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역사에만 50여가지 업종의 600여개 점포 포진… 신도림역 점포 월임대료 2천만원

‘1일 유동인구 800만명.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다양한 소비자 계층을 가깝게 만날 수 있는 곳.’누구나 한번쯤 창업을 꿈꾸는 요즘이기에 이런 곳이 있다면 새로운 사업에 대한 구상이 마구 쏟아지지 않을까.이 같은 조건을 갖춘 상업지구. 그곳은 바로 지하철 역사(驛舍)다. 지하철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상가를 이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지금 한국의 지하철 역사에는 다양한 업종의 점포가 개설돼 있다.특히 이런 경향은 서울을 중심으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서울의 지하철은 관장 부서에 따라 크게 1~4호선과 5~8호선으로 나뉜다. 이중 1~4호선을 맡고 있는 서울지하철공사에 따르면 현재 이 구간 지하철 역사 내에 개설된 점포는 지난 연말 기준으로 총 496개다. 여기에 서울도시철도공사가 담당하는 구간인 5~8호선 구간의 102개 점포까지 합하면 600여개의 점포가 지하철 승객을 대상으로 영업을 하고 있는 셈이다.지하철역 상가의 역사는 지난 7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호선 9개 역사에 11개의 점포로 시작한 당시만 해도 대부분 스낵코너로 업종도 한정돼 있었다. 하지만 2호선이 개통된 86년에 238개의 상가가 조성되면서 본격적인 지하철 상가시대가 열리기 시작했다.점포수만 600여개에 이르는 요즘은 업종도 50여가지나 된다. 그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은 의류로 30~40%에 이른다. 그밖에도 신발, 액세서리, 화장품 등 잡화류와 먹을거리 등이 판매된다.역사가 긴 만큼 운영방식에서도 달라진 점이 있다. 초창기 공개추첨으로 진행됐던 계약자 선정은 지난 2001년부터 공개경쟁입찰 방식으로 바뀌었다.지하철 역구내 점포들은 저가 제품을 판매하는 영세한 점포들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매출액 등 수입을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렵다. 더욱이 업종과 유동인구의 차이에 따라 매출실적이 현격히 달라진다.하지만 경쟁입찰 과정에서 임차인들이 제출한 희망임대료를 살펴보면 대략적인 계산이 나온다. 현재 1~4호선 구간에서 가장 임대료가 저렴한 곳은 4호선 동작역에 있는 점포다. 월임대료가 8만5,000원에 불과하다. 반면 1호선과 2호선의 환승역인 신도림역에 있는 화장품가게의 경우 월임대료가 2,529만원으로 가장 비싸다. 흥미로운 것은 이 점포 업주의 경우 경쟁입찰 방식이 도입되기 전에 이미 매월 980만원의 임대료를 서울지하철공사측에 지불하며 같은 자리에서 3년간 영업을 해 왔다는 점이다. 박윤호 지하철공사 상가과장은 “바로 그 주인이 적어낸 임대료가 월 2,000만원이 넘는다는 게 모든 것을 말해주지 않느냐”며 “업주로부터 하루 매출이 약 400만원 정도 된다고 들었다”고 말했다.5~8호선의 경우 유동인구가 적어 매출실적은 그리 좋지 못한 편이다. 시공단계에서부터 승객편의시설을 고려해 역사를 지은 5~8호선은 역구내 공간활용이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유동인구가 1~4호선의 60%에 불과한 만큼 각 점주들이 얻을 수 있는 수입은 상대적으로 적다.지하철 상가의 경제적 의미는 크게 두 가지다. 점포를 개설하는 사람들에게는 일종의 일자리 창출을 해주는 통로가 된다. 또 서울지하철공사나 서울도시철도공사 입장에서는 중요한 부대사업 중 하나다. 지난해 서울지하철공사의 상가수입은 400억원, 서울도시철도공사의 상가수입은 79억6,000만원에 이른다.역 주변 경제적 가치도 높아져지하철은 지하철 공사의 부대사업 차원을 넘어서 다양한 쇼핑몰 구축의 징검다리가 된다는 점에서 상업지구로서 의미를 지닌다.지난 2000년에 문을 연 코엑스몰은 2호선 삼성역과 연결된 종합쇼핑몰이다. 