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인 이지은양(9)은 요즘 인터넷에 재미를 붙이고 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가방을 내려놓기 무섭게 컴퓨터 앞으로 달려가기 일쑤다. 미술학원에 가기 전 1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간다.이양이 주로 이용하는 콘텐츠는 게임이다. 특히 요즘에는 ‘옷 입히기’ 게임에 푹 빠져 있다. 자신의 얼굴사진을 올린 후 마음에 드는 옷을 입혀 보면서 공주가 되기도 하고 여전사가 되는 상상도 한다. 취미가 비슷한 또래 아이들과 커뮤니티를 만들어 정보를 나누고 자신의 재능을 뽐내기도 한다. 이양의 장기는 그림 그리기. 웹상에서 그림을 그려 게시판에 올려놓으면 반응이 꽤 좋다고 이양은 자랑한다. 가끔씩 숙제를 할 때 도움을 받기도 한다.이런 딸을 보면서 어머니 장세림씨(36)는 걱정이 많았다. ‘인터넷에 범람하는 유해사이트에 노출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컸던 것. 하지만 그런 걱정은 이제 많이 사라졌다. 어린이 전용 포털을 이용하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도 어린이 전용 포털을 이용해 인터넷과 방과 후 교육을 하는 만큼 신뢰가 간다”고 장씨는 말한다.포화상태 인터넷 시장 ‘어린이로 뚫는다’국내에 어린이 전용 포털이 생긴 것은 불과 얼마 전의 일이다. 1999년에 NHN이 ‘쥬니어 네이버’를 오픈한 것이 처음이고, 이듬해에 야후가 ‘야후 꾸러기’를 선보였지만 어린이 포털은 한동안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한 포털이 새로운 서비스를 시작하면 우후죽순 뒤따라 유사 서비스를 오픈하는 포털업계의 일반적인 양상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그러다 지난해부터 대형 포털들이 경쟁적으로 이 시장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했다. 다음의 ‘꿈나무’, 엠파스의 ‘엠파스 어린이’, 한미르의 ‘개구쟁이’, MSN의 ‘키즈’, 플레너스의 ‘엠키’가 1년 남짓한 기간에 연이어 출시된 것이다.대형 포털들이 어린이 전용 포털 시장에 몰리는 이유는 미래의 잠재고객을 확보하는 동시에 포화 상태에 이른 시장의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서다. 현재 국내 인터넷인구는 3,000만명에 육박한다. 특히 10~20대는 약 95%가 인터넷을 사용할 정도여서 신규고객은 사실상 멈춘 상태다. 이에 따라 신규고객보다는 유아에서 10세 전후의 어린이를 상대로 미래고객 확보에 눈을 돌리게 된 것이다. NHN의 관계자는 “정확하게 계량화할 수는 없지만 상당수의 ‘쥬니어 네이버’ 고객이 ‘네이버’로 넘어온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현재 어린이 포털 시장의 선두주자는 ‘야후 꾸러기’와 ‘쥬니어 네이버’다. 야후꾸러기의 현재 누적회원수가 380만명, 쥬니어네이버는 360만명으로 매년 100만명 정도가 신규회원으로 가입하며 가파른 신장세를 보이고 있다. 그 뒤를 잇는 다음커뮤니케이션의 ‘꿈나무’는 선두권의 40% 정도에 그치고 있다.후발업체들을 멀찍이 따돌리고 있지만 선발업체들이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경쟁업체들이 속속 시장에 진입하고 있는데다 기존 후발업체들도 강화된 서비스를 무기로 추격의 고삐를 바짝 죄고 있기 때문이다. 엠파스의 이재포 커뮤니케이션 사업본부 이사는 “어린이 시장은 매년 새로운 고객이 발생하기 때문에 경쟁구도가 변화할 가능성이 크다”며 “차별화된 서비스로 조기에 자리를 잡겠다”며 각오를 다졌다.눈높이 콘텐츠가 경쟁력어린이 포털들이 역점을 두는 부분은 ‘안전한 인터넷’과 ‘눈높이 콘텐츠’다. 