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원리에 따른 자율적인 구조조정 뒤따라야

‘외국자본 진출이 관치금융의 관행을 없애겠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그렇다’는 의견을 보이면서 관치금융에 관한 구분은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을 했다.한국금융연구원 이병윤 박사는 “관치금융에도 필요한 관치금융이 있고, 그렇지 않은 게 있다”며 “금융시스템 안정성 확보를 위해 금융회사간 조정자로서 정부가 개입하는 것이 전자이고, 정부가 다른 정책 목표 달성을 위해 금융을 이용하거나 금융원리를 교란하는 것이 후자”라고 구분했다.그는 또 “어느 것이 필요한 관치이고, 필요 없는 관치인지는 시장이 결정할 일”이라며 “정부가 개입하려고 해도 시장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정부의 개입이 먹혀들지 않을 것이고, 이런 현상은 외국계의 진출이 늘어나면서 더욱 명확해지고 있다”고 말했다.LG투자증권 조병문 애널리스트는 “미국의 경우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수시로 기준금리를 조정하고, 엔론 사태 당시 대통령이 직접 나서 기업들로 하여금 윤리각서를 제출토록 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다”며 “일정 수준의 관치는 현실적으로 존재해야 한다”고 말했다.명지대학교 경제학과 최창규 교수는 “그러나 정부는 개별 은행을 본질적으로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이지, 시장 안정을 위한 도구로 봐서는 안된다”며 “최근 들어 외국계 국내 은행들의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경영 행태가 이런 인식을 확산시키는 데 일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LG카드 사태와 관련, 그는 “경영정상화를 위한 채권단 합의과정에서 일부 외국계 은행이 자사의 이익을 위해 버티는 모습을 보고 격세지감을 느꼈다. 이런 움직임은 우리나라의 불필요한 관치를 해소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한국개발연구원 김현욱 박사는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을 비롯해 많은 은행들이 LG카드 구제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점은 부실 금융기관을 철저한 시장자율의 원칙에 따라 처리함으로써 도덕적 해이에 대한 기대감을 근절하기를 바라는 시장원리를 거부하는 조치였다”고 평가했다.한편 한국금융연구원 이박사는 “필요한 관치에 대해서도 외국계 은행이 협조하지 않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는데, 이는 투자펀드가 은행을 소유해서 단기적인 수익 극대화에 치중할 때 발생할 수 있다”며 “점차 전략적 투자자가 은행을 소유하게 되면 장기적인 관점에서 시스템 안정을 위한 정부의 노력에 협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은행산업 글로벌시장 진입단계외국인의 국내 금융업에 대한 직접투자는 외환위기 이후에 부실해진 국내 금융회사를 외국인에게 매각하기 위해 1998년 외국투자촉진법이 제정되고 외국인의 국내기업 M&A가 전면 허용 되는 등 일련의 외국인투자 활성화 정책이 시행되면서 본격화됐다.그러나 당시 부실 은행이던 제일은행을 외국자본에 매각하려 했지만 나서는 자본이 없어 결국 헐값에 전략적 투자자가 아닌 투자펀드에 매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이번 씨티은행의 국내 진입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한국개발연구원 김박사는 “단기적인 투자이익 극대화를 추구하는 투자펀드와는 달리 은행산업에 뿌리를 내리고 장기적인 영업을 통해 수익을 내려 하기 때문에 국내 은행산업에 긍정적”이라고 평가하면서 “씨티은행은 선진국 및 개발도상국의 은행산업에 진출했던 경험을 통해 축적해 온 다양한 금융기법 및 상품개발 능력을 발휘, 국내 은행의 무서운 경쟁자로 떠오를 것”이라고 말했다.한국금융연구원 이박사는 “국내 은행들은 글로벌 플레이어와의 직접 경쟁이라는 위기를 맞게 됐지만 오히려 이런 위기를 기회로 삼아 첨단 금융상품의 개발, 경영혁신, 비용절감 및 획기적인 서비스 개선 등의 노력을 한층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그는 또 “씨티은행이 강자이긴 하지만 기존 국내 은행들이 모든 분야의 시장을 한꺼번에 잃을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씨티은행이 고소득층을 대상으로 하는 소매금융에는 강점이 있지만, 그밖의 소비자나 중소도시 소비자, 중소기업금융 등에서는 강점을 보이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LG투자증권 조애널리스트는 “씨티은행이 무서운 이유는 몸집이 커서가 아니라 기술력 때문”이라며 “따라서 경쟁의 핵심은 대형화가 아니라 상품개발 능력, 여신심사 능력, 자산운용 능력 등 전문화가 관건”이라고 말했다.은행 민영화시 국내자본에 기회 줘야향후 은행산업의 구조조정과 관련, 한국금융연구원 이박사는 “외국자본의 진입이 계속되는 것은 국제화 시대의 추세라 하더라도 국내 은행의 소유가 외국자본에 편중되는 것보다는 외국자본과 국내 자본이 상호 견제하며 균형적으로 발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향후 은행 민영화시 국내 사모펀드나 금융회사 컨소시엄 등 여타 국내 자본에 기회를 주는 방안을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한국개발연구원 김박사는 “은행권의 부실을 더 이상 정부가 보전해 주지는 않을 것이라는 인식을 은행 스스로가 철저히 할 필요가 있다”고 전제한 뒤 “철저한 신용위험 관리를 통해 안정적 수익 기반을 형성하는 데 자율적인 역량을 집중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정부와 감독당국은 은행들의 자율적인 구조조정 성과가 시장에서 충분히 활용될 수 있도록 관련 정보의 공개를 점차 확대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LG투자증권 조애널리스트는 “60~90년대 경제 성장기에 금융은 실물경제가 성장하기 위한 지원수단이었으며, 그 가운데 관치금융의 단점이 부각되고 금융기관은 자생력을 잃게 됐다. 따라서 한국 금융기관은 시장원리에 따른 자생력 확보가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말했다.명지대학교 최교수는 “우리나라가 동북아 금융허브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중국과 일본이 부실 금융의 늪에서 헤어나기 전에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춰야 할 것”이라며 “그러기 위해서는 관치금융의 청산을 통한 글로벌 스탠더드의 정착이 무엇보다 절실하다”고 강조했다.이병윤 한국금융연구원 박사정부가 금융시장에 개입하려고 해도 시장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면정부의 개입이 먹혀들지 않을 것이고 이런 현상은외국계 은행의 진출이 늘면서 더욱 명확해지고 있다최창규 명지대학교 교수정부는 개별 은행을 본질적으로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이지시장안정을 위한 도구로 봐서는 안된다김현욱 한국개발연구원 박사글로벌 플레이어인 씨티은행과의 직접적인 경쟁은국내 은행산업의 경쟁력 강화에 또 다른 계기를 제공할 것이다조병문 LG투자증권 애널리스트씨티은행이 무서운 이유는 몸집이 커서가 아니라 기술력 때문이다따라서 경쟁의 핵심은 대형화가 아니라 상품개발능력여신심사능력 자산운용능력 등 전문화가 관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