역시 2000년에 생긴 센트럴시티도 3호선과 7호선 환승역인 고속버스터미널역과 연결돼 있다. 이 두 공간은 지하철을 자주 이용하는 중ㆍ고ㆍ대학생들이 즐길 수 있는 신세대 타깃의 점포들이 다양하게 입점해 있다.또한 지하철로 인한 역세권 개발이라는 또 다른 경제효과와도 맞물린다. 지하철역이 들어서는 곳이 활발히 개발되고 따라서 땅값이 오른다는 것은 이제는 정설이 됐다. 여기에 역세권 개발은 서울지하철공사와 서울도시철도공사의 또 다른 부대사업으로서의 의미도 있다. 양사는 모두 지난 연말에 사업개발실을 신설했다. 서울지하철공사의 경우 지난 1월 말에 대리급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한 2004년 현안 세미나에서 홍콩 지하철 사례가 언급되기도 했다. 홍콩 지하철공사는 호텔, 백화점 등 부동산 임대사업을 벌여 흑자경영을 유지하고 있다.지하철의 상권을 이야기할 때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열차나 역구내에서 개인단위로 장사를 하는 상인들이다. 이는 불법임에도 불구하고 공공연히 이뤄지고 있다.전동차 내 상인들은 아예 조직적으로 움직이기까지 한다. 이들은 지정 역사에 모여 순번을 정한 뒤 각자 정해진 차량을 타도록 돼 있다. 따라서 한 전동차에 두 명의 상인이 동시에 타는 일은 거의 없다는 것. 또 역구내에서는 먹을거리나 액세서리를 파는 상인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2호선 신촌역에서 김밥을 파는 김모씨는 “살길이 막막해서 조금씩 만들어 팔기 시작한 게 벌써 7년째를 맞았다”며 “오전에는 역사에서 장사를 하고 오후에는 배달 주문을 받는다”고 말했다.한편 서울 이외에 부산, 대구 등 각 지방 지하철은 아직까지 서울처럼 상권이 발달한 모습은 아니다. 역사가 서울보다 작게 지어져 상가 조성에 있어 안전문제를 좀더 심각하게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대구는 지난해 참사 이후 부대사업보다는 안전문제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돋보기 | 유통도 바꾼다모닝365 vs 델리만쥬평소 인터넷서점을 자주 이용하는 회사원 장은영씨(28)는 책을 구매한 뒤에는 꼭 지하철역에 들른다. 배송료를 아끼기 위해 지하철역 배송방식을 애용하기 때문이다. 장씨가 자주 찾는 인터넷서점인 모닝365는 주문상품을 지하철 역구내에서 받아볼 수 있는 해피샵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책을 집에서 받아보는 대신 해피샵이라는 부스가 있는 지하철 역구내에 직접 가서 찾아오는 방식이다.이 업체는 지난 2001년 5월에 문을 열었다. 이 회사 관계자는 “해피샵 서비스를 위해 쇼핑몰 구상 이전부터 서울지하철공사와 독점계약을 진행해 왔다”며 “해피샵 이용고객의 경우 특히 충성도가 높다”고 자랑했다.현재 해피샵은 수도권 25개 역구내에 들어서 있다. 이곳에서 고객이 책을 받아갈 경우 구매금액에 따라 최고 2,000원의 할인혜택을 받을 수 있다. 최근에는 책 배송지로서의 역할뿐만 아니라 광고창구로까지 활용되고 있다. 2003년 상반기까지 신용카드회사나 도서 관련 상품 취급업체의 광고물을 게시하던 데서 발전돼 지난 연말부터는 각종 문화행사 홍보창구로까지 활용하고 있다고 회사측은 밝혔다. 지하철 배송이라는 새로운 유통창구를 통해 사업다각화까지 이룬 셈이다.델리만쥬로 유명한 델리스 역시 지하철 역구내를 집중 공략해 성공한 케이스다. 프랜차이즈업체인 델리스는 커스터드크림을 넣은 간식거리 델리만쥬를 판매한다. 지하철 역구내에만 90개의 가맹점을 열었고 백화점과 할인매장 등에서 150여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 98년 10월 수서역에 문을 연 것을 시작으로 지하철과 국철 구간에 빠르게 점포를 개설하기 시작했다. 이를 바탕으로 해외수출길까지 열었다. 99년에 미국 애틀랜타에 첫 진출한 뒤 미국, 중국에는 아예 현지법인을 세웠다. 2002, 2003년에는 각각 말레이시아와 그리스에도 점포를 개설하는 성과를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