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증권사 프라이빗뱅커(PB)는 오래 전부터 관리해 오던 고객 이성민씨(가명)의 전화를 받았다. “LG카드 전환사채(CB)와 신주인수권부사채(BW)가 액면가인 1만원의 반값에 가까운 5,000원대로 떨어졌는데, 이는 좋은 투자기회가 아닌가. 매수하는 데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조언을 바란다”는 투자상담이었다.이씨가 전화를 걸었을 당시는 LG카드의 내일을 점치기 어려우며, 채권은행단이 공동관리한다는 대안도 합의점을 못찾고 표류 중일 정도로 일분일초가 긴박하게 돌아가는 상황. 그런데도 투자자 이씨가 이처럼 ‘간 큰’ 투자를 고려해보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이씨는 지난 2001년 CB 투자로 단기간에 큰 수익을 올린 경험을 갖고 있었다. 당시 현대건설이 지금의 LG카드처럼 풍전등화 같은 상태였다. 이때 그는 오랫동안 믿고 거래해오던 PB의 조언을 듣고 5,000원대로 폭락한 현대건설 CB를 매입하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당장 부도처리라도 될 것만 같았던 분위기와는 달리 현대건설은 정부의 주도하에 위기를 넘겼다. 1년 만에 만기가 돌아와 이씨는 매입한 채권의 원금과 이자를 모두 돌려받았다. 액면가인 1만원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 이 채권을 매입했기 때문에 시세차익에다 이자수입까지 더해 투자 원금의 70%를 넘는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이씨뿐만 아니라 위험을 선호하며 투자기회를 찾는 일부 투자자들이나 과거에 CB 투자로 높은 수익을 올려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 사이에 요즘 LG카드 CB와 BW가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최근 증권사 채권팀 등에는 공모청약을 통해 1만원을 주고 CB나 BW를 매입했던 투자자들의 ‘원금이나 이자를 떼이지 않겠냐’는 근심어린 항의성 전화가 폭주하는 것과 함께 값이 폭락한 틈을 타서 매수에 나서면 어떻겠냐는 문의전화도 걸려오고 있다.위기를 기회로 삼는 ‘역발상’ 투자를 고려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고위험 고수익(High-Risk, High-Return)의 논리가 철저히 적용되는 투자라면 LG카드가 매각돼 주인이 바뀔 경우라든가, 법정관리로 들어갈 경우 등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모두 가정해 본 뒤 ‘수용가능한 위험’으로 판단되면 뛰어들어야 한다.지난해 상반기 연체율 상승으로 인한 경영악화와 이에 따른 카드사들의 유동성 문제가 처음으로 거론된 후 LG카드를 비롯해 삼성카드, 현대카드 등이 모두 자본확충을 위해 앞다퉈 후순위채권을 발행했었다. 변제 순위가 뒤로 처지는 후순위인데다 회사사정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발행됐고 장기였기 때문에 일반 채권에 비해 금리가 높다. 지난 2003년 6월23일 발행된 삼성카드 CB(삼성카드 1037)는 만기 2008년 6월, 표면이자율 2%에 보장수익률 9%로 다른 회사채에 비해 금리가 월등하다. 마찬가지로 8월12일 발행된 LG카드 BW(LG카드 1062)는 만기 2009년 2월로 표면이자율 3%에 보장수익률 7%, 2003년 7월31일 발행된 현대카드 CB(현대카드 11)는 만기 2009년 1월로 표면이자율 4%에 보장수익률 9%의 조건으로 발행됐다.이중에서 무난히 유동성위기를 넘길 것으로 여겨지는 삼성카드나 현대카드 채권은 1월8일 현재 액면가 1만원에서 값이 크게 떨어지지 않은 9,400원, 8,920원대에서 거래되고 있다.그러나 아슬아슬 벼랑 끝을 걷고 있는 LG카드 채권의 경우는 다르다. 1월8일 현재 CB는 5,800원, BW는 5,400원선에 거래됐다. 반토막이 난 것이다. 그렇다면 1만원짜리가 50% 세일 중이니 저가매입에 나서도 좋은 것일까.만기 보유로 ‘이자수익+시세차익’ 기대는 무리후순위 BW는 만기 5년 6개월에 표면이자율은 연 3%, 만기보장수익률은 연 7%로 만기까지 보유시 총 42.34%(세전)의 수익을 올릴 수 있다. 