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세 상고출신 임원, 20년 만에 승진 여성 등 비주류 상당수

대기업 임원으로 승진하는 사람은 어떤 조건을 갖췄을까. 외형적인 조건만 따진다면 40대 중반, 남성, 명문대 졸업 등이 될 것이다. 대다수 임원들이 이런 조건을 갖췄다고 보면 된다. 이는 40대 중반을 훌쩍 넘어서거나, 여성이거나, 고졸출신 등의 임원 승진은 ‘하늘의 별 따기’보다 더 어렵다는 것을 역으로 말해준다. 그러나 남보란 듯이 일반적인 고정관념을 깨고 임원 대열에 합류한 이들도 적잖다. 이들의 이야기는 평범함을 거부한다.최고령 & 최연소대기업 임원의 나이가 낮아지고 있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사오정’, ‘오륙도’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특히 전자 및 IT업계의 임원 승진자 연령은 해마다 낮아지고 있는 추세다. 올해 삼성그룹 전체 임원 중 40대가 67%다. 이는 2003년보다 9%포인트 높아진 것. 평균연령도 48.3세에서 47.4세로 젊어졌다. 특히 이번에 새로 별을 다는 상무보 75명의 평균연령은 45세에 머물렀다. 이런 가운데 50세가 넘어 임원으로 승진하는 것은 보기 드문 일이다. 삼성전자의 올해 인사에서 50세가 넘어서 별을 단 임원은 민용호 상무보(남아공법인장ㆍ52), 김영하 상무보(홍콩법인 담당임원ㆍ50), 박봉식 상무보(서남아 경영지원팀장ㆍ50) 등 단 3명뿐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오랫동안 해외법인에서 근무했다는 것이다. 해외주재원들의 승진 연령은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에서 근무했던 부장 중에는 오해동 상무보(LCD전략마케팅 담당임원ㆍ48)가 최고 연장자이다. 아직 50세가 안된 나이지만, 올해 인사에서 최고령 승진자 중의 한 명이 된 셈이다. 반면 가장 최연소 임원 승진자는 올해 갓 40세가 된 강경훈 상무보(인력팀 담당임원)이다. 그 뒤를 42세의 김연환(경영혁신팀 담당임원), 김형도씨(재무팀 담당임원) 등이 이었다.LG전자도 마찬가지다. 신규임원 24명 중 20명(82%)이 45세 이하다. 신규임원들의 평균나이도 43.6세로 지난해(44세)보다 젊어졌다. 이중 50대 이상의 임원은 단 2명이다. 이중 정병돈 상무(경영진단팀장)가 52세로 LG전자 신규임원 중 최고령이다. 정상무는 이번에 함께 임원으로 승진한 박희봉 CDMA연구소 상무(40)와 무려 나이로는 12년 차이다. 정상무는 78년에, 박상무는 85년에 입사했으니 입사연도에서는 7년간의 차이가 나는 셈이다.이에 반해 중공업, 석유화학 등 전통 업종이나 그룹 문화가 보수적인 기업들은 임원 승진 연령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현대미포조선은 6명 신규임원의 평균연령이 51.5세로 비교적 높은 편이다. INI스틸의 경우 6명의 신규임원 중 절반인 3명이 50대다. 보수적 기풍을 가진 대림산업의 경우도 49.3세로 50대 신규임원이 4명이나 된다. 올해 신규임원의 평균연령이 48.8세인 대한항공 관계자는 “안전과 치밀하게 준비된 서비스가 필요한 항공업의 특성상 경험이 매우 중요하다”며 업종의 특성을 강조했다. 주요 그룹의 올해 임원 인사에서 임원으로 승진한 사람 중에는 조선호텔 업무지원실장을 맡고 있는 김성환 상무보와 기아자동차 고상원 이사대우(화성인사실장)가 56세로 최연장자 임원이다.여성 임원 & 고졸 임원주요 대기업에서의 여성 임원은 여전히 ‘가물에 콩 나듯’ 한다. 지난해 채용정보업체 인크루트가 105개 대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여성 임원이 있는 기업은 17개사(16%)로 모두 19명에 불과했다. 올해 인사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삼성과 현대ㆍ기아차그룹에서는 단 한 명의 여성 임원도 배출하지 못했다. LG그룹에서는 LGCNS의 설금희 e솔루션사업부장(43)이 인사ㆍ경영지원부문장(상무)으로 승진했다. 