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국내 경제 이슈 관련 기사에 자주 등장한 어구 중 하나가 ‘정부개입’이다. 부동산, 신용카드 등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일수록 정부의 개입은 적극적이었다. 하지만 이 같은 정부개입은 불필요한 조치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국하이에크소사이어티는 개인의 책임과 판단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경제질서는 자율적인 경쟁에 맡겨 놓으면 저절로 해결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하이에크소사이어티란?한국하이에크소사이어티는 지난 1999년 가을에 설립된 학회다. 오스트리아 태생의 영국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폰 하이에크(1899∼1992)의 자유주의를 중심으로 자유시장경제를 연구한다. 원래 학회 설립 이전에도 하이에크의 자유사상에 관심이 있는 지식인들끼리 자주 모임을 가졌었다. 그러던 중 월간 <에머지> 전 편집인인 강위석씨가 제안해서 공식 학술모임으로 발전시켰다. 강위석씨와 민경국 강원대 경제무역학부 교수 등 10여명이 뜻을 함께했다. 3년 남짓 된 현재 60여명이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케인스 vs 하이에크최근에야 경제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우리나라 경제교육은 그간 아주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러 왔다. 따라서 우리나라 초ㆍ중ㆍ고등학생들이 교과과정을 통해 배우는 경제체제는 크게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두 가지 카테고리다. 그중 ‘우리나라는 자본주의를 채택하고 있다’는 정도가 학교교육을 통해 배우는 경제학의 수준이다.현재 국내 경제 현실에 적용 중인 자본주의는 엄밀히 말해 케인스의 수정자본주의다. 애덤 스미스의 자유방임주의로 대표되는 시장경제체제는 지난 1920년대 대공황 시기를 맞아 쇠퇴했다. 이후 케인스가 주장한 수정자본주의가 힘을 얻게 됐다. 즉 정부의 규제를 인정하는 규제자본주의 시대를 맞게 된 것이다.이제 계획경제체제인 사회주의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국가들도 행정부의 기능이 강화돼 정부의 간섭을 막을 수 없는 상태가 됐다. 하지만 정부의 과도한 간섭이 오히려 시장의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다. 더욱이 사회주의를 채택한 국가들이 잇따라 붕괴되면서 정부 역할에 대한 혼란이 일었다.이렇게 해서 나온 것이 하이에크의 자유시장경제론이다. 이 학회는 신자유주의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하이에크의 철학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1940년대에 하이에크는 “사회주의 계획경제는 실패한다. 개인의 자유와 시장질서를 회복시키는 것만이 인류를 구원하는 길”이라며 사실상 애덤 스미스의 고전적 자유주의 경제이론을 되살린 신자유주의를 주창했다.하이에크는 또 민영화, 규제개혁, 작은 정부, 연금개혁, 노동시장의 유연화 등에서 실천적 근거를 찾았다. 따라서 이 학회는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지 않으면 한국 경제는 미국 경제처럼 성장하다가 일본 경제처럼 추락하고 독일 경제처럼 망할 것”이라고 주장한다.결국 하이에크 경제학을 따르는 이 학회 회원들은 현재 우리나라에서 발생하고 있는 여러 경제문제들이 자유시장경제가 아닌 수정자본주의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야기된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셈이다. 