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중호 국순당 사장(50)은 여러 면에서 ‘스타일리스트’의 면모를 지녔다. 평생을 누룩 연구에 몰두한 배상면 국순당 회장의 장남이라는 ‘운명’을 스스로 터득한 경영마인드와 조화시켜 조그만 술도가를 매출 1,000억원이 훨씬 넘는 중견 주류회사로 성장시켰다. 시장에서 외면당하던 전통주로 전국 술자리를 평정한 것 역시 ‘전통을 오늘에 맞게’ 치밀한 마케팅 전략으로 버무린 결과다.또 상명하복 대신 전 임직원간 자유로운 의사소통 구조를 만든 덕에 매끄러운 노사관계를 실현했고, 세계 각국의 VIP에게 대표상품 백세주를 맛보게 하는 방법으로 세계화의 시동을 걸었다. 뛰어난 패션감각만큼이나 경영의 요소요소를 최상으로 코디네이트하는 솜씨가 수조원 매출의 대기업 CEO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비결인 셈이다.실제로 국순당이 최근 10년 사이 이룬 경영실적은 가히 ‘신화’라 할 만큼 탁월하다. 94년 10억원대에 머물렀던 매출은 99년 478억원, 2001년 984억원으로 뛰어올랐고 지난해 드디어 1,000억원대를 돌파했다.올해 국순당의 직원 1인당 매출은 5억원, 1인당 순이익은 1억원 이상이다. 소주를 제외한 전체 주류시장이 마이너스 성장으로 고전하고 있지만 국순당은 전년 대비 17% 성장한 1,363억원의 매출목표를 무난히 달성할 전망이다. 배사장은 “올해 어려운 시기를 보낸 기업들이 많은데도 목표치를 이룰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하는 한편 “경기침체에 지난 여름 태풍 매미 피해가 겹쳐 초과 달성을 못한 것은 아쉽다”고 밝혔다.이런 놀라운 성적표는 사그라질 줄 모르는 ‘백세주 돌풍’에 기반을 두고 있다. 백세주는 약주시장 점유율이 75%에 이를 정도로 독보적인 입지를 구축했다. 2년여 전부터 대기업들이 잇따라 이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백세주 아성을 깨지 못했다. 배사장은 “대기업들이 참여해 파이를 더욱 키웠으면 하는 바람이었는데, 예상외로 너무 부진했다”며 내심 서운한 표정을 지었다. “모방에 치중하는 ‘미 투(Me Too)’ 전략만 앞서 제품 차별화에 실패한 것 같다”는 게 배사장의 진단이다.“술은 그 맛을 충분히 즐기게끔 문화적 측면까지 포함시켜 상품을 만들어야 합니다. 새로 진입하는 기업들이 이 점을 염두에 두면 시장확대와 제품 다양화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 같습니다.”백세주가 인기를 이어가는 비결 중에는 마케팅 전략의 차별화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몸에 좋은 술’이라는 마케팅 포인트에 20~30대 젊은층의 입맛을 당기는 톡톡 튀는 광고전략이 어우러져 신뢰와 인기를 동시에 모으고 있다. 배사장이 가장 많은 시간 고민하는 것도 ‘마케팅 방향을 어떻게 잡을 것인가’이다. 실무회의에 참석, 머리를 맞대는 것은 물론 직접 아이디어를 내기도 한다.마케팅 전략에 대한 관심은 해외시장 개척과 연결된다. 26개국에 백세주를 수출하며 미국과 일본에 현지지사를 운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올해 40억원, 내후년에는 100억원대 매출을 목표로 잡고 있다. 특히 일본시장은 초기 국내시장을 개척하는 마음으로 공을 들이고 있다. 최근 산토리 위스키로 유명한 대표적인 주류유통업체 산요물산과 특약점 계약을 체결, 백세주 판매에 돌입했고 일본인 팬클럽 역할을 담당할 1만명 규모의 ‘백세주 응원단’을 모집하는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펴고 있다.그렇다고 국내시장에 대한 투자를 게을리 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 2월 나폴레옹 등을 생산하는 해태앤컴퍼니를 인수, 제품 다양화와 사세 확장에 나섰다. 배사장은 “다른 주류 영역에 대해 도전 가능성을 열어놓는다는 의미”라고 인수배경을 말하고 “이 역시 한국을 대표하고 세계적인 명성을 얻는 명주를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덧붙였다.새해부터 본격 시판할 ‘삼겹살에 메밀한잔’에 거는 기대도 크다. 국순당의 ‘건강’ 이미지를 고스란히 담은 이 술은 특정 안주인 삼겹살과 음식궁합을 맞춰 좋은 반응을 이끌어낼 것으로 예상된다. 내년에는 이 제품만으로 120억원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신노사문화 우수기업’을 뽑힐 만큼 안정적인 노사관계도 국순당의 특징 가운데 하나다. 몇 년 전 배사장은 직원들이 업무가 아닌 직책을 기준으로 의사소통을 하는 것을 보고 사내 직급을 ‘사원-팀장-임원’으로 단순화했다. 최근에는 외부 기관에 기업문화진단을 맡기고 ‘개혁’을 담당할 태스크포스팀을 만들기도 했다. 또 매월 한차례 직원들과 저녁식사를 하며 백세주 잔을 기울이고, 두달에 한번씩 ‘아무 일이 없어도’ 노사협의회를 개최해 귀를 열어 놓는다. 이것도 모자라 사내 인트라넷을 열어두고 누구든 사장과 대화할 수 있게 했다. 배사장은 이런 장치들을 “출근하고 싶은 회사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라고 정리했다.술도가에서 태어나 누룩 냄새를 맡으며 자란 배사장은 술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운명이다. 그리고 이제는 2001년에 이어 ‘올해의 CEO’에 선정될 만큼 탁월한 경영인의 반열에 올랐다. 올 한해 언론과의 인터뷰를 극도로 자제했던 배사장은 “모든 성과가 변함없이 백세주를 사랑해주는 소비자 덕분”이라고 겸손해했다.<약력>1953년 대구 출생, 71년 서울 용산고 졸업, 78년 연세대 생화학과 졸업, 78년 롯데상사 무역부 입사, 80년 배한산업(국순당 전신) 입사, 93년 (주)국순당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