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중순, 산업은행의 LG카드 위탁경영안이 합의됨으로써 연말부터 떠들썩했던 LG카드 사태는 일단 봉합됐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보면 한숨부터 절로 나온다. 협상이 시종일관 정부 주도로 진행되고 마무리됐기 때문이다. 혹자는 관(官)이건 민(民)이건 무슨 상관이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그건 그렇지 않다. 1997년 말 터졌던 금융위기도 따지고 보면 1960년대 이후 누적돼 온 관치금융의 부작용이었다. 그러기에 당시 위기의 와중에서 관치 청산을 기치로 금융감독 개혁부터 추진하지 않았던가.개별 금융기업이 망하는 것을 막는 것이 감독의 목적은 아니다. 무너지는 금융기업을 오늘 억지로 연명시키면 국민경제는 내일 더 커다란 대가를 치르게 된다. 그래서 금융기업의 청산 여부는 시장에 맡기는 것이 원칙이다. 다만 그로 인해 금융시스템 전반의 안정성이 심각한 위협을 받게 되는 위기 상황이 닥칠 것으로 예견된다면 그때만 당국의 시장개입이 고려될 수 있다.그렇다면 시스템위기 여부는 누가 어떻게 결정하는가. 미국에서는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이사회 및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각기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상황을 위기로 판단하면, 이들 기관은 우선 재무장관에게 권고를 한다. 재무장관은 이에 입각해 대통령과 상의해 시스템 위기 여부를 최종 결정한다.영국에서는 영란은행이나 감독당국(FSA, The Financial Services Authority) 중 어느 한 기관이 시스템 위기의 징후를 확인하는 즉시 상대 기관과 의논한다. 그에 따라 필요하면 지원책을 세운 후 재무장관에게 사전 보고하며, 재무장관은 그 지원책에 대해 거부권을 갖는다.요컨대 이들 선진국에서는 감독당국과 중앙은행이 평소 협력ㆍ견제하고 있으며, 그런 가운데 두 기관이 주어진 상황을 시스템 위기로 공동인식하는 상태에서 이를 재무장관에게 보고한다. 그후에야 비로소 재무장관은 상황이 위기인지 아닌지 최종 결정한다는 것이다. 이는 정치논리가 감독에 끼어들 가능성을 막고 감독당국과 중앙은행이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일개 민간 금융기업인 LG카드의 부실에 대해 재경부 장관이 앞장서 상황을 시스템 위기로 규정하고 채권단의 구제를 독려하는 진풍경은 선진국에서는 좀처럼 상상하기 어렵다. 전문적 판단을 제시해야 할 감독당국과 중앙은행이 정부에 묵종하는 일도 선진국에서는 보기 힘들다.1997년 말 금융위기를 계기로 한국은 감독체계를 전면적으로 뜯어고쳤다. 그러나 재경부의 행태는 위기 이전과 달라진 것이 전혀 없다. 감독당국과 한국은행도 재경부 우산 속에 안주하는 구태를 벗지 못하고 있다. 수년간 급격히 진행된 카드사 및 가계의 부실도 실은 내수진작에 대한 정부의 지나친 집착과 여타 공공기관의 묵종이 빚어낸 정책실패의 결과다. 카드사와 부실가계의 도덕적 해이도 그동안 엄청나게 키워져 있는 상태다.최근 감독개편 논의가 떠오르고 있다. 어떻게 겉모습을 바꾼들 감독에 임하는 공공기관의 근본자세가 바뀌지 않으면 개편이 무슨 소용인가. 재경부는 감독당국과 한국은행의 일상 업무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생각부터 과감히 버려야 한다.감독당국과 한국은행도 금융안정을 위해 각기 자신의 감독영역에서 독자적 전문성과 책임성을 적극적으로 발휘하는 가운데 서로 협력ㆍ견제하려는 자세로 거듭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