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딸내미 혼삿길 막을 일 있어요?”퇴직 9개월 만에 택시기사를 새 직업으로 삼기로 한 날, 미혼인 막내딸은 싫은 내색을 감추지 않았다. 반대하긴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푸른색 유니폼을 챙겨주기는커녕 기상시간을 맞춰 놓은 자명종을 몰래 1시간 뒤로 늦춰 놔 지각을 하게 만들기도 했다. 처음 한달 동안 초보 택시기사 박남수씨(62)는 가족들 달래랴 새 일에 적응하랴 그야말로 ‘고군분투’했다.가족들의 반대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36년간이나 교편을 잡으며 아이들 가르친 경험밖에 없는 아버지가, 환갑이 지나 이제는 건강관리에 신경 써야 할 남편이, 느닷없이 택시운전을 하겠다니 반가울 리 없었다. 더구나 택시운전은 하루 12시간 근무에 격주로 낮밤을 바꿔야 해 20~30대 젊은이도 견뎌내기 힘들다지 않은가. 매달 연금이 지급돼 생계가 어려운 것도 아니니 가족들 입장에서는 반대가 오히려 당연했다.그러나 박씨 생각은 달랐다. 즉흥적인 판단으로 택시운전을 시작한 건 아니었다. 새 일을 시작하기 위해 여러 시도를 해 보았고, 심사숙고 끝에 선택한 게 이 일이다.“지난해 2월, 정든 교단을 떠난 뒤 후유증이 심했습니다. 주변에서는 열심히 일한 만큼 이제 쉬어도 된다고 하나같이 말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무료함이 스트레스가 돼 돌아오더군요. 아내한테 은행 볼일이라도 없냐고 채근할 정도였죠. 어떤 일이라도 하지 않으면 안됐습니다.”지금 초로의 영어선생님은 ‘서민의 친구’ 택시기사로 변신, 이 일에서 재미와 보람을 듬뿍 맛보고 있다. 인생 2막을 멋지게 열어젖혔을뿐더러 직업선택에 관한 사회적 통념도 보기 좋게 깨뜨렸다.교직생활 36년, 지금은 ‘초보 기사’박씨는 사범대를 졸업한 후 전북에서 16년 동안, 서울에서 20년 동안 영어교사로 재직했다. 한참 아래 후배들이 교감, 교장이 될 동안 평교사로 일한 것에 긍지를 느끼며 일했지만 부담도 적잖았다. “후배들의 활동이 나로 인해 제약을 받을까 걱정됐기” 때문이다. 결국 정년을 1년 반 남겨두고 명예퇴직을 했다.집에서 쉬는 것은 생각보다 ‘힘든 일’이었다. 36년 동안 길들여진 출퇴근 습관, 항상 아이들과 함께하던 생활을 한꺼번에 바꾸기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박씨는 “어떤 때는 사육당하는 것처럼 느낄 정도로 답답했다”고 말했다.인터넷을 뒤지며 새 일에 대한 구상을 시작했다. 실버취업박람회를 둘러보며 몇가지 일을 놓고 이리저리 재보기도 했다. 그러나 어려운 매듭을 풀어가며 해결의 기쁨을 즐기는 쪽인 자신의 성격과는 맞지 않는 단순노동이 대부분이었다. 60대 퇴직자에게 주어지는 기회는 아주 적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계기였다.그러다 생각이 머무른 분야가 운전. 언젠가 사업을 하다 택시를 모는 대학동기가 “몸이 좀 힘들어서 그렇지, 차를 몰고 나오면 내 세상”이라고 하던 말이 떠올랐다. 평소 운전하길 좋아하는 편이고 마침 1종 면허를 갖고 있어 문제는 없었다.일단 택시회사들을 알아봐야 했다. 인터넷 홈페이지를 갖고 있는 회사들을 찾아내 일일이 검토를 시작했다. 꼼꼼한 조사 끝에 “소비자 평판과 교육체계 등이 잘돼 있어” OK택시를 선택했다. 하지만 정작 회사에서는 박씨를 반기지 않았다. 도리어 “선생님, 힘들어서 금방 포기하실지도 모릅니다. 잘 생각하십시오”라며 돌려보내려 했다. 