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인 출신 국회의원들은 현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여기저기서 경제가 어렵다고들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정작 국회는 조용하다는 말까지 들린다. 여야의 대표적 경제통으로 불리는 이계안 열린우리당 의원(52), 최경환 한나라당 의원(49), 김효석 민주당 의원(55)을 통해 무엇이 문제이고 개선할 점은 없는지 들어봤다.이계안 열린우리당 의원“경제, 우선순위에서 정치에 밀려”‘샐러리맨의 신화에서 국회의원으로’이계안 열린우리당 의원(동작을)을 설명할 때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수식어다. 현대자동차 CEO 출신인 이의원은 특히 화려한 기업인 경력 때문에 등원 때부터 언론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덩달아 국민들의 기대도 컸다. 세계적인 자동차회사로 우뚝 선 현대자동차 최고경영자 출신인 만큼 국회의원으로서도 우리 경제를 살리는 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이후 6개월. 이의원은 하루해가 짧게 느껴질 정도로 분주하게 의정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햇병아리 초선의원이지만 제3정책조정위원장이라는 중책을 맡아 여당과 정부의 정책조정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또 재경위와 여성위원회, 규제개혁위원회에도 적극 참여, 눈길을 끌고 있다. 선거 때 공약으로 내걸었던 것을 해결하는 데도 적극적이다. 특히 지역구인 동작을 관내에 위치한 국립현충원 외곽의 근린공원화 작업을 성사시키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그러나 이의원은 입술이 부르틀 정도로 열심히 뛰지만 아쉬움도 많다고 말한다. 아직 6개월여밖에 지나지 않아 17대 국회에 대해 평가를 내리는 것은 빠른 감이 있어도 경제전문가 출신 국회의원으로서 경제가 자꾸 어려워지는 것 같아 무거운 마음을 억누를 길이 없다는 것.“정치권이 제몫을 해 경제의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것이 시급한데 잘되고 있지 않습니다. 특히 입법활동과 예산편성을 통해 경제활성화에 적극 나서야 하지만 자꾸 꼬입니다. 경제인 출신 의원 입장에서 볼 때 국회가 제대로 일을 못하고 있는 셈이지요.”이의원은 자기반성을 하듯 국회가 일을 제대로 못하고 있음을 솔직히 인정했다. 여야가 대치하고 이념을 중시하다 보니 정치 우선으로 흐르고 경제를 챙기는 데는 소홀한 측면이 있다는 얘기다. 민생문제를 풀기 위해 꼭 필요한 법안들이 낮잠을 자는 경우가 있는데 이 역시 이와 관련이 깊다고 안타까워했다. 특히 그는 법안이 제대로 처리되지 않다 보니 행정부의 발목을 잡는 경우가 많다고 강조했다.기업들의 투자가 부진한 것도 정치권이 일부는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 이의원의 생각이다. 재정확대 등을 통해 기업의 투자를 유인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 이의원은 “기업들이 마음 놓고 투자를 할 수 있도록 정치권의 더욱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국회의 관심은 여전히 정치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래서는 경제를 살리는 문제에 적극 나서기가 쉽지 않지요. 경제위기의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고 당장 무엇을 해야 하는지 더욱 깊게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또 이의원은 분배와 관련, 뼈 있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는 “정치적 진보와 경제적 진보는 크게 다르다”며 “경제적 진보의 경우 기회균등으로 끝내야지 이를 결과의 균등까지 확대해서는 곤란하다”고 주장했다.이의원은 향후 저출산, 노령화 문제를 푸는 데 힘을 쏟을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국가경쟁력을 크게 위협하는 핵심요소로 떠오르고 있는 만큼 자신부터 이에 적극 매달릴 각오를 다지고 있다는 것이다. 성장잠재력을 확충하고 미래 성장동력을 찾아야 하는 시점에서 저출산과 노령화는 치명적이라는 생각에서다.최경환 한나라당 의원“집권당 정국기조 바뀌어야”“생산적인 국회를 만들기 위해서 경제 전문가 출신인 의원들이 나름대로 애를 쓰고 있지만 이런 노력이 항상 정국운영 기조에 함몰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재정경제원과 청와대 비서실 등을 거친 경제관료 출신으로 17대 국회를 통해 처음 의정활동을 시작한 한나라당 최경환 의원(경산ㆍ청도)은 지난 6개월여간의 의정활동에 대해 이 같은 소회를 밝혔다.