특히 유해사이트에 노출되는 것을 최대한 차단하고 스팸메일에서 아이들을 보호하는 ‘안전한 인터넷’은 어린이 전용 포털의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야후코리아의 허주환 차장은 “어린이 포털은 실제 사용자인 어린이는 물론 학부모와 교사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며 “우수한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보다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이를 위해 대부분 포털들은 주소록에 등록되지 않은 메일은 자동적으로 걸러내는 스팸메일차단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또한 금칙어 시스템과 전문 서퍼들을 채용해 유해사이트는 아예 검색 대상에서 제외시키고 있다. 그래도 유통되는 유해 콘텐츠는 전문 모니터 요원들이 발견 즉시 삭제한다. 특히 야후꾸러기는 지난해부터 유해사이트 차단 프로그램인 ‘야후!캅’을 무상으로 배포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이와 관련, 학부모정보감시단의 이영희 운영팀장은 “어린이 전용 포털은 완벽하지는 않지만 스팸메일과 유해사이트로부터 상당히 안전한 것으로 평가된다”고 말했다.기본을 갖췄다면 이제 진검승부를 벌일 준비가 된 셈이다. 무기는 ‘눈높이 콘텐츠와 서비스’이고 가장 치열한 격전지는 놀이, 학습, 커뮤니티이다. 일반 포털에서도 인기가 높은 이 세 부문의 서비스를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는 것이 승부의 묘수다. 지금까지 각 포털의 콘텐츠는 별다른 차별성이 없었지만 경쟁이 치열해짐에 따라 업계는 차별적인 콘텐츠의 개발과 발굴에 적극 나서고 있다.야후는 최근 에듀모아, 와이즈캠프, 재미나라, 아리수 한글 등 국내 대표적인 유아ㆍ초등교육 콘텐츠개발업체의 콘텐츠를 구입해 서비스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콘텐츠업체의 입점조건으로 공급받은 무료 샘플을 중심으로 사이트를 운용해 우수 콘텐츠 유치에 한계가 있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또 교육용 플래시 애니메이션 공모전을 경기디지털아트센터와 공동 주최해 수상작을 서비스할 예정이다. 쥬니어네이버도 콘텐츠업체와 제휴해 콘텐츠의 구입과 공동개발을 추진할 계획이다. 특히 케이블방송과의 제휴도 모색하고 있어 주목된다.야후코리아의 허주환 차장은 “연령별로 이용 행태의 차이가 워낙 커 각 연령에 맞는 콘텐츠를 개발해야 한다”며 “어느 한쪽에 치중하기보다 균형 잡힌 콘텐츠 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충성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커뮤니티 서비스를 강화하는 추세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쥬니어네이버는 최근 커뮤니티 서비스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선보인 어린이 블로그 서비스인 ‘죠아저씨 책방’과 ‘동물농장’이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는 것. 2개월 만에 무려 10만개의 블로그가 개설됐고, 현재 하루 500여개의 신규 블로그가 개설되고 있다고 회사측은 밝혔다. 이 회사의 김선옥 쥬니어네이버팀 과장은 “블로그 열풍과 애완동물 열풍이 결합된 결과”라며 “아이들도 쉽게 개설할 수 있게 해 참여 열기가 높다”고 분석했다.지난 3월2일 출시한 야후꾸러기의 ‘우리반 클럽’도 주목된다. 학급 홈페이지를 제공해 학생과 교사의 커뮤니티를 제공하는 이 서비스는 친목뿐만 아니라 교육도구로도 활용할 수 있다. 졸업 후에는 ‘반창회’ 용도로 이용할 수 있어 회원 이탈을 방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다음꿈나무는 부모, 교사, 친구들의 공개편지인 ‘사랑의 우체통’, 공개 일기장인 ‘꾸미룸’ 등을 활성화해 고학년 어린이들의 관심을 끌어들인다는 방침이다.콘텐츠의 내용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편리하고 독특한 인터페이스다. 지난해 12월 오픈한 ‘엠파스 어린이’는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워 시선을 모으고 있다. 오픈 1년 전에 구성한 어린이 자문단의 의견을 바탕으로 개발한 캐릭터들을 페이지 곳곳에 배치해 서비스의 특징을 표현하고 있다. 이를 통해 “엠파스의 어린이 전문 포털 브랜드를 강화할 계획”이라고 엠파스 포털사업본부의 한성숙 이사는 밝혔다. 