특히 우리 경제의 고질병인 정경유착이나 지난해 주요 이슈였던 노조문제는 자유시장경제하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문제라고 설명한다.예컨대 자유시장에서는 어떤 업종이든 많은 업체들이 경쟁력 유무로 성패를 결정짓는다. 하지만 정부는 ‘시장실패’라는 이유를 들어 경제에 개입하고 있다. 이로 인해 업체들은 정부규제를 뚫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뇌물을 들고 정부기관을 찾게 된다는 것이다. 또 노동조합은 독점적 지위를 추구해서 생겨난 것이기 때문에 자율경쟁을 추구하는 노동시장 경제체제에서 어긋나 있다는 설명이다.어떤 활동 전개하나 ?한국하이에크소사이어티는 지난 1월5~10일 경기도 안성 한국표준협회 연수원에서 제4기 대학생캠프를 마련했다. 지난 2002년 여름부터 시작된 이 캠프는 매년 두 차례 열리는 행사다. 신청한 대학생 중 일부를 선발해 하이에크 경제학을 5박6일간 숙박하며 배울 수 있게 하는 자리다.이번 겨울캠프에는 100여명의 학생들이 참가했다. 특히 이번 행사에서 각 조별로 가진 주제발표는 상당 수준이었다는 게 행사에 참석한 학회 회원들의 평가다.특히 대학생 스스로 하이에크의 이론을 현실적인 문제와 연관지을 수 있게 된 점도 이번 행사의 성과라는 게 학회측의 주장이다.조별 주제발표는 전체 8개조로 나눠 진행됐다. 도서정가제, 청년실업, 한ㆍ칠레 FTA 등 현실적인 문제들이 각 조의 토론의 주제로 쏟아져 나왔다. 1등을 한 3조의 경우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번호이동성 문제를 다뤘다. ‘브랜드 가치는 노력에 의해 얻어지는 정당한 가치’이며 ‘정부가 독점규제를 이유로 시장에 개입할 경우 오히려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게 이들의 결론이었다. 즉 과다한 마케팅 비용을 발생시킨다든지 또는 의무기간이 부활해 소비자의 족쇄로 작용하는 현상 등이 정부가 생각지 못한 부작용이라고 참가 대학생들은 주장했다.이 학회는 자유시장경제를 일반에 널리 알리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이 학회의 회장인 김영용 전남대 경제학부 교수는 “이른 시간 내에 자유주의에 바탕을 둔 사물인식이 일반인들 사이에 자리잡도록 하는 것이 학회의 목표”라고 말했다. 대학생캠프를 여는 것도 미래의 지도세력인 대학생들이 자유시장경제를 이해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다.한국하이에크소사이어티의 주요 활동은 자유주의 연구서적을 발간하고 매년 자유주의 심포지엄을 여는 일이다. 매월 자유주의 월례 세미나를 열고 있으며 대학생과 언론인을 대상으로 한 캠프를 정기적으로 개최하고 있다.지난해 말에는 고등학생 경제논술대회를 열었다. 즉 하이에크 사상의 ‘포교’ 대상을 고등학생으로까지 확대한 셈이다.앞으로는 자유주의 사상을 널리 알리기 위해 ‘선생님캠프’를 마련한다는 계획도 갖고 있다. 또 지난 2002년부터는 숭실대, 한성대, 경희대 등 8개 대학에서 자유시장경제론을 정식과목으로 개설해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멤버들의 면면은?올해 초 손병두 전국경제인연합회 상임고문은 한 매체에 기고한 신년칼럼에서 하이에크를 언급했다. 새해 경제에 대한 희망을 담은 이 칼럼에서 그는 자율적인 경쟁이 가능한 사회분위기를 조성해 나가자는 주장을 풀어놓았다.손고문은 바로 이 한국하이에크소사이어티의 회원이다. 그 역시 철저한 자유시장경제를 추구하는 자유주의자다.학회 회원들의 면면을 보면 크게 교수진과 기업인의 축으로 나뉜다. 전경련 소속인 회원들도 상당수다. 학회 결성 당시 창립멤버들은 ‘자유주의의 앞길이 험난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공식모임을 만든다고 설립취지를 밝혔다. 사실상 80~90년대만 해도 자유주의는 ‘재벌의 앞잡이’라는 말을 들어왔다. 이들은 ‘기업의 목적은 사회공헌’이라는 식의 케인스적 발상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기업환경을 완전 자율경쟁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줘야 한다는 게 하이에크주의자들의 주장이다. 