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물ㆍ이론 겸비한 금배지 거의 40여명 달해

제17대 국회의 최대 이슈는 뭘까. 이해관계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절대다수는 ‘경제위기 해법 제시’일 확률이 높다. 사상 초유의 불황 그늘에 ‘먹고사는 문제’를 둘러싼 위기감이 어느 때보다 높아진 결과다. 실제로 299명의 민생 대표선수에게 맡겨진 불황타개책 마련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그럼에도 불구, 이들의 성적표는 낙제점 수준이다. 여야 모두 마찬가지다. 파행국회라는 맹비난 속에 경제ㆍ민생문제는 해법창출이 요원한 과제로 분류될 정도다. 특히 경제통 국회의원에 대한 실망감은 더 높아보인다. 선거 당시 그 누구보다 ‘경제를 살리겠다’는 슬로건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회입성 반년이 지난 현재 이들에 대한 기대감은 실망감으로 변질됐다. 경제통은 수면 아래로 잠수했고, 경제관련 법안은 표류한 지 오래다.물론 나름의 사정은 있다. 이론과 현실간의 차이가 소신발언을 막을 수도 있다. 대표적인 게 ‘신행정수도’ 갈등이다. 팽팽한 기싸움 끝에 이 건은 국론분열의 상징적인 사례로 남게 됐다. 경제회복은커녕 되레 정치가 경제 발목을 잡은 셈이 됐다.그렇다고 벌서부터 후회하기는 이르다. 단정적으로 실망할 필요도 없다. 아직은 기회가 있어서다. 이론, 현실, 그리고 말, 행동의 자가당착(自家撞着)적 딜레마는 국회 초기의 미숙, 혼돈으로 이해할 여지가 있다. 불황지속, 저성장구조의 진입은 향후 경제통의 역할이 더 강조됨을 뜻한다. 그만큼 경제전문가로서의 능력을 발휘할 여지가 충분하다.경제통 국회의원은 크게 세 부류로 나뉜다. 우선 관료 출신이 있다. 관료 출신 경제통은 열린우리당에 대거 포진해 있다. 핵심 경제부처의 수장 출신도 수두룩하다. 강봉균, 김진표, 홍재형 의원 등 경제부총리를 역임한 인물만 3명이다. 강의원은 한양대 경제학 박사로 정통부와 재경부 장관, KDI 원장을 거쳤다. 홍의원은 현직 여당 정책위의장으로 알짜 요직을 두루 경험했다. 재무부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해 관세청장과 외환은행장을 거쳤다.초고속 승진으로 참여정부 1기 경제부총리를 지낸 김의원은 지난 4월 총선에서 관료생활을 접고 정계 데뷔에 성공했다. 이밖에도 여당에는 장ㆍ차관 출신이 수두룩하다. 정덕구(산자부)ㆍ안병엽(정통부) 의원 등이 장관을, 강길부(건교부)ㆍ변재일(정통부) 의원 등이 차관을 지냈다. 경희대 경영학 박사인 정세균 의원은 쌍용그룹 상무 출신이다.한나라당의 관료 출신 경제통 비중은 열린우리당보다 한수 아래(?)다. 고위 경제관료 출신의 면면이 생각보다 적다. 업계(대경컴퓨터 회장)로도 분류 가능한 박종근 의원이 경제기획원 차관 출신으로 비교적 고위직 경험이 있다. 4선인 이강두 의원은 경제기획원 예산국장 출신이다. 2선ㆍ대변인인 임태희 의원은 재경부 산업경제과장을, 이종구 의원은 금감위 상임위원을 거쳐 국회에 들어왔다. 한편 무소속인 신국환 의원은 공업진흥청장과 산자부 장관을 끝으로 금배지를 달았다. 특히 산자부 장관만 2번을 맡은 것으로 유명하다.업계 출신 의원도 경제통을 구분하는 중요한 부류다. 이들은 실물경제에 대한 탁월한 안목과 오랜 경험을 강점으로 내세운다. 실제로 경제이슈를 둘러싼 그간의 고질적 탁상공론에 질린 풀뿌리 민심의 지지로 CEO 출신 입후보자가 대거 당선됐다. 열린우리당에서는 이계안 전 현대캐피탈, 현대카드 회장이 대표적인 CEO 출신 의원으로 꼽힌다. 이의원은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후 현대그룹에서 잔뼈가 굵었으며, 현대자동차 사장을 지낸 대표적 전문경영인 출신이다. 현재 열린우리당 제3정조위장이다. 국민회의 부총재로 얼굴이 알려지기 시작한 3선의 유재건 의원은 영풍 사장 출신이다. 법학 박사, 변호사로 DJ와 인연을 쌓았을 만큼 독특한 경력의 소유자다. 김맹곤 의원은 명진철강과 경상남도개발공사 사장을, 한광원 의원은 세무사로 인일회계법인 이사를 맡기도 했다.한나라당에도 CEO 출신 의원은 적잖다. 13대부터 내리 5선을 기록 중인 이상득 의원이 대표주자다. 이의원은 코오롱 사장을 거쳐 정계에 입문했다. 현재 한나라당의 경제대책특별위원장이다. 정치거물이었던 김윤환 전 의원의 동생인 김태환 의원도 CEO를 오랫동안 했다. 금호재팬, 금호피앤피화학 사장 출신으로 현재 건교위에 소속돼 있다. 부산대를 나온 김양수 의원은 중견 건설업체인 유림건설의 창업주다. 중부지방 국세청장을 지냈던 김정부 의원은 서안주정의 CEO로 활동했다.앞서 관료 출신에서 언급한 박종근 의원은 대경컴퓨터 회장이었다. 