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연말이면 승진과 퇴출, 두 갈래 길에서 장래를 걱정하던 이상학씨(비어캐빈 영등포2점 대표ㆍ50)였다.20여년의 직장생활에서 근무연차가 높아질수록 승진에 대한 부담감은 커져만 갔다. 높은 직급에 대한 꿈보다는 승진자 명단에서 누락되면 곧바로 퇴출자 리스트에 오를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매년 겨울마다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려 왔다.지난 2000년 겨울에는 우려하던 바가 현실로 나타났다. 승진시기를 놓치고 불안해하던 그에게 퇴직압력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영업소장으로 근무하던 이씨에게 상관인 지점장이 “그만둘 생각이 없느냐”고 물은 것은 비록 비공식적인 자리였지만 분명한 퇴출압력이었다.“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어요. ‘지금 그만두면 향후 2년간의 급여는 지급해주겠다’면서 나중에는 이런 지원조차 없을 거라 하더군요. 제게는 거의 위협으로 들렸습니다.”아직 대학에 다니는 딸을 생각하니 지점장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더구나 회사가 적자가 나는 상황도 아니기에 퇴직의 명분도 분명하지 않다고 판단했다.1년을 버텼다.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이미 사내에 퇴출대상 1호라는 소문이 파다했다.“지점장의 제의 이후 판촉과 조사를 담당하는 한직으로 밀린 상태였습니다. 마음에 부담이 커서 1년 동안 자다가도 깜짝 놀라서 깨어날 정도였죠.”결국 지난해 1월 회사에 사표를 냈다.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사내 입지가 회복되면 몇 년은 더 버틸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 회복되지 않았고 새로운 일을 찾아야 했다.과거 모습과 함께 자존심도 버려지금의 가게를 연 것이 지난해 5월이니까 퇴직 후 4개월 만에 새로운 출발을 성공적으로 연 셈이다.새 일을 시작하는 과정은 오히려 수월했다. 힘든 시간을 1년이나 보냈기 때문에 감정조절에 있어서 어느 퇴직자보다 유리한 입장에 있었다.명예퇴직자라면 가질 법한 전 직장에 대한 반감은 이미 그에게는 감정의 낭비였다. 냉정하게 현실을 바라보기 시작했다.처음에는 재취업을 생각했다. 친척의 도움으로 한 건설회사에 자리가 있다는 말을 듣고 지원서를 보냈다. 사회생활을 처음 하던 30년 전에는 이력서만 내면 됐지만 새로 일자리를 구하려고 보니 요즘은 자기소개서를 내야한다고 했다. 인터넷으로 양식을 찾아보고 예문도 찾다보니 소개서 작성에만 꼬박 일주일이 걸렸다. 하지만 부질없는 일이었다. 쉰이라는 나이가 너무 큰 부담이었다. 영업소장을 한 경험이 있어 소규모 조직 관리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한번 퇴짜를 맞고 나니 적잖은 나이가 부담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각종 구인게시판에도 나이제한에 대한 내용이 상당수 있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더욱이 아주 작은 회사로 옮긴다면 ‘과연 전과 다른 조직문화를 견딜 수 있을까’ 싶었다.그래도 다행이었던 점은 퇴직 직전에 했던 일이 이전에 맡았던 업무에 비해 중요도는 떨어지는 일이었지만 동시에 개인시간을 많이 갖게 됐다는 점이었다. 즉 장래를 위해 그가 투자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1년 동안 창업박람회나 창업강좌가 있으면 어디든 달려갔다. 각 구청에서 하는 이벤트도 수시로 찾아다녔고 창업 관련 서적도 열심히 읽었다. 수시로 하는 인터넷 검색은 기본이었다.다행히 전 직장에서 창업지원 프로그램도 마련해주었다. 창업컨설턴트의 강의를 마치 개인과외를 받듯 열심히 들었고 창업아이템 선정을 위해 적성검사도 신청했다.