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후까지도 혜택 이어져, 실적 저조하면 ‘단칼’ 에 퇴출될 수도

대기업 임원은 한 마디로 ‘평민’에서 ‘귀족’으로 신분이 상승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억대의 연봉과 다양한 품위유지를 위한 지원을 통해 기존과는 전혀 다른 생활이 가능해진다. 기업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부장시절과 비교해 보통 10~30여가지가 달라진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말단사원으로 출발해 15~20년여간 대리, 과장, 부장 등을 거쳐 임원에 오르는 사람은 극소수다. 보통 함께 입사한 동기생 중 5~10%도 채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고 마냥 행복한 것은 아니다. 일단 임원이 되면 실적에 대한 압박감이 심해지고, 신분상 근로자의 신분이 아니기 때문에 근로기준법의 보호도 받지 못한다. 최고경영진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퇴출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대기업 임원이라는 자리는 대다수 직장인들의 ‘꿈’이며 행복이다.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기 때문이다.대우가 달라진다우선 예우가 달라진다. 당장 연봉이 1억원대로 진입한다. 성과급을 제외한 순수한 연봉으로만 따지면 삼성전자는 약 1억3,000만원, LG전자는 1억2,000만원 정도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각종 판공비를 더하면 단숨에 2억원대에 육박한다.아울러 품위유지 차원에서의 각종 혜택도 주어진다. 우선 차량이 제공된다. 신임 임원일 경우 보통 2000cc 정도의 중형차가 제공된다. 삼성전자의 경우 그랜저XG가 제공된다. 부사장은 에쿠스 3,500cc급, 사장은 4,500cc로 바뀐다.LG전자의 경우 상무는 EF쏘나타급이 나오지만 부사장은 다이너스티급, 사장은 에쿠스급으로 차량도 덩달아 승격된다. 금호아시아나의 경우도 이사는 EF쏘나타, 상무, 부사장은 그랜저XG, 사장은 에쿠스로 등급이 높아진다.신임 임원의 경우 보통 자가 운전이 기본이지만, 영업임원 등은 기사가 따로 있다. 그러나 임원이 됐다고 하더라도, 차량이 제공되지 않는 대기업도 있다. 롯데그룹은 대표이사에 한해, 한화는 부사장급이나 공장장급 등 사업부장의 직위를 가져야 회사 차량을 이용할 수 있다. 현대자동차는 전무급 이상 임원에 한해서 차량이 제공된다.같은 상무급이라도 대표이사직을 맡고 있는 임원은 특별한 대우를 받는 게 일반적인 추세다. 오리온그룹의 경우 대표이사 상무들이 벤츠 및 BMW 등을 제공받고 있다. 또 기업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독자적인 사무공간이 주어지고 비서도 따라붙는다. 골프장 회원권도 보직에 따라 유동적이기는 하지만, 대다수 대기업이 자체 골프장을 갖고 있기 때문에 회원권이 있든 없든 사용하는 데 큰 불편함이 없을 정도이다.복지도 부장시절과 비교해 사뭇 달라진다. 삼성전자는 서울삼성병원에서 정밀건강진단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항문내시경 MRI 등 고가의 진단서비스까지 받을 수 있다. LG전자는 종합검진뿐만 아니라 상해보험 등 손해보상보험에도 가입해 준다. 두산도 심도 있는 종합검진으로 늘 건강을 체크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대한항공의 임원은 무료항공권을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는 자격을 갖는 국내선 무료항공권이 6장, 직계가족과 장인, 장모에게는 1인당 연간 3장씩 제공된다. 국제선 무료항공권도 1인당 3장씩 나온다.퇴직 이후에도 임원은 여전히 특별대우를 받는다. 보통 퇴직 이후 1~2년간 기존 임금의 70~80%선에서 계속 지급받는 기업들이 많다. 두산은 2년 이상 임원으로 일할 경우 특별한 과오가 없는 한 퇴직 뒤 2년간 기존 임금의 70%가 지급된다. 금호아시아나는 부사장급 이하 임원은 퇴직 뒤 1년간 연봉의 50%, 사장급은 고문으로 위촉돼 1년간 80%가 지급된다.등기임원이 될 경우 대접은 또 달라진다. 금융감독원 공시자료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14명의 등기임원의 공식 연봉이 2002년 기준으로 1인당 35억7,000여만원에 이른다.여기서 7명의 상근임원의 평균연봉은 52억원 가량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판공비 및 스톡옵션 등을 포함하면 60억~70억원대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CJ는 2002년 8명의 등기임원에게 56억8,500만원의 연봉이 지급됐다. 8명 중 4명이 사외이사임을 감안하면 1인당 보수액은 10억원을 훌쩍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상대적으로 임금이 보수적인 것으로 알려진 효성도 11명의 등기임원이 1인당 3억9,868억원의 연봉을 지급받았다.생활이 달라진다임원의 세계가 꼭 화려한 것만은 아니다.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여러가지를 얻지만 또한 포기해야 하는 것도 만만찮다. 2001년 임원으로 승진한 A사의 C상무는 임원이 된 후로 가족들과 오붓하게 시간을 보내 본 적이 거의 없다고 한다. 영업담당 상무인 그의 수첩에는 일주일 내내 저녁식사 약속이 잡혀 있다. 주중뿐만 아니라 주말에도 거래처 임원들과의 골프약속이 빼곡하다. 평일의 경우 대부분 저녁식사 약속이지만, 술자리로 이어지기 마련이라 밤 12시 전에 퇴근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한다.A상무는 “부장시절보다 두 배 이상 일하지 않는다면 자리 유지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도 그럴 것이 대다수 기업들은 임원평가에서 실적을 가장 중시한다. 따라서 보통 임원이 되면 큰 과오가 없는 한 진급을 하지 못하더라도 3~5년간 임기를 보장해 주지만 상대적으로 실적이 예년보다 크게 떨어지면 임원 승진 1년 만에 퇴출될 수 있다. 이러다 보니 당장 눈에 보이는 실적을 올리기 위해 불철주야 애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더군다나 기업경영이 어려워질수록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 사람들이 임원들이다.각종 구조조정과 M&A 등이 이뤄질 경우 임원은 ‘파리 목숨’이나 다름없다. 예전에 기아자동차가 부도났을 때 300여명의 임원이 한꺼번에 옷을 벗은 적이 있을 정도이다. 이런 사정은 CEO급도 마찬가지다. 올해 굴지의 대기업 인사에서 물러난 전직 CEO는 “전혀 예상을 못한 가운데 하루 전에야 통보받았다”며 “충격적이었다”고 토로했다. 2년 전 대기업 CEO직에서 물러나 지금은 외국계 기업 CEO로 재직 중인 한 인사는 “기업을 대표해서 정력을 쏟았지만(기업 입장에서) 필요 없다는 판단이 설 경우 단칼에 퇴출되는 것이 CEO들의 운명”이라며 씁쓸해했다.대기업 임원들은 언론에 좀처럼 나서지 않으려고 한다. 마치 ‘입조심’이 최고의 덕목처럼 여겨지는 분위기다. 그만큼 조심스럽다. 경영진의 일원으로서 회사 경영에 직접적인 책임을 져야 하는 만큼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책임’이 두세 배 무거워졌다는 것이야말로 달라진 점 중에 가장 큰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