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퇴직을 생각하며 생활했지만 막상 닥치니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하루하루 출근과 퇴근. 세월만 갔다. 아쉬움과 미련을 두고 아내와 상의를 했다. 회사를 그만둔다. 참 하기 어려운 말. 더구나 무엇을 하겠다고 결정한 상태도 아니었다….’서울 노원구 상계동 아파트 밀집지에서 친환경ㆍ유기농산물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이종덕 사장(44)이 기록한 일기 중 일부다. 대학을 졸업하고 K생명에서만 16여년을 근무한 자타 공인 보험전문가가 명예퇴직을 앞두고 경험한 번민이 행간 사이사이 녹아 있다. 퇴직한 후 세밀한 창업준비를 거쳐 아담한 가게를 내 영업이 안정된 지금까지, 이사장은 대학노트 3권에 그 과정을 세밀하게 정리해 놓고 있다. 그야말로 살아 있는 ‘창업일기’다.“퇴직 전후의 어려웠던 상황과 마음가짐을 잊지 않으려고요. 책이나 강의의 에센스도 필요할 때 쉽게 찾아보려고 정리를 했습니다. 또 비슷한 과정을 거친 창업희망자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하는 생각에 정성들여 기록했지요.”치밀한 창업준비 ‘성공열쇠’웬만한 부서는 다 돌았을 만큼 자타 공인 보험전문가였던 그는 지난 2002년 9월 1,200여명의 명퇴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불과 4개월 전인 같은해 5월에 ‘사원 성과평가 대상’을 수상해 일본으로 연수를 다녀올 만큼 능력을 인정받던 사람이었다.“조직은 피라미드 형태라 점점 자리가 좁아지기 마련이지요. 좋은 평가를 받고 회사생활에 문제도 없었지만, 언젠가는 떠나야 한다는 생각이 늘 있었습니다. 때마침 명퇴 신청을 받는다는 말을 듣고 결심을 하기로 했어요. ‘잘나갈 때’ 퇴직해야 여러모로 명예롭다는 생각도 했습니다.”그러나 회사 문을 나서기 전까지 새로 펼쳐질 인생이나 생계에 대해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막막한 현실만 있을 뿐이었다.이사장은 차근차근 준비를 시작했다. 아니, 그의 창업 준비과정은 ‘더 이상 꼼꼼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치밀했다. 구체적인 계획도 없이 직장을 나섰기에 조급해 할 법도 하건만, 이사장은 서두르지 않고 하나하나 매듭을 풀어가며 준비에 임했다.가장 먼저 전직지원센터 DBM에 등록했다. 그리고 그해 12월까지 3개월 동안 각종 교육과 강연에 빠짐없이 참석하고 수많은 업종의 사업설명회에 쫓아다녔다. 관심 업종을 10개로 추린 다음에는 각 점포를 찾아 실제로 영업상황이 어떤지 눈으로 확인하는 절차를 거쳤다. 업종별 조사결과를 표로 정리해 한눈에 비교가 가능하도록 만들고 각 업종의 장단점을 소소한 것까지 모두 파악해 보기도 했다. 또 틈틈이 소상공인지원센터나 창업박람회를 찾아 지식과 소양을 쌓고 관련 서적을 탐독하는 등 직장생활을 할 때보다 더 바쁜 일상을 보냈다. 한편으로는 평소 관심이 있던 부동산 경매 분야의 공부를 하며 실전 기회를 엿보는 시간도 가졌다. “3,000개가 넘는다는 창업아이템을 모두 살펴보지는 못하는 대신 관심 업종으로 설정한 것만은 속속들이 연구하려고 했다”는 것이다.이처럼 심사숙고 끝에 고른 업종은 한 창업박람회에서 처음 접한 친환경ㆍ유기농산물 매장. 건강에 대한 관심이 꾸준한데다 생활수준이 높아지면서 값이 다소 비싸더라도 좋은 먹거리를 찾는 이가 많아졌다는 데 선택의 포인트를 두었다. 게다가 평소 아내가 오염되지 않은 우리 먹거리에 관심이 많아 금상첨화였다. 밝고 깨끗한 매장 분위기와 좋은 먹거리 확산에 한몫 한다는 자부심도 이사장의 적성에 맞았다.하지만 업종을 선택한 다음에도 이사장은 서둘지 않았다. 수십장 분량의 사업계획서를 만들어 자신이 하려는 사업내용을 좀더 객관적으로 들여다보는 한편 60세 이후 삶의 모습도 예측해 보았다. 눈앞의 단기계획이 아니라 노후까지 생각한 장기계획으로 창업전략을 세운 것이다.더불어 서울시 지도에 유기농산물 판매점의 위치를 표시하며 어느 지역이 유망한지 검토했다. 후보입지를 몇 군데로 압축한 뒤로는 매일같이 현장에 나가 통행량을 체크했다. 특히 주요 고객층인 20~40대 주부들의 통행량이 어느 정도 되는지를 눈여겨보았다.놀라운 것은, 후보지별 점포 임대비용 대비 수익률을 배후 세대수와 통행량 등을 감안해 직접 산출해 보는 등 전문가 뺨치는 분석과정을 거쳤다는 것이다. 더구나 “실제 영업을 해 보니, 그때 예상했던 수치와 얼추 맞아떨어질” 정도로 정확도가 높았다. 이렇듯 사전조사에만 5개월여를 투자할 만큼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 마침내 지난해 6월 마음에 드는 점포를 구할 수 있었다.이사장은 오픈 16일 전부터 오픈 후 5일까지 별도로 일별 스케줄을 짰다. 하루에 한두 가지씩 실제 영업에 필요한 조치를 하고 다시 점검하는 식이었다. 한시도 긴장감을 늦추지 않은 탓에 몸무게가 5kg이나 빠졌다.웰빙 붐 더해 인기 ‘쑥쑥’자영업자로 변신한 지 8개월이 지난 지금, 사업은 안정궤도에 올랐다. 한달 평균 매출은 4,000만~4,500만원선. 최근엔 웰빙 붐에 육류 파동으로 인기가 더 높아지고 있다.하지만 이사장은 지금도 기록과 정리를 멈추지 않고 있다. 하루의 판매량과 날씨, 판매시간대, 요일 등을 꼼꼼히 기록한 노트는 마케팅 기본 자료로 활용하고 있다.“고객에게서 눈을 떼는 순간 매출은 금세 줄어듭니다. 단골고객에게 신상품 카탈로그를 발송하고 SMS메일을 통해 광고와 안내를 거듭하지요. 안이한 자세로는 고객을 지켜내지 못해요.”이사장의 점포에는 두 개의 상패가 있다. 하나는 퇴직 4개월 전에 회사로부터 받은 ‘사원 성과평가 대상’, 또 하나는 지난해 12월 체인 본사로부터 받은 ‘가맹점 평가 최우수 점포’ 상패다. “직장에서 인정받지 못하면 창업을 해도 마찬가지”라는 전문가와 창업 경험자들의 말을 이사장이 그대로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이종덕 사장의 Success Key●나와 가족의 삶을 멀리, 넓게 보고 판단하라. 자칫 적절한 퇴직시기를 놓칠 수도 있다.●업종 선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적성’이다. ‘나’한테 맞지 않으면 아무리 고수익 업종이라 해도 소용없다.●조급해 하지 말고 천천히 세심하게 준비하라. 그에 따라 성공률도 높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