유아ㆍ초등교육전문 인력을 영입해 콘텐츠를 보강할 계획도 세워놓고 있다. 다음꿈나무와 야후꾸러기도 상반기에 대대적인 사이트 개편을 실시할 예정이다.수익모델 창출은 당분간 어려울 듯오프라인과 연계한 홍보활동에도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대부분 포털들이 현역 초등학교 선생님들로 구성된 자문단을 운영해 우수 콘텐츠 개발에 대한 자문을 받는 동시에 초등학교 선생님들의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송혜원 다음커뮤니케이션 미디어본부 PD는 “실제 사용자인 어린이들의 평가 못지않게 선생님과 학부모의 평가가 브랜드의 가치를 좌우한다”며 “선생님 자문단뿐만 아니라 학부모들을 위한 공간도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NHN은 오프라인상에서 학부모와 어린이들을 위한 만남의 장을 정기적으로 마련하고 있다. 지난해 한 교육설명회에는 80명 모집에 1,000명 가량의 학부모가 지원했을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다. 또 삼성화재와 공동으로 ‘자전거면허증’ 이벤트를 실시해 어린이 안전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지금까지 약 4만명의 어린이가 면허증을 취득했다고 회사측은 밝혔다.어린이 고객을 유치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업계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가장 큰 고민거리는 수익모델 창출이다. 현재 수익을 내는 어린이 전용 포털은 단 한 곳도 없다. 업계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수익창출보다는 서비스 차원에서, 또는 사회에 이익을 환원하는 차원에서 운영하기 시작했고 아직도 그렇다고 말하지만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 이상 수익모델 창출을 완전히 외면할 수 없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하지만 마땅한 수익모델이 보이지 않아 걱정이다. 이와 관련, 다음커뮤니케이션의 송혜원 미디어본부 PD는 “어린이 포털은 수익 측면에서 매우 불안정하다”며 “수익모델의 창출이 업계의 숙제”라고 전했다.이런 가운데 광고 등 기업의 마케팅 플레이스의 역할을 통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는 제안이 유력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야후코리아의 허주환 차장은 “미국의 어린이 전용 포털인 ‘야훌리건’은 광고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며 “꾸러기도 향후 두 달간 광고 스케줄이 꽉 차 있을 정도로 광고매체로서의 매력이 부각되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일반 포털처럼 무차별적으로 광고를 집행할 수는 없어 한계가 있다”고 덧붙였다.유료 콘텐츠를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방안도 제시되고 있다. 하지만 유료화에 대한 거부감이 학부모 사이에서 강한 만큼 성급히 시도할 수는 없다. 이에 따라 일반 포털들처럼 콘텐츠 개발업체와 제휴해 고객을 해당업체에 연결하는 대가로 수익을 분배하는 방안도 모색되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유료 콘텐츠에 대한 학부모의 인식변화가 선행돼야 한다는 문제가 있다.뚜렷한 수익모델 창출은 한동안 이뤄지지 않을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수익보다는 우선 시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한 과제라고 말한다. 이를 위해 우수한 서비스를 발굴하고 고객들의 신뢰를 쌓는 것에 주력할 방침이다. 엠파스의 이재포 이사는 “어린이 포털 사업은 단기간에 승부할 수 없다”며 “10년을 두고 차근차근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