따라서 1억원을 투자해 만기까지 보유할 경우 5년간 매년 300만원, 마지막 6개월은 151만원의 이자에 만기가 되면 나머지 4%에 대한 복리이자 2,583만원을 받는다. 한편 CB는 표면이자율은 BW와 같지만, 만기보장수익률이 8%기 때문에 1억원을 투자해 만기까지 그대로 갖고 있으면 3,304만원(총 이자수익 4,954만원)을 받게 돼 모든 이자수익은 49.54%(세전)에 달한다. 이 수익률은 채권 발행시 공모를 통해 액면 1만원에 매입했을 때의 경우에 해당한다.그럼 이 같은 구조를 갖고 있는 CB를 모두 1억원을 투자해 액면 1만원이 아닌 매입단가 평균 5,000원에 산다고 하자. 수익률은 크게 달라진다. 1억원을 투자한다면 액면과 매입단가의 차이까지 모두 더해 수익은 9,908만원에 달하게 된다. 5년 6개월 만에 100%에 육박하는 엄청난 수익이다.이 같은 ‘대박의 가능성’ 때문에 위험천만한 투자임에도 투자자들의 관심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그러나 이것은 만기까지 보유하는 것을 전제로 한 수익률이다. 실제로 현재 5,000원대에서 움직이고 있는 CB를 매입하면서 만기까지 팔지 않고 고스란히 가져갈 가능성을 염두에 두기는 어렵다. 5년 6개월 후 LG카드의 상황을 가늠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약 지금 반토막난 LG카드 CB나 BW에 투자하고 싶다면 만기까지 보유해 이자수입 전부를 받기를 기대하기보다는 채권의 가격변동에 따른 차익을 바라고 투자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그것도 LG카드가 순조롭게 정상화 과정을 밟아 채권값이 지금보다 상승해야 가능하다.공모를 통해 1만원에 이를 받은 투자자나 시장에서 더 낮은 가격에 매입한 투자자에게나 모두 가장 최상의 시나리오는 LG카드가 산업은행의 위탁관리 등 채권단에 의해 경영되다가 안정적인 새 주인을 만나 인수되는 것이다. 이 경우 회사는 주인이 누구든 만기인 2009년까지 그대로 존속할 것이고, 이에 따라 원리금은 고스란히 보존된다. 채권은 회사와 채권보유자간의 계약이다. 따라서 현행법하에서는 채권보유자의 동의 없이 강제로 빚을 탕감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이 경우라면 공모로 1만원에 채권을 산 투자자는 애초 기대한 원금과 이자를 고스란히 받을 수 있고 5,000~6,000원대에 CB나 BW를 매입한 투자자는 80% 이상의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게 된다.하지만 최악의 경우 LG카드가 청산절차에 들어갈 경우에는 공모, 청약을 통해 채권을 매입한 투자자와 저가에 매입한 투자자의 손익이 달라진다. 법정관리로 간다면 당장 LG카드의 채무에 대한 탕감작업이 진행되고, 이때 변제 순위가 뒤지는 후순위채의 특성에 따라 이자는 물론 원금까지 대폭 깎일 가능성이 높다. 정상화 계획서에 따라 은행의 담보채권자, 투신사, 금융기관, 개인 등 무담보채권자에 이어 후순위채권자들이 차등으로 원리금을 보상받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경우에는 1만원에 채권을 산 투자자는 원금손실이 불가피할 것이다.‘바겐세일’ CB 사려면 주식 투자 마인드로 접근 필요하지만 이때 탕감 비율이 얼마로 결정되느냐에 따라 저가에 매입한 투자자는 투자 원금의 손실이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다. 만약 매입단가가 5,000원이었는데 후순위채권의 보상 비율이 50% 이하라면 이 투자자도 투자원금의 손실을 입을 수도 있고, 보상 비율이 50%를 넘는다면 투자 원금은 보전될 수도 있는 것.대부분의 증권업 관련자들은 대박 기회라는 한 측면만 보고 섣불리 투자에 나서는 일은 자제하라고 충고하고 있다. 동양종금증권 금융상품운용팀 소상현 대리는 “CB나 BW가 아닌 카드사의 일반 선순위채권에 투자했던 투자자들에게서 최근 문의전화가 빗발치고 있다”면서 이들에게 “LG카드가 청산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또 채무조정을 하더라도 개인 및 일반법인이 보유하고 있는 선순위채권은 그렇게 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며 희망적인 대답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일반 선순위 카드채는 개인투자자와 함께 신용금고, 중소기업 등 일반법인 등이 많이 보유하고 있는데, 어쨌든 이들은 모두 개인투자자로 분류된다. 