손고문의 신년칼럼 역시 이런 맥락에서 해석된다.손고문을 포함해 신일철 고려대 명예교수, 민병균 자유기업원 상임고문, 안재욱 경희대 경제통상학부 교수, 김영용 전남대 교수(현 회장) 등이 이 학회의 회원들이다. 또 소설가 복거일씨 역시 이 학회의 대표논객으로 활약하고 있다.한편 하이에크소사이어티 이외에도 지난 2000년 출범한 자유기업원 역시 하이에크 경제학을 추구하는 곳이다. 지난 97년 전경련 산하에 있었던 자유기업센터가 자유기업원의 전신이다. 2000년 2월에 비영리 연구소로 독립했다. 이곳 출신인 ‘공병호경영연구소’ 공병호 소장 역시 하이에크 사상의 대표논객으로 활약하고 있다.올해 초 대학생캠프에 참석했던 윤선영씨(서울대 경제학과 2학년ㆍ20)는 “일부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지만 경제를 새롭게 바라보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윤씨는 또 “캠프를 통해 자유시장경제론을 전적으로 신봉하게 된 건 아니다”며 “하지만 이 사상을 접하게 됨으로써 전혀 관심이 없었던 현실경제를 관심 있게 보게 됐다는 점에서 크게 도움이 됐다”고 덧붙였다. “이제 신문기사 하나를 보더라도 비판적인 시각으로 분석할 수 있다”는 것.지난 90년대 말 한 경제학자들의 소규모모임이 공식명칭을 단 정식학회로 자리를 잡은 것이 한국하이에크소사이어티다. 그리고 이 학회는 지난해 4월에는 법인등록을 마쳤다. 학자들의 의견을 주고받던 자리에서 책을 발간하고 캠프를 열어 일반인에게 생각을 전달하는 지식단체로 변하고 있는 것이 이 모임인 것이다. 마이너세력을 자처하면서도 대학생에서, 고등학생에게로 자신들의 사상을 꾸준히 전파하고 있는 한국하이에크소사이어티의 다음 행보가 주목된다.INTERVIEW | 대표논객 복거일씨성장의 토양 마련하고파“저희 자유주의자들은 영원한 소수파입니다.”하이에크소사이어티의 회원이자 대표논객인 복거일씨(58)는 자유시장경제를 추구하는 모임은 ‘마이너리거’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개인들에게 자유와 선택을 최대한 많이 주자는 주장은 우리 직관에서 많이 벗어나 있죠. 심판이 없어도 우리 스스로 경쟁하면서 사회를 유지시킬 수 있다는 주장에 쉽게 공감을 하기는 어려울 테니까요.”이처럼 소수파를 자처하면서도 복씨는 하이에크소사이어티에서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하이에크의 사상가적인 면을 높이 사기 때문이다.“사람을 믿는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시장은 사람으로 이뤄져 있지 않습니까. 하이에크는 시장의 각 개인이 합리적으로 행동한다고 봤습니다.”그는 최근 사회가 ‘강한 정부’를 향해 움직이고 있는 것은 이 같은 개인들에 대한 믿음 부족에서 비롯됐다고 설명했다. 사회 전반적으로 정부가 나서서 강력한 조치를 취해야만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보는 시각이 압도적이라는 이야기다. 그가 소수파를 자청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그래도 젊은층에서 자유시장경제를 받아들이는 데 적극적이라는 점에 그는 무척 고무돼 있다. 그는 올해 초 4기째를 맞이한 대학생캠프를 지켜보면서 이 같은 생각에 확신을 갖게 됐다.우리나라 교육과정상 고등학교 때 경제학을 접할 기회는 터무니없이 부족해 많은 대학생들이 새로운 학문에 대해 호기심이 많다는 것이다. 자연히 캠프에 참가한 학생들이 강의 등 모든 프로그램에 무척 진지하게 반응하더라고. “하이에크소사이어티는 무정부주의자들의 모임이 아닙니다. 다만 개인들의 선택을 믿는 만큼 정부권한이 확대되는 속도를 다소 늦춰보자는 것이죠. 지식이 발전하고 사람들이 그 지식을 흡수하기 시작하면 다양한 시각이 자라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겁니다. 자유주의 성장의 토양을 마련하는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