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무성과, 윤리성, 조직 장악력 등도 갖춰야

최고경영자를 중심으로 기업의 경영일선을 관리하는 임원들에게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샐러리맨의 꽃’이요, ‘재계의 별’로 비유되는 것은 임원 자리에 아무나 오를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임원이 되는 것일까.최근 몇 년 사이에 기업의 인사정책에서 가장 자주 거론되는 단어 중 하나가 ‘핵심인재’이다. 전략적으로 극소수 인재만을 뽑아 특별관리를 하며 차세대 CEO감으로 키운다는 게 핵심인재론의 근간. 나폴레옹의 근위병이나 나치 독일의 기갑사단처럼 전체 군사력보다 정예부대의 전력이 ‘전쟁의 승패’를 결정한다는 논리가 인사전략 전반을 지배하는 추세다. ‘바둑 1급 10명이 1단 1명을 못 이긴다’ ‘1만명 먹여 살릴 1명을 확보하라’는 삼성식 인재관도 같은 맥락에서 나왔다.핵심인재는 대개 전체 사원의 5% 안팎의 적은 인원만이 ‘간택’을 받기 때문에 선발이 되면 사실상 ‘예비 임원’이라 할 만하다. 핵심인재 육성의 전제가 한 기업의 미래를 이끌어갈 핵심 브레인의 역할을 맡기기 위해 될성부른 떡잎은 훈련을 시킨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선발 대상도 신입사원부터 부장 이하 관리자급에 이르기까지 폭넓다. 물론 선발된 핵심인재들에게는 특별한 교육시스템이 적용되고, 이에 따라 일상에서부터 임원 테스트와 교육을 받게 된다.삼성의 경우 ‘국적 불문, 능력 있는 천재 유치’가 인사전략 키워드다. 지난해 6월 ‘신경영 2기’를 선언하면서 ‘나라를 위한 천재 키우기’를 화두로 삼은 뒤로, 이건희 회장은 “인재양성을 위해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의지를 수차례 피력한 바 있다.실제로 삼성의 연구개발 인력은 지난 88년에 7,000명에 비해 지난해 말 1만8,000명으로 2.6배 늘어났다. 석ㆍ박사 인력도 같은 기간 1,700명에서 1만3,000명으로 7.7배가 증가했다. 국적을 불문한 인재확보 전략으로 그동안 13개국 50여명의 외국인 직원이 영입되기도 했다. 우수한 인재 확보를 위해서는 전용기 띄우기도 마다하지 않는다. 올해 초 인사에서는 중국인인 왕통 중국통신연구소장이 상무보로 승진, 세 번째 외국인 임원으로 등극하기도 했다.외부 영입 못지않게 내부 인력 강화에도 주력하고 있다. 해외에 1년간 체류하도록 해 지역시장을 속속들이 알아오게 하는 지역전문가 제도는 시행 10년을 훌쩍 넘어 2,500여명의 세계 각지 전문가를 배출했다. 해외 명문대 MBA 파견 프로그램 역시 400명이 넘는 삼성맨이 이수했다.이런 과정을 거쳐 양성된 우수인력은 인사를 총괄하는 구조조정본부에 의해 다시 한 번 임원 승진 대상 핵심인재로 가려지게 된다. 삼성 관계자는 “능력 우선ㆍ국적불문의 인재경영 원칙은 임원 인사에도 여지없이 적용된다”고 밝히고 “임원 후보 인재풀 관리는 해외 유수기업들에 뒤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LG는 해외인재 발굴과 사내 인재의 육성에 동시 투자를 뚜렷이 하고 있다. LG전자, LG화학 등 계열사 인사담당자들로 구성된 인력유치단을 가동하며 해외 명문대에서 채용설명회를 여는가 하면, 지난 97년부터 글로벌 E-MBA 과정을 운영하면서 지금까지 162명의 MBA를 배출했다. 최고재무책임자(CFO) 양성을 위해 미국 보스턴대학 경영대학원에서 글로벌 CFO과정을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LG 역시 이 같은 사내외 핵심인재 육성 프로그램의 성과에 따라 임원 후보를 선발하고 실제 인사를 집행하고 있다.최근에는 LG필립스LCD의 새 인사 평가 시스템이 화제가 됐다. ‘핵심인재를 놓치면 임원에서 탈락시킨다’는 게 요지다. 인재를 얼마나 잘 관리했는지 계량화해 임원 및 팀장급 인사에 반영키로 했다.신세계의 경우는 지난해부터 윤리경영을 임원 승진의 제1 조건으로 삼는다고 선언했다. 지난해 초 임원 워크숍에서 본사 및 계열사 대표, 임원 승진시 반영하는 윤리경영 평가 비중을 기존 10%에서 20%로 확대하기로 한 것이다. 이에 따라 신세계는 협력회사 만족도, 사회공헌 활동 실적, 공정거래 위반 건수, 인력 투자 및 여성인력 활용도 등을 포함한 윤리평가지표를 개발하기도 했다.IMF 위기 이후 시장 체질이 확 바뀐 금융업계에서는 다른 업종에 비해 글로벌 인재를 임원으로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IMF 위기 이전에는 기업 고유의 전통적인 인사 조직체계에서 ‘예정된’ 임원 인사가 이뤄지는 게 대부분이었던 반면, 최근에는 서구식 경영방식을 흡수할 수 있는 글로벌 인재를 핵심 브레인으로 선호하고 있다. K생명 인사팀에서 20년간 근무한 박형배 HR트러스트 사장은 “강도 높은 구조조정과 시장변화를 거치면서 금융업계 전반이 인력 개방을 했다”고 말하고 “임원 선발의 기준 또한 변화에 신속히 대응하고 혁신적인 정보와 마인드가 글로벌화된 인재로 무게 중심이 옮아가고 있다”고 밝혔다.하지만 대부분의 대기업은 임원 인사의 기준이나 후보 그룹, 승진 잣대에 대해 1급 대외비에 붙이고 있다. 중견기업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아예 임원 인사와 관련한 문서를 만들어두지 않는 곳도 많다.때문에 주요 직책의 임원 후보를 미리 정해 놓고 승계시 업무에 공백이 없게 하는 ‘석세션 플랜’(Succession Plan)을 보유한 기업도 몇 안되는 실정이다. 인터넷 인사담당자 모임 HR프로의 남기웅씨는 “IMF 위기 이후 기업 체질이 바뀌면서 인재 양성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졌지만, 기업마다 핵심 브레인을 선발 육성해 임원 업무에 차질이 없게 하는 석세션 플랜을 개발 보유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전했다.반면 기업 임원이 갖춰야 할 자질과 역량에 대한 요구는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과거 연공서열 위주의 획일적 인사관리에서 직무 중심의 성과관리, 능력 위주의 인사관리가 지배하는 시대가 된 까닭이다.임원이 되고자 하는 샐러리맨도 이러한 변화상에 맞춰 자신을 계발해야 한다는 게 인사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즉 자신의 포지션을 정확히 인지하고, 그 분야의 전문가로 성장하려는 노력, 회사에 대한 충성도보다 직무에 대한 능력을 보여주는 것 등 변화한 인사 패러다임에 적응해야 한다는 것이다.전략적 자기관리도 필수적이다. 여전히 한국사회에서는 경륜과 조직 장악력이 주요한 임원의 생존 조건이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