심재엽 의원은 삼로악기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박사이면서 CEO였던 의원도 있다. 서병수 의원은 북일리노이주립대 경제학 박사로 우진서비스 CEO 출신이다. 한편 무소속 정몽준 의원은 현대중공업의 실질적인 오너다. 대선출마와 함께 고문 직함마저 버렸지만 주요주주로서 경영활동에 참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정책대결은 결국 아이디어 싸움이다. 각 정당이 정책개발을 위한 싱크탱크를 당 내외에 경쟁적으로 설치하는 건 이 때문이다. 이중 몇몇은 아예 국회입성을 통해 이론을 현실에 접목시키고자 출사표를 던진다. 17대 국회는 싱크탱크의 국회도전이 그 어느 때보다 활발했다. 결과도 좋았다. 학자 출신 의원 규모가 사상 최대 수준이다. 정당인, 법조인, 언론인에 이어 또 하나의 주류 그룹으로 학자 출신이 부각된 셈이다. 원내 진입에 성공한 경제학자 비중은 열린우리당보다 한나라당이 더 높다. 특히 한나라당에는 학계에서 주류로 꼽히는 정통파 경제학자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열린우리당 우제창 의원은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후 2000년 옥스퍼드에서 중국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통화안정성에 관심이 많으며 일본, 중국, 대만 등에서 객원연구원 생활을 한 뒤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를 맡았다. 김교흥 의원은 동국대에서 박사(수료)를 한 뒤 중소기업연구원 원장을 역임했다. 중소기업의 경쟁력 제고 문제에 높은 식견을 가진 것으로 평가받는다. 채수찬 의원은 펜실베이니아에서 경제학 박사를 땄다. 라이스대 경제학과 종신교수 타이틀을 갖고 있으며, IMF 위기 당시 대통령자문으로 귀국해 정계에 입문했다. 최근 KAIST에서 게임이론을 강의할 만큼 학문적 배경이 튼실한 것으로 전해진다.한나라당에 둥지를 튼 경제학자 출신 국회의원 중에는 걸출한 인물이 많다. 일단 여의도연구소장을 역임한 박세일 의원의 중량감이 돋보인다. 탄탄한 학문적 성과를 바탕으로 경실련 등에서 활발히 활동했으며, 당내에서의 지명도도 높다. 코넬대 경제학 박사로 서울대 교수를 오랫동안 역임했다. 여성경제학회장을 지낸 김애실 의원은 비례대표 1번을 받을 만큼 한국의 대표적 경제학자다. 한국 최초의 여성경제학자로 26년간 강단에 섰다. 하와이대 경제학 박사로 외국어대 경제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윤건영 의원의 이력도 백중지세다. 하버드에서 경제학 박사를 딴 후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와 경제연구소장을 지냈다. 정치보다 정책을 강조하며 최근의 빅 경제이슈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역시 한나라당 경제정책의 중심축은 이한구 당 정책위의장으로 쏠린다. 당의 핵심 브레인 역할을 맡고 있으며, 지난 대선구도를 정책대결로 바꾸자고 할 만큼 능력과 경륜을 갖춘 인물로 평가받는다. 캔자스주립대에서 경제학 박사를 취득한 후 청와대, 재무부 등에서 근무했다. 그가 학계로 분류되는 가장 큰 이유는 대우경제연구소를 이끈 경험 때문이다. 재론의 여지는 있지만 그의 재임시절 대우경제연구소의 학문적 성과에 높은 점수를 주는 사람이 적잖다.경제학자로서 이혜훈 의원의 평가도 좋다. UCLA 경제학 박사로 OECD 한국대표와 레스터대 경제학 교수를 역임했다. 재벌정책 전문가인 유승민 의원도 유명하다. 지난 대선 당시 한나라당의 경제공약 중 상당수에 관여했다. 이주호 의원은 코넬대 경제학 박사로 한국여성개발원과 KDI를 거쳤다. 최경환 의원은 위스콘신대 경제학 박사로 행정고시를 거쳐 청와대 보좌관과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으로 활동했다.한편 민주당 당적을 지닌 경제학자로는 4선의 김종인 의원이 첫손에 꼽힌다.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으로 더 잘 알려졌지만 사실은 학자 출신이다. 뮌스터대에서 경제학 박사를 땄으며, 서강대 교수를 거쳐 건국대 경제학과 석좌교수로 활동 중이다. 국민은행 이사장과 보사부 장관을 역임했으며, 원로경제인 중 가장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조지아대 경영학 박사인 김효석 의원은 중앙대 교수 출신이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장을 맡기도 했다.