최의원은 국회 파행운영에 쏟아지는 여론의 비판에 대해 “집권당의 정국기조가 바뀌지 않는 한 민생현안과 경제정책이 정쟁에 함몰되는 고질적인 병폐는 쉽게 고쳐지기 어려울 것”이라는 회의론을 폈다. 경제를 잘아는 의원들간에는 당적을 초월해서 경제대책에 대해 상당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지만 이념갈등이 지속되면서 이들이 제 목소리를 낼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최의원 자신도 최근 의원 총회에서 다른 의원들보다 더 강경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혼탁한 정치판에서 전문가들이 중심을 잡기가 그만큼 쉽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최의원은 17대 총선에서 국민들의 바람은 정쟁을 지양하고, 생산적 정치를 해 달라는 것이었지만 진실로 생산적인 정치와 의정활동이 이뤄졌는지는 회의적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정부와 여당이 정치적인 전략전술 차원에서 자기 색깔에 모든 걸 맞추려 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우선 현재의 경제상황에 대한 인식부터 잘못됐다는 지적이다. 최의원은 현 상황이 60년대 경제개발 이후 가장 어려운데 정부와 여당은 현 상황을 위기로 보지 않는다고 질타했다. 현 상황을 위기로 인정하면 개혁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나올 것을 우려해 이를 부인하는 것 같다는 지적도 함께했다.경제위기의 원인에 대해서는 “정부 노선에 문제가 있어서 경제주체들이 불안감을 느끼기 때문에 기업은 투자를 안 하고, 여력이 있는 계층은 소비를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따라서 경제주체가 열심히 뛰는 것을 가로막는 현 정권의 경제운영 철학과 정책기조를 바꾸지 않고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생각이다. 야당에서 이 같은 메시지를 계속 보내고 있는데, 정부와 여당은 이를 색깔 공세로만 받아들인다는 불만도 토로했다.자신을 포함한 경제인 출신 국회의원들의 의정활동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는 열심히 하고 있으며 자신도 국회의원이 되고 난 후 근무강도가 예전보다 훨씬 더 높다고 말했다. 하지만 성과는 별로 없는 것 같다며 유감을 표했다.“소수야당은 힘이 없고 열린우리당 내부의 경제의원들은 자신들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구조에 무기력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친경제적인 법안을 내도 청와대 앞에서 퇴짜를 맞고 되돌아오니 어쩔 수 없는 상황이죠.”최의원은 경제인 출신 의원들의 생각이 정국운영 시스템에 함몰이 되는 구조를 문제로 지적했다. 따라서 “집권당이자 단독 과반수 당인 열린우리당이 이념싸움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경제인 출신 의원들의 목소리를 반영할 해결책은 없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최의원은 경제인 출신 의원들간의 공조 강화를 통한 영향력 확대에 대해서도 어려움을 호소했다.“열린우리당의 경우 당내 386세력을 설득해 컨센서스를 구축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잘못하면 재벌을 비호한다고 매도되기 일쑤죠. 현재 모든 정책은 청와대의 각종 위원회에서 결정되는 실정입니다. 그래서 횡적 연대를 통한 협력에는 개별적으로 수긍하다가도 당내 분위기에 몰려 항상 고개를 숙이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습니다.”의회와 정치시스템을 바꾸라는 국민적 요구는 높지만 정국운영 기조에 함몰되지 않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최의원은 “이념 과잉을 주도하는 세력들의 힘이 어느 시점에서는 약화될 것”이라며 “그때는 경제인 출신 의원들의 역할이 좀더 강화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섞인 관측도 내놓았다.김효석 민주당 의원“경제인 출신 아직도 부족”“늘 정책 중심의 국회운영을 이야기하지만 정치세계에서는 어쩔 수 없이 정치논리가 앞서기 마련입니다. 