만원에서 50만원 사이의 합격수당을 내걸었다. 자격증을 딴 직원들은 합격수당을 받은 동시에 매월 자격수당을 받고 있다.방송에서 보험을 설명해주는 쇼핑호스트와 담당 PD, MD(상품기획자), 보험을 판매하는 텔레마케터들은 모두 보험모집인 자격증을 보유하게 됐다. 또한 보험과는 전혀 무관한 업무를 하는 직원 또한 보험모집인 자격증 보유자가 되기도 했다.또 다른 흥미로운 사실은 TV홈쇼핑이 우리나라보다 먼저 도입된 그 어떤 나라 중에서도 홈슈랑스가 발달한 나라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국정욱 PCA생명 대리는 “PCA생명보험의 아시아 12개국 지사 중 홈슈랑스를 채널로 활성화하고 있는 곳은 한국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내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과 소비 행태가 홈슈랑스라는 보험판매 채널 형성에도 반영됐다.“저렴한 상품이 주를 이룰 것”기본 보험설계사 조직에서는 홈슈랑스라는 새로운 보험 판매채널에 어떤 반응을 보일까. 보험업계과 TV홈쇼핑업계에서 이를 둘러싼 무성한 얘기가 오가고 있다. 대형 보험사 중 한 곳은 TV홈쇼핑과 제휴하고 싶었지만 설계사들의 반발로 지체되고 있다는 얘기도 업계를 떠도는 일설 중 하나다.TV홈쇼핑에서 판매하는 보험상품은 보장이 흡사한 오프라인 보험상품에 비해 10% 가량 저렴하다. 보험설계사의 중개수수료가 포함돼 있지 않아서다. 저렴한 보험료가 홈슈랑스를 대박상품으로 만든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역으로 생각하면 약 10%가 저렴한 홈슈랑스는 보험설계사의 밥그릇을 줄이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반면 이와는 다른 의견을 보이는 설계사도 있다. 외국계 생명보험사에 근무하는 보험설계사 P씨는 “TV홈쇼핑에서 파는 상품에는 한계가 있다”며 “현재 월 4만원 이하의 비교적 저렴하고 간단한 보험상품이 홈슈랑스의 주를 이룬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변액보험이나 종신보험, 연금보험 등 간단하지 않은 원리의 상품들은 얼굴을 맞대고 설명해야 이해할 수 있다”며 “홈슈랑스가 생명보험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종신보험 시장을 위협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생보사 빅3 중 유일하게 홈슈랑스를 도입한 교보생명은 “고객 니즈의 다양화에 맞춘 서비스가 홈슈랑스이다”며 “고객의 성향은 각기 다르기 때문에 보험 판매의 다양한 채널 중 TV홈쇼핑을 택하지 않는 고객 또한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홈슈랑스를 둘러싼 무수한 논쟁은 홈슈랑스가 그만큼 관심의 대상이라는 방증이다. 생보업계 관계자들마다 다소 그 예측이 차이나지만 홈슈랑스를 통한 보험료 수입은 다양한 보험 판매채널을 통한 전체 보험료 수입 중 현재 1~2% 미만에서 5년 내에 10% 정도를 점유할 것으로 전망된다. 홈쇼핑업계와 보험업계는 기존 판매하던 암보험과 어린이보험, 건강보험 외에도 보다 다양한 보험상품을 판매하기 위해 분주히 전략을 짜고 있다.INTERVIEW | 이준호 현대홈쇼핑 영업2본부 상품기획팀 MD“계약성사율 높고 철회율 낮아”경제학을 전공한 이준호 현대홈쇼핑 영업2본부 상품기획팀 MD(30)는 홈슈랑스 도입 초창기부터 참여해 온 원년 멤버다.업계 최초로 홈슈랑스를 도입한 현대홈쇼핑은 지난해 3월부터 보험판매를 기획했다. 그후 5월에 홈슈랑스 실행이 확정됐고, 6월에 임직원은 보험모집인 자격증 시험에 응시했다. “지난해 10월9일부터 PCA생명의 암보험 판매를 시작한 데 이어 어린이보험도 판매했습니다. 40회 이상 방송을 진행해 오며 판매 성과가 좋아 보험판매 텔레마케터 조직을 확대하게 됐습니다. 초창기 50여명에서 현재 200여명까지 늘어났죠.”지난 2월 초부터는 월 1만9,000원 상당의 현대해상의 ‘프라임운전자보험’을 텔레마케팅(TM) 조직을 통해 판매하고 있다. 현시점에서는 방송과는 별개로 진행되고 있지만 향후 손해보험상품도 TV홈쇼핑을 통해 판매할 계획이다. 3월 말 인가 예정인 여성보험을 방송 준비 중이며 향후 실버보험도 계획하고 있다.이준호 MD는 홈슈랑스의 강점이 고객의 자발적인 보험구매라고 분석했다. 고객이 보험설계사에게 보험상품을 구입할 것을 권유받는 수동적인 보험 구매와는 달리 홈슈랑스는 전적으로 고객의 의사에 따라 판매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안방에서 TV홈쇼핑을 보면서 해당 보험상품의 장단점을 숙고해 본 후 보험신청을 하기 때문에 계약 성사율이 35~40%로 높은 편이고 계약 철회율은 낮다.“최근 각 TV홈쇼핑회사의 보험상품 판매가 증가하면서 경쟁이 치열해졌습니다. 이에 방송편성도 전략적으로 짜고 있습니다.”PCA생명 암보험의 경우 구매고객 중 여성이 66%, 남성이 34%이다. 연령대별 구매 현황은 31~35세가 27%, 36~40세가 23.9%, 41~45세가 18.1%, 46~50세가 16.7%였다. 이 같은 성별, 연령대별 구매자료는 방송편성에도 반영된다.“최근에는 시청률이 높은 MBC 드라마 <대장금>이 끝날 시간을 피크타임으로 보고 있습니다. 드라마가 끝난 후 채널을 돌리다가 홈쇼핑채널의 보험방송을 시청하도록 유도하는 전략이죠. 오전에는 아침드라마가 끝날 시간인 오전 9시30분대에 방송을 편성합니다.”이준호 MD는 TV홈쇼핑을 통해 보험을 구입할 때 주의해야 할 사안으로 몇 가지를 지적했다. 먼저 다른 보험과 월납보험료 대비 보장혜택 등을 상세히 비교해 약관을 반드시 확인할 것을 당부했다.“‘최고보장액 000원’ 등의 문구에 현혹돼서는 안됩니다. 희귀병에 걸릴 경우 받을 수 있는 최고액 이외에 기타 다른 질병은 얼마를 받을 수 있는지 확인해야 하죠. 또 30분 이상 진행되는 방송의 극히 일부인 5분 정도를 볼 경우 자세하게 약관을 살펴봐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