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들의 ‘명품전쟁’은 오너(Owner) 일가들이 주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명품이 백화점의 ‘얼굴’로 인식되면서 오너 경영자들이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한편으론 ‘폼 나는’ 사업분야이고 다른 한편으론 콧대 높은 명품브랜드들을 상대하기 위해 오너라는 ‘배경’이 필요하기 때문이다.현대백화점에 비해 상대적으로 명품부문이 열세에 있던 롯데와 신세계의 명품경쟁은 특히 오너 일가간의 ‘자존심 대결’로 확대되고 있다. 양사의 명품경쟁은 명동상권을 놓고 벌이는 본점 경쟁과 맥락을 같이하고 있기 때문. 할인점 이마트로 돈을 벌어 백화점에 공격적으로 투자하고 있는 신세계가 롯데를 제치고 한국 제일의 유통기업으로 부상하고 있어 신경전은 더욱 치열하다.오너 경영자들의 명품싸움은 롯데쇼핑의 장선윤 이사대우(34)가 불을 지폈다. 장이사는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의 외동딸인 신영자 롯데쇼핑 부사장(63)의 장녀. 신부사장은 신회장의 첫째부인인 고 노순화 여사의 유일한 혈육이어서 신부사장과 장이사에 대한 신회장의 애정이 각별하다는 후문이다.장이사는 하버드대 심리학과를 나와 1997년 롯데면세점에 입사한 이후 줄곧 해외명품 쪽에서만 일해 온 베테랑이다. 롯데명품관 에비뉴엘(Avenuel)이 들어선 옛 한일은행 본점 건물을 롯데가 매입한 뒤 용도에 대해 고민할 때 장이사가 명품관을 세우자고 강력히 주장했다고 한다. 명품관 이름도 인근 ‘롯데영플라자’처럼 ‘롯데’ 브랜드를 달지 않고 독자적으로 가자고 주장, 에비뉴엘이란 브랜드를 관철시킨 사람도 장이사다. 명품관 개점일정과 관계없이 브랜드 입점시기를 결정할 정도로 ‘배짱 튕기는’ 명품브랜드들도 장이사의 시원시원하고 빠른 의사결정에 “장이사가 마음먹으면 안되는 일이 없다”는 평이 나올 정도다. 오는 7월 루이비통의 입점을 앞두고 장이사는 이제야 안도의 한숨을 쉰다. 지난 3월 말 에비뉴엘이 개점했지만 루이비통이 들어서야 완전한 모습을 갖출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에비뉴엘은 연간 1,500억원 이상 매출을 올려야 투자한 가치가 있는데 아직 매출이 이 목표에 많이 미달한 것도 장이사가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 있다.신세계 이명희 회장(62)은 언론은 물론 직원들 앞에도 잘 나서지 않는 오너로 알려져 있다. 1년에 한두 차례 사장으로부터 업무보고를 받을 때도 회사보다 자택을 선호해 왔다. 그런 이회장이 올 들어서는 사보에 신년사를 내보내고 본점 공사현장도 자주 찾고 있다. 신세계 본점 확장과 재개점이 신세계의 숙원사업이자 사운을 건 투자라고 생각하는 것이다.신세계는 서울 강남점을 고급백화점으로 정착시킨 데서 자신감을 얻어 본점도 한층 업그레이드된 백화점으로 오는 8월에 문을 연다는 계획이다. ‘명품관’은 현재 본점 구관을 리뉴얼해서 내년께 선보일 전망이다. 하지만 확장된 본점 신관에도 명품브랜드들이 일부 포진하게 되는데 여기에 들어올 브랜드들을 선별하고 MD전략을 짜는 데 이회장도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다. 최근 부쩍 많아진 해외출장을 통해 외국 명품백화점을 둘러보고 신세계 경영진에 날카로운 주문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정몽근 회장의 장남인 정지선 부회장(33)과 차남 정교선 이사(31)가 경영 전반을 관리하곤 있지만 명품에도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다.서울 압구정 본점의 명품매출이 전체의 25%에 육박할 정도로 우리나라 백화점 중 가장 명품이 강하기 때문. 현대백화점은 90년대 중반부터 ‘명품백화점’으로 차별화하는 전략을 펴 성공적으로 시장에 진입했다. 정부회장과 정이사는 그 이후에 현대 경영에 합류했지만 명품매장의 효율을 높이고 선두 명품백화점의 명성을 유지하기 위한 브랜드 이미지 관리에 상당한 힘을 쏟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