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ㆍ부동산업계를 둘러싸고 영업분야 이동 및 확장이 한창이다. 아파트 건설에 매진해 왔던 대형 건설사가 호텔 등 레저사업에 관심을 두는가 하면, 건설ㆍ부동산과 큰 연관이 없었던 기업, 공제회, 사학재단들은 속속 부동산 개발 분야로 영역을 확장하는 추세다. 패션에서 ‘부조화를 통한 색다른 어울림’ 뜻하는 ‘믹스&매치(Mix&Match)’가 건설ㆍ부동산업계에서도 구현되고 있는 셈이다.이 같은 움직임은 건설ㆍ부동산시장의 환경변화와 직접적 관련이 있다. 지난해 5ㆍ23대책, 10ㆍ29대책 등 정부의 초강력 부동산 안정대책이 잇따라 발표된 후 아파트 건설에 주력해 온 건설업체 대부분은 서둘러 사업전략 수정에 들어갔다. 특히 주택사업 비중이 50% 이상인 아파트 전문 건설사 사이에서는 “주택만 잡고 있다간 큰일난다”는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다. 주택시장이 조정국면에 들어간 만큼 건설업계도 새로운 사업분야로 포트폴리오를 짜야만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반면 건설ㆍ부동산과 거리가 멀어 보이는 기업과 공제회 등은 보유자산 활용, 운용수익 확대 등의 이유로 속속 부동산시장에 발을 내딛고 있다. 공기업 틀을 벗고 민영화된 KT, KT&G와 군인공제회, 경찰공제회 등 각종 공제회, 심지어 대학들도 ‘부동산 개발’을 새로운 주력사업 분야로 설정하는 추세다.기존 건설ㆍ부동산업계가 사업영역 구조조정에 들어가는 한편 새로운 ‘큰손’들이 시장에 새롭게 진입하는 대전환기가 시작됐다.침체 주택시장 고려, 사업영역 조정 한창“10ㆍ29대책 이후 대부분의 주택건설사가 사업분야 조정에 들어갔을 겁니다. 지난 2~3년처럼 아파트에 역량을 집중하다간 낭패를 볼 수 있기 때문이지요.”IMF 위기 이후 아파트 사업으로 이름을 날려 온 L건설의 한 간부는 “인위적으로 포트폴리오를 조정하지 않으면 안될 만큼 주택시장 분위기가 좋지 않다”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10ㆍ29대책 이후 분양시장이 급격하게 얼어붙은데다 연초 분양원가 공개 논의까지 들불처럼 일어나 이래저래 난관에 봉착한 상태다. 현재 분위기로는 분양만 하면 청약희망자들이 구름처럼 몰려들던 불과 1년 전의 활황장세가 ‘언제 다시 올까’ 회의적인 전망이 지배적이다.상황이 이렇다 보니 틈새상품 개발로 위기를 돌파하려는 움직임이 뚜렷해지고 있다. 그동안 관심을 두지 않았던 분야로의 진출과 더불어 침체를 겪고 있는 아파트를 대체할 주택상품을 새롭게 개발하는 업체가 등장했다.주택 브랜드 ‘아이파크’로 잘 알려진 현대산업개발은 호텔사업에 신규 진출한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삼성역 사거리에 6스타급 초특급호텔 ‘파크하얏트서울’을 유치하기로 한 것. 대지 538평에 연면적 6,960평, 지상 24층 규모인 이 호텔은 하얏트호텔 등급 가운데 가장 서비스가 좋고 최고급 시설인데다 전세계에 22개밖에 없다. 당초 지난 2001년 준공한 지상 45층 규모의 역삼동 스타타워와 같은 급의 호텔을 개관키로 했다가 미국계 투자펀드 론스타에 빌딩을 매각하면서 취소했던 호텔사업 꿈을 실현시키게 되는 셈이다.현대산업개발의 호텔사업 진출은 기존 주택상품의 이미지 업그레이드와 향후 진출을 모색 중인 새로운 주택시장에 대한 대비의 의미가 크다. 최익훈 상품기획팀 과장은 “최고급 호텔 건설 경험을 통해 기술력을 실현하고 기존 주택상품에 고급 이미지를 부여해 향후 주택 신시장인 ‘서비스드 아파트’ 진출에 대비하는 의미가 크다”고 밝혔다. 또 고부가가치 산업인 관광산업으로 영역을 확장, 사업다각화를 이룬다는 전략이다. SK건설은 이례적으로 고급빌라 시장에 진출키로 했다. 지난해 11월 서울 서초구 반포동 서래마을에 고급빌라 18가구를 분양했던 SK는 최근 고급빌라 사업을 전략상품으로 선정하고 ‘SK아펠바움(ApelBaum)’이라는 브랜드를 개발했다. 