이 회사에서 2001년 상무로 승진한 이숙영 기술연구부문장에 이어 두 번째 여성 임원이 탄생한 것. CJ그룹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여성 임원이 탄생했다. 장계원 CJGLS 상무가 그 주인공이다.이처럼 주요 대기업에서 임원에 오른 여성들은 여성으로서 받는 온갖 불합리한 제도와 관행을 이겨낸 의지의 인물들이다. 여성과 마찬가지로 고졸출신들도 대기업 임원 세계에서는 소외받고 있음이 분명하다. 고상원 기아자동차 화성공장 인사실장은 올해 56세로 기어코 임원에 오르며 ‘고졸 신화’를 일궜다. 한진해운 김익주(53·정보전략팀장)씨는 고졸 출신으로 올해 임원으로 승진했다. 역시 고졸 출신으로 2001년 임원에 오른 양인모씨(48·SEN 경영참여단 재무담당)로 3년 만에 상무로 승진했다. 은행권에서는 라응찬 신한금융지주회사 회장이 고졸 신화를 창조한 주인공으로 유명하다. 지난해 8월 신한금융지주로 편입된 조흥은행이 상고 출신 2명을 부행장으로 발탁해 눈길을 끈 바 있다. 69년 경덕상고를 줄업한 채홍희씨(전 강서지역본부장ㆍ54)와 71년 대구상고를 졸업한 장정우씨(전 대구시 신천동지점장ㆍ50)가 그 주인공이다.INTERVIEW | CJ그룹 장계원 상무“남보다 50% 더 일했다”‘표정관리하고 출근하세요,’지난해 12월 중순 고객과 저녁식사 중이던 장계원 CJGLS 상무(3PL영업본부장ㆍ53)는 대표로부터 임원 승진 소식을 전해 들었다. 이로써 장상무는 CJ그룹 사상 처음으로 ‘여성 임원’이라는 타이틀을 달게 됐다. 삼성중공업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한 지 21년 만이다. CJGLS는 토털 물류 서비스업체로 물류는 일반적으로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터라 장상무의 임원 승진 소식은 업계에서도 화젯거리로 등장할 정도였다.중학교 영어교사로 재직하던 그녀는 82년 삼성중공업 기획실로 입사해 제일제당으로 옮긴 뒤 94년부터 물류업무만 담당했다. 고객지원팀장과 정보기획팀장 등을 역임하며 전국을 누빌 정도로 열성적으로 일했다. 한 번 출장가면 2~3일은 밤을 새워 일하는 스타일로 주변 동료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고 한다.하지만 임원 승진에 대해서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아무래도 대기업의 기업문화가 남성 중심으로 이뤄져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리시절 늘 남보다 1.5배 일한다는 생각으로 야근을 자청하며 지독하게 일했지만 과장 진급에 번번이 밀리면서 회의감을 가진 적도 적잖다.그러나 그녀는 ‘앞만 보고’ 일했고, CJ그룹에 차장, 부장으로 가장 먼저 승진하면서, 결국 임원에까지 오른 것이다. 남자들하고 일하는 것이 불편하지 않았느냐는 물음에도 “물류사업에 관한 한 전문성에도 밀리지 않을뿐더러 성격도 활달한 편이라서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며 “오히려 더 편했다”고 고개를 내젓는다.임원이 된 뒤 짧은 시간이지만 많은 것이 달라졌다고 한다. 억대 연봉으로 진입한 것은 물론 품위유지비 등이 사원 월급만큼 나올 정도라고 귀띔한다. “30여가지가 달라졌다”고 할 정도이다.더군다나 물류의 특성상 거래처에 여성이 방문하면 한 수 아래로 보는 경향이 있는데, 임원이 된 뒤에는 대하는 태도가 180도 바뀌었다고 한다. 이러다 보니 마음가짐도 달라졌다. 책임감으로 어깨가 더 무거워졌을 뿐만 아니라 부하 직원들을 대하는 태도도 달리 가지게 됐다고 한다.더 바빠진 것은 물론이다. 거래처 방문, 임원교육 등 눈 코 뜰 새 없다. 특히 임원교육은 강도가 센 까닭에 “마치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개조시키는 것 같다”고 웃으며 말한다. 장상무는 “대형 고객을 발굴하고 새로운 산업에도 뛰어들고 싶다”고 향후 계획을 밝혔다. 이제는 사장으로 승진할 일만 남았다는 주변 사람들의 격려에도 “더 열심히 일할 뿐”이라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