그러나 박씨는 이 점이 마음에 들었다. “기사가 모자라 누구라도 써야 할 텐데 그렇게 이야기하는 걸 보고 믿을 만한 회사구나 생각했다”는 것이다.12월12일 첫 출근한 날은 사납금 5만원을 채우지 못했다. 12시간을 근무하고 운전석을 내려오니 발이 땅에 닿지 않은 듯 어지럼증도 생겼다. 게다가 두달 동안은 임시직이어서 월급이 없고 사납금과 하루 가스비 2만5,000원을 제외한 돈을 수입의 전부로 삼아야 했다. 노동량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수입인데다 몸은 천근만근 무겁기만 했다.하지만 한달여가 지난 지금은 여느 프로 운전사 못잖은 풍모가 배어나올 정도로 빠르게 적응하고 있다. 박씨는 “장기에서 처음 보는 수를 풀어내면 그만큼 즐거운 게 없는데, 택시운전도 마찬가지”라며 “생전 처음 해 보는 일을 내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 쏠쏠한 즐거움을 안겨준다”고 말했다.3년 후 개인택시 ‘목표’택시운전을 하며 박씨는 크게 두 가지의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첫째는 노동의 신성함. 매일 통장에 2만~3만원의 수입을 차곡차곡 모으면서 지금껏 ‘돈’에 대해 가졌던 생각이 크게 바뀌었다. 하루의 절반을 바쳐 번 신성한 돈인지라 함부로 쓸 수도, 가치를 매길 수도 없다는 것이다. 반평생 교단에 서며 받았던 봉급과는 또 다른 의미다.요즘 젊은 세대에게 가졌던 ‘편견’도 버리게 됐다. 박씨는 “한심하게만 생각했던 요란한 차림의 20대들이 예의를 갖추는 것을 보고 그동안의 생각이 편협했음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오히려 이들의 장래가 밝다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었다.택시운전의 또 다른 즐거움은 사람 사귀기. 덕분에 12시간이 그리 지루하지 않다.“음식 잘하는 기사식당에 들러 비슷한 연령대의 기사들과 사귀고 수많은 서민들과 삶의 애환을 나누는 것은 ‘택시기사의 특권’입니다. 다른 기사들이 꺼리는 외국인 승객을 태워 전공인 영어를 활용하는 것도 커다란 즐거움이죠.”박씨는 “승객들과 부대껴 보니, 세상이 험하다 해도 한국사람들 심성은 참 착하다는 걸 느낀다”며 웃었다.박씨는 2월1일부터 정식사원이 된다. 그때부터는 월급이 나오기 때문에 지금보다는 수입이 훨씬 늘어난다. “연금은 평생을 뒷바라지해 준 아내의 몫”이라며 “내 용돈은 내가 벌어 쓰는 게 당연하다”고 말하는 박씨는 이미 75세까지 계획을 세워놓았다. 3년 동안 열심히 일해 개인택시 자격을 취득한 후, 딱 10년 동안 개인택시를 몰아보겠다는 것. 이후에는 ‘정말로’ 쉴 작정이란다.택시기사로 성공적인 변신에 가족들의 태도도 많이 달라졌다. 처음 아버지의 선택에 우려가 컸던 막내딸은 요즘 “맛있는 점심 드시라”며 용돈을 찔러주고, 아내도 유니폼 다림질을 마다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박씨의 밝은 얼굴이 요즘의 활기찬 생활을 말해준다.“제자들이 실망하진 않을까 솔직히 걱정이 됩니다. 하지만 현재 나는 이 일에 애착이 대단해요. 새 일에 최선을 다하는 은사가 보기 싫진 않겠죠?”박남수씨가 말하는 Success Key●직업선택의 선입관을 버려라. 보람과 성취는 내가 찾기 나름이다.●‘아브라함의 선택’을 기억하라. 눈앞의 것만 선택의 잣대로 삼으면 훗날 후회하기 십상이다.●내가 가진 능력을 세세히 뜯어보라. 운전면허도 훌륭한 기술이다.●무슨 일에나 애착을 가져라. 그 일이 즐거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