아펠바움은 자연친화적인 품격 높은 주거공간을 고객들에게 제공한다는 의미다.SK건설의 고급빌라 시장 진출은 틈새시장 개척 차원에서 이뤄졌다. 대형 주택건설사들의 관심 밖에 있었던 고급빌라 시장을 선제 공략, 차별화된 상품으로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포부다. 김권수 홍보과장은 “고급빌라의 성공 포인트는 차별화된 상품개발”이라고 밝히고 “실내정원, 욕실전용 발코니, 침실 가변형 공간 등을 제공해 기존의 빌라나 아파트와는 확연히 차별화된 평면과 인테리어, 외장을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쌍용건설은 업계에서 처음으로 미군 FED(Far East Districtㆍ극동공병대) 전담팀을 신설하고 미군기지 이전에 따른 공사수주에 공격적으로 나섰다. 미군기지 이전이 건설ㆍ부동산업계 이슈가 되고 있는 만큼 시장 선점에 박차를 가한다는 의도다.미군기지 발주 공사는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까지 피크를 이루다 급격히 줄어들었다가 최근 용산 미군기지 이전 등이 논의되면서 다시 ‘알짜 시장’으로 떠오른 분야. 쌍용은 지난 78년 미군기지 군납업체로 등록, 오산기지 지하유류시설 등을 수주한 바 있다. 함선욱 FED 태스크포스팀장은 “시장 선점을 위해 지난해 하반기부터 골프장 조경공사, 용수시스템 개선공사 등 6건을 수주해 왔다”고 밝히고 “실적을 중시하는 미국식 발주시스템을 고려, 규모가 작은 공사도 적극적으로 맡고 있다”고 말했다.공제회 등은 건설·부동산시장으로롯데건설도 롯데호텔과 연계한 골프장 시공 사업을 추진하면서 리조트 등 레저 관련 사업, FED 수주, 관급공사 수주 등을 검토 중이다. 이부용 홍보팀장은 “주택시장에 제재 요인이 많아진 만큼 다른 분야에서 매출을 끌어내야만 한다”고 밝히고 “시장성이 큰 FED사업과 SOC사업 등에 영업력을 강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이밖에 LG건설은 강촌리조트 개장에 이어 제주에 골프리조트 ‘엘리시안’을 건설 중이며, 대우건설도 아산 스파비스 인근 6만평 땅에 휴양지 개발을 계획 중이다.기존 건설업체들이 시장 환경 변화에 따라 사업영역 조정에 들어갔다면 각종 공제회, 연기금, 민영화 기업, 사학재단 등은 ‘돈을 만들기 위해’ 건설ㆍ부동산시장으로 진출하고 있다. 이들은 각각 자금력이 탄탄하고 보유 부동산이 풍부해 향후 부동산 개발 시장의 ‘강자’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이미 성공을 거머쥔 ‘모델’이 있어 최근 출사표를 낸 주자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밝은 편이다.자금운용을 통해 수익을 창출해야 하는 각종 공제회들은 부동산시장의 ‘큰손’으로 자리잡은 군인공제회를 성공모델로 삼고 있다.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군납물품 수급 관리에 치중했던 군인공제회는 2001년 서울 종로구 내수동에 주상복합 ‘경희궁의 아침’을 내놓으면서 대표적인 부동산 개발ㆍ시행사로 성장했다. 또 대한토지신탁과 중부리스금융, 경남리스금융을 잇달아 인수해 프로젝트 파이낸스사로도 자리를 잡았다.군인공제회의 뒤를 이어 최근 부동산으로 영역을 확장한 큰손들은 대한지방행정공제회, 교원공제회, 한국과기인공제회, 경찰공제회, 국민연금관리공단 등이다. 이 가운데 대한지방행정공제회는 서울 천호동에 오피스텔 사업을 벌인 데 이어 방배동 재건축 사업, 명동 상업빌딩 사업 등에 프로젝트 파이낸싱사로 참여하고 있다. 교원공제회도 용인 구갈지구에서 시행사로 데뷔한 데 이어 경주 리조트사업, SOC사업 등에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경찰공제회 역시 종로에 오피스텔을 지어 임대사업을 펴고 있으며 한국과기인공제회는 조만간 조합아파트 신축사업 등 건설업에 진출할 계획이다.