돋보기 열린우리당 vs 한나라당 ‘경제통 핵심브레인’정책대결, 화려한 경력만큼 ‘성과는 글쎄’열린우리당, 한나라당의 경제 관련 핵심채널은 모두 정책위의장으로 귀결된다. 고위당직자 중 경제통의 상위정점이 정책위의장인 셈이다. 실제로도 양당의 경제정책은 정책위 논의를 거쳐 최종 발표되는 게 일반적이다. 양당 모두 정책위의장은 최고의 경제통이 맡고 있다. 홍재형 열린우리당 정책위의장은 경제부처를 두루 섭렵한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다. 반면 이한구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은 관료, 학계, 업계를 고루 경험했다.열린우리당 = 핵심당직인 원내대표(천정배), 당의장(이부영), 정책위의장(홍재형), 대변인(박영선 외) 중 경제전문가는 홍재형 정책위의장이 유일하다. 홍의원은 관료계 당직자 중 돋보이는 경제통이다. 서울대 상학과 졸업 후 재무부에서 관료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관세국장을 거쳐 관세청장, 재무부 장관, 경제부총리 등 핵심요직을 두루 거쳤다.정책의 기본뼈대를 구축하는 정책위 안에는 경제전문가가 적잖이 포진해 있다. 우선 원혜영 수석부위원장은 풀무원식품의 경영자 출신으로 현실문제에 관심이 많다. 이계안 제3정조위장은 현대캐피탈, 현대카드 회장을 끝으로 정계에 입문한 CEO 출신 경제전문가다. 76년 현대중공업에 입사한 이래 줄곧 현대맨으로 살아왔다. 안병엽 제4정조위장은 행시 출신으로 경제기획원, 재경원을 거쳐 정통부 장관을 역임했다. 결국 정조위장만 놓고 보면 관료, 업계 출신이 고루 요직을 맡고 있다는 얘기다.다만 여당 경제통에 대한 평가는 비교적 냉혹하다. 화려한 경력만큼 이렇다 할 성과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일각에서는 “여당에 경제통은 없다”는 식의 혹평까지 내린다. 경제문제까지 좌ㆍ우파적 논리로 재단하니 전문성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고 봐서다. 실제로 최근 경제이슈와 관련한 당내분열과 해법혼선이 심각한 지경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 당 정체성과 어긋나는 감세논의가 대표적이다. 경제통 의원들이 입조심에 나선 건 이 때문이다. 당선 초기와는 달리 언론 인터뷰도 눈에 띄게 줄었다. 소신껏 얘기하면 반개혁의원으로 몰려 호된 비판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감이 짙은 상황이다.한나라당 = 당직자 중 경제인 비중은 여당과 비교해 뚜렷한 차이가 없다. 정책위의장(이한구)을 제외한 고위당직자 중 이렇다 할 경제인 출신은 거의 없다. 대표최고위원(박근혜), 원내대표(김덕룡), 사무총장(김형오), 대변인(전여옥 외) 등 당 지도부는 경제와 무관한 분야의 전문가그룹이다. 3명의 정책위 부의장(박세환ㆍ양경자ㆍ이주영)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단 임태희 대변인은 행시 출신의 경제관료로 분류가 가능하다. 재무부의 핵심요직을 두루 거쳤고, 옥스퍼드대에서 객원연구원을 역임하기도 했다.정조위에는 경제통이 절반 가량 위원장 직함을 갖고 있다. 6명의 정조위장 중 2명이 경제계로 분류되고 있다. 유승민 제3정조위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한나라당의 경제통이다. 위스콘신대에서 경제학 박사를 했고, 귀국 후 KDI 선임연구위원을 역임했다. 한때 여의도연구소장을 맡기도 했다. 최경환 제4정조위장은 행시합격 후 경제부처 관료생활을 거쳤다. 유럽부흥개발은행과 청와대 등에서 경제이슈를 맡았다.한나라당 경제통의 입지는 여당보다 월등히 유리한 입장이다. 경제위기라는 특수성에서 비교적 자유로운데다 야당 프리미엄까지 톡톡히 보고 있다. 최소한 한나라당 내에서 경제정책을 둘러싼 혼선은 없어 보인다는 게 정설이다. 지지기반인 보수ㆍ재계를 등에 업고 이에 기초한 경제 관련 정책입안에 전력투구하고 있다. 사회분위기와 외부환경이 한나라당 쪽에 기울긴 했지만 그렇다고 이들의 정책입안 점수가 합격점인 건 아니다. 비자발적인 비교우위를 내세워 국론분열을 조장한다는 비난도 많다. 이른바 반대를 위한 반대가 심하다는 평가다. 열린우리당 모 관계자는 “한나라당은 정부의 경제정책에 F 학점을 주기 전에 자신들의 경제정책이 과연 실효성이 있는지에 대해 먼저 논의해야 한다”고 역공했다. 따라서 한나라당 경제통의 태생적 한계인 성장지상주의 및 보수주의적 경제관에 대한 견제 필요성도 일견 설득력이 높은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