맥주집을 열기로 결심한 것은 이 적성검사를 통한 결과를 참고로 한 것이었다. 안정성을 추구하는 자신의 성향에 맞는데다 당장 수익이 날 수 있는 아이템이라는 확신이 들었다.이씨는 삼미그룹 부회장에서 웨이터로 변신해 화제가 됐던 서상록씨를 존경하는 인물로 꼽았다. 자신도 자존심을 버린 채 과거의 모습을 잊고 완벽하게 새로운 출발을 하고 싶었다. 서비스업에서 새 인생을 꾸려보고 싶었다.가게 부지를 정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지난 20년의 직장생활 동안 서울시내 각 지역을 돌며 일해 왔던 그였다. 장사가 잘될 만한 장소를 고민하는 일은 오히려 즐거웠다.2002한ㆍ일월드컵이 열렸던 지난해 5월 이씨도 가게를 열었다. 다행히 시기적으로 운이 좋아서인지 첫달부터 매출실적이 좋았다. 1년 반이 지난 지금까지도 월 순수익은 평균 600만원을 상회한다.그러나 그는 지금의 수입이 직장생활을 하던 때와 비교해 더 좋아진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가 퇴직 후 새로운 출발을 하면서 얻은 것은 경제적인 풍요가 아닌 자신에 대한 자긍심이라는 것이다.“새벽 4시 넘어 퇴근하는 일이 일쑤고 쉬는 날도 없습니다. 지난 1년 반 동안 설날과 추석, 딱 이틀 쉬었네요. 친구들과 연락도 자주 못하니 외톨이가 됐고요.”이처럼 몸이 고된 것을 생각하면 수입은 결코 많은 편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그가 생각하는 큰 수확은 모든 일을 혼자서 해결할 수 있게 됐다는 사실이다. 회사에서는 자신이 맡은 분야의 일만 하면 됐지만 창업전선에 뛰어든 이후로는 하다못해 에어컨 수리, 소파 교체 등도 스스로 해결해야 했고, 또 그렇게 할 수 있게 적응이 됐다. 실업이 심각한 요즘 같은 때에 종업원 단 3명이라도 자신이 고용창출에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전 직장동료들도 이씨가 이 일을 하는 게 무척 의외라며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곤 한다.이씨는 몇몇 창업강의에서 성공사례 경험자로 강연에 나선 적이 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단순히 새 출발에 성공한 사람으로 비쳐지길 원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자신이 겪었던 심적 고통이 사람들에게 정확히 전달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창업과정이 그냥 물 흐르듯 자연스레 흘러온 것으로 비쳐지기보다는 ‘창업은 어렵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게 묘사되기를 희망한다.자신을 바라보며 의외로 ‘사장이 됐으니 하고 싶은 일 마음대로 하며 살겠구나’ 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는 게 그의 평가다. 또 그런 안이한 마음가짐으로 창업전선에 뛰어들어 실패를 맛보는 경우도 많이 목격했다는 것이다.“같이 일했던 동료들한테 항상 ‘직장생활이 귀족생활’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회사생활하면서 저처럼 1년에 이틀 쉬고 일하는 자세로 임하면 퇴출될 일도 절대 없을 거라고요.”그가 새 일을 하면서 가장 즐겁게 생각하는 점은 연말마다 시달렸던 승진 스트레스에서 벗어났다는 것이다. 이제는 퇴직을 두려워하는 동료들에게 조언을 해 줄 수 있을 정도로 마음이 평안해졌다.“이 일도 처음에는 무척 큰 포부를 품고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창업이야말로 만만하게 볼 상대가 아니에요. 이제 더디게 가더라도 실패하지 않을 길을 차근차근 걸어갈 겁니다.”이사장이 말하는 Success Key●과거는 잊어라. 특히 그만둔 직장에 대한 반감은 버리고 새로 시작해야 한다. 새로운 출발은 긍정적인 마음에서부터 시작된다.●가고자 하는 방향을 정했다면 충분한 지식을 쌓아라.●전문가의 조언 등 재취업, 창업 지원프로그램을 적극 활용하라.●프로정신이 필요하다. 일단 창업했다면 불철주야로 매달려야 한다.