풍부한 보유 부동산을 최유효 활용하려는 민영화 기업들의 움직임도 심상찮다. 포스코의 자회사에서 민영화 이후 대형 건설사로 우뚝 성장한 포스코건설이 이들의 성장모델.지난 2002년 5월 민영화된 KT는 전국에 산재한 120개 전화국, 지사 등 유휴부동산을 활용하기 위해 건설사업단을 만들었다. 부산 가야동 부지에 아파트 분양을 추진하는 등 고유사업인 정보통신업과 주택건설업을 연계,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겠다는 복안이다. 실제로 KT가 보유한 전국의 전화국은 대부분 도시 중심부에 위치해 부동산 가치가 상당하다는 평이다.이와 별도로 KT는 한국통신산업개발(KTRD)을 출자 설립했다. KTRD는 이미 지난해 말 경기도 의왕시 오전동에 아파트 ‘이자리에’의 분양을 마쳤고 서울 서초동 주상복합 ‘동양파라곤’ 시행사로도 참여했다.지난해 민영화된 KT&G도 전국의 지점, 원료공장 등 유휴 부동산에 대한 적극적인 개발사업에 나섰다. KT와 마찬가지로 보유부동산의 입지가 대부분 ‘알짜’여서 개발 효과가 상당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KT&G가 보유한 부동산은 총 158만여평에 장부가액으로만 7,700억원 이상 규모. 이미 서울 동대문구 신당동 성동지점 자리에 의류도매상가 ‘디오트’ 분양을 마쳤으며 올해는 부산, 대구 등지에서 오피스빌딩 개발사업에 나설 예정이다. 이밖에 대구대, 건국대, 한양대, 호서대 등이 캠퍼스 부지를 활용한 개발사업에 나섰거나 검토 중이어서 부동산시장과의 ‘믹스&매치’ 결과에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INTERVIEW | 전상대 KT&G 부동산사업단장“100년 신뢰 바탕 우량 개발사업만 펼칠 것”지난해 민영화되면서 글로벌 담배기업으로의 이미지 업그레이드에 나선 KT&G는 올해를 부동산사업 본격 추진의 원년으로 설정했다. 그동안 매각ㆍ임대 위주의 단순한 부동산 관리에 치중해 왔지만, 올해부터는 유휴 부동산을 고부가가치 자산으로 개발하는 주체로 변신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사업개발본부 내에 있던 부동산사업국을 지난해 5월 사업단으로 승격시키고 전문인력 확보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전상대 부동산사업단장은 “민영화를 계기로 사업분야 전반에 대한 구조조정이 진행되면서 유휴 부동산의 최유효 활용이 대두됐다”고 말하고 “전국에 산재한 지점, 공장 등 보유 부동산에 대해 개발 가능성과 수익성을 타진하고 있다”고 밝혔다.KT&G의 첫 부동산 개발 사업은 서울 성동지점 자리에 건립 중인 패션상가 ‘디오트’. 이미 성공리에 분양을 마쳐 긍정적인 출발을 했다. 이어 올해는 부산, 대구 지점자리에 10~14층 규모의 오피스빌딩 건립을 계획하고 있다. 수원의 2,000평 대지에 대해서는 설계 현상공모를 실시 중.“부동산 개발 사업은 장기적인 시각과 과학적인 분석력이 필요합니다. 토지매입과 건축 등에 경험이 있는 사업단 구성원을 바탕으로 건설사, 컨설팅사 등과의 네트워킹을 통해 전문성을 강화할 생각입니다.”전단장은 KT&G가 펼칠 부동산 개발 사업에 대해 ‘신뢰도 높고 우량한 개발 사업’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공기업으로서 쌓아온 신뢰를 기반으로 소비자가 만족하는 최고의 상품만을 공급하겠다는 것이다.“해당 부지의 용도에 맞게 개발 사업을 펴는 만큼 상가, 오피스, 빌라 등 다양한 종류의 부동산 개발 사업을 선보이게 될 것입니다. ‘KT&G가 하는 부동산 개발 사업은 믿을 수 있다’는 평을 받는, 신뢰성 높은 부동산 개발 회사가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