또 경제인 출신 국회의원들이 많이 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 그 숫자가 절대적으로 소수이기 때문에 제목소리를 내는 데 한계가 있다고 봅니다.”새천년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을 맡고 있는 김효석 의원(담양ㆍ곡성ㆍ장성)은 정치논리가 항상 우선시되는 현재의 정치판에서 경제인 출신 의원들이 목소리를 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김의원은 “당리당략을 좇아 국민을 담보로 정쟁을 일삼는 정당은 결국 역사와 국민의 심판을 받게 돼 있다”며 “앞으로는 이념논쟁을 줄이고 실용적인 국회가 돼야 하는데 아직은 이념과잉의 시대가 이어지고 있다”고 개탄했다.“17대 국회는 국민의 준엄한 심판 위에서 탄생했습니다. 16대와는 다를 것이라는 기대가 컸지만 결국은 당리당략과 정쟁에서 크게 달라진 것이 없어 아쉬울 따름입니다.”김의원은 현재의 경제상황에 대해 경기 양극화가 심각하고, 대기업이 투자를 하지 않으니까 일자리가 부족하다는 점이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 가계부채가 가구당 3,000만원에 달하고, 신용불량자 숫자가 360만명에 달하면서 소비에 문제가 생겨 내수가 위축된데다 국민들이 심리적으로 불안을 느끼는 것도 큰 문제라고 밝혔다. 김의원은 특히 “정부와 여당이 국가보안법 폐지 등 4대 개혁을 추진하면서 여야갈등이 심화돼 국민들이 불안을 느끼는 것이 경제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고 강조했다.“경제심리 안정을 위해서 개혁과 안정을 같이 추진해야 합니다. 정부는 이를 말로만 하고 있는데 사실 국보법 폐지나 과거사 규명이 안돼 고통받는 사람보다 일자리가 없어서 고통받는 사람이 훨씬 많습니다. 민생 다음에 개혁을 생각해야 합니다.”김의원은 현재 개혁에 따른 국민적 갈등이 심각한데 국민의 힘을 모을 수 있는 리더십이 발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의 상황은 경제정책만으로 풀기에는 한계가 있고 통합적인 리더십을 통해 안정을 이루는 것이 급선무라는 지적이다.경제인 출신 의원들의 활동이 정쟁에 매몰되고 있는 점에 대해서는 국회가 정책 중심으로 운영돼야 한다고 말은 하면서도 언론이나 일반 국민들이 흥미 위주의 정쟁에 더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개탄했다. 결국 정치인은 이미지와 대중적인 관심을 중시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정책에 대한 관심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경제인 출신 의원들도 정책으로 승부를 가리려 하면서도 이 같은 여건 때문에 한계를 느낀다고 지적했다.김의원은 현 정부를 두고 좌파, 우파를 따지는 것도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현 정권이 들어선 후 부동산가격이 150조원이나 올라 소득격차가 더 벌어지고 경제난으로 결식아동이 크게 늘고 있는데 이게 무슨 좌파정권이냐고 반문했다.현재 국회 현황과 관련, 경제인 출신 의원들이 나름대로 자신들의 지식과 경험을 활용해서 열심히 하고는 있지만 아직은 그 숫자가 너무 적다는 의견을 펼쳤다. 이른바 임계질량(Critical Mass)에 이르지 못해서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경제인 출신 의원들이 당적을 떠나서 경제정책 방향에 대해 서로 공감하는 부분이 많고 연구회 등을 통해 서로 컨센서스를 모아서 당 지도부를 설득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소개했다.현 위기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해법과 관련, 우선 단기적으로 어려운 사람을 도와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1,000만원 이하의 소액 신용불량자에 대해서는 정부가 인턴십을 마련해 빚을 갚을 기회를 주는 등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경기활성화를 위해 국채를 발행해서라도 민간 대신 정부가 투자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현재 정부가 한국판 뉴딜을 추진하고 있지만 방향이 틀렸다는 지적도 했다. 당장 도로공사 몇 건 해서 건설경기는 부양될지 모르지만 그것보다 새로운 성장동력을 키우는 것이 더 시급하다는 지적이다.김의원은 “젊은이들의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서 성장성 높은 산업육성에 투자를 하는 것이 옳다”고 밝혔다. 특히 성장동력산업과 관련, “전통산업에서도 경쟁력 있는 혁신기업을 선별해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