그러나 소대리는 “CB나 BW에 대해서는 후순위이기 때문에 일반 선순위채권과는 다른 기준을 적용해야 하며, 따라서 리스크가 너무 큰 현 상황에서 투자를 권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또한 굳이 값이 떨어진 BW나 CB에 투자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면 “채권을 산다는 마인드보다는 주식을 사는 기분으로, 아예 다른 생각을 갖고 접근할 것”을 주문했다. 겨우 이자수익률 3%를 기대하면서 부도 리스크까지 짊어지는 것은 불합리한 투자이기 때문에 시세차익을 목표로 단기매매를 하는 마음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설명이다.미래에셋증권 시청역지점 김승회 지점장은 자신에게 LG카드 BW 및 CB 투자 문의를 해 오는 고객들에게 일단은 만류한 뒤 “정 사고 싶으면 지금은 관심만 갖고 지켜보다 LG카드 처리방안이 보다 뚜렷이 가닥을 잡고 나면 사도 늦지 않다고 충고한다”고 말했다.김지점장은 현대건설 CB를 통해 쉽게 고수익을 올렸던 과거와 현재의 LG카드 상황을 똑같이 보아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다. LG카드 위기도 예전 같았으면 정부 주도로 신속하게 해결이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시장에서 외국인 비중이 높아졌고, 정치논리가 아닌 경제논리에 따라 해결이 되는, 시대가 변하고 시장 패러다임이 변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에 따라 투자자들도 변해야지 정부만 믿고 위험천만한 투자를 강행해서는 안된다”고 했다.김지점장은 또 LG카드를 청산하지 않고 산업은행 등이 경영한다는 결론이 나더라도 굳이 투자하고 싶다면 사서 만기까지 보유하는 ‘바이 앤드 캐리’(buy and carry) 전략은 어렵다고 했다. 다른 제조업과 달리 신용카드사가 갖고 있는 자산은 성격이 특이하기 때문에 정상화되려면 앞으로도 시일이 걸릴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죽어가는 사람이 ‘나 죽는데 죽기 전에 빚은 내놔라’고 한다면 그 말을 들을 사람이 거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많은 LG카드 사용자들이 이런 모럴해저드에 빠져 있는 상태. 그러니 완전히 정상화되고 부실이 해결되려면 아주 긴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된다. 굳이 투자하고 싶다면 유동성위기가 일단락되는 것을 지켜본 뒤 매입하고 주식으로 생각해서 단기매매해 ‘치고 빠지는’ 전략을 권했다. 기대수익률 역시 이 전략에 맞추어 낮추어야 한다. CB나 BW 등 주식 관련 채권은 증권거래소에 상장돼 장내거래되기 때문에 보통 개인이 사고팔기가 녹록지 않은 일반 채권에 비해 거래가 자유롭다. 어느 증권사든 증권계좌를 개설하고 있으면 홈트레이딩시스템(HTS)을 이용, 온라인으로도 얼마든지 사고팔 수가 있다.LG카드 CB와 BW발행 당시 주간사를 맡았던 한 증권사 관계자의 조언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최근까지도 증권사가 보유하고 있던 물량을 외국계 기관에 팔기도 했지만, 지금 개인들이 투자에 나서기는 적합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또 이 관계자는 “현대건설 CB로 큰 수익을 냈던 고객들이 문의를 해오고 있지만, 만기가 임박해 있던 현대건설 CB와 5년 넘게 남은 LG카드 CB의 경우는 다르다”고 덧붙였다. 지금 투자하면 투자라기보다는 투기 성격이 강하다고 봐야 한다는 것. 그는 산업은행 등이 경영을 맡아 정상화 과정을 밟는다 해도 채권가격은 일시적으로 6,000~7,000원대까지 갔다가 다시 하락할 